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과외] 패션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의식주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만큼 길다. 의식주는 각각이 학문이 될 만큼 인간 역사와 밀접하다. 특히 패션은 기능적인 측면을 넘어 개인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발전해 왔다. 누군가는 욕망으로, 누군가는 강압으로, 누군가는 표출로 패션을 설명한다. 그러나 패션은 단순화해서 설명 하기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너무나 복잡한 의미를 갖는다.
패션산업의 역사는 1700년대 기계의 발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기계에 의한 방적, 직조, 봉제가 전쟁을 만나면서 대량생산이 완성되었다. 여느 소비재처럼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패션산업의 기본으로 정착되었다.
오늘날 패션시장 상황은 변혁기다. 모든 산업이 그러하듯 온라인(모바일)으로의 전이가 시작되고 있다. 국내의 경우 전통적인 오프라인 패션매장의 실적이 좋지 않다. 국내 패션 산업은 옷을 대량으로 만들고, 그것을 매장에 깔고, 판매원을 통해 판매하고, 남은 재고를 다시 모아서 파는 프로세스를 유지해 왔다. 물론 최근에는 리드타임을 최소화하여 추가 생산(QR)을 통해 매출을 내기도 하지만 기본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온라인 패션은 소호를 중심으로 번성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브랜드'라고 부르기 어렵다. 스타일난다, 무신사 등 몇몇 업체를 제외하면 브랜드 패션으로의 길은 요원하다. 그래서인지 온라인으로 시작한 신진 업체들은 오프라인에 매장을 내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패션에서 오프라인 매장은 '브랜드'가 되는 필요조건으로 인식된다.
반대로 오프라인 매장을 많이 가지고 있는 대기업은 기존의 전통 프로세스를 유지한 채로 자사몰을 통해 온라인을 시도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브랜드 옷을 싸게 살 수 있는 곳 정도의 포지셔닝을 가지고 있다. 기존 온라인 커머스 대비 패션 버티컬 커머스의 강점이 보이지 않는다. 강점인 콘텐츠도 빈약하다. 온라인의 최신 기술도 접목되지 않은 상태다.
외국의 경우는 좀 다르다. 오프라인의 부진은 비슷하지만 온라인의 변화는 훨씬 빠르다. 이 변화를 이끄는 기업이 아마존과 월마트이다. 이 두 기업은 미국 내 온라인 소매판매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많은 온라인 패션 기업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자체 브랜드도 있다. 뿐만 아니라 최신의 IOT, AI 기술을 접목하여 패션 산업 내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이들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연결하고, 온라인을 통해 오프라인의 경험을 체험을 하게 해준다.
국내와 글로벌 패션 시장은 공통적으로 패스트 패션이 인기를 끌고 있다. 심지어 유럽에서는 '울트라 패스트 패션'이 등장했다. 마치 종합몰 이후 상품구색을 확장한 오픈마켓이 나온 것처럼 기존 패스트 패션의 상품 출시 리드타임을 대폭 당긴 울트라패스트패션은 최소 1주~6주의 초단기 리드타임으로 신상품을 출시한다. 이들은 브랜드를 표방하면서도 가격은 저렴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패션은 온라인 커머스의 버티컬 영역 중 가장 강력한 카테고리다. 역사가 무궁하고, 끊임없이 소비되며, 트렌드의 주기가 짧아 변화가 무쌍하다. 우리의 SNS를 채우고 있는 가장 많은 콘텐츠 중에 하나일 만큼 우리의 생활과 밀접하다. 산업 내에 다양한 ODM, OEM 업체가 있어 굳이 수직계열화를 하지 않아도 비즈니스가 가능하다. 돈 놓고 돈 먹기 같은 브랜드를 알리고, 각인시키는 작업만 잘해도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좋은 원단과 봉제를 사용해도 원가가 20% 전후라서 이익도 크다. 사업적으로 아주 훌륭한 카테고리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온라인 패션 자체의 포텐셜은 바로 콘텐츠를 수치화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타일과 사이즈, 부자재들을 수치화해서 관리할 수 있다. 소비자에게는 정보로 활용할 수 있다. 무점포, 비대면이 주는 정보의 부족을 채워 줄 수 있다. 고객의 행태정보, 구매정보와 연계하여 트렌드를 예측할 수 있다. 특정 스타일에 대한 성공과 실패를 분석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패션의 포텐셜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현실의 가장 큰 제약이었다. 기존 전통 프로세스에는 아직 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직접 제조를 함에도 불구하고 가진 정보가 없다. 그렇다 보니 콘텐츠가 부실하다. 소비자에게 줄 정보가 없다. 그래서 오프라인 매장이 필요하다. 만져보고, 입어보고, 판매원이 설명을 해줘야 한다.
