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과 권리 사이에서
"바람을 피운 사람인데… 그 사람도 재산을 가져간다고요?"
상담실 안 공기가 순간 얼어붙는다.
의뢰인의 목소리엔 배신감과 분노, 그리고 이해할 수 없다는 절망이 뒤섞여 있다.
믿음을 저버린 사람에게 돈까지 나눠줘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누구라도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이다.
나는 잠시 침묵한다. 이 순간, 나는 단순히 법조문을 읽어주는 기계가 아니라, 한 사람의 상처받은 마음을 마주하고 있는 또 다른 인간이다.
"억울하시죠."
먼저 그 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천천히, 조심스럽게 현실을 풀어놓기 시작한다.
재산분할이라는 것은 '혼인 기간 동안 함께 만든 재산'을 나누는 절차다. 그 사람이 외도를 했든, 폭언을 일삼았든, 만약 혼인 중 경제 활동을 함께 했다면, 그 기여는 법적으로 인정된다.
우리 법원은 "유책성을 이유로 재산분할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왜죠? 잘못한 사람이 왜 똑같이 받아가는 거죠?"
의뢰인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법이라는 것은 때로 우리의 감정과 어긋나는 길을 간다.
물론 예외는 있다. 부부 재산 형성에 전혀 기여하지 않았거나, 상대방에게 심각한 손해를 입힌 경우엔 일부 제한되기도 한다.
하지만 원칙은 여전히 "잘못과 돈은 별개"라는 것이다.
나는 설명을 마친 후, 항상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벌어온 돈은 사실 그 사람이 '혼자서' 만든 건 아니었잖아요. 그 시절, 당신도 함께 있었으니까요. 집을 지키며, 아이를 키우며, 때론 직장을 다니며. 그 모든 시간들이 쌓여서 지금의 재산이 된 거예요."
"물론 외도로 인한 혼인파탄의 책임에 대한 위자료 청구는 별개입니다."
의뢰인의 표정이 조금씩 변한다. 여전히 억울하지만, 조금은 이해가 되는 듯하다.
사랑이 식고, 믿음이 깨져도, 함께 만든 시간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그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것들도 마찬가지다. 법은 그 시간의 무게를 인정하는 것이다. 차갑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것이 더 공정한 방식일지도 모른다.
전희정 변호사의 짧은 생각
감정은 끝났지만, 돈은 여전히 공동의 시간 안에 있다. 그 시간을 부정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과거마저 부정하게 되는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