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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용 Jan 24. 2022

감정 조절을 위한 아빠의 주문

이 날이 영하 몇도였더라...


아기 옷을 입히다 외출을 포기해 본 일이 있는가?

우리 집에서는 아이가 30개월부터 36개월 정도가 되는 6달 동안 특히나 빈번히 발생했다.

일반적인 외출은 마음 편히 포기하곤 했지만 어린이 집이나 짐보리를 가기 위해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싫어 안나가!" 라든가 "오늘은 분홍색 치마 입을 거야!", "양말은 안 신어!" 등등 말도 안 되는 이유를 꺼내기 시작하면 안 보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억지로 잡아끌고 갈 수도 없어 어르고 달래다 간신히 나가곤 했다. 물론 정 안돼서 급하게 전화 연락을 드리고 결석을 한 일도 있다. 


이런 일을 겪어본 부모라면 다들 공감하겠지만 이렇게 떼를 쓰는 아이의 요구에는 해답이 있지 않다. 아이의 자아가 커지는 것과 표현력의 발달 사이에 오는 괴리에서 오는 땡깡이든 운이 나쁘게도 그날의 기분이 별로여서 그렇든 어쨌든 논리적으로 해결이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육아서적에서는 흔히 무시하기를 해결책으로 내놓곤 하는데 등원 시간이 걸린 상태에서 무시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아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무시하기가 효과를 보는 데는 몇 시간이 걸릴 때도 있으니까. 아침시간에는 10분이 아쉬운데 그렇게 여유 있게 아이를 기다려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운 좋게 아이의 요구사항을 맞춰줄 수 있어 잘 달래 나가는 날도 있고 반 윽박지르듯 꼬셔서 데리고 나가는 날도 있다.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그 과정은 굉장히 피곤하고 힘들고 감정 소모가 크다. 특히나 중간에 "그래서 어떻게 해달라고..?"라는 푸념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올 지경이 되면 그동안 수 없이 들었던 여러 육아 관련 조언들은 어느 것 하나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불끈불끈 치솟는 화를 누르고 눌러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아이를 대하는 것 정도가 최선이다. 이럴 때가 되면 내가 머릿속을 되뇌는 단어 하나가 있다.



"다이어트"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새해를 맞이하며 한 해의 목표를 세울 때 1위로 꼽히는 바로 그것이다.

10년째 나의 새해 버킷리스트의 최상단에서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그것이다. 나를 비롯한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원하는 이유가 뭘까? 각자 조금씩의 차이를 있겠지만 큰 틀에서 보면 어쨌든 수많은 장점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만큼 많은 이들이 실패를 한다는 양면성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난 20년째 날 괴롭히는 지방간염, 언제부턴가 높아진 콜레스테롤 수치, 당뇨까지는 아니지만 간당간당한 수준을 유지하는 혈당 수치, 비만 오면 쑤시는 무릎 등 이런저런 이유로 주기적으로 병원을 찾고 약도 처방받아먹는 편인데 병원을 가면 늘 듣는 말이 "살 빼세요" 다. 난 술 담배는 안 하고 운동도 저강도지만 주 3~4회는 꾸준히 하는 편이라 어느 병원에서 상담을 해도 짠 듯이 "체중 조절하세요"라는 말을 듣는다. 그렇다 보니 나도 바보는 아닌지라 살을 빼면 어느 누구보다 더 많은 혜택을 누리리라는 걸 너무 잘 알고 있다. 아마 이런 건강 

측면을 비롯해 미용적인 측면과 자신감 등의 정신적인 부분을 감안하면 메리트는 정말 어마어마할 거다.


하지만 난 늘 다이어트에 실패했다. 


이유야 뭐 수없이 많지.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서도 많은 분들이 실패의 이유는 쉽게 떠올릴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따로 언급하지는 않겠다. (굳이 언급하자면 내 소울푸드는 삼겹살에 김치찌개...). 중요한 건 머리로는 일말의 의심 없이 나에게 좋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것이지만 도저히 실천하지 못하는 그런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실천하지 않는다에 더 가까우려나.) 나이 40이 넘어서 행동을 결정하는데 감정보다는 이성이 조금씩 앞서기 시작하고, 공자는 불혹이라 칭하며 세상사에 흔들림이 없었던 그런 나이가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일까 다이어트라는 단어는 나에게 세상을 조금 관대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의 단어와도 같다. 그리고 아이를 대할 때도 비슷하게 작용한다. 


"오늘 추우니까 따뜻하게 패딩 점퍼 입고 가자~"

"싫어! 난 안 입어! 난 반팔티 입고 갈 거야!"

"감기 걸려~ 우선 입고 나가서 안 추우면 벗자~"

"싫어! 난 절대 안 입을 거야! 추워도 안 입을 거야!"