내가 생각했던 온라인 패션의 포텐셜은 다른 곳에서 구현이 되고 있다. 아마존의 '에코 룩'이라는 서비스는 360도 3D 스캔을 한 뒤 머신러닝을 통해 어떤 옷이 잘 어울리는지를 인공지능 음성비서인 알렉사(Alexa)가 조언을 해주는 카메라다. 예를 들어 가지고 있는 옷을 입고 '에코 룩'으로 사진을 찍어 놓게 되면 나중에 두 가지 스타일 중 어떤 게 더 잘 어울리는지를 알렉사가 조언을 해준다.
'에코 룩'의 정확한 알고리즘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나라면 이렇게 했을 거 같다. 추천은 전문가 평점과 머신러닝을 통한 AI의 평점을 가지고 한다고 한다. 아마도 AI는 해당 룩북(이미지)에 대한 SNS상의 긍정 버즈나 좋아요 같은 액션을 가지고 점수화할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상품 판매나 조회 데이터를 활용해 최신의 패션 트렌드와 촬영한 이미지의 적합도를 수치화할 것이다.
에코룩에는 엄청난 카메라 기술이 담겨 있다. 심도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기술이다. 이는 전신사진을 찍었을 때 사람의 체형과 치수를 정확하게 데이터화 할 수 있는 기술이다. 소비자의 체형과 치수를 알고 있다면 '큐레이션' 서비스를 하는 것이 용이해진다. 개인화 맞춤화 서비스가 가능해진다. 특정 사이즈의 재고를 할인 판매할 때도 타겟 고객을 세그먼트 할 수 있다. 신제품의 초도 생산을 할 때도 사이즈별 재고량을 예측할 수도 있다.
그 이외에도 아마존은 '주문형 의류 생산 시스템 특허(US9623578)'와 자외선 인식 형광 잉크로 재단하는 '로봇에 의한 맞춤 의복 생산 특허(US9868302)' 그리고 옷을 입은 모습을 재현해 주는 '스마트 미러 '혼합 현실 시스템(Blended reality system) 특허'를 획득했다. 이 모든 기술의 기본은 바로 고객의 체형, 치수 데이터이다. 이 데이터가 있어야 주문형 생산 시스템의 프로세스를 제대로 그릴 수 있다. 로봇 재단에 적용할 수 있는 옷 스타일과 크기를 알 수 있다. 스마트 미러에서 입어 보지 않아도 핏이 잘 맞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는 아마존만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독일의 의류업체인 잘란도는 AI를 활용해 디자인을 한다. 토미 힐피거도 '리이메진 리테일(Reimagine Retail)'이란 프로젝트를 통해 AI로 디자인을 한다.
온라인 퍼스널 쇼핑 서비스 벤처기업 '스티치 픽스(Stitch Fix)'는 구독 서비스를 기반으로 고객의 데이터를 확보하여 이를 새로운 디자인 알고리즘으로 적용했다.
패션이 가지고 있는 태생적 포텐셜은 시스템을 통해 구현되어야 한다. 온라인/모바일로 구현이 되어야 사업적 가치를 가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점포, 무대면으로 옷을 사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브랜드마다 사이즈가 다르다. 시즌마다 다르다. 입어 보지 않고 사기가 꺼려진다. 그래서 요즘엔 사이즈 2개를 주문해서 하나는 반품을 하는 귀찮음과 금융손실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기존의 업체들은 온라인을 별도의 프로세스로 분리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해오던 오프라인의 운영방식에 포함시킨다. 그래서 온라인은 오프라인에 있는 매장처럼 취급받는다. '수수료가 적은 매장', '수익이 큰 매장'으로 인식된다.
왜인가? 정제된 데이터가 없기 때문이다. 같은 회사라고 해도 브랜드마다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가 다르다. 패터너가 다르다. 생산 공장이 다르다. 직접 기획하고 만들지만 옷에 대한 데이터가 없다. 히트 친 옷은 색상 때문인지, 앞 섭의 길이 때문인지, 소매의 폭 때문인지 분석할 수 없다.
어떤 고객이 내 브랜드를 소비하는지 모른다. 아는 건 주소와 이름뿐. 이 고객의 체형과 신체 사이즈를 모른다. 딸의 아이디로, 엄마가, 아들 옷을, 아빠의 카드로 산다. 데이터를 믿을 수 없다. 데이터의 정합성이 없다. 이런 상태로는 디테일 한 서비스를 할 수 없다. 그래서 겨우 지난달 옷을 산 고객을 추려서 마케팅을 한다.
