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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용 Feb 21. 2021

아이를 통한 감정 스트레칭

 "나는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데, 아빠는 누가 제일 좋아?"


 설이 지난 후 사람이 없을 평일 낮 시간 딸과 함께 집 앞 쇼핑몰에 갔다. 연휴 동안에 어디 특별히 나간 곳이 없어 스트레스가 쌓였나 보다. 아침부터 조금 예민해 보이는 딸에게 동전 넣고 타는 자동차를 태워주러 500원짜리를 몇 챙겨 데이트 신청을 했다. 그랬더니 몇 번 태워줄 건지부터 물어보는 자세가 점점 여우가 되어가는 게 느껴졌다.

  기나긴 협의 끝에 2번 타는 걸로 합의를 하고 쇼핑몰에 나갔다. 오래간만에 아가 붕붕이(동전 자동차를 아가 붕붕이라고 한다.)라 그런가 힘들게 도출된 합의는 금세 무너지고 딸은 3번째 탑승을 강하게 요청했다. 한창 자기주장이 강해질 때라 한번 합의가 어긋나기 시작하면 금세 대화의 텐션이 올라가기 마련인데 다행히 사람이 많은 곳에서 심하게 보채지는 않는 편이라 비교적 쉽게 수습을 했다.

일명 아가 붕붕이



 나야 괜찮지만 아이의 마음속에 감정의 찌꺼기가 남았을까 싶어 바로 옆 문구점으로 들어갔다.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 북이 있는 쪽으로 가 최근 마음에 들어하는 캐릭터의 스티커 북 하나를 고르게 했더니 내가 볼 땐 별 차이도 없는 책 2권을 놓고 한참을 고민하다 한 권을 골라 나왔다. 계산을 마치고 한 손에는 책을 들고 한 손으로는 내 손을 잡고, 스프링이 달린 신발이라도 신은 냥 통통거리며 걷던 아이가 내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저렇게 물었다.  


 "나는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데, 아빠는 누가 제일 좋아?"

 

 저 말을 듣자마자 등이 살짝 간질간질해지면서 "흐허허허"하는 실소와 박장대소의 중간쯤에 해당되는 그런 웃음이 입에서 새어 나왔다.  아이가 벌써 이런 문장을 구사할 만큼 많이 컸구나 싶으면서도 어디서 이런 말을 배웠지 싶기도 하고 별 생각이 다 들면서도 최근 내가 아이한테 자주 쓰는 감탄사가 나왔다.


 "아이고~~ 달다 달아!"


 한 7~8분 전까지만 해도 붕붕이 안 태워준다고 뭐라 뭐라 하던 아이가 자기 기분에 맞는 행동을 했다고 갑자기 몸을 베베꼬며 혀 짧은 소리로 저런 말을 하는 걸 듣고 있자면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스위트하다.


 물론 태어난  얼마 되지 않은 아기들 역시 충분히 달콤하다.

 사소한 배냇짓부터 뒤집고 처음 일어서고 말을 하고 나에게 와서 안기고, 와서 먼저 뽀뽀를 해주는 순간들이 어떤 때는 환호성을 지를 만큼 달고 부드럽다.

 그리고 최근에 말이 갑자기 확 늘기 시작하면서는 달달한 멘트를 잘하게 되었다. 종종 들어오는 데이트 신청이라던지 "아빠랑 먹으니까 더 맛있는 것 같은데~" "아빠가 엄마 말고 나만 좋아하면 좋겠어~"와 같은 말들, 그리고 무섭거나 불편한 상황에서 "아빠랑 있으니까 괜찮아" 같이 나를 뿌듯하게 만드는 말들도 있다. 너무 많아서 다 나열할 수도 없는 이런 말과 행동들을 보면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니고 어디서 보고 배운 것도 아닐 텐데 아이는 본능적으로 사랑받는 법을 알고 있는 것 같아 마냥 신기하다. 그리고 그걸 보고 듣는 나는 그만큼 행복하다.(참고로 우리 딸은 아직 만 3살도 안 되었고, 말은 또래에 비해 조금 빠른 편이다.)


아빠한테만 웃어줄 때가 있었는데...

 

 육아가 마냥 이렇게 행복하기만 하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한편으로 머리 끝까지 화가 치미는 일도 많다.

 아이가 커가고 점점 자아가 생기면서 자기주장이 강해지는데 아무것도 아닌 걸로 실랑이를 하다 보면 아이니까 참아야지 참아야지 하면서도 감정 조절이 잘 안 되는 일이 있다.

