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게 그다지 많은 것 같진 않다.
나이를 먹으면서 과학의 영역을 벗어나면 거의 대부분의 것들이 상대적인 해석이나 가치를 지니는 편이라는 걸 점점 더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어떤 일에 대해서 강한 어조로 말하는 것도 조금은 조심하게 되었고, 내가 주장한 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면 별 거리낌 없이 사과도 잘하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특히 육아에 관해서는 절대적인 것이 없다는 생각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내가 아이를 낳기 전에는 겉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아니 저렇게 하루 종일 핸드폰만 보고 있어도 되는 건가..'
'저 나이에 저런 과자를 먹어? 저렇게 단 걸 먹게 그냥 놔둔다고?
'아니 평소에 교육을 어떻게 했길래 애가 길바닥에 누워서 저렇게 소리를 지르지.'
'아빠 엄마 노는데 같이 있으면서 새벽 1~2시까지 안 자도 되는 건가? 내일 괜찮나?'
등등.
이런 걸 비롯해서 보통 미혼이나 아기가 없는 사람들이 할만한 '불편한' 생각을 나도 꽤 많이 했었다. 하지만 내가 아이를 낳고 길러보니 이해가 되는 부분이 많았다.
물론 보편적으로 알려진 안 좋은 것들에 대한 생각이 변한 건 아니다.
스마트폰 중독은 아이의 두뇌 발달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심하면 언어 발달 장애, ADHD 등을 유발할 수도 있고(내 주변에도 이런 이유로 치료를 받는 아이가 꽤 있다. 스마트폰 등이 주요 원인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소아비만에 걸린 아이의 80% 정도는 성조숙증을 보이고 30% 이상의 아이가 성인병 등 대사증후군에 빠진다고 한다(이건 점점 더 심해질 것으로 본다.). 그리고 길에서 떼쓰는 행동 같은 분노 발작은 장기적으로 아이 정신 상태에 영향을 끼칠 수 있고 적응장애를 가져올 수 있으며, 아기들의 수면 부족은 성장 발달에도 좋지 않고 면역력에도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런 부분은 아이를 낳기 전부터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고 지금도 딸아이를 대함에 있어서 항상 신경 쓰는 부분이기도 하다.(다른 부모들도 모두 인식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이런 나쁜 점들을 알면서도 부모들이 이런 행동이 이해가 되는 건 그 대상이 아기이기 때문이리라.
아이들은 부모가 원하는 데로 잘 따라오지 않으며, 우리 아기 역시도 비슷한 문제를 종종 보인다.
시간 내서 힘들게 찾아간 식당이나 카페에 앉자마자 아이가 짜증이라도 내기 시작하면 둘이 번갈아 밥 먹으며 달래고 달래다 어쩔 수 없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이 나오곤 한다. 신생아 때 분유 15ml 가지고 40분을 먹고 지금도 밥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먹거리라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이상 뭐라도 먹어줘서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먹인다. 아무 이유 없이 짜증이라도 내고 울기 시작하면 무엇을 들이밀어도 달래기가 쉽지 않다(다행히 궁주는 집 밖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 감사.) 오늘 힘이 남아서 더 놀고 싶다는데 재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건 어른도 마찬가지 아닌가?
솔직히 말하면 위에 언급한 문제들 중에서 우리 가족에게 해당되는 부분이 그리 많지는 않다. 하지만 위에 언급하진 않았지만 우리 아기에게도 나를 정말 힘들게 하는, 조절하기가 너무 힘든 그런 부분이 있기에 다른 부모들이 하는 행동을 십분 이해할 만큼의 경험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독 이해가 불가능한 부분이 하나 있다.
지금까지 글을 쓰며 말한 '난 그래도 많이 유들유들한 사람이에요'와는 너무 다른 '카시트에 안 앉힐 거면 애도 낳지 마!'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난 카시트에 안 앉히는 부모가 있다면 어떤 상황과 이유를 대입시켜도 99% 이건 부모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며칠 전 영유아 검진에서 본 안전사고 예방과 관련과 관련된 문진표를 봤다.
