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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용 Jul 26. 2021

인생은 아름다워

당신이 꿈꾸는 아빠의 모습은?

 영화 아이언맨을 보면서는 아이언맨의 슈트는 입어보기는 커녕 죽기 전에 구경도 못 할 거라는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분노의 질주 속에 말도 안 되는 레이싱 씬은 치밀하게 짜인 합에 말도 안 되는 컴퓨터 그래픽이 더해진 산물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닮고 싶고 그럴 수 있을 것 같은 영화 속 주인공이 하나 있었다.


인생은 아름다워 속 귀도였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나와 비슷한 나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영화 제목일 것이다. 1990년대 후반에 개봉한 명작이다. 한 남자가 가정을 꾸리고, 그 가정이 유대인 말살 정책으로 수용소 갇히게 되면서 생기는 일들을 이야기한 영화이다. 장르는 코미디지만 뭔가 웃음이 슬프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그런 영화다. (워낙 명작이라 안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봤으면 하는 마음과 내 짧은 필력으로는 영화의 내용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다는 생각에 영화 내용은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영화 속에서 아빠로서의 귀도는 잔혹한 유대인 수용소에서의 생활을 게임이라고 속여 아이를 온전히 지켜내는 그런 사람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SNS 등에 꽤나 많이 퍼져 있는데 독일군이 자신들을 죽이려고 찾아오는 순간을 숨바꼭질 놀이 중이라고 아이에게 말하고는 미소를 띄며 아이를 살리고 자신은 죽는 그런 장면이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나고 얼마 동안은 그런 귀도를 흉내내려 노력했다.

치과에 간다던가 하는 왠지 공포스러운 일들이나, 어린이 집에 처음 등원하는 것처럼 낯섦이 스트레스를 주는 일들, 그리고 어떤 아이에게는 쉽지만 우리 아이는 어려워하는 잠을 자는 일이나 밥을 먹는 일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거나 꼬시기보다는 놀이로 바꾸려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처럼 늘 아빠가 웃으면서 흥미를 유발하고 부드럽게 원하는 방향으로 아이를 유도할 수 없었다. 아침에 어린이 집 가려고 준비하는데 갑자기 자기가 오늘 입고 싶은 핑크색 원피스가 없다고 주저앉아서 울기 시작하면 차분하게 방향 전환을 할 방법도 시간도 없었다. 또 한편으로는 아이가 커가면서 인과를 가르치고 이유와 결과를 설명해야 할 상황이 생겼다. 


"딸기맛 약이 있는데, 분홍색은 하츄핑이 좋아하는 거니까 궁주도 한번 먹어봐~!! 분홍색 약도 먹고 콧물이 쏙 들어가면 훨씬 재밌게 놀 수 있을거야~!!"

가 좋을 방법 일 때도 있지만

"궁주는 지금 콧물이 나고 열이 많이 나. 몸이 많이 뜨거워지면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아야 될 수도 있으니까 지금 약을 먹자.  그리고 이렇게 감기에 걸리면 친구들한테 옮길 수도 있어서 어린이 집하고 놀이방에 갈 수 없어." 가 더 필요한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다가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영화 속 인물들은 그런 극 속에서만 있는 존재라는 걸 알면서도 왜 그 나이를 먹도록 불가능한 이상향을 버리지 않았을까.

아마도 귀도를 제외하면 마땅한 아빠로서의 롤모델을 눈에 담지 못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드라마를 내용은 잘 모른다. 그냥 이 장면에 아버지라는 제목을 붙이면 많은 걸 이야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우선 현실 속에서 내가 마주하는 아빠들은  소위 말하는 "우리네 아버지"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나에게 "우리네 아버지"라는 말은 뭔가 직장에서 치이고 집에서는 겉도는 중년 남성의 모습이 희미하게 깔려 있다.

