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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dabadger Aug 27. 2021

서울 사람들 1

담배 피우는 여자들

평생을 비흡연자로 살아오면서 흡연에 대해 좋은 기억은  하나도 없었지만, 서울에서 타인의  악취미에도 내가 좋아할 만한 구석을 찾게 되었다. 바로 흡연구역에서 담배 피우는 여자들, 나는 그녀들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이 담배 태우는 것을 좋아하듯 나는 그들이 흡연하는 모습을 보는  좋아한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며 담배를 피우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내가 서울에서 찾은 제일 좋아하는 모습  하나이다.


내가 살던 경남에서는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여자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이렇게 여성 흡연자들이 흡연 사실을 꽁꽁 숨기는 이유에 대해 짐작해보자면, 자신의 사소한 기호가 다른 사람들의 험담 재료로 소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내가 경험한 누군가의 뒷이야기에도 여성의 흡연 사실은 자극적인 맛을 더하는 양념같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험담의 주인공이 되는 일이 있더라도, 기왕이면 이야기꾼들의 재미를 덜고 싶은 마음에서 그러지 않을까 짐작한다.


문제는 그것을 숨기면서 생기는 부작용으로 나도 괴로울 때가 많다는 것이었다. 주로 공중 여자 화장실에서 그랬다. 남들의 시선 간섭이 없는 공중 화장실은 그들에게 흡연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그래서 화장실에는 자주 담배 냄새가 머물러 있었고, 나 같은 비흡연자들은 간접흡연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지금은 실내 흡연 금지법이 생겨 그런 경우가 많이 줄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회사 여자 기숙사에서 나는 담배 냄새도 나를 괴롭게 했었다. 각 기숙사 동과 동 사이에 흡연을 할 수 있는 흡연 구역이 있었지만, 남자들이 이용하는 장소였지, 여자들이 그곳에서 담배를 피우는 경우는 없었다. 대신,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담배 냄새는 자주 화장실 배수구와 베란다를 타고 올라왔다. 일을 마치고 기숙사 방 문을 열면 실내에 갇혀 빠져나가지 못한 담배 냄새 때문에 화가 났지만, 화를 낼 대상이 없었다. 겨우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기숙사 관리인에게 불만을 이야기하는 정도에서 그쳐서 내가 쓰는 공간에는 언제나 미세하게 담배 냄새가 났고, 나는 그 냄새에 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디를 가도 담배가 눈에 들어왔다. 퇴사를 하고 서울에 왔을 때에도, 압도적인 빌딩들 대신에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담배연기를 뿜어내는 흡연자들의 모습이었다.  손에는 담배를 들고  손으로는 태양을 가린 수많은 흡연자들 중에 여성 흡연자들이 군데군데 섞여 있었는데, 담배를 싫어하는 나도 어쩐지  모습이 싫지가 않았다. 사실,  어떤 풍경보다 마음에 드는 풍경이었다.


지방에 있을 때, 숨어서 담배를 피우는 여자들 때문에 적지 않은 피해를 보긴 했어도, 나에게 더 거슬렸던 것은 그들에게는 바깥공기를 마시며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기회도 없다는 것이었다. 여자가 가진 여러 가지 면모 중에 한 모습은 아예 지방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으로써 ‘여자가 담배를 피우다니’ 같이 케케묵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평화가 유지된다는 것도 싫었는데, 서울에서는 여자들이 자연스럽게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에겐 의미가 큰일이었다. 적어도 여기서는 여성이 가진 ‘성’만을 보는 비뚤어진 시선을 가진 사람들의 존재가 없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속으로 ‘여자가’를 외치고 있을지라도 지방의 여성 흡연자들처럼 그들도 존재를 숨겨야 하는 것이 일상처럼 보였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건강상의 이유로 담배 피우는 여자들이 줄어들었으면 하지만, 동시에 많이 보이기를 바란다. 이상하지만 내가 담배를 떠올렸을 때, 유일하게 좋아하는 것이기도 하고, 서울에서 느낄 수 있는 마음속의 작은 희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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