 최근 자주 있는 상황으로 일이 있어 나가야 되는데 옷 안 입는다고 떼쓰기 시작하다 간신히 꼬셔 놓으면 무슨 색 양말을 신을지 고민하며 한 시간을 기다리고, 그러다 보면 진이 빠지면서 속이 타들어간다. 그렇다고 화를 내고 윽박지를 수도 없는 것이 지금 그러면 자기주장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로 클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하고 아직은 강하게 훈육하기에는 조금 어린 나이라는 생각도 한다. 그리고 이미 내 기분이 상한 상태로는 이게 훈육인지 화를 표출하는 건지 나 스스로 확신이 없어 최대한 참으려 하는 편이다.





 이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열탕과 냉탕을 오가듯 감정이 변하는데, 문득 이렇게 내 감정을 뒤흔드는 것이 성인이 된 이후에 몇이나 있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런 것이 있었는지 자체를 먼저 생각하게 됐다.


 친구나 동료들과의 수다나 술자리에서의 신나게 웃고 떠든 적도 있고 사람을 대하다 화가 난 적도 많다. 예전 빼먹지 않고 보던 무한도전을 보면서 신나게 웃은 적도 많고 슬픈 영화를 보며 운 적도 있지만 아이가 주는 그것과는 뭔가 차이가 있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주는 웃음은 스타벅스에서 커피와 디저트를 즐길 때의 그런 감정 변화와 같다. 스타벅스에서 꽤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커피숍에 비해서 월등한 건 아니다. 스타벅스에 가는 것은 커피가 정말 맛있어서라기 보다는, 스타벅스 커피의 적당한 맛과 가격 그리고 그곳의 분위기가 많은 것을 희석시키며 그곳에 있는 시간을 다르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때문에 스타벅스의 커피나 음식이 예상보다 못한 맛을 내더라도 크게 실망하지는 않는 편이다. 애초에 첫 한 모금을 넘길 때 맛을 비교하는지 조차도 잘 모르겠다. 같은 스타벅스의 커피라도 스타벅스가 아닌 곳에서 세이렌 로고가 없는 잔에 옮겨 마시면서, 매장에서 마시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으려면 커피에 자체 대한 나름의 취향과 함께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디저트는 더 하다.(커피 맛 자체를 음미하면서 커피를 마시는 이라면 다를 수 있겠지만 그런 사람이라면 스타벅스만 주야장천 찾지는 않으리라.)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의 웃음이 그렇다. 오랜 친구나 너무 편안한 친구라면 대화 내용 그 자체가 너무 즐겁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나이를 먹으면 말을 할 때 현재의 각자의 상황이나 처지를 충분히 고려해야 하고, 약간의 가식도 필요하다.(여기서 가식은 나쁜 의미가 아니라 배려나 매너에 가깝다. 예를 들면 주변에 임신을 어려워하는 친구에게 내가 신나서 내 아이 이야기를 떠들어대기 어려운, 당장 취업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나 취업해서 적금 들었다고 자랑하는 그런 것이다. 월급 받은 건 자랑해도 된다. 충분히 맛있는 걸 많이 쏜다는 가정하에!) 그러다 보니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지난 추억이나 그 날의 분위기에 취해 신이 나고 웃음이 터지기 마련이다. 하물며 사회생활을 하면서 만난 친구나 직장 동료는 이런 보정 효과가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그리고 이런 인간관계에서 받는 상처들 역시 그렇게 치명적이지는 않다. 관계가 문제가 됐을 때 치명적이려면 그건 커피보다는 술에 가꾸리라.

 

 그리고 지금도 그리워하는 무한도전 같은 콘텐츠들이 주는 웃음과 눈물은 어떠한가. 이는 정말 유명한 맛집에서 먹는 음식과 같다. 사람들이 싫어할 수 없게 전문가들이 최선을 다해서 만드는 요리고 그 맛은 보장되어 있지만, 그래도 조금은 가볍다. 몇 년째 가던 식당이 없어지면 아쉽고 종종 생각이 나지만 그렇다고 삶의 영향을 주는 건 아니다. 꽤나 어려울 수도 있지만 어떻게든 비슷한 대체재를 찾을 수 있다. 그러면 그곳의 분위기나 느낌을 온전히 즐길 수는 없지만 아쉬운 대로 즐겁게 배 채우고 돌아설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앞으로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TV에서 다시 볼 수 있길 기대하지만, TV를 보는 동안의 웃음은 어찌 보면 유튜브 등을 통해서 더 편하고 쉽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가 주는 감정의 변화는 다른 것들과는 그 결과 폭이 다르다.