 아직까지도 드라마 속에서 자주 보이는 아빠라는 캐릭터의 클리세는 늦은 밤 퇴근길에 과일 한 봉지나 치킨 한 마리 사서 아이들에게 던져주고는 좋아하는 아이들을 쳐다보며 위안을 얻는, 또는 자기는 술 한병 꺼내서 묵묵히 마시는 그런 모습 아니겠는가. 자신의 자리에서 노력은 하지만 가족의 테두리에서 조금은 외곽 쪽에 자리 잡은 느낌. 거기에다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버지의 희생이 어머니의 희생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이 그냥 당연한 것이었다. 이게 나쁘다라거나 그 시절의 아버지들이 무책임했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내가 현실에서 봐온 아버지의 모습은 보편적이고 나쁘지 않은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충분히 좋은 모습이 아니었다는 것도 확실하다. 애당초 충분히 좋은 아빠라는 게 있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아빠가 아무리 열심히 놀아줘도 늘 만족하지 못한다. 오죽하면 엄청난 활동량으로 두 개의 심장을 가진 박지성 선수에게 축구 경기와 육아 중에 어느 게 더 힘드냐고 물어보면 종료 휘슬이 없는 육아라고 하겠는가. 육아는 끝이 없다. 그렇기에 좋다의 개념이 있을 뿐 완전히 무언가를 충족시키는 수준은 없다고 보는 게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시점에 "아빠 어디 가" 나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같은 프로그램들이 이상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살짝 비춰졌지만 이는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들이라 영화속 주인공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가슴에서 레이저 광선이 나가는 건 아니었지만 갖추어진 환경 속에서 적당한 틀을 가지고 간혹 스턴트 맨도 쓰는 것들 말이다. 그래서 프로그램 속 아빠들의 노력이 대단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롤모델이 될 수는 없었다. 


 이러 점들 때문에 내가 말도 안 되는 롤모델을 가슴 속에 계속 붙잡고 있었던게 아닐까.


내가 좋아하는 함께 멍... 시간


 하지만 아이와의 실제 만나고 나서는 현실을 인식하게 됐다.

 육아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공감과 이해가 불가능한 영역들이 꽤 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예전에는"왜 저렇게 밖에 못 하지?"라고 말하는 상황이 부모 입장에서는 "남일 같지 않네"가 된다.

 내 개인적인 경험상 아이와의 트러블 상황이 10번 정도 발생한다고 치면 비교적 부드럽고 유연하게 대처가 가능한 건 많게 잡아야 한 6번 정도다. 그리고 들어주면 안 되는 이유로 끝까지 대치하게 되는 경우가 2~3번 정도. 그리고 시간과 장소의 제약으로 들어주기 힘든 경우가 1~2번 정도다. 그리고 내가 힘들어서 다 놔버리고 에라 모르겠다 모드로 진입해 버리는 게 1번 정도가 되는 것 같다. 이 비율은 부모들마다 어느 정도 차이가 있을 텐데 난 이 정도다. (내 생각에는 많은 부모들이 "이건 안 돼!"라고 말하는 것 중에 꽤 많은 부분이 "돼. 하지만 안 했으면 좋겠어"에 가깝다.) 어쨌든 10번에 10번 다 부드럽게 넘기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깨달은 후 머릿속에 저장해 놓았던 영화 포스터 같은 아버지상을 조금씩 지워나갔다.


 자연스레 지워졌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듯하다. 아이와 내가 보내는 시간들로 조금씩 내가 될 수 있는 좋은 아빠의 모습을 만들어갔다. 그 모습은 누구에게나 괜찮은 이상적인 아버지 상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궁주에게는 잘 맞는 편이다. 그리고 이제 한 3년 정도 시간을 보내다 보니 밑그림은 완성되어 앞으로 딸과 내가 어떻게 지내겠구나라는게 어렴풋이 그려지고 있다. 물론 앞으로도 꽤나 많은 보정이 필요하겠지만 지금 봐서는 그다지 나쁜 그림은 아닌 것 같다.


가끔 우선 저지르고 본다. 실컷 놀고 엄마한테 혼나면 되지 모드


 물론 내가 계속해서 머리 속에 가지고 있던 귀도의 방식은 물론 겹겹이 칠해진 물감 속에 밑그림처럼 고스란히 남아있긴하다.. 가능하면 아이가 즐겁게 세상를 대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모습 말이다. 하지만 그 위에 칠해진 물감은 귀도의 그것과는 꽤나 다르다. 귀도는 영화 속에서 "의지만 있다면 모든 걸 할 수 있다."라고 하지만 난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의지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들이 꽤 많지만 뭐 안 되도 괜찮아" 정도가 내 생각이다. 우린 행동 하나하나에 목숨이 걸려있는 수용소에 살고 있는 건 아니니까. 가끔은 생각한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 죽는 것도 아닌데 뭘... 


 지금 100점이 아빠가 될 수 없다는 걸 알았으니 100점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95점 이상을 매일매일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대충 80점 이상으로 앞으로 40년 정도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정도로 노력하다 보면 100점을 맞는 날도 종종 있을 것이다. 평균 88점 정도가 되면 어디 가서 난 좋은 아빠라고 꽤나 자랑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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