오키나에서는 시계를 보는 게 아니야.
골프장 필드 위 소바집
소바 가게는 골프장 필드 옆구리에 있었다. 오키나와 해는 십자가처럼 어깨를 눌러 발걸음을 더디게 했다. 필드를 가로지르자 거짓말처럼 울울한 나무에 둘러싸인 소바 집이 나타났다. 골프장이 먼저였을까? 소바집이 먼저 였을까?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오랫동안 손보지 않아 거칠어진 작은 정원 안에 조용히 뿌리내린 가게가 보였다. 천하를 호령하던 사무라이가 세상을 등지고 숨어들어 과거 수많은 살생을 후회하며 소바에만 전념하는, 무협지에 나올 법한 분위기였다.
작은 마당에는 노부부와 멋스러운 중년 남성과 개 한 마리가 있었다. 땀을 닦고 그들 옆에 자리를 잡아 소바를 시켰다. 따뜻한 소바를 입 속으로 구겨 넣자 육수가 몸 밖으로 흘러나왔다. 이 곳까지 찾아온 외국인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할아버지는 술 한잔 건네며 낮술 하자했다. 일정이 떠올라 시계를 잠시 응시하려는 찰나,
“오키나와에서는 시계를 보는 게 아니야”
“네?”
바쁜다고 네가 중요한 사람이란 뜻은 아니야.
모두가 출근하는 아침, 할 일이 없던 나는 밝아오는 아침이 두려웠다. 바쁘고 싶었다. 아니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어딘가에 소속이 돼 욕이라도 먹으며 살고 싶었다. 혁오의 노랫말처럼 교통카드를 찍어 볼 일이 좀처럼 없었다. 오직 할 수 있는 건 공원을 뛰고 또 뛰는 일 밖에 없었다. 숨이 겹겹이 쌓여 헛구역질이 올라와야 살아있음을 느꼈고, 고통만이 불안을 잠시나마 잠식시켜주었다.
사회로 로그인되자마자 미친 듯 일만 했다. 바쁘지 않아도 바빴다. 센과 치히로의 가오나시처럼 들어오는 일은 닥치는 대로 전부 먹어치웠다. 일이 아닌 바쁨에서, 무엇이 아니라 속도에서 자존을 찾았다. 바쁘지 않으면 자존감도 파도처럼, 찰나의 노을처럼 사라졌다. 시간을 버리고 자존을 얻었던 샘이다. 스스로 만든 자존이 아니라 세상이 정해준 자존감이었다. 고개를 돌아보니 나도 모르게 눈가에 주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키나와에선 시간이 느리게 걸어왔고 정직하게 시간이 흘렀다. 해가 뜨면 아침이 오고 해가 지면 밤이 찾아왔다. 단순한 진리는 시간을 수평으로 늘렸다. 효율적으로- 생산적으로 소비해야 하는 결론의 시간이 아니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흘러가는 구름, 사람과 함께 흘러가는 과정의 시간이 존재했다.
시간이란 관념은 인간에게만 존재해
“ 걱정 말고 마시게.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건 인간뿐이야. 시간이란 개념을 지각하는 지구 상 존재는 인간뿐이거든,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고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건 지금 뿐이라고. 지금 할 수 있는 건 술을 마시는 일 아닌가? 느려야 바쁠 수도 있는 거라고"
시간을 잊은 채 깎고 깎아 늘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골프장, 정리가 안돼 수염이 덥수룩한 노신사 같은 소바 가게.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다른 시간을 품은 두 곳. 우리의 시간은 어떤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맞다. 사람은 빨라서 죽어도 느리다고 죽지는 않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