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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용 Mar 04. 2021

육아 에세이를 쓰다 멈춘 이유, 그리고 다시 쓰는 이유

그리고 나는 왜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었는가.

 난 2012년부터 2019년까지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했었다.

 이렇게 말하면 꽤 길게 한 것 같지만 2012~2013년까지 2년 정도 해외에서의 삶과 여행에 관련된 블로그를 운영했고, 한참을 방치해뒀다가 2018년에 아기가 태어나면서 '궁주 아빠 마용'이라는 이름으로 육아 블로그를 다시 시작해 2019년까지 아이에 관한 글을 38개 올렸다.(궁주는 우리 아기 태명이다.)

 처음 운영하던 2012년에서 2013년에는 나름 지루하면서도 특이할 수 있는 해외 생활을 남들에게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별생각 없이 살던 때라 왜 시작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래도 일 년 반 남짓한 기간에 160개 정도의 글을 올렸으니 일주일에 2~3개씩 나름 열심히 글을 올렸던 것 같다.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없는 글들이었지만 네이버 메인에도 몇 번 걸려보고 몇몇 이슈와 맞물려서 하루에 수만 명씩 블로그를 찾았던 적도 있지만 큰 의미 없이 시작한 것처럼 그냥 어느 순간 열정이 사라져 포스팅을 멈췄었다.


 두 번째 육아 블로그로의 글쓰기는 시작한 이유와 멈춘 이유가 많이 달랐다.

 육아를 처음 시작하면 부모에 따라 다르지만 처음 50일에서 60일 정도, 조금 길면 한 100일까지가 정말 힘들다고 많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조금씩 나아진다고 하면서 정말 힘든 그 시기가 지나가는 걸 소위 100일의 기적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이는 아무래도 거의 하루 종일 울어대는 아이에 초보 엄마 아빠의 미숙함이 더해져서 벌어지는 현상인 듯한데 나 역시도 그랬다.

 아내와 아기가 조리원에서 퇴소를 하고 집에 들어온 날부터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난 코피를 몇 번 쏟았는지 모른다. 우리 아기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밥 먹는 걸로 속을 많이 썩인 편인데, 워낙 안 먹는 아기라 분유 한번 먹이면 보통 30~40분이 걸렸다. 거기에 트림시키고 다시 재우면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가 필요했고 기저귀 가는 시간도 있으니 그렇게 한 사이클이 돌아가면 어느새 다시 다음 분유 준비해야 하는 패턴이었다.(저맘때 아이는 보통 3시간 정도마다 한 끼를 먹는다.) 때문에 밤 시간에는 가능하면 아내는 충분히 자도록 하고 난 밤새 수유를 하고 낮에는 일을 했다. 난 해 뜨면 거의 못 자고 잠자리에 예민해서 밤에도 그리 잘 자는 편은 아니다 보니 하루에 2~3시간도 채 못 자는 일상이 거의 한 달 넘게 반복됐던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힘든 시간임에도 하루하루 아기 커가는 걸 보면 그 시간들이 기적 같았다.


블로그에 담긴 육아 이야기의 첫 번째 이야기


  저 당시에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거의 모든 신경에 아이에서 쓰여있다 보니 작은 행동이나 작은 변화가 워낙 큰 의미로 다가와 하루하루가 기적이라는 표현을 썼다. 물론 좋은 의미가 더 컸고 이런 변화에서 받는 감동이 너무 커서 어디엔가 기록을 해두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고마워 코로나야' 글에서도 썼지만 난 아이와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빠로서의 내 모습에 꽤나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이런 모습이 다른 아빠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치길 바란다. 이는 내가 세상 대부분의 아기들을 좋아하고 귀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 딸이 비할 존재는 없지만...) 그래서 그때 당시의 생각과 감정을 문장 곳곳에 솔직하게 남겨 놓았다. 그리고 40개가 채 못 되는 포스팅이지만 그중에 3개 정도는 네이버 메인에 걸려 꽤나 많은 이웃들이 찾아주시고 그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이런 육아 블로그를 멈춘 이유는 처음 블로그 포스팅을 멈췄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애당초 아기 사진을 올리는 포스팅을 시작할 때부터 아내와 아기가 돌이 될 때까지의 사진과 이야기만 올리는 걸로 어느 정도 협의를 하고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는 아내의 의견을 조금 더 많이 반영한 결과인데 나도 그렇지만 아내는 SNS 등에 아이를 비롯한 개인 정보가 노출되는 걸 많이 꺼리는 편이다. 혹시나 아기에게 나쁜 일이 생기거나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비롯되는 것인데, 아이를 적극적으로 노출시키는 유명인들과 그렇지 않은 유명인들 중에서 후자가 말하는 이유를 들어보면 우리와 무게는 다르지만 그 결은 비슷하리라 생각된다. 네이버 메인에 포스팅이 올라가고 새로운 포스팅들이 검색 상단에 걸리는 일들이 생기며 조회수가 늘어나는 건 블로그 자체만 봤을 때 기쁘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하루에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이 궁주의 얼굴을 보고 궁주의 이야기를 알게 된다는 건 누군가에게는 별 일 아니었지만 우리에게는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었다. 그렇게 고민을 하다 어느 순간 더 이상은 포스팅을 하지 않게 되었다.(우리 가족이 큰 영향력을 가지거나 궁주가 유명해질 수 있다는 그런 생각에서 오는 불안들은 아니었다. 그냥 별의별 일이 다 있는 세상이다 보니 그냥 조금 찝찝함이 남았을 뿐이다. 그리고 SNS나 유튜브 등에 아이 사진이나 이야기를 남기는 부모님들을 절대 나쁘게 보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도 지금 아이의 사진을 걸고 글을 쓰고 있다. 아직 당사자에게 초상권 관련 허락을 받지 못했다는 문제는 남아있다.)