어떤 이에게는 고민 한 번 없이 1번으로 줄 긋고 넘어갈만한 문항들에 유독 카시트 관련해서만 보기가 너무 다양했다. 속으로는 우리나라도 카시트 착용이 의무인데 이제 대부분 다 사용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아직도 만 6세 이하 아이들 카시트 사용률이 50% 남짓이라고 한다.
속으로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 주변에 그 많은 애 키우는 사람들 중에 절반이나 카시트를 안 한다고?'
'유럽 어느 나라의 90%가 넘는 사용률까지는 아니더라도 절반이나 안 한다고?'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아이들의 성향이나 기질, 또는 상황이 그러하여 어쩔 수 없지 않았을까라는 여러 가정을 대입해봤지만 역시나 결론은 이건 아니다였다.
내가 머릿속으로 넣어본 몇몇 가정과 결론은 이랬다.
*애가 울고 싫어해요.
- 치과를 가도, 예방접종이나 주사 맞아도 다 울고 싫어한다. 이런 것들 다 안 하는 부모라면 인정.
*아기가 너무 작아요
- 아기 안고 가다 사고 나면 아기가 부모 에어백 된다.
*애가 커서 안 앉으려고 해요
- 어렸을 때부터 앉는 버릇이 됐다면 그걸 계속 밀고 나가면 될 부분이다.
* 비싸요.
- 싼 카시트도 많지만 그렇다고 쉽게 이야기할 부분은 아닌 듯하다. 다만 (미비하지만) 정부 지원이 있으니 거기에 기대 보는 것도 좋고, 다른 아기용품을 줄여서라도 꼭 사야 되는 필수품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라에서는 카시트 단속할 거면 지원도 조금 더 해줬으면 좋겠고...
여러 가지 상황을 대입해봐도, 꼭 해야 되는 부분을 아직 선택 가능한 부분이라고 잘못 생각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는 운전할 때 안전벨트를 안 매는 것이 필수 사항은 아니었다. 갑갑하다는 이유로 대부분 사람들이 벨트를 안 하고 다녔는데, 지금 그런 이유를 대며 안전벨트를 안 하기에는 인식이 너무 많이 바꿨다. 그리고 카시트도 그와 같다고 본다.
길을 걷다가 차에 치이는 사고를 비롯해 차를 타고 가다 나는 사고 등과 같은 교통 관련 사고들이 어린이 사망사고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물론 그것을 확률로 따져 숫자를 보면 소수점 몇 개를 거치는, 문장으로 봤을 때만큼의 두려움이 있지는 않다. 그리고 카시트가 교통사고에서 아이들이 크게 다칠 확률을 많이 낮춰준다고는 하지만 100%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아는 일반적인 부모라면 아이들을 이런 확률에 기대 도박을 하지는 않는다.
글의 시작부에 언급한 것처럼 아이를 키우면서 컨트롤하거나 피하기도 어렵고 아이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정확히 가늠하기도 힘든 좋지 않은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가 참 많다. 그러니 확실히 조절이 가능하고 피해 갈 수 있는 것들은 피해 주는 것이 부모로서 기본적으로 해줘야 되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간혹 아이가 옷을 안 입는다고 생떼를 부릴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애 옷을 안 입혀서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는 않는다. 그럴 부모도 없을 것이고... 하물며 아이의 안전과 관련된 문제에 타협을 하는 건 맞지 않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봐도 이건 아이와의 타협이 아니라 부모 스스로와의 타협인 걸 다들 알고 있다.
부모가 마음먹고 앉히려고 하면 아이는 카시트에 앉을 수밖에 없다. 99% 확신한다.
*원래는 조금 달달하고 편안한 아기와의 일상을 몇 편 더 글로 쓰고 다른 무거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에 맞춰 목차도 준비했었다. 그러다 별생각 없이 유아 검진표를 보고 생각이 많아져 날이 선 제목의 글을 쓰게 되었다. 아이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관심과 보살핌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자주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