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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용 Jan 10. 2022

아기의 입원


크리스마스를 며칠 안 남긴 어느날 아침 일과를 마치고 작은 아이를 안고 동네의 조금 큰 소아과를 찾았다.


살다보면 언젠가는 당연히 경험할 걸 알고 있지만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 중에 하나가 갑자기 찾아왔다.


둘째가 입원을 했다.


어디서부터 문제가 생겼을까. 우선 첫째가 어린이 집에서 감기에 걸려와 온 집안에 감기기운을 퍼트렸다. 때마침 엄마 몸에서 가지고 나온 면역력이 떨어질 쯤이라서 그런지 둘째도 여지없이 콧물을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항문 근처에 이유모를 종기가 생겼다. 처음에는 작은 여드름 같았는데 조금씩 고름이 차오르다 터지고 그리고 다시 고름이 차오르다 터지길 2번 정도 반복했다. 중간에 병원을 가서 항생제를 받아오고 항생제 단계도 높여가며 꾸준히 약을 먹이고 연고를 발랐는데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아이가 항생제를 먹으면 설사를 하곤 하는데 잦은 설사가 종기에 나쁜 영향을 끼쳤나보다. 고름이 차오르고 터지고 차오르길 몇번 반복했다. 결국에 의사선생님은 입원을 권하셨다.


첫째는 예민함에 비해서 은근히 튼튼하게 자란 편이었다. 고열로 몇번 고생한 적은 있지만 크게 부모를 놀래킬 만큼 아픈 적이 없었다. 그래서 곧 5살을 앞둔 상황에서 처음으로 수액을 맞았다. 거기에 비해 둘째는 이제 갓 7개월이 됐는데 수액을 맞고 입원을 하게 되다니... 조금은 어색했다. 역시나 피하고 싶은 순간이 처음으로 다가오면 여러가지로 생각이 많아진다. 


감기로 이미 몸이 좋지 않은데다 항문쪽이 아파 방귀를 뀌거나 변을 볼 때마다 아파서 잠을 설쳐 아기의 체력을 이미 바닥을 치고 있었다. 가능하면 집에서 편하게 씻기고 재우고 싶었지만 종기에 농이 너무 많이 차면 다른 방법으로 농을 빼야 될 수도 있다는 말씀에 행여나 아이 몸에 칼이라도 대야하는 상황이 생길까 걱정되서 고민 없이 입원을 선택했다.



입원을 하기로 결정을 하고 그 사이 아기에게 수액을 놓기로 했다. 아기를 키우면서 처음으로 경험하는 것들이 많은데 이 순간은 정말 피하고 싶은 순간 중에 하나였다. 작고 토실토실한 팔에 어디 주사 바늘을 꽂을데가 있다고...간호사도 열심히 혈관을 찾았지만 젖살 저 밑에 숨어 있는 혈관을 찾기는 쉽지 않아보였다. 양쪽 팔과 다리를 톡톡톡 때리며 힘들게 혈관을 하나 찾아 주사바늘을 살짝 찌르고는 여러방향으로 비틀며 혈관 안으로 들어가길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커지고 나와 아내의 불안함과 긴장감은 점점 더 올라갔다. 우리의 표정에서 그런 불안함을 읽었는지 간호사들은 연신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열심히 다시 혈관을 찾았다. 한번에 바늘을 꽂지 못한게 간호사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나름 편안한 목소리로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을 드리고는 아기를 꼭 껴안았다. 또 한참동안 양 팔과 다리 여기저기를 둘러보시다가 다시 한번 시도를 하셨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한번에 성공했다. 그 안에 있던 간호사 두분과 아내와 나 이렇게 넷의 얼굴에 동시에 안도의 빛이 돌았다. 아이의 몸에서 꺼내기에는 조금 많지 않은가 싶은 정도의 피를 뽑았다. 염증 수치 검사등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흡사 내 몸에서 피를 꺼내는 것처럼 아찔한 기분이다. 


그리고는 수액을 꽂은 아기를 안고 PCR검사를 했다. 역시나 아기가 경험하지 않았으면 하는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런 과정을 마친 후 작은 병실안의 병원침대에 걸터앉아 간신히 아기를 재울 수 있었다. 