 이건 그냥 내가 내 입맛에 맞게 만든 요리와 같다. (여기까지 읽으며 엄마의 집밥을 생각했다면 미안하지만 내 기준에서 우리 엄마는 요리를 그다지 잘하는 편이 아니다). 난 오이를 안 먹기에 김밥에 오이가 빠졌으면 하지만 이 나이 먹고 김밥천국에서 그런 이야기하면 좋은 눈길 받기 어렵다. 하지만 내가 만들면 다르다. 김밥에 오이 대신에 참치를 더 넣어도 되고, 기분이 좋은 날이면 소고기를 넣어도 된다. 라면을 먹을 때 계란을 풀지 말지 고민 안 하고 하나는 풀고 하나는 안 풀어서 넣어되는 식이다. 내가 가장 자주 먹는 것이라는 점도 이런 내 맘대로 레시피만큼이나 중요하다. 대신 조리를 잘못하면 사 먹는 것만 못 할 수도 있다.

  아이가 나에게 주는 감정 변화가 이와 비슷하다. 언제나 삶의 기본이 되는 배재할 수 없는 부분이고, 다른 곳에서는 잘 겪기 힘든 감정의 끝까지 밀어붙인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나에게서부터 발생되는 감정의 흐름이라는 점.

 흡사 고기가 당기는 날에 김치보다 고기가 더 많은 김치찌개를 끓이면 도저히 식당에서는 볼 수 없는 그런 김치찌개가 나오듯, 시무룩해 보이는 아이에게 체력과 마음을 쏟아 놀아주면 내가 다른 어디에서도 보이지 못하는 그런 미소와 웃음을 짓도록 해준다.

 그러나 불 조절을 잘 못하면 음식이 다 타버리듯, 아이의 컨디션과 기분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면 내 기분 역시 나락으로 떨어지곤 한다. 안타깝게도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사회생활 중에서도 종종 느끼기에 특별히 아이만 줄 수 있는 감정이라고는 못하겠다. 다만 아이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긴다거나 하면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나락이 있을 것이라고 어렴풋이 느낄 수는 있다.


 이처럼 아이와의 시간은 내 삶의 감정의 스펙트럼을 넓혀주고 날 더욱 말랑말랑하게 만들어준다.

 조금 더 단단해질 필요가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난 절대 말랑말랑해질 필요가 있는 사람이다.(고마워 코로나야 편에 약간 언급했지만 난 사람과의 관계에 인색하다. 미니멀리즘을 인간관계까지 적용시킨 느낌. 물건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 나에게 아이는 마음을 스트레칭해주는 존재이다. 내 감정의 끝과 끝을 잡아당겨서 늘려주는데 그 강도가 아이가 커가는 속도에 비례하다 보니 내가 다치지 않을 정도로 아주 적절하다. 그리고 문득문득 내가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느낀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사람을 만나는 폭이 좁아져 있어 이런 나 자신의 변화가 다른 사람을 만나고 사회생활을 하는데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사람들을 대함에 있어 나 스스로도 더 편하고, 상대방을 조금 더 배려해줄 수 있도록 좋은 쪽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제목과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날 너무 행복하게 하고 날 미소 짓게 해요. 너무 행복해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일까 여기서 한번 언급하는데, 절대 그런 건 아니다.

 아이가 내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화를 나게 만드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고, 그런 모든 사실들이 다른 어느 곳에서도 받을 수 없는 영향을 나에게 준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뭐... 생각해보면 아기가 한 번씩 나에게 주는 웃음은 다른 어디에서 받는 행복과도 비교할 수 없긴 하다.

 거기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한 여름 폭포 같은 웃음과 동시에 코끝이 찡해지며 괜히 고마운 그런 복잡한 감정은 다른 곳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우리 아이만 나에게 줄 수 있는 그런 감정이다.



병원을 제외한 우리 셋의 첫 외출도 스타벅스였다.

 

 아.. 참고로 우리 가족은 스타벅스를 너무 자주 가서 단골 매장에는 내 딸과 아기 때부터 인사를 주고받는 직원분들도 있을 정도다. 그리고 아내는 배민 VIP다. 하지만 김치에 달걀프라이로 한 끼를 먹더라도 집밥을 안 먹는 건 아예 생각할 수가 없다. 나 언제나 달걀프라이는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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