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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ama Mar 22. 2021

#129. 의존적으로 편하게 살아보자

[누만예몸][극사실 실천법] 그럼 좀 어때!

    원래 이 글은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어떻게 하면 덜 받을 수 있을지'를 알려주기 위해서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글을 준비하다가 내용이 직장인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예쁜 몸을 위해서 필요한 내용이라서 40+ 여러분들을 위해 급선회를 하였다. 


    인간관계는 삶의 기쁨이자 고통이다. 주된 기쁨을 얻는 것도 인간관계이고, 고통을 주는 것도 인간관계다. 그 와중에 스트레스가 반드시 존재한다. 기쁨을 주고받는 와중에도 스트레스를 받고, 고통을 주고받는 와중에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무조건 나쁜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꼭 그렇진 않다. 스트레스 덕분에 우리가 바득바득 살고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스트레스를 안 받는 방법은 삶을 이어가는 중에는 불가능하다. 삶이 정지되고 나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 결국 살아 있는 동안 스트레스를 안 받는 방법 따윈 없다. 그저 무뎌지거나, 잘 견딜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뿐이다. 절망적인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쉽고 편하게 무뎌질 수 있거나, 컨트롤 가능하게 견딜 수 있다면 매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피니어스 게이지'라는 사람이 있다. 사고로 머리에 쇠꼬챙이가 관통된 사람이다. 1848년의 일이다. 이 사고 후 피니어스 게이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성격도 달라지고, 하는 행동도 달라졌다고 한다. 이 케이스로 뇌의 특정 부위의 손상이 성격과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우리가 느끼는 복잡한 감정은 뇌의 번연계가 담당을 한다. 감정은 우리 몸과 상관없을 것 같지만 그저 뇌의 작용일 뿐이다. 원인도 증상도 다양한 감정의 그래프는 우리 몸-뇌-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자극이나 현상, 이벤트 등에 대한 뇌의 반응은 개개인마다 제각각이다. 뇌가 만들어내는 반응은 맞지만 그 복잡성은 차이가 크다. 또한 타고난 뇌의 반응이 전부도 아니다. 극심한 정신적 육체적 노동, 부족한 운동, 나쁜 영양, 과잉 에너지, 질 낮은 수면 같은 것들이 예측할 수 없는 변수로 추가된다. 뇌에서 일어나는 화학 물질의 부족이나 과잉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거나 해결할 수 없는 이유다. 

    많은 사람들이 회사나 사적인 인간관계에서 나쁜 스트레스를 받는다. 심하면 우울증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솔직히 우리는 누구나 조금씩 우울증을 가지고 산다. 그것이 약해진 몸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서 더 도드라질 때가 있을 뿐이다. 나쁜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좀 더 좋은 방법은 없을까?

    그래서 좀 더 예쁘고 나은 삶을 위한 방법으로 '의존적인 삶'을 제안해 본다. 




    우리는 흔히 의존적인 것을 나쁜 것으로 치부해 왔다. 의존적인 삶은 나쁜 삶이고, 독립적인 삶은 좋은 삶으로 교육받았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우리는 그렇게 알고 살고 있다. 여기에 일제 식민시대라는 역사적 경험까지 더해져 독립적인 것이 무조건 좋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그럴까? 과연 의존적인 성격과 행동성향이 나쁘기만 한 것일까? 민족이나 국가의 차원에서야 당연히 독립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개인적인 감정과 행동이 조금은 의존적이면 안 되는 것일까?


    독립적인 개인사가 주는 불안과 불편이 분명 존재한다. 독립성은 자율성을 보장해 준다. 하지만 자율에는 항상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 자율을 자율답게 하는 데는 많은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고 그 결과는 온전히 스스로의 몫이다. 40+ 여러분이라면 경험했던 '자율 학습'이 기억나는가? 우리가 자율 학습을 '쨀'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나이에는 자율적인 학습이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일은 항상 불안하고 불편하게 마련이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의 건강하고 예쁜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것은 생존을 제일 가치로 여기는 진화의 DNA에 남아 있는 사실이다. 가장 유약하고 불완전한 후세를 낳는 우리에겐 의존할 수 있는 우호적인 타인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성인이 되었을 때의 타인과의 의존적 관계는 싫든 좋든 받아들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현실이다. 타인에 대한 필요를 부정하면 현실에서 편히 살기가 어려워진다. 부정된 타인들은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타인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서 얻는 것이 많다. 너무 독립적인 생활을 하게 되면 상호 작용이 제공하는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된다. 


    이런 문제를 연구한 사람이 있다. 뉴욕 Adelphi University의 Robert Bornstein 교수로 "Healthy Dependecy"라는 책을 통해 '건강한 의존성'이라는 개념을 주장했다. Robert Bornstein 교수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너무 많은 의존은 나쁠 수 있지만 마찬가지로 너무 적은 의존도 나쁘다는 것이다. 엄격한 독립성과 불건전하고 과도한 의존성 사이의 유연한 중간 지점이 있다고 보고 그것을 '건강한 의존성'이라고 정의했다. 건강한 의존성은 친밀감과 자율성의 균형을 맞추고, 강한 자아 감각을 유지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또한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아닌 '기분이 좋아지는 능력'이라고 주장했다. 

