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프로젝트] 암벽을 오르는 느낌

40대 초보가 배우는 '스포츠 클라이밍' - 8번째

by Maama

연 날리기는 인생을 닮아있다.


연은 바람이 불면 순식간에 하늘로 솟는다. 한없이 올라가는 연을 보면 즐겁기도 하지만 불안하기도 하다.


연은 얼레에 감긴 실만큼 올라간다. 바람은 요동치는데 풀어줄 실이 없으면 연은 찢긴다.


다른 연과 나란히 잘 날다가도, 어찌 된 영문인지 얽히고설키다 누군가의 줄을 끊어야 하는 순간도 온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들고뛰어야 한다. 그러다 바람을 타기도 하고, 바닥에 처박히기도 한다.


줄을 짧게 잡고 뛰고 멈추길 반복하는 것도 재미다. 하지만 힘들다.






우리 인생도 연날리기 같다.


갑자기 좋은 기회나 사람을 만나 생각지도 못한 것을 얻는다. 너무나도 좋고 평화로운 상황이 즐겁기도 하지만 심연에서 올라오는,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도 감출 수 없다.


인생은 스스로의 크기만큼 소중한 것을 담을 수 있다. 좋은 것들이 차고 넘쳐도 내가 품지 못할 수 있다.


좋은 인연과 관계와 기회가 공존하기도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얽히고설키다 보면 그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모두를 버려야 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다시 맨땅에서 시작할 수는 있으나 오르내림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것도 인생의 재미라지만 힘들다.






바람이 세거나 없는 날에 연을 날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인생도 쉽지 않다.


누구에겐 그렇고, 누구에겐 안 그런 게 아니다. 모두 힘들다.


원래 누구나 힘든 일이지만 고통은 제각기 다 겪는다. 그래서 땅에 처박힌 연을 주워 주고, 끈 떨어져 날아간 연을 찾아주는 것같이 힘든 인생엔 응원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겐 고기를 사주는 것으로, 누군가에겐 말이나 글로, 누군가에겐 그저 같은 하늘에 있는 것만으로도 응원이 된다.






클라이밍을 하면서 인생을 느껴본다. 안 그래도 차갑고 쓰고 아픈 인생을 굳이 뭣하러 또 느끼나 싶지만 그냥 느껴진다.


호기롭게 '출발'을 외치고 몇 발자국 떼다 보면 오만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나마 첨엔 여유롭다.


'폼은 괜찮은가?', '클립온 하는 동작은 괜찮은가?'


조금 더 중력을 거스르다 보면 그런 생각은 온데간데없다. 슬슬 팔이 펌핑이 되기 시작한다.


팔 동작, 손동작은 안중에도 없다. 일단 더 밟기 좋은 홀드와 움켜쥐기 좋은 홀드를 찾는데 혈안이 된다.


평평한 홀드를 움켜잡고 딛고 있으면 꼼짝도 하기 싫어진다. 그냥 여기서 내려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 나아가 두 군데의 행오버 구간을 지나고 나면 손에 땀이 나기 시작한다. 악력도 떨어진다.


'미끄러져 홀드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안전은 확보가 되어 있지만 떨어지는 것을 체험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나의 생명줄을 잡아주는 사람이 저 아래 있지만 멀게 느껴진다. 나의 힘듦을 체감 하기엔 멀기도 하고, 나를 올려다 봐주는 것이 수월해 보이지도 않는다.


마지막 탑 앵커에 로프를 걸고 다급하게 외치는 '완료'의 함성은 마치 그분의 '다 이루었다'와 같은 심정이다.


그러고 나서 줄에 매달려 내가 이를 악물고 오르던 홀드 옆으로 15m를 내려오는 그 순간은 클라이밍에서 가장 찐내 나는 시간이고 그림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 인생이 떠오른다. '비슷하네... 또 퀵드로우 따러 올라가야지...'


그리고 다시 호기롭게 '출발'을 외치고, 폼을 생각하고, 평평한 홀드를 찾고, 펌핑된 팔을 풀고, 높이만큼 차오르는 불안감을 느끼는 것을 반복한다.






날이 추워졌다. 극성이던 모기떼도 사라졌다.


홀드가 차가워졌다. 오를수록 더 차갑다.


탑로프 클라이밍, 탑로프 빌레이, 리드 클라이밍, 리드 빌레이로 기초 과정은 끝이 났다.


이제부터 남은 기간 동안은 서로 빌레이를 봐주면서 등반을 반복하는 것이다.


8번째 날에는 총 5회의 빌레이를 봤고, 총 3회의 등반을 했다.


역시 반복할수록 장비는 더욱 익숙해지고, 자세도 좋아지는 것 같다.


반복만큼 좋은 방법은 없다. 효율을 앞세워 적은 반복을 추구하는 세상이지만 원래는 옳지 않다. 반복은 할수록 무르익는다.





정신없이 사지를 허우적거리다가 우연찮게 느낌이 왔다. 제대로 올랐다는 느낌적인 느낌 말이다.


팔을 펴고 다리로 오른다는 텍스트가 체화되는 순간이 있었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앗! 이렇게 해도 되네!'


팔을 굽히지 않고 다리를 밀어서 올랐을 때 몸에 느껴지는 다른 느낌이 있었다. 분명 중력을 거슬렀는데도 매우 깨끗하고 상쾌했다.


'바로 이거구나'라는 느낌이 왔다.


낼모레 50인 사람이, 일단 올라가 보라는 교육철학을 가진 산악인을 만났으니 무슨 준비가 되어 있었겠는가!


이제야 반복을 통한 깨달음이 얻어진 것이다. 유레카!


물론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허세스럽고 아름다운 폼의 완성은 아니지만, 이제 그 시작을 깨우친 것이다.





여전히 발을 먼저 올려야 하는지, 팔을 더 뻗어 홀드를 잡아야 하는지 허우적거리는 것은 여전하다.


머릿속으로 이미지가 그려지지 않는다. 그렇다는 건 막연하게만 이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든 오래 하고, 집중해서 하고, 생각을 많이 하면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다.


바둑의 고수가 반복적으로 여러 수를 놔보듯이 여러 가지 경우의 수에 대한 다양한 시뮬레이션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된다.


그리고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하나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때론 동영상처럼 플레이가 되기도 한다.


보통의 경우는 여러 증거를 통해서 결과를 찾지만, 머릿속이 이미지를 그릴 수 있게 되면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를 찾게된다. 어느 게 더 수월할까?


아직 클라이밍은 홀드에 손과 발을 그려 넣을 수 없다. 아직 그 지경에는 이르지 못할 수준의 반복을 한 것이다.





날이 추워지니 보온에도 신경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손이 너무 시려서 더 빨리 힘이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리고 손에 땀도 엄청 난다. 차가운 홀드를 땀난 손으로 잡으면 정말 미끄럽다.


이럴 때 초크를 쓰는 것인가 보다. 곧 초크 백과 초크를 사게 될 것 같다.


아직 4번의 강습 기회가 더 남았다. 적어도 8회~10회는 더 오를 수 있다.


그때까지 암벽에 그림을 그릴 수 있게끔 해야겠다. 팔 두 개, 다리 두 개가 같이 움직이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다음에는 초보티를 좀 더 벗어나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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