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가 되던 날
1941년 내가 11살 일 때 막내이자 장남인 남동생이 태어났다. 어머니의 오랜 기도 끝에 음력 4월 초파일에.
그때까지 나의 어머니는 딸 만 여섯 명을 낳으셨다. 그중 첫째와 다섯째는 홍역 등으로 아기 때 하늘나라로 먼저 갔다.
나는 언니 한 명과 여동생 둘이 있는 둘째 딸로 자랐다. 내 남동생은 어머니의 일곱 번째 자녀로 그렇게 기다리던 유일한 사내아이였다.
(그 후 또 한 명의 딸을 낳았는데, 6.25 사변 때 총소리에 놀라서 또 하늘나라로 먼저 갔다.)
내 남동생이 태어났던 날이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난다.
안방에 만삭인 어머니가 계셨고, 아버지는 볼 일이 있어 외출하셨다.
언니는 모시 길쌈하러 친구 집에 갔고,
나는 어머니 옆에 있었다. 하루 종일 함께 있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
조금씩 진통이 오는 어머니가 애처로워 심부름을 하며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날은 아침 7시부터 하혈을 하셨다.
방안에 있던 요강에 한 방울씩 떨어지던 것이 오후 4시쯤 되니 요강에 한가득 찼다.
어머니는 나에게 걱정스레 말씀하셨다.
"저 피를 버려야 하는데.. 거름 할 변소나 잿간에는 버릴 수 없으니 어떡할꼬?"
나도 걱정이 되어 마루에 나가 쪼그리고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하늘을 향해 기도했다.
"하나님! 이 피를 버리려면 비가 내려야 됩니다. 밭고랑 옆으로 넘치는 하수물에 버릴 수 있도록 비가 오게 해 주세요!"
사기로 된 요강을 옆에 두고 기도하는 나를 보며 어머니는 걱정과 고통 속에서도 빙긋이 힘없이 미소 지으며 말씀하셨다.
"얘야, 너 같은 꼬마가 기도한다고 비가 오시겠니? 비가 와도 밭고랑으로 가려면 언덕이 있어서, 네가 넘어갈 수도 없을 텐데... 날도 이리 화창해서 비가 오지도 않을 것 같고..."
나는 말했다. "어머니 기다려보세요. 그 방법밖에는 없잖아요?"
그러고는 한 30분쯤 지났다.
서향으로 난 방문의 햇살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어머니께서 문을 열어보라고 하셨다.
내가 문을 열어보니 , 남쪽으로부터 캄캄한 먹구름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놀라고 신기해서 어머니께 소리쳤다.
"어머니, 저기 큰 구름이 생겼어요. 비가 오려나 봐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갑자기 큰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더니, 이어 소나기가 죽죽 내리기 시작했다.
좀 전까지 그렇게도 화창하던 하늘이었는데...
비가 엄청나게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어머니, 비가 와요! 이제 됐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너무 놀라고 좋아서 펄쩍펄쩍 뛰었다.
나의 기도에 비가 내리는 것을 보신 어머니는, 감격하셨는지 우리 조상 중에 효자로 유명하신 효자 할아버지 얘기를 하셨다.
나는 비가 그치기 전에 얼른 사기요강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 무거워서 끙끙대다 언덕에서 미끄러질 뻔도 했다.
드디어, 무사히 밭고랑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그 옆으로 세차게 넘쳐나는 물줄기에 조심스레 요강을 비웠다.
핏물은 세찬 빗줄기와 펄펄 넘쳐흐르는 고랑 물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내려가 버렸다. 이건.. 기적 같은 일이었다!
나는 산에서 내려오는 황토 흙탕물에 사기요강을 한번 씻고,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로 다시 한번 씻은 다음, 마른걸레로 말끔히 물기를 닦고 나서야 어머니가 계신 방으로 들어왔다. 비워진 깨끗한 빈 사기요강을 손에 들고.
이를 본 어머니는 너무 개운해하시며, 아픈 중에도
나에게 말씀하셨다.
"둘째가 참 기특하고 고맙구나! 정말로 네 기도를 하늘이 들으셨나 보다."
그 후로 어머니의 피는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세차게 오던 비도 뚝 멈추었다.