    Robert Bornstein 교수는 20년 이상의 임상과 연구를 토대로 위와 같은 주장을 하였다. 연구에 따르면 건강한 의존성은 애정 관계에 대한 만족도 증가, 학업 및 경력 성공의 더 큰 가능성, 더 나은 가족 의사소통 및 개선된 육아 스킬, 신체적, 정신적 건강 강화와 같은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연구에 의하면 가장 정서적으로 균형감이 있고, 삶에 대한 만족도가 크며, 미래에 대해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때때로 다른 사람에게 기대고 털어놓는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독립적으로도 일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다고 한다. 즉, 굳이 타인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을 외면하지도 않았을뿐더러, 필요할 땐 스스로 독립적인 활동을 할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필요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는 건강한 의존성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연구자들은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사람들이 상당한 사회적, 직업적 비용을 겪을 수 있음을 발견했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존하는 것이 자신을 불쌍하게 느끼게 한다고 여기고 귀중한 도움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립감(자기 의존)을 위해 고립을 선택하게 되면 지원받지 못하는 느낌이나 우울감을 느낄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럼 어떻게 하면 '건강한 의존성'을 가질 수 있을까? 건강한 의존성을 갖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자연스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별의별 생각도 다 날 것이고, 입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시작이 어려운 것이다.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민망하고, 내키지 않는 것에 대한 첫 번째 시도를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가장 편하고 만만한 사람이나 이런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에게 시도해 보자. 그들은 이러한 시도가 건강한 의존이라는 것도 이해할 것이고, 당신이 언제든 필요하다면 독립적일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기꺼이 도와줄 마음도 있는 사람일 테고.


    첫 번째 관문을 넘었고 연습이 되었다면 주변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청해보자. 아마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이렇게나 많았다니. 혹은 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일의 종류가 이렇게나 많았다니 하고 말이다. 그만큼 삶의 무게가 가벼워짐을 느낄 수 있다. '있어빌리티'함 보다 훨씬 괜찮은 느낌인 편안한 안도감을 느낄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설령 도움이 없는 경우에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사실이다. 자존감이나 자립감을 훼손할 필요가 없는 의존인 것이다. 


    부족한 나에게도 지렁이 같은 능력이 하나 있다. 어쩌다 스스로 알게 된 것인지 모르겠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건강한 의존성'의 일부였다. 나는 가끔 '일부러 의존하는 스킬'을 사용한다. 상대가 잘 아는 분야에 대해서 일부러 의존한다. 일부러 의존하는 스킬은 상대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해 준다. 예를 들면 컴퓨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컴퓨터에 관해서 일부러 의존한다. 그러면 그 상대는 너무 신나서 관련된 지식과 최신 동향을 말해준다. 나는 이제까지 소유한 모든 데스크톱 PC를 직접 조립한 사람임을 밝힐 필요는 없다. 

    이런 식으로 상대방이 잘 아는 혹은 잘 알 것 같은 분야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일부러 의존을 한다. 상대는 그것으로 자신감과 공헌감을 느끼게 되고 나에 대해 좋은 인상도 갖게 된다. 나 역시 한 분야를 의지할 수 있어서 편하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쉽게 얻을 수도 있다. 우리가 새로운 지식과 트렌드를 얻는 것에는 물리적인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일부러 의존하는 스킬은 이런 노력을 엄청 줄여준다. 


    일부러 의존하는 스킬은 아니고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것이 하나 있다. 예전에는 일을 혼자 했다. 독립적으로 일하는 것의 장점은 아무도 나의 방향과 방식에 뭐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deep dive' 할 수 있어서 좋긴 한데 내가 뭘 하나라도 놓치면 만회할 방법이 없다. 반면에 도움을 요청하면 내 주장과 기획이 훼손되긴 해도 새로운 방향이나 방식이나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도움을 요청함으로써 새로운 차원의 효율성을 얻게 된다. 

    즉, 작은 의존은 관계도 개선해주고, 지식도 얻게 해 주고, 새로운 아이디어도 준다. 

    



    지나치게 의존을 하는 것은 의존성 성격 장애(Dependent Personality Disorder, DPD)라고 하는 병이다. '건강한 의존성'과의 차이점은 의존성 성격 장애는 필요시에 독립적으로 행동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주 큰 차이점이다. 


    우리는 대부분 독립적이다. 그런 역사적 사건을 겪었고, 그래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나 독립 같은 말이 익숙하고 고귀하게 여겨진다. 분단과 독재, 민주화를 통해서 우리는 독립적인 개인과 그 개인의 삶을 체감하고 있다. 

    그러던 와중에 코로나 19라고 하는 인류 공통의 문제에 맞닥뜨렸다. 우리는 감염을 통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리고 그와 맞먹는 단절의 공포도 해결해야 했다. 고립되고 독립적인 삶이 이렇게나 힘든 것이었구나. 개인의 가치적인 독립은 언제나 중요할 테지만 개인의 물리적인 독립은 언제나 중요한 것은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균형은 중요한 것이었다. 독립과 의존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모두가 독립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모두가 힘겨워하는 이유는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통을 통해서 서로 상호작용을 하고, 상호작용을 하면서 서로 의존을 하고, 의존을 하면서 서로 안도하게 된다. 코로나 19는 이걸 원래 잘하는 사람도, 못하는 사람도 모두 똑같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힘든 시기다. 그것이 코로나 19 때문인지, 코로나 19 때문에 더 커진 것인지, 코로나 19와 상관없이 힘든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힘든 시기다. 이런 시기일수록 스스로가 얼마나 독립적인 개인인지 알고 싶다면 누군가에게 '건강한 의존'을 해보기 바란다. 나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받을 빚만 잔뜩 있는 사람은 괴롭다. 하지만 줄 빚도 함께 있는 사람은 맘이 편하다. 훨씬 대처가 유연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옆에 있는 사람에게 살짝 마음의 빚을 져보자. 그러면 훨씬 예쁜 삶을 살 수 있다. 진짜다. 함 믿어보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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