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푸드 업사이클 기업 ‘리하베스트’ 민명준 대표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식량 40억 톤 중 3분의 1이 버려집니다. 경제적 손실로 환산하면 연간 1조 달러, 약 1180조 원에 달하죠. 지구 한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기아로 고통받는데, 반대쪽에서는 식량이 넘쳐나 버려지는 아이러니한 현실. 이러한 와중에 버려지는 음식물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푸드 업사이클 기업 리하베스트의 민명준 대표입니다. 푸드 업사이클은 식품 생산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을 재가공해 새 상품을 만드는 방식을 말해요. 음식물의 끝을 새롭게 만드는 민명준 대표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리하베스트의 민명준 대표입니다. 리하베스트(RE:harvest)는 ‘수확하다’란 뜻의 ‘harvest’에 ‘다시’를 뜻하는 ‘re-’를 붙인 형태로 ‘재수확하다’라는 의미가 있어요. 버려지거나 부가가치 낮게 활용되던 음식 부산물을 재수확해 식품 원료를 만드는 기업입니다. 저는 경영 컨설팅 일을 하다가 퇴사 후 2019년에 회사를 설립했어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을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8년 넘게 컨설팅 업무를 했어요. 업무 강도가 굉장히 높았는데, 어느 날 대장암 초기 판정을 받았어요. 삶을 되돌아보면서 ‘행복한 일을 해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고 자문해봤어요. 대답은 ‘전혀 아니다’였죠. 회복 후에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일을 해야겠다 싶어서 창업했어요. 원래 식품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식품 관련 대기업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하면서 F&B 시장을 자주 접했어요. 여동생이 미국에서 셰프로 오래 일한 터라 미국에 살 당시에 동생과 식당도 차려봤고요.
의류나 폐목재로 업사이클하는 사례는 봤어도 푸드 업사이클은 생소해요.
해외에서는 이미 푸드 업사이클이 활발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1인당 572kg 정도의 부산물이 발생하고, 대부분 버려지죠. 식품 제조사에서는 큰 비용을 들여 부산물을 폐기하거나 사료와 퇴비로만 활용하고 있고요. 낭비되는 부산물을 업사이클해서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고, 푸드 업사이클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싶었어요. F&B 산업에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거죠.
선순환 구조라는 점이 인상 깊어요. 어떻게 부산물이 식품 원료로 만들어지나요?
맥주나 식혜를 만들 때 쓰는 맥아(엿기름)를 짜면 보리 부산물이 나오는데, 이게 맥주박, 식혜박이에요. 이 맥주박을 수거해 살균, 건조, 분쇄 등의 과정을 거치면 대체 밀가루가 만들어지는데, 저희는 이걸 리너지(RE:nergy) 가루라고 불러요. 밀가루 대비 단백질이 평균 1.4배 많고, 식이섬유도 최소 18배에 달해요. 당도 없고 열량은 30%나 낮으니 경쟁력이 있죠. 대체 밀가루가 필요한 기업에 주로 제공하고, 가루로 제품을 만들기도 해요. 지금까지 그래놀라, 에너지바, 단백질 셰이크를 출시했고요.
리너지 가루가 밀가루를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해요. 수많은 식품 부산물 중 맥주박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물량이 충분한지, 영양 성분이 우수한지, 깨끗한지, 법적 규제는 없는지를 검토해요. 이 네 가지 기준으로 거르면 활용 가능한 부산물이 생각보다 얼마 없는데, 이 중 맥주박, 식혜박을 집중적으로 연구했어요. 이 밖에 소주 부산물, 참기름 부산물인 깻묵 등을 고려하고 있어요.
푸드 업사이클의 불모지에서 사업을 전개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아요.
생소한 비즈니스라서 투자자를 설득하고 규제를 푸는 과정이 무척 어려웠어요. 원료화 공정을 갖추는 과정도 까다로웠고요. 맛에 중점을 두면 균 수치가 올라가고, 균 수치를 낮추면 맛이 깨지고. 테스트하면서 부산물만 180톤 넘게 썼을 거예요.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에 대한 인식이 이전보다 높아졌지만, 부산물이라고 하면 선입견이 있진 않나요?
처음에는 부산물이란 단어를 가급적 사용하지 않으려 했어요. 리너지 가루를 입힌 피자, 치킨을 개발해 비어 피자, 비어 치킨이라고 불렀죠. 그런데 ESG* 열풍이 불면서 오히려 부산물이라 언급해달라고 외부에서 요청하세요. 친환경 스토리를 매력적으로 봐주시더라고요. 밀레니얼을 중심으로 저희 제품을 많이 찾으시는데, 특히 대체 식품을 드시는 분들이 원료까지 친환경인 제품을 찾다가 저희 제품을 구매해주시는 것 같아요. 재구매율이 80%가 넘을 만큼, 충성도 높은 분들도 꽤 많으셔요.
*ESG: Environment(환경), Social(사회), Government(지배 구조)의 머리글자를 따 만든 용어로,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경영을 위한 비재무적 요소를 뜻함.
제품 검수 과정에 장애인이 참여한다고 들었어요. 환경적 가치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가치를 더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사촌 누나가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있어요. 제가 병상에 있을 때 누나한테 평생 한이 되는 게 뭔지 물은 적이 있는데, 사회에 도움이 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게 서럽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사업을 하게 되면 소외 계층을 돕는 일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국가에서 인증한 장애인 보호 작업장에서 발달장애인들이 제품 검수를 맡고 있어요. 환경보호에 일조한다는 인식도 있고, 자부심을 가지고 도와주세요. 기부도 사회적 소외 계층을 돕는 방법이 될 수 있지만, 기부금은 수혜자에게 온전히 쓰이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보다 직접적으로 돕고 싶었어요.
하고 싶은 일을 찾으셨는데, 열심히 달리다 보면 좋아하는 일이라 해도 지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싶은데 어떠세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면 쉽게 지치지 않는 것 같아요. 원하는 일을 찾아서 열정적으로 하면, 일이 일로 느껴지지 않고 삶의 미션으로 느껴져요. 끌고 갈 열정을 내가 찾아낸다기보다 저절로 갖게 돼요. 그 열정이 찾아왔을 때, 이게 기회인지 알아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지금은 일하는 게 즐겁고 행복해요.
올해 가장 ‘웰던’ 했던 일을 꼽자면 어떤 게 있을까요?
유혹을 잘 버텨낸 게 ‘웰던’이라 생각해요. ESG가 급부상하며 사업을 빠르게 확장할 기회도 많았고, ESG 워싱*을 요구하는 기업도 있었어요. 눈앞에 큰 이득이 보였지만 거절했어요. 좋은 일을 좋은 사람들과 하고 있는데, 여기에 좋지 않은 걸 더할 필요가 있나 싶었거든요.
*ESG 워싱: 환경친화적이지 않은 제품, 서비스 또는 기업을 친환경으로 포장하는 행위.
앞으로의 계획과 포부를 듣고 싶어요.
식량 자원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속도를 내기 위해 내년에 공장을 세울 계획입니다. 국내 최초 대규모 부산물 업사이클 공장이 될 것 같고, 이를 통해 실제로 탄소 저감, 환경보호의 기준을 만들고 싶어요.
Editor 안명온
Photographer 김병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