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려 먹는 한 끼에 기울이는 수고를 떠올리며 엄마와 딸이 주고받은 편지
1인분이 음식이 아닌 다른 형상을 하고 있다면, 우리 주변에 어떤 모습으로 자리할까요? 보내는 사람이 받는 사람 오직 한 명을 위해 쓰는 편지가 떠올랐습니다. 다정한 인사와 내밀한 진심이 담긴 편지는 가장 사적이면서도 정성껏 지은 1인분이나 다름없으니까요. 독립해 혼자 살며 한 끼 차려 먹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달은 딸이 식당에서는 손님을 위해, 집에서는 식구들을 위해 밥상을 차려주는 엄마가 생각나 편지를 썼습니다. 꾹꾹 눌러 담은 고봉밥 같은 엄마의 답장도 함께 실었습니다.
사랑하는 엄마에게
엄마 안녕! 아침저녁으로 날씨가 제법 쌀쌀한 걸 보니 완연한 가을인가 봐.
엄마한테 편지를 쓰는 게 무척 오랜만인 것 같아. 집에서 혼자 맨밥에 김을 싸 먹다가 이맘때 엄마가 자주 끓여주는 아욱국 생각도 나고, 엄마 밥이 그리워져 편지를 써.
서울로 나와 혼자 산 지 3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내게는 한 끼를 제대로 챙겨 먹는 일이 어렵게 느껴져. 간단하게라도 밥을 차려 먹어야겠다고 결심하다가도 평일 저녁에는 시간이 아까워서 번번이 사 먹게 돼. 준비하고 치우려면 40분은 기본인데 먹는 건 고작 10분이면 끝나니까.바깥 음식에 물려서 요리 좀 해볼까 싶어 재료를 사놓으면, 한 번 쓰고 남은 두부나 채소는 냉장고에 방치하다가 물러 터져서 버리기 일쑤야. 낭비라는 생각이 들고 음식물 쓰레기 처리도 곤욕이라 잘 해 먹어야겠다는 의지도 같이 물러지더라고.
그나마 양파나 당근 같은 건 남으면 잘게 썰어서 냉동실에 얼리는데, 얼어붙은 양파를 숟가락으로 갈라 떼어낼 때면 언제쯤 식재료를 냉동실로 보내지 않고 신선한 상태로 다 쓸 수 있으려나 싶어.
어쩌다 요리한 주말에는 사진을 찍어서 엄마한테 자랑한 거 기억나? 명란이랑 달걀 프라이 얹은 밥을 찍은 사진을 뿌듯한 마음으로 보냈는데, 엄마는 답장으로 푸하하 웃는 이모티콘을 날렸지. 엄마 눈에는 형편없어 보였을 수도 있고, 다른 반찬 없이 딸랑 그릇 하나 놓고 먹는 딸이 짠했으려나.
나 하나 한 끼 챙겨 먹는 게 이렇게 귀찮고 번거로운데, 다섯 식구를 위해 끼니때마다 반찬이며 국이며 살뜰히 챙겨온 엄마가 철인처럼 느껴져. 게다가 20년 넘게 식당 손님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해왔잖아. 쉬는 날은 일주일에 딱 한 번뿐이고. 그러다 보면 집에서 밥을 차리는 게 일의 연장선으로 느껴질 것 같아. 예전보다 엄마 몸에 이상 신호도 부쩍 생긴 걸 보면 엄마한테 음식을 만드는 일이, 누군가의 끼니를 챙기는 일이 힘에 부치진 않는지 걱정돼.
미안해 엄마.
차려진 밥을 잘 먹기만 했지, 그 뒤에 있는 엄마의 수고를 잊고 살았던 것 같아. 그리고 따뜻한 엄마 밥을 먹을 수 있음에 감사해요. 철없는 소리 같겠지만, 그래도 엄마가 해주는 밥을 오래도록 먹고 싶어. 엄마 밥은 그 어떤 한 끼보다 든든해. 다 먹고 나면 없던 힘도 나는 것만 같고,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며 위로받는 것 같아. 그 대신 엄마가 주방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이고 조금이라도 더 쉴 수 있게 딸내미가 노력할게. 엄마도 남이 해주는 밥이 가장 맛있을 테니까 내가 요리도 하고, 가끔은 근사한 곳으로 외식도 하러 같이 가는 거야.
일단 이번 주말에는 엄마가 좋아하는 돼지고기 수육이랑 막걸리 한 병 사서 갈게.
주말에 만나!
엄마 밥이 그리워 서울에서 달려와준 딸에게
집에 오자마자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는 걸 보니 많이 배고팠나 보구나. 벌써 서울로 나가 직장 생활한 지 3년이 넘었는데도 제대로 끼니나 챙겨 먹는지 혼자 뭐 하나 제대로 해나가는지 걱정부터 앞선다.
나도 20대 때는 서울에서 직장 다니며 자취를 했는데, 그때는 라면에 밥, 김치만 있으면 한 끼를 뚝딱 해치웠어. 요즘은 네가 건강한 밥상을 챙겨야 한다며 이것저것 요리를 시도한 것 같다만, 썩 잘된 걸 본 적은 솔직히 없구나. 아무래도 일도 많고 바쁘다 보니 한가하게 음식 만들 여유가 없겠지.
엄마야 직업이 주방장이다 보니 음식 만드는 게 제일 쉬우면서도 즐겁게 느껴질 때가 있단다. 기분 좋게 만들다 보면 음식이 더 맛있게 되고, 잘 먹었다고 손님들이 고마워하고 인사해주면 그게 꽤 큰 힘이 된단다.
집에 와서 매 끼니를 챙기진 못하지만 그래도 너나 성진이 온다는 소식만으로 엄마는 집에서 요리하는 것도 힘들지 않아.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사 먹는 게 편하긴 하지만, 딱 하루만이라도 소중한 너 자신을 위해 혼자 있을 때도 잘 차려 먹기를 바래. 자꾸 시도해보면 의외로 재밌고 성취감이 생길 거야. 찌개라도 끓여 먹고 싶을 때는 사 먹지 말고 엄마한테 전화해.
매번 올 순 없겠지만 집밥이 그리울 땐 주저 말고 언제든 집으로 오렴, 아가!
너희들의 밥을 챙기는 일이 엄마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자 행복이란다.
Editor 안명온
Photographer 김병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