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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bye, My Summer

[음악] 1: 한로로 EP.03 <자몽살구클럽>

by 민석


스크린샷 2025-08-08 134032.png [MV] 한로로 - 시간을 달리네 ⓒ 한로로 HANRORO


한로로의 ep 3집 자몽살구클럽은, 7월 중순 한로로가 출간한 동명의 소설에 기반한 앨범이다.


글(소설) - 음악(앨범) - 영상(뮤비)을 통해 본인이 뜻하는 메시지를 이렇게도 효과적으로 대중들에게 전할 수 있다니, 다시 한 번 한로로의 기획에 대한 감도가 깊고 탁월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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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비행부터 지금까지 약 1년 반 정도의 시간동안 음악의 스펙트럼이 확장되는 과정이 나에게는 너무 흥미로웠다. 입춘 - 정류장과 같이 정적이고 인디 감성의 음악에서 출발한 한로로의 음악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본인이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을 대중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ep 2집에서는 지구에 대한 이야기, ep 3집에서는 청춘의 자살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순으로 말이다.


그리고, 모든 질문에 대한 단 하나의 대답은 결국 사랑이라는 한로로. 현대인들에게 가장 결여된 부분을 채워주기 위한 그의 시도는 점점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과하지 않고, 필요한 것들만 채워주는 방식으로.


작년 봄 뷰민라에서 첫 스테이지를 장식했던 한로로의 보컬은 긴장된 탓인지 라이브가 탁월(...)하지만은 않았다. 허나 이번 여름 펜타포트에서의 라이브는 가히 역대급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탄탄한 발성을 뽐내며, 10년 뒤 헤드라이너는 한로로의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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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샷 2025-08-08 134353.png [MV] 한로로 - 시간을 달리네 ⓒ 한로로 HANRORO


한로로는 가사에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한국말이 주는 여운과 의미를 누구보다 잘 살리는데, 국어국문학 전공의 힘이 여기서 오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했다.


사실 나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문학을 정말 싫어했다. 아마, 문학을 바라보는 관점과 시선이 정답으로서 고착화되고, 하물며 평가까지 받게 되는게 싫었던 것 같다. 접하는 사람마다 각자의 상황과 경험에 따라서 사람만큼의 해석이 존재할텐데 말이다. 그런 나조차도 한로로의 가사를 보면서 잊고 지내던 문학에 대한 기억을 꺼내보는 것처럼, 생각할 거리를 계속해서 던져주는 한로로의 글에는 울림이 있다.


가사에 한국어만 사용하는 대표적인 아티스트로 쏜애플이 있다. 2016년에 소극장에서 열렸던 콘서트에 다녀온 이후 서울 앨범에 빠졌던 이유도 그 때문이려나 싶다. 서울의 첫 구절을 듣고, 한동안 빠져 살았던 기억이 난다. 스무살 초반의 내가 처연함이라는 감정을 가장 잘 이해하게 해주었던 곡이었다.


지도에 없는 곳으로 가려고 집을 나선 날
바람이 몹시도 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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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함께 울지 못하고 서로 미워하는 법만 배우다
아무 데도 가지 못한 채로 이 도시에 갇혀 버렸네

쏜애플 <서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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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로로 EP.3 <자몽살구클럽>

이번 앨범은 그냥 들어도 좋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 듣게 되면 전혀 다른 여운과 몰입을 선사한다.


한로로가 직접 언급하기도 했는데, 셋리스트의 곡들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장면, 관점들이 존재하므로 소설 속에 존재하는 세계를 찾아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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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1. 내일에서 온 티켓

- 자몽살구클럽의 테마 곡.


2. 용의자

- 유민의 시선

- 태수의 자살 이후 홀로 남겨진 유민의 자책과 성찰.


3. 갈림길

- 보현의 시선

- 생존과 죽음, 꿈과 현실 사이에서 동생을 위해 살아내는 보현의 고뇌.


4. 0+0

- 유민과 태수의 서사, 그리고 한로로가 말하는 사랑

- 사랑하는 이를 자살로 떠나보낸 유민의 잔잔한 애도이자 다짐.


5. __에게

- 유민이 태수에게 보내는 편지 (+ 소하/보현)

- 소설 속에서 음악선생님, 소하, 보현과 함께 태수를 위해 부르는 유민의 노래


6. 시간을 달리네

- 자몽살구클럽의 True Ending.

- 세상 모든 유민, 태수, 보현, 소하를 위한 구원자의 포용, 그리고 태수를 만나러 가겠다는 유민의 적극적 처세


7. 도망

- 소하의 시선

- 세계의 정답을 찾지 못 한 채 극단적 선택을 저지른 소하의 외침





[떠난 사람과 남겨진 사람의 서사]

: 용의자 → 0+0 → 시간을 달리네


스크린샷 2025-08-08 134322.png [MV] 한로로 - 시간을 달리네 ⓒ 한로로 HANRORO


#1. 용의자


나에게 이번 앨범 최애 곡은 '용의자' 이다. 심상이 가장 뚜렷하게 그려지고, 사운드와 가사의 조화가 나에게 가장 깊이 꽂힌다.