그때쯤 나 역시도 꽤 피곤했다. 힘들어 하는 아기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너무 아파서 내가 힘든 것 따윈 다 잊어버렸다고 말할 수 있다면 참 멋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했다. 아기에게 비할바 아니겠지만 밤새 힘들어 하는 아이를 보느라 나도 너무 지쳤다. 몸이 힘들어서일까 팔을 축 늘어뜨리고 잠을 자는 아기의 모습에 내 기분을 무겁게 끌어내렸다. 이럴 때면 늘 드는 생각이지만 내가 무얼 잘못한건지 이렇게 되기 이전에 조금 더 좋은 선택을 할 수는 없었는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한 시간쯤 지나고나서 입원 관련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 병실을 정하고 나니 아이를 내려놓고 조금 쉴 수 있겠다는 생각에 빨리 입원을 하고 싶었다. 마음이 무거우면 머리를 굴려 생각을 차갑게 만들때가 좋을 때가 있다. 어쨌든 별일 없이 완쾌될 문제니까 이틀밤만 열심히 버티면 된다는 계산을 하고 입원할 때 필요한 것들을 아내에게 문자로 정리해서 보냈다.



"어머니는 언제 오세요?"

병실에 올라가 담당 간호사님을 만나 자주 들었던 질문을 받았다.

한 시간 정도 후에 올꺼라고 대답하자 그럼 그때쯤 다시 와서 설명을 해주시겠다는 이야기하셨다. 괜찮다고 앞으로 계속 제가 있을꺼라고 말씀드렸더니 살짝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아빠가 평일에 입원을 같이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자주 마주치는 '저 아빠 뭐지?' 라는 표정을 나중에 아내와의 수다거리로 머리속에 담아두고 하루 종일 안겨 있던 아이를 매트 위에 눕히니 조금 어색한지 여기저기 두리번 거린다. 나도 살짝 긴장이 풀리면서 아이를 안고 있던 팔에 뻐근함이 느껴진다. 


잠시 후 아내와 첫째가 캐리어에 아기와 내가 갈아입을 옷과 장난감, 분유, 물 등을 가지고 병원으로 왔다. 아프지 말라고 동생 머리는 쓰다듬는 첫째를 보자 피곤한 기분이 조금 가신다. 역시 둘 낳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짐을 들고 병실로 들어왔다. 어린 입원이면 쇼핑백 하나면 끝났을 법한 짐이 캐리어 하나를 가득 채우고도 넘친다. 



체온 체크는 패스 했으면 했지만....

수액을 맞아서인지 크게 배고파하지 않는 아기지만 시간이 됐기에 분유를 먹이니 또 솜이 한뭉치 정도 빠져나간 인형처럼 다시 잠에 든다. 팔에 꽂은 주사바늘이 잘못될까 아이를 눕혀 재우는 건 불안하다. 팔에 안겨서라도 푹 자고 빨리 기운을 차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밥을 먹고는 잠깐 자다 어딘가 불편해서 깨서 울다 다시 잠들기를 몇시간을 반복한다. 벌써 반나절 넘게 맞고 있는 수액 냄새가 아이의 몸과 소변을 통해서 코를 찌르기 시작했다. 항생제의 영향인지 설사를 하기 시작하고, 설사를 할 때마다 아파하는 바람에 아이가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다. 간신히 재우고나면 아이의 체온을 재러오는 간호사의 인기척에 다시 깨곤 한다. 신경이 극도로 예민하다. 아마 나도 많이 피곤한가보다. 