그때 나는 정말 하나님이 내기도를 듣고 비를 내려주신 것 같았다. 아직 예수님을 알지도 못한 때였다. 오직 아버지가 늘 얘기하시던 하나님이 정말 계시다고 믿게 된 감사하고 감격적인 날이었다.
* *
아버지는 해산준비에 필요한 물건을 사러 외출하셨다가, 비가 그친 후에야 집에 돌아오셨다. 아버지는 서둘러 안방 뒤에 있는 해산방을 꼼꼼히 준비하셨다. 그리고 밤 10시쯤 어머니는 산통을 더 느끼셨는지 그 방으로 옮기셨다.
어머니는 출산 때마다 산파도 없이 혼자 출산을 하셨다. 언니 출산 때는 시종도 있고, 아버지도 선비셨으니 그렇지 않았단다. 나에 대한 태몽을 꾸신 후 농사도 배우며 집도 다시 지었다.
나를 낳을 때가 되자, 동네 사람들이 '새집에서 애 낳을 때는 부엌에서 낳는 법'이라고 했다. 그러나 깔끔한 어머니는 '부엌은 싫다'며 뒷방에서 낳으셨단다. 나중에 어머니께 왜 그러셨냐고 물었더니, "또 딸 낳으면 아버지 얼굴 보기에 미안하니까 그랬지.."라고 하셨다...
나는 자러 가지 않고 해산방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어머니의 진통소리에 깜짝깜짝 놀랐다. 어머니가 참 애처로웠다. 나는 아기울음소리가 언제 날지를 기다리며 귀를 쫑긋 세웠다.
언니와 동생들은 이미 자고 있었다..
아버지는 해산 후 끓일 미역국 준비를 해놓으시고는, 잠시 주무신다고 방에 누워계셨다.
다음날 밤 1시가 되었다. 밤 1시가 되자 드디어 아기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큰소리로 아버지를 흔들어 깨웠다.
"아버지! 아기 낳았어! 아버지!"
어머니는 무사히 동생을 낳았다.
아버지는 선잠에서 깨신 후, 추운 골방인 해산방에서 혼자 탯줄 끊으며 아기를 낳은 어머니를 서둘러 따뜻한 안방으로 옮기셨다.
아기는 포대기에 싸서 안방으로 데려다 놓았다.
그때는 아들인지도 딸인지도 상관없었다.
무사히 해산한 것이 감사하기만 했다.
나는 아버지를 따라 부엌으로 갔다. 아버지는 따뜻한 물을 떠다 어머니와 함께 아기를 씻겼다.
그때서야 아버지가 "아들"이라고 하셨다.
추운 방에서 낳아서 아기 고추가 쪼그라들어 있다가 목욕시키니까 제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다.
어머니는 확인도 안 하셨다고 했다. 또 딸일까 봐 겁이 나셨을까?
그러다 보니 날이 밝아왔다.
어쨌든 남동생이 태어난 것이다! 경사스러운 날이었다!
나는 이광경을 보려고 낮부터 밤새워 새벽까지 깨어있었나 보다! 겨우 11살짜리 어린애가.
아버지는 기뻐하시며 아들 낳았다는 표시로 대문 앞에 삼줄을 걸으셨다, 나는 언니를 깨워 뒷산에 올라 황토흙을 파왔다. 황토흙을 대문 양쪽에 세 군데씩 공깃밥 정도의 크기로 소복하게 놓아두었다.
그때 우리 마을에서는 아들 낳으면 삼줄을 대문에 걸었다. 삼줄은 빨간 고추와 숯을 새끼줄에 번갈아 끼워 고정시킨 것이다. 또, 우리 동네에는 뒷산에 황토흙 떠가는 곳이 있었다. 그곳에 가서 퍼다가 대문 앞에 놓아두었다. 부정 타지 말라고 하는 예식이었다.
삼줄은 우리나라 풍습인 걸 아는데, 황토흙 놓는 것은 충청도만의 풍습인지도 모르겠다.
이 날의 이야기는 우리 집 근처 일곱 마을에 소문이 나서 두고두고 "윤석만이 둘째 딸은 효녀다!"라고 회자되었다.
※이 글은 어머니의 기억을 기반으로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 한여름밤의 꿈, 공부! 자서전 no4 https://brunch.co.kr/@ma-fe/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