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나보다 늦게 들어온 세입자에게 먼저 주는 이유

나보다 늦게 들어왔는데, 왜 먼저 받죠? 임대차 시리즈 8

by 전희정

먼저 온 사람이 먼저 받는 게 아니라고요?

[전세 보증금과 소액임차인 우선변제권]


초여름의 더위가 무르익는 오후, 억울한 목소리의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변호사님, 이거 말이 안 되지 않나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분명한 당황과 억울함이 섞여 있었다.

"저는 2년 전부터 살았어요. 확정일자도 받았고, 전입신고도 제대로 했고요. 그런데 왜 6개월 전에 들어온 사람이 저보다 먼저 보증금을 받아가는 거죠?"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잠시 멈춘다. 법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그 억울함을 이해하고 싶어서다.

맞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먼저 온 사람이 먼저 받는 게 맞다. 줄을 서는 것처럼, 번호표를 뽑는 것처럼 말이다.


법이 그어놓은 또 다른 선


하지만 법은 때로 우리의 상식을 뒤엎는다. 특히 임대차보호법은 단순한 '선착순'이 아닌, '보호의 필요성'을 우선순위로 삼는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소액임차인 우선변제권이다.

소액임차인이란, 보증금이 일정 기준 이하인 임차인을 말한다. 이들은 확정일자가 없어도, 전입일이 늦어도, 일정 한도 내에서 보증금을 가장 먼저 보호받는다.

마치 응급실에서 먼저 온 순서가 아니라 응급도에 따라 치료 순서가 결정되는 것처럼.


현실에서 벌어진 일

실제로 대전에서 있었던 일이다.

A씨는 보증금 6,000만 원으로 집을 얻었다. 전입신고도 했고, 확정일자도 받았다. 법적 절차는 완벽했다.

그런데 1년 후, B씨가 같은 건물에 보증금 3,000만 원으로 들어왔다. 특별한 절차는 밟지 않았다.

집주인이 빚을 지고 경매에 넘어갔을 때, 먼저 보증금을 받은 건 B씨였다. 2,700만 원을 온전히 받았다.

A씨는? 나머지 배당금에서 1,200만 원만 받을 수 있었다.


법이 선택한 가치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거죠?"

전화기 너머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답했다.

"법이 보호하려는 건 타이밍이 아니라 필요성이에요."

대전 기준으로, 보증금 4,000만 원 이하의 세입자는 소액임차인에 해당한다. 이들은 최대 1,400만 원까지 다른 모든 권리자보다 우선해서 보호받는다.

6,000만 원을 투자할 수 있는 사람과 3,000만 원이 전 재산인 사람. 법은 후자의 손을 먼저 잡기로 했다.


지역마다 다른 기준, 같은 마음

소액임차인의 기준은 지역별로 다르다.

숫자는 달라도, 그 안에 담긴 마음은 같다. 작은 돈을 지키는 것이, 때로는 더 급한 일이라는 것.

서울: 보증금 최대 1억 6,500만 원 → 보호금액 최대 5,500만 원

수도권 기타 과밀억제지역: 최대 1억 4,500만 원 → 보호금액 최대 4,800만 원

광역시 및 일부 도시: 보증금 최대 8,500만 원 → 보호금액 최대 2,800만 원

그 외: 보증금 최대 7,500만 원 → 보호금액 최대 2,500만 원


억울함 너머의 이해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전화를 끊기 전, 그분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일단은 배당요구를 하시고, 앞으로는 보증금 규모를 고려해서 임대차 계약을 검토해보세요. 그리고..."

잠시 멈췄다가 덧붙였다.

"그 사람에게는, 그 2,700만 원이 생계의 전부일 수도 있어요."


변호사의 한 줄


법은 때로 우리의 상식을 뒤엎는다. 하지만 그 뒤엎음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먼저 온 사람이 먼저 받는 게 공정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더 절실한 사람이 먼저 받는 것도, 또 다른 공정함일 수 있다.

"보증금은 순서가 아니라, 사정이 기준이 되는 순간도 있습니다."



변호사 전희정
법률사무소 희승의 부동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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