요즘에는 감성을 표현하기에는 브런치 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궁주와 관련된 글을 지금 다시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 아이와 관련된 글을 썼을 때의 이유인 그때그때 느끼는 감동의 기록이 주는 장점이 지금 생각해보니 예상보다 더 커서이다.

 아이가 커 가는 하루하루는 여전히 신기하고 즐겁다. 최근에는 사용하는 어휘나 문장이 어제오늘 차이가 커서 거기에 깜짝깜짝 놀라며 아이가 크고 있다는 걸 여실히 느낀다. 그런데 크게 기억에 남을 순간들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다시 생각하면 뭔가 희미해지고 그때 어떤 감정이었는지도 희미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 당시에는 너무도 신기하고 기쁜 기억일지라도... 물론 스마트폰으로 많은 순간들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남길 수 있어 좋지만,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알 것이다.  그렇게 운 좋게 남길 수 있는 장면들은 아이가 하는 정말 예쁘고 신비로운 행동들 중 빙산의 일각이다.

 

 그렇게 많은 순간들이 희미해져 가던 중에 어느 날, 꽤나 오랜만에 예전에 써 놓은 글들을 읽어보았다. 그리고 글을 쓸 때의 감정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때 있었던 일을 아주 자세하게 정확하게 기록한 건 아니었지만 그 순간의 작은 흔적이라도 그 순간을 다시 맛볼 수 있게 도와주었다. 마치 어떤 향기를 맡았을 때 그와 관련된 기억들이 다시 피어오르는 그런 느낌이었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예전에 걱정했던 그런 부분이 아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느끼는 점들을 기록해 놓는 게 지금 보니 정말 좋은 것 같다는 비슷한 결론이 나와 이제 다시 글을 쓰기로 했다.

 



 다만 그때와 다르게 브런치를 통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이 공간이 가지는 특성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블로그는 에세이와 같은 글보다는 정보와 같은 소스가 있는 글들을 조금 더 선호하는 느낌이다. 그에 반해서 브런치는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그냥 속에 있는 이야기를 큰 여과 없이 내려놓을 수 있는 그런 느낌이다. 뭔가 알맹이가 없이 감정만을 내놓아도 괜찮다고 할 것 같은 그런 공간. 그런 면에서 아이가 언제 무엇을 했는지와 같은 성장일지와 같은 느낌이라면 블로그가 조금 더 어울리지만, 아이를 통해서 나의 내면이 성장해나가는 내용을 써 내려간다며 브런치가 조금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둘 다 기록으로 남겨둘 가치가 있기에 어느 것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냥 난 지금 후자에 속하는 그런 이야기를 조금 더 하고 싶을 뿐이다.


 

브러치에 올린 첫 글. 긴 시간 가지고 있던 생각이나 감정을 조금 편하게 썼다.


 그렇게 브런치에 2개 정도의 글을 써서 작가 신청을 했고 운이 좋게도 작가가 되었다.


  어떻게 하다 블로그를 시작했고 어떻게 하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를 이야기를 하면서 정작 중요한 부분을 놓친 것 같은데, 사진이나 영상이 아닌 글로 그때의 기분을 기록해 놓는 건 엄청난 장점이 있다. 우선 사진이나 동영상은 놓치고 지나가는 모습들이 많지만 글은 그 순간이 아니어도 기록을 할 수 있기에 더 많은 것들을 담아둘 수가 있다. 그리고 아이가 무슨 행동을 하는 그 순간의 짜릿함이나 신기함도 소중하지만, 잠시 시간이 지난 후에 내 머리와 가슴을 지나가며 감정이 디켄딩된 후의 느낌이 훨씬 더 좋을 때도 있다. 그래서 밤이나 새벽 이른 시간에 아이가 했던 행동들을 천천히 떠올리며 글을 쓰면서 다시 차오르는 감정을 만끽할 수 있다.  그리고 육아라는 게 늘 행복하고 좋은 순간만 있는 건 아니다 보니 찬찬히 반성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도 있다.


 솔직히 제대로 포착할 수 있으면 나중에 두고 봤을 때 동영상을 찍는 것이 제일 편하고 좋은 방법인 것 같긴 하다. 특히나 재밌고 신나는 장면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두고두고 생각하기에는 글도 정말 좋다.


 아기가 걸음마를 하던 순간을 동영상으로 남겨놓은 부모들이 많으리라. 그런데 그때의 본인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는지 한번 생각해보자. 마냥 신기했던 것 같고, 그냥 좋았던 것 같은 기억만 남아있다면 앞으로는 글로 한번 남겨보자. 아마 그 날의 감동을 조금 더 오랜 시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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