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없이도 사는 법, 그래도 법으로 사는 이야기 6
[경매가 진행 중이어도, 무상거주는 아닙니다]
“경매 들어갔으니까, 저도 그냥 기다릴래요.”
임차인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미 두 달치 월세는 밀려 있었고, 세 번째 달도 지나고 있었다.
집주인은 이미 자신 소유의 집이 곧 경매로 넘어간다는 사실에 속이 타 들어가고 있었다.
“저 사람, 그냥 보증금 다 받고 나갈 수 있는 건가요? 지금 이렇게 살면서 월세 하나도 안 내는데요?”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런 상황은 낯설지 않았다. 경매는 소유권의 이동만을 말해줄 뿐,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충돌은 따로 존재한다.
특히 임대인과 임차인의 관계는, ‘법대로’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임대인, 건물주)“경매 절차 중인데, 임차인이 월세를 안 내고 있어요. 이걸 보증금에서 뺄 수는 없을까요?”
또는
(임차인)"경매중인데, 배당신청은 했지만 보증금을 아직 못받았으니 거주하고 있어요. 경매중인데 월세는 안내도 되겠죠?"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요즘 워낙 경매진행중인 부동산이 많으니 경매 관련한 상담도 쏟아지고 있다. 경매를 당한 부동산은 이미 압류 상태고, 집주인도 소유권을 곧 넘겨야 할 상황. 이때 임차인이 차임(월세)을 내지 않고 버티면, 임대인은 손해만 떠안게 되는 건 아닐까? 임차인은 무상으로 거주해도 될까?
질문을 정리하면 이렇게 바뀐다.
“경매 진행 중 임차인이 월세를 내지 않으면, 그 미지급 월세를 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있을까요?”
답은 “경우에 따라 공제 가능”이다.
시점과 상황에 따라 법적 해석이 갈릴 수 있다.
임대차보증금은 임대차 계약 종료 후 목적물을 반환받을 때까지 발생한 임차인의 모든 채무를 담보하는 금액이다. 그래서 미납 월세가 있다면, 임대인은 별도의 통지 없이 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의정부지법 고양지원 2014가단700403, 2014가단156236 판결 참조)
하지만 경매가 시작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경매개시결정이 등기부에 기입되는 순간부터, 부동산에 압류의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이렇게 보았다(서울동부지방법원 2014가단431144 판결).
“압류 이후 발생한 차임은 부동산의 법정과실로서 임대인이 수취할 수 없고, 경매절차를 통해 환가되어야 한다.”
즉, 이 논리에 따르면 압류 이후의 미납 월세는 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없다.
반면, 대부분의 다른 판례들은 현실을 더 중시한다. 임차인이 실제로 거주했고, 차임을 지급하지 않았다면
그 미지급 차임은 보증금에서 공제된다고 판단한다.
서울서부지방법원 2016가단173401
울산지방법원 2019가단109925
의정부지방법원 2014가단700403
- 실제로는 압류 이후에도 임차인이 무상으로 거주한 건 아니다는 입장이 더 우세하다.
정리하면 이렇다
경매개시 전 미납 월세 → 대부분 판례에서 공제 가능
경매개시 후 미납 월세 → 일부 판례(서울동부)는 공제 불가, 그러나 대부분 판례는 공제 인정
즉, 이 논리는 “경매 들어가면 집주인도 차임 받을 권리가 없다”는 의미로 들릴 수 있다.
그래서 임차인은 그 시기를 노려 무상으로 버티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른 판례들을 더 믿는다.
그리고 실무에서 수없이 마주친 장면들은 그 무상거주가 ‘권리’가 아니라 ‘오해’였음을 증명해줬다.
서울서부지방법원 2016가단173401
울산지방법원 2019가단109925
의정부지방법원 2014가단700403
이 판례들은 공통적으로 이렇게 판단했다.
“실제로 점유하면서 월세를 안 냈다면, 그건 보증금에서 공제되는 게 맞다.”
경매라는 말은 참 차갑다. 소유권은 곧 법적 개념인데, 그 안엔
집을 지키려는 사람의 분노와, 그 집에서 버티는 사람의 체념이 뒤섞인다.
“이 사람이 무상으로 살게 둘 순 없잖아요.”
집주인의 그 말은, 단지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너지는 질서 속에서 마지막으로 지키고 싶은 게 있었다.
그래서 나는 차근차근 설명했다.
경매 중에도 차임은 발생하고, 보증금은 여전히 ‘책임의 기록’이라는 것을.
� 변호사 전희정의 한 줄 조언
“보증금은 당신의 권리를 지켜주는 울타리지만, 동시에 지켜야 할 책임의 기록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