"빨리 입고 가자~ 늦었어~"

"싫어! 안 입고 안 갈 거야!"

.....


겨울이면 종종 있는 일이다.(남일 같지 않죠?)

이런 실랑이가 얼마간 이어지다 슬슬 화가 올라오기 시작할 때쯤


'에효. 나도 살 빼야 하는 거 알면서 어제도 치킨 먹었잖아. 나도 이 나이 먹고 이러는데 뭘...'


 라면서 다이어트 생각이 떠오르면 화가 조금 누그러든다.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야'라는 진부한 표현이 떠오를 때쯤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라는 예전 개그 프로그램의 대사가 튀어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나를 가장 한숨 쉬게 하는 것이 다이어트라 다이어트를 예로 들었을 뿐이지 그 외에도 좋다는 걸 알면서도 못하는 걸들은 참 많기에 상황 상황마다 그런 걸 대입시키곤 한다. 그러고 나면 확실히 머리가 맑아진다. 예를 들면, TV나 스마트폰 조금 더 본다고 하는 아이에게는 '내가 핸드폰을 하루 종일 손에 쥐고 있으니까 이렇지.'라든가, 먹을 걸 가리는 아이를 보며 '나도 오이는 빼고 먹지'라든가, 외출 길에 옷과 신발을 한참을 고르는 아이를 보며 '너네 엄마도 종종 입었다 벗었다 그래'라든가...(전 늘 똑같은 옷만 입어서 이건 해당이 안 되는군요).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한숨 돌리고 다면 완전히 감정이 정리가 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아이에게 내 감정을 표출하는 일은 막을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 한발 더 나가서 생각해보면 스스로에게 나쁘지만 멈추지 않는 행동은 아무래도 어른인 내가 아이보다 더 많이 하는 게 자명하기에 이런 일로 아이에게 감정을 섞어 훈육할 수는 없다는 결론에까지 도달하곤 한다. 


놀다 다치지 말자!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내가 사람을 대해 오면서 늘 자연스레 했던 사고방식일 텐데 아이에게는 쓰잘 떼기 없이 조금 더 높은 기준을 적용시켰던 게 아닌가 할 때도 있다. 정작 가장 관대해야 할 아이에게 다른 사람과 같은, 혹은 다른 사람에게 보다 더 깐깐한 잣대를 들이댄 게 아닌지 반성하곤 한다. 내가 만난 다른 사람들은 옷 입는 것 정도는 알아서 잘하겠지만 다른 쪽으로는 더 큰 결함이 있는 경우도 많은데 말이다.


아이가 크면서 여러 이유로 실수로든 일부로든 잘못된 선택을 할 때 조금 더 여유롭게 바라보기 위해 나 스스로 반성하는 건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물론 어느 수준까지 통할지는 모르기에 아이하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 자기 의견을 건전하게 말할 수 있도록 키우면 일탈과 반항의 크기를 조금조금씩 키워나가지 않을까 싶다. 지금 같아서는 애가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걸 보면 피가 거꾸로 쏟을 것 같기에, 어느 날 그런 아이를 보고 화를 참지 못 해 몽둥이 들고 달려가는 아빠가 되고 싶진 않으니까. 그전에 적당히 망친 시험 성적이라던가 음주 같은 걸로 아빠의 면역력을 조금 키워줬으면 좋겠는데...


그렇다고 아이가 마냥 제멋대로 자라길 바라는 건 아니다. 그래서 우선 나 스스로가 조금 더 좋은 아빠가 되고 싶기에 자주 떠오르는 내 미흡한 부분들도 조금씩 채워나가려 노력하고 있다. 늘 그렇듯 다이어트도 꾸준히 시도하고 꾸준히 실패하고 있고... 다이어트 성공하고 올해 목표했던 것들 다 성공하면 조금 더 깐깐한 아빠가 돼도 되려나. 스스로에게는 엄격하고 가족에게는 더 관대한 사람이 되면 참 좋겠지만 거기는 또 다른 영역이라 자신은 없다. 


어쨌든 이런저런 이야기 다 제쳐두고라도 다이어트 성공해서 아이가 아빠 멋있다고 날씬하다고 말해주면 좋겠군.


오늘도 열심히 다이어트 중!



아. 잠깐 담배 이야기를 해서 말인데 난 어렸을 때는 주변 사람들이 "마시는 산소보다 니코틴이 많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썼을 정도로 골초였다. 하루에 기본 3갑에 자리에 따라서 4~5갑도 폈으니 말 다했지. 하지만 26살 11월에 10년 남짓 펴오던 담배를 끊었다. 끊고 보니 확실히 장점이 많으니 도전해보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내가 그럴 자격은 안 되고. 금연에 도전하신다면 응원만 열심히!! 금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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