죽어가던 태수를 잡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던 유민이었지만, 태수는 구원의 마지막 날에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녀의 죽음 직후, 태수를 지키지 못한 것이 자신의 탓이라며 스스로에게 화살을 돌린 유민이었으나, 결국 자신 역시 태수가 떠난 후 혼자가 되었고, 내 잘못이 아니라는, 잘못이 없다는 메시지로 종결된다.


죽어가던 그녀를 안았어요
걸터앉은 눈물은 외로웠죠

우 그래 내 잘못인 거죠
우 날 잡아가세요

뻥긋대던 그녀의 입술이
거짓뿐인 장난감이랬대요

우 그녈 지켜야 했어요
우 혼자였거든요

알면서도 흩어져 가는 흔적들
나만 우두커니 서 있네

우 이게 내 잘못일까요
우 웃기지 마세요
우 결국 그녀는 떠났죠
우 혼자였거든요

혼자가 됐어요
난 잘못 없어요

한로로 <용의자>


내가 가장 몰입했던 건 유민의 심리 변화다.


[죄책감 -> 자기 합리화 -> 자기 방어] 의 순으로 이어지는 유민의 감정 변화를 따라가다보면, 혼자 남은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산산이 부서져가는지를 생생하게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사랑하던 사람이 떠나간 순간에, 남겨진 사람은 그를 위해 해주지 못 했던 것이 얼마나 큰 미련으로 남을까. 그리도 깊은 후회와 죄책감의 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리다보면, 인간은 자신의 삶을 지키지 못 할 것이므로 결국 스스로를 합리화하게 될 것이고,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를 펼치기 마련이다. 혼자 남은 나는 잘못이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는 0+0으로 이어진다.




#2. 0+0


가사의 해석이 책을 읽은 상태에서와 안 읽은 상태에서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곡이라고 생각한다.


스크린샷 2025-08-08 140154.png [MV] 한로로 - 시간을 달리네 ⓒ 한로로 HANRORO


책을 읽은 상태에서는 '태수와 유민의 서사', 읽지 않은 상태에서는 '사랑의 서사'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은 눈동자의 사각지대를 찾으러 가자
여름 코코아 겨울 수박도
혼나지 않는 파라다이스
앞서가는 너의 머리가
두 볼을 간지럽힐 때
나의 내일이 뛰어오네

난 널 버리지 않아
너도 같은 생각이지?
저 너머의 우리는
결코 우리가 될 수 없단다

영생과 영면의 차이를 너는 알고 있니
멍든 발목을 꺾으려 해도
망설임 없이 태어나는 꿈

난 널 버리지 않아
너도 같은 생각이지?
저 너머의 우리는
결코 우리가 될 수 없단다

난 널 버리지 않아
너도 같은 생각이지?
난 우리를 영영 잃지 않아
너도 영영 그럴 거지?

한로로 <0+0>


홀로 남겨진 현실을 부정하던 '용의자' 시점이 태수의 죽음 직후 였다면, 0+0의 시점은 현실을 시인하고 나서 찬찬히 태수와의 관계를 회고하는 관점으로 이해했다. (태수 어머니와 함께 태수의 사진 앞에 서있는 시점과 같이)


틀에 박힌 삶을 강요받았던 것이 태수를 죽음으로 내몰게 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유민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태수에게 정답을 찾지 않아도 되는 곳, 고통에서 자유로운 곳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영원한 것은 세상에 없다지만, 태수가 없는 삶은 유민에게 끝나지 않는 삶과 같을 것이고, 인생을 더 이상 살아내지 못 했던 태수는 끝없는 잠에 들었다. 영생과 영면은 아마 유민과 태수의 상징이 아닐까.


'진짜 죽음(final death)은 모두에게 잊혀지는 것'이라는 영화 코코의 세계관처럼, 유민 스스로는 절대 태수를 영영 잃지 않겠다는 마음가짐.


즉, 사랑하는 이를 자살로 떠나보낸 유민의 잔잔한 애도이자 다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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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샷 2025-08-08 140338.png [MV] 한로로 - 시간을 달리네 ⓒ 한로로 HANRORO


그리고, 이번 앨범을 통틀어서 사랑에 대한 한로로의 시선이 가장 많이 담긴 곡이라고 이해했다. 그래서인지 가장 따뜻하고, 오랜 여운을 주는 곡이다.


곡 전체에서, 세상에 구애받지 않는 삶을 함께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제시하고 있다.


사랑에 대한 생각을 요즘 정말 많이 한다. 동시에, 사랑을 하기 정말 어려워진 시대라는 생각을 한다. 도파민과 비교 강박에 갇혀서, 올바른 길과 내보이기 멋진 것들만을 강요하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는 것에는 비루한 신조어를 꼬리표처럼 달아버리는, 그런 폭력적이고 낭만 없는 시대가 왔다. 그럴수록 느슨하고 홀로 서는 가치들이 퇴색된다. 그렇기 때문에 너를 잃지 않겠다는,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한 사람만을 위한 시선과 다짐은 더욱 더 소중하고 희귀한 일이 되어버렸다.