밤새 보채는 아이를 달래고 아침이 왔다. 첫째를 등원시킨 아내가 PCR 검사를 받고 병실로 찾아왔다. 입맛이 없어 아침 겸 점심으로 김밥 한줄을 먹고 벤티 사이즈의 스타벅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훌쩍 거렸다. 아이가 아픈 요 며칠 하루에 3~4시간 남짓 자길 반복해서 인지 커피가 없이 하루를 버티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아침이 되자 조금은 기력을 찾은 아이와 아내의 모습이 하나의 시선 안에 머물자 마음이 편해진다. 아내가 아이를 봐주자 두발 뻣고 누을 수 있었거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잠시 쉬고 아내가 첫째 하원을 시키러 가는 동안 의사선생님이 회진을 오셨다. 어제 오늘 쓴 항생제에도 차도가 없고 고름이 너무 많이 차올라 결국에는 고름을 빼내기로 했다. 기저귀만 손대려고 해도 아파하는 아이의 모습을 봤기에 잠시 고생하더라도 빨리 나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오시기로 약속한 시간이 지났지만 오지 않는 의사선생님 때문에 다시금 예민해졌지만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매트 위를 기어다니는 아기의 모습에 어제처럼 불편하진 않다. 또 그렇게 몇 시간을 보내고 수술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가벼운 시술을 받았다. 작은 주사기에 어른 손톱 하나만큼의 높이로 빠져나오는 고름을 보자 또 울컥했다. 그렇게 고름을 빼내고도 다시 한동안을 손으로 고름을 빼냈다. 곪은 여드름에 뭐 하나 살짝 스쳐도 머리를 싸매듯 아픈데 저건 얼마나 아플까. 아기를 쉴새 없이 자지러지게 운다. 잠시 눈이라도 마주치면 왜 나 이렇게 아프게 해요라고 눈으로 말하는 듯 해서 아이 얼굴을 볼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아이의 두팔을 잡고 있다 시술이 끝나자마자 급히 아이를 들쳐 안고 달랬다. 금새 울음이 그치고 눈을 마주치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편해지기는 커녕 더 속상하다. 에휴 순둥이...


그래도 고름을 빼내서인지 아이의 표정이나 몸짓이 조금 좋아졌다. 완전히 나은 건 아니라 다시 아이를 안아 먹이고 재우고 다시 깨기를 몇 시간 반복했다. 잠에는 조금 편히 잘까 했는데 팔에 꽂은 수액의 주사바늘이 잘못 돼서 아기는 다시 밤새 보챘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둘째 밤이 지났다. 



엉덩이의 고름을 빼고 팔의 주사바늘을 빼서 그런지 아침이 되자 아이의 상태는 조금 더 좋아졌다. 꼬박 30시간 넘게 아이를 안고 맨 바닥에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더니 평소에도 좋지 않던 무릎이 너무 안 좋아져서 아이를 안고 일어날 때마다 휘청거렸다. 내가 종종 말하곤 하는 아빠 기 빨아먹고 힘내는 딱 그런 모습이다. 아이를 등원시킨 아내가 찾아와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오후에 찾아온 의사선생님을 통해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고 퇴원 후 통원 치료를 해도 되겠다는 말을 들었다. 몇 시간만 더 버티면 집의 편안한 매트 위에 온갖 장난감을 풀어넣고 놀게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확 좋아진다. 


퇴원과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동안 친절하게 대해주신 간호사 선생님들과도 짧은 대화를 나눈다. 

"소아과 일하면서 애들 많이 보는데, 아기가 아픈 거에 비해서 참 순하네요."

"처음 얼굴 봤을 때 딸인 줄 알았어요. 이쁘게 생겨서~"

"이런 아기면 저도 빨리 낳고 싶어요~"


충분히 길었던 병원 생활이 끝나간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나보다. 이틀 전이었으면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을만한 문장들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기분 좋으라고 의례하는 말들일 수도 있겠지만 부모입장에서 자식 칭찬 듣는게 싫을리 없다. 그렇게 또 몇 시간을 보내고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결과적으로 아이는 퇴원을 하고나서도 일주일 정도 더 같은 증상으로 고생했다. 하지만 입원을 할만큼 심각하지는 않아서 다행히 크리스마스와 새해는 온 가족이 함께 화목하게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집에서 열심히 아이의 상태가 나빠지지 않도록 약도 먹이고 관리도 해줬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더 이상 병원에 갈 필요는 없게 됐다.


어쨌든 나을 병이었다지만 병원에서 있는 3일의 시간과 그 전후로 아이가 힘들어한 시간은 정말 피했으면 하는 순간들이었다. 특히나 수액을 꽂을 자리를 찾고 치료를 할 때 날 바라보는 애잔한 아이의 눈빛이 가슴에 맺혔다. 내가 생각한 것처럼 아이가 날 원망의 눈으로 바라봤을리는 없다. 그냥 내 마음 속에 미안함이 그렇게 느끼게 만든 것 같다. 


아이들이 잔병치례 없이 병원 한번 안 가고 잘 커줬으면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는 건 잘 알고 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잘 깨달았다. 아이들이 아프고 힘들 때도 누구보다 내 품을 편하게 느낄 수 있도록 자상한 아빠로 남으면서 수액 하나 정도는 다 맞을때까지 두 팔에 편안히 안고 있을 정도의 체력을 유지하는 것.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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