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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ndabadger Aug 13. 2021

서울집 적응기

늘어난 가족, 줄어든 집

서울에서 집은 처음 마주한 난제였다. 먼저 서울에 자리잡고있던 남동생과 함께 집을 합치기로해서 사람은 늘었는데 공간은 더 좁아 진 것이다. 거기다가 사람 하나당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별로 딸린 짐과 1인분 몫을 톡톡히 해 내는 내 고양이, 마리의 짐까지 사실 3명 분의 짐을 정리해야 했었다.  


거제에서는 나와 고양이 마리, 이렇게 둘이서 방이 2개 딸린 오피스텔에 살았었다. 방 하나는 드레스룸 겸 창고, 마리의 화장실을 두는 방으로 사용했다. 하나는 내 침실이었는데 퀸사이즈 침대만 하나 덩그러니 있었다. 거실에는 마리가 밖을 볼 수 있도록 캣타워가 창가에 설치 되어있고, 좌식 테이블과 3인용 쇼파가 있었다. 거실 창문밖에는 거제 반대쪽으로 넘어 가는 도로 위로 차들이 많이 지나다녔다. 부엌공간도 따로 있었는데 한참 베이킹에 관심이 있던 때라, 42리터짜리 오븐도 부엌에 있었다. 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커다란 오븐때문인지 그래도 혼자 살기에 좀 작은 집이라고 생각했었다. 주차공간도 내 마음에 썩 들진 않았다. 옆 차와의 간격도 그렇게 넓지 않았고 무엇보다 주인아저씨 차는 건물 필로티 아래에 비를 맞지 않고 타고내릴 수 있게 되있었는데, 내자리는 차가 반쯤 건물 밖으로 나오게 되어있어서 비가 오면 맞을 수 밖에 없었다. 서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호화로운 불만들을 거제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했었다.

서울집도 방 2개와 작은 거실 겸 부엌이 있다. 하지만 동생과 나눠써야 했고, 동생방에는 책상 하나, 침대 하나가 들어갈 크기가 못되었다. 처음엔 집을 보고 어떻게 이렇게 억지로 공간을 나눠 놓았는지 한숨이 나왔다. 이런 집이 거제 집 가격의 3배가 넘었다. 현관도 너무 작아서 신발을 몇 켤레만 둬도 타일 바닥 반넘게가 사라질 지경이었고 거기서 큰 걸음으로 한번만가면 화장실로 바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거실 겸 부엌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거실이라고 부르기 민망할만큼 작았다. 주차공간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주차를 하는 처음부터 끝까지 차에선 주차센서음이 울릴만큼 좁았으며, 사이드 미러가 필로티 기둥에 부딛히지 않도록 앞 뒤로 확인해야했다. 서울 집은 모든 부분에 있어 나에게 과제를 던지는 것 같았고, 거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공간에 내가 살게 된 현실을 실감했다.  


공간을 한치도 낭비해서는 안됐다. 온전히 나만 사용 할 수 있는 공간은 거제 집의 반의 반의 반도 안됐다. 동생과 나는 모든 공간의 치수를 재어 기록하고 실제 집사이즈를 3d로 만들어주는 웹사이트에서 가상의 집을 만들어놓고 사려는 가구 크기와 같은 상자들로 몇번이나 넣었다가 뺏다가 했다. 내 방은 동생 방보다 조금 커서 침대하나, 옷장하나, 책상하나를 넣었지만 동생 방은 모든게 불가능했다. 하는 수 없이 2층 침대를 넣었고 그러고도 공간이 모자라서 행거로 옷장을 대신했다. 문제는 4계절 옷보다 많은 동생 책들이었는데 책장을 방문 뒷쪽까지 꽉 채워서 동생방 문은 항상 반쯤만 열리게 했다. 그렇게해도 계절 짐을 보관해 둘 곳은 없었다. 별 방법을 찾지 못하고 프레임을 책상 높이만큼 높아서 창고만한 수납공간이 있는 침대로 내방을 꾸몄다. 마리 짐도 상당 수가 이 침대 밑 보관함에 들어가게 됬는데, 모든 가구가 캣타워 화 되어버리는 바람에 마리의 캣타워는 짐들 중에서도 가장 깊은 곳에 넣어버렸다. 그렇게 3인 분의 짐을 접고 접고 또 접어서 여기저기 보관했다. 다행히 최소한으로 걸어다닐만한 공간과 마리가 놀 수 있을만큼의 공간은 남길 수 있었다.


그렇게 모든게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나 자신’이었다. 이삿짐을 다 정리하고도 몸에 계속해서 작은 멍 자국들이 생겼다. 크게 물건을 옮길 일도 없는데 멍 자국이 생겨서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 번 크게 종아리를 침대 모서리에 찧고난 다음날에야 멍 자국들이 왜 생기는 줄 알게 되었다. 옷을 갈아입다가 종아리에 크게 멍이 생겼고 나머지 작은 멍들도 내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작게 부딛히고는 잊어버리고 지냈던 것이었다. 내 행동의 부피도 거제 집에 맞춰져 있었는데, 그에 반해 서울집에는 맞지 않은 크기 였던 것이다. 사실은 몸이 서울집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도 종아리 멍 자국과 팔꿈치 쪽에 새로 생긴 작은 멍은 사라지지 않았다.  옷이 짧아지는 계절이라, 반바지를 입을 때마다 어색한 곳에 위치해있는 멍자국이 부끄럽다. 사투리는 말을 안하면되는데 멍은 숨기지도 못해서 누가 물어볼때마다 설명도 길어져서 거추장스럽다. 멍이 없어지던가 아니면 집이 조금 넓어지던가, 둘 중에 하나가 좀 바뀌면 좋을텐데.. 하는 수 없이 자비가 없는 서울집에 내가 빨리 적응하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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