틀에 사람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위해서 언제 어디서든 틀을 펴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이어 없애줄 수 있는 사람. 세상에 종속되지 않는 무한한 마음을 펼쳐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단 하나의 가치는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


사랑이 가진 무한한 힘과 순수한 마음을 0+0이라는 제목으로 표현한게 아닐까.




#3. 시간을 달리네 (Goodbye, My Summer)


뮤비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시간을 달리네는 우리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소하, 유민, 태수, 보현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와 사랑을 전하겠다는 구원자의 포용이 핵심이다.


스크린샷 2025-08-08 134424.png [MV] 한로로 - 시간을 달리네 ⓒ 한로로 HANRORO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주고, 같이 '살구싶다!'를 외쳐주는 한로로의 모습. 함께 한다는 행위만으로도 그들에게는 구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자, 좋은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스스로의 다짐을 작품 전반에 녹여내고 있다.


하지만, 관점을 태수와 유민의 사랑으로 한정한다면, 가장 적극적인 형태로 태수에게 다가가겠다고 외치고 있는 유민의 모습으로 조망할 수도 있다.


5월부터 시작되었던 보현, 태수, 유민, 소하의 순차적 구원이 끝나고, 어느 때보다 힘겨웠던 여름을 보내고 있던 그들에게 그 해 여름은 두 번 다시 반복하기도, 기억하기도 싫을 정도로 작별하고 싶은 순간들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름을 거슬러 올라가, 6월의 어느 날에 머물러 있는 너에게 사랑을 외치고, 안기겠다는 유민의 태도는 세상에 둘만이 존재하는 아름답고도 처연한 여름을 담아내고 있다.


부제인 Goodbye, My summer 역시, 여름처럼 뜨거웠던 너를 보낸다는 의미와 함께, 너를 만나기 위해 다시 한 번 여름을 거슬러 올라가겠다는 적극적 태도의 중의다.


만약 우리가 서로에게서
영영 사라진대도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버텨 가야 한대도

아 이 마음은 어디에
올려둬야만 우릴 내려볼 수 있는가
넌 내 조각이었단 걸
기억해 줘

멈춰버린 시간 속에 네가 서 있어
아무도 모를 추억 틈에 너와 내가 있어
마침내 너에게 다가가 사랑해
외치기 위해 오늘도 시간을 달리네

아 이 마음은 어디에
녹여내야만 우릴 가둬둘 수 있는가
넌 내 전부였다는 걸
기억해 줘

멈춰버린 시간 속에 네가 서 있어
아무도 모를 추억 틈에 너와 내가 있어
마침내 너에게 다가가 사랑해
외치기 위해 오늘도 시간을 달리네

손을 뻗어봐도 넌 울음만 터뜨리고
돌아가야 할 때 벌써 내일을 아파하지만
같은 자리에서 같은 웃음을 띄워 줘
보고 싶을 거야

멈춰버린 시간 속에 네가 서 있어
아무도 모를 추억 틈에 너와 내가 있어
기나긴 여름을 지나서 너에게
안기기 위해 오늘도 시간을 달리네

달리네 달리네
달리네 달리네

한로로 <시간을 달리네(Goodbye, My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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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적 태도를 보였던 '용의자', 스스로 변해가고자 하는 다짐을 비추기 시작한 '0+0', 그리고 적극적으로 너에게 다녀가겠다는 '시간을 달리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남은 이의 마음을 어찌 쉽게 재단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감내할 수 없을 만큼 무거웠을 유민의 고통은 스스로 마주하고 포용해나가려는 결심에서부터 해소되기 시작한 것이다.




스크린샷 2025-08-08 140453.png [MV] 한로로 - 시간을 달리네 ⓒ 한로로 HANRORO


결국 그렇다면, 자몽살구클럽의 결론에 도달한 우리는 어떠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떠난 이를 떠나보내는 것평생 잊지 않는 것, 둘 중 어떤 것이 우리의 삶과 떠나간 이의 삶을 위한 길일까 하며 말이다.


자신을 자책하면서 살아가지도 말고, 아예 무심히 잊어버리지도 말고, 그저 인생의 한 폭이었다고 초연하게 떠나보냈으면 한다.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감정들을 억지로 감추지 말고, 잠시 그 시간에 머물렀던 스스로를 음미하며 시간을 달려갈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떠난 이는 답이 없겠지만, 항상 같은 자리에 서있을 테니 언제든 같은 모습으로 그를 안아주면 된다.


동시에, 우리 주변의 힘든 이들을 돌아볼 줄 아는 여유를 갖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힘든 시기를 보내는 이들이 주변에 도움을 구하기 어려운 세상 속에서, 그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하루를 버텨낸다.




작년 3월까지 라디오를 진행하며, 고민이 담긴 사연에 손으로 직접 답장을 보냈던 김창완 님의 문장들을 두고 나는 감히 낭만의 정수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 중에서도 이번 앨범에 가장 잘 어울리는 구절로, 글을 마무리 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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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일기장은 무한하기에, 우리는 그것을 인생을 살아가는 힘이라고 부른다.


그 힘의 이름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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