현재는 패션산업이 가지고 있는 포텐셜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 하지만 AI, VR, 블록체인, 스마트폰 기술의 발전과 함께 많은 것들이 해결될 것으로 예측된다. 현재 나와 있는 수많은 정보통신 분야의 기술들은 많은 산업들과 융합할 것이다. 이걸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른다. 패션산업을 단순히 크리에이트브만 있으면 되는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다. 패션산업은 4차 산업혁명의 선봉에 설 수 있는 산업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미래의 온라인 패션의 핵심은 '개인화'와 'AI를 통한 forecasting'이 될 것이라고 본다. 현재는 생산된 옷에 몸을 맞추고 있는 상황이다. 인력에 의한 수작업 맞춤은 가심비는 채울 수 있을지 몰라도 가성비가 너무 떨어진다. 개인별 맞춤 주문과 주문 후 생산은 재고에 대한 부담을 없앨 수 있다. 재고 부담이 없어진 만큼 더 좋은 원단을 쓸 수도 있고, 가격을 낮출 수도 있다. 이는 새로운 경쟁력이 될 것이다.
개인별 맞춤화는 '슬로 패션'의 붐을 주도할 것이다. 저품질, 대량생산의 '패스트 패션'이 아닌 고품질, 극소량 생산의 '슬로패션'이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이론적으로 모든 옷은 스타일별로 1벌만 주문, 생산될 수도 있다. 보다 친환경적이고, 친노동적인 옷을 소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정확한 예측을 통한 낮은 재고율은 가격적 메리트도 가져다줄 것이다. 일방적 대량생산이 아닌 다수의 소량생산이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는 유지될 것이다.
AI를 통한 forecasting은 어떤 스타일의 옷을, 언제 만들 것인가에 대한 답을 줄 것이다. 최종 판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변수 데이터가 있다. 이를 사람이, 엑셀로 분석할 수 없다. 많아진 데이터에 대한 알고리즘은 트렌드를 파악하고,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예측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예를 들면 언제, 어떤 스타일의 옷을 출시하면 되는지, 어떤 스타일의 옷에 대해서 미리 QR을 준비하면 되는지 등에 대한 아주 디테일한 예측이 가능할 것이다.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지, 앱의 어디에 노출해야 하는지, 어떤 이미지가 더 좋은지, 기온에 따라 상품 배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오전/오후/밤에는 어떤 상품을 보여줘야 하는지와 같은 사이트/앱 내에서의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예측은 기본이 될 것이다.
이 이외에도 리드타임을 극단적으로 줄여 줄 제조기술도 나올 것이다. 원단, 부자재, 재고를 투명하게 관리한 블록체인을 활용한 SCM도 나올 것이다. 신제품 품평회를 임원들 앞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VR을 통해 고객에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상상이 아니다. 이미 어디선가는 시작되었을 수 있다.
국내 패션산업에서 개인화와 정교한 forecasting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기존의 오프라인 중심의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변경해야 한다. 프로세스 상에서 AI를 탑재할 부분과 블록체인을 적용할 부분이 어딘지를 검토해야 한다. 저장하고 분석해야 할 고객 데이터와 머신 데이터가 무엇이지도 결정해야 한다. 상품 데이터를 표준화하고, 이를 고객의 행태와 판매 데이터와 연결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고객의 체형과 치수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새로운 서비스도 제공해야 한다.
또한 기존 매장의 역할을 재정의 해야 한다. 어떤 기능을 추가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계속해서 판매 채널로 활용을 한다면 새로운 기술과 온라인 패션을 어떻게 융합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매장이 있다는 것은 재고가 생긴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완전한 맞춤 주문과 주문 후 생산으로 가기 전까지 과도기를 어떻게 넘길 것인지도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AI, IOT, 음성검색, 블록체인, O2O는 이제 어색하지도 않다. 실제로 우리는 체험을 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이 바둑을 이기고, 밖에서 집안의 청소상태를 확인하고, 음성비서에게 날씨와 도로 상황을 물어보고, 앱으로 오프라인 서비스를 쉽게 이용한다. 이 모든 것이 의식주에서도 일어날 것이다. 의식주가 산업적 측면에서 워낙 뿌리 깊고 강력하기 때문에 변화가 느리다고 생각될 뿐 한번 바뀌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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