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없이도 사는 법, 그래도 법으로 사는 이야기 1
[법정 밖에서 내가 배운 한 가지]
"이기지 않아도 괜찮은 선택,
그녀는 소송이 아니라 평화를 원했다"
- “....그냥 억울해서요. 근데 싸우고 싶진 않아요...”
벚꽃이 흩날리던 봄, 오후 늦은시간 찾아온 그녀의 첫마디였다.
매일 몇 건이나 법률 상담을 하는 나로서는 상담을 할 때 흔히 듣는 말은 아니다.
많은 의뢰인은 분노나 공포, 억울함, 혹은 ‘이기고 싶다’는 의지를 품고 온다.
조용한 목소리였다.
테이블 위에 놓인 메모지엔 날짜와 숫자들이 적혀 있었고, 많은 자료들이 보였다.
그녀는 말보다 한숨을 더 많이 쉬었다.
다시 한 번 그녀의 말이 어어졌다.
“이기고 싶지 않아요. 그냥... 억울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조용히, 그리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기고 싶지는 않다. 싸우고 싶지 않아서"라고.
처음에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금씩 알 것 같았다.
그녀는 지역유수의 ○○기업에서 10년차로 근무하던 직원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기 위해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신청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렵게 받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이후, 복귀한 직장은 그녀가 알던 그곳이 아니었다. 이후 수 년 간 쌓여온 조직 내 갈등과 언어적 폭력, 무시와 따돌림은 마침내 그녀의 인내심을 무너뜨렸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그녀로서 일에 집중할수도, 육아에 집중할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일이 아닌 직장내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건강과 가정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내부적으로 문제 제기를 했고, 예상대로 불이익은 빠르게 돌아왔다. 결국 권고사직을 받은 그녀는 내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법적 대응을 원하시나요?”
상담을 마친 후, 조심스레 물었을 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거나 손해배상 받을 생각은 없어요. 저는 그냥...
제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어요.”
그래서 전략은 일반적인 소송, 고발 등 사건과 전혀 다른 방식을 취하게 되었다.
우리는 전면전 대신 조용한 진실의 통로를 선택했다.
내용증명으로 시작해, 사내 조사 자료 요청, 그리고 상대방 측과의 조정 시도까지.
처음엔 회피하던 상대방도, 결국 그녀에게 유감을 표명하는 공식 사과문을 공문으로 보내왔고, 대표의 전화를 통한 구두사과도 받았다.
전화를 마치는 그 순간, 그녀는 조용히 웃었다. 오히려 내가 더 뭉클했다.
이 사건은 소송도 아니었고, 큰 금전도 오가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의 존엄과 일상을 회복시킨 일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 정도면 괜찮아요. 다시 살아도 될 것 같아요. 변호사님 사무실에 오기 전엔.. 잘못된 선택을 할까도 했거든요. 그런데 애기가 눈에 밟히더라고요”
나는 그 말에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겪어온 고통과 갈등, 그럼에도 싸우지 않고 평화를 원하는 마음을 가지기까지 얼마나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을까.
변호사가 되면 매번 이겨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어떤 사건은,
‘이기지 않아도 괜찮게 해주는 일’이 더 큰 정의일 수 있다.
내가 이 일을 하면서 잊지 않으려는 문장이 있다.
"가장 단단한 정의는, 때로는 조용히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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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에서는 _“전세 계약 파기, 위약금은 누구 몫일까?”_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