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에서 무덤까지",청바지 브랜드에 철학이 된 이유?

브랜드를 ‘사는’ 게 아니라 브랜드로 ‘살아요’ 후속편 [4편]

by 알렉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진다"는 말, 혹시 들어보셨어요?


북유럽 스웨덴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말이죠.

국민이 태어나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평생 책임지겠다는 든든한 복지정책인데요.

그런데 잠깐! 이걸 진짜로 믿고, 정말로 실천하는 엉뚱한(?) 청바지 브랜드가 나타났다면 믿으시겠어요?

네, 실제로 존재해요.

바로 스웨덴의 데님 브랜드 누디 진스(Nudie Jeans)예요.

이 브랜드는 무려 "청바지의 일생을 책임지겠다"고 나섰거든요.

스웨덴 정부가 국민의 삶을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선언한 것처럼 말이죠.

헌 청바지든, 낡은 청바지든, 가져오면 무료로 평생 수선해주는 ‘놀라운 철학’을 실천하고 있어요.

누디 진스의 팬덤을 만든 비결이 바로 이 독특한 '청바지 복지 철학' 때문이라는 걸 아시나요?


스크린샷 2025-07-08 061658.png 누디진스고텐버그 프래그쉽 매장 [누디진 제공]


“Repairing is Caring” – 무료 수선으로 시작된 특별한 이야기

스웨덴의 데님 브랜드 누디 진스(Nudie Jeans) 매장에 가 보면

유리창에 “Repairing is Caring”, 우리말로 *“수선은 배려입니다”라는 문구가 큼직하게 쓰여 있어요.

보통 옷가게에서는 볼 수 없는 재봉틀이 한쪽에 놓여 있고,

직원이 낡은 청바지를 정성껏 꿰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죠.

놀랍게도 누디 진스는 모든 청바지에 대해 평생 무료 수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언제, 어디서 구매한 청바지든 누디 진스 매장에 가져오면 공짜로 고쳐주는데,

심지어 깨끗하게 수선한 중고 청바지를 매장 한켠에서 다시 판매하기도 해요.

헌 청바지를 가져오면 새 청바지 구매 시 20% 할인을 해주는 보상 프로그램까지 운영하면서, 헌 청바지를 버리지 않고 되살리는 문화를 만들고 있죠.


이쯤에서 이런 궁금증이 들 수도 있어요.

“새 옷을 덜 사게 만들면 브랜드 입장에서 손해 아닌가요? 그냥 친절한 애프터서비스 얘기일 뿐이지, 이게 과연 팬덤 전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처음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천천히 들여다보면 누디 진스의 무료 수선 철학이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브랜드와 고객을 하나로 묶는 영리한 전략이라는 걸 알게 될 거예요.


팔고 끝이 아니라 입는 내내 함께하기 – 누디 진스 팬덤의 비결

누디 진스의 철학은 한마디로 요약돼요.

“청바지를 많이 팔았다면 수선소도 당연히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자동차를 많이 팔면 정비소가 많이 필요한 것처럼, 청바지를 많이 팔았으면 그만큼 수선 서비스로 보답해야 한다는 의미죠.

그래서 누디 진스는 청바지를 판매한 이후에도 책임을 다해 계속 돌봐주려는 거예요.

낡은 청바지를 무료로 수선해주는 일은 단순히 제품 수명만 늘리는 게 아니에요.

수선하러 매장을 찾은 고객이 직접 직원과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나눌 기회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죠.

새 청바지 판매에만 급급한 보통의 패션 브랜드들과 달리, 누디 진스는 이미 인연을 맺은 고객의 ‘현재 진행형’ 경험을 꾸준히 이어가도록 투자했어요.

그 결과 고객들은 브랜드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을 쌓게 되었고, 누디 진스는 끈끈한 팬 커뮤니티를 구축할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참 역설적이죠.

“청바지를 오래 입게 도와주면 정작 새 제품은 덜 팔리는 거 아니야?” 하고요.

하지만 누디 진스는 오히려 그 역설을 통해 성공을 거두고 있어요.

무료 수선과 중고 재판매로 고객들은 “이 브랜드, 진짜 우리를 생각해주는구나” 느끼게 되고, 더 큰 충성심을 갖게 돼요.

실제로 누디 진스의 수선 서비스는 고객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는데,

브랜드 담당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지 보면 알 수 있다”며 만족감을 드러냈어요. 무료 수선이라는 파격적인 약속이 단골손님을 열렬한 팬으로 바꿔준 셈이죠.

스크린샷 2025-07-08 062049.png 누디진스 쇼디치 청바지 수리점 컨셉 매장.[누디진스 제공]

[1세기 전 "자동차를 많이 팔면 많은 주유소가 필요하게 될 것" 이라고 했던 록펠러의 말이 생각난다.]


지속가능한 패션이 부른 공감대와 품질에 대한 고집

누디 진스의 이런 행보 뒤에는 지속가능한 패션에 대한 뚜렷한 철학이 있어요.

“입고 버리는” 패스트패션 흐름과 반대로,

“입고 고쳐 입는” 문화를 멋지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위한 브랜드인 거예요.

모든 누디 진스 청바지는 100% 유기농 면으로 만들어지고 생산 과정의 투명성을 공개할 만큼,

처음부터 환경과 윤리를 중시해 왔어요.


창립자 마리아 에릭손이 “어떤 것도 타협하지 않는 꿈”에서 이 브랜드를 시작했고,

실제로 아버지가 헌 타이어를 새 타이어 대신 재생시켜 쓰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니 지속가능성은 누디 진스의 DNA나 다름없죠.


무엇보다 눈여겨볼 점은,

누디 진스가 제품의 본질도 놓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에요.

환경을 생각하는 가치관만 강조하고 정작 청바지 품질이 별로라면 소비자들이 열광하지 않았을 거예요.

누디 진스는 디자인이나 소재 면에서 청바지 자체의 완성도도 아주 뛰어나서, 한 번 입어본 사람들은 그 핏과 질감에 반하게 돼요.

그러니 팬들이 오래 입고 수선해가며 애정을 붙일 수 있는 거죠.

아무리 신념이 좋아도 옷이 마음에 안 들면 지속적인 팬덤으로 이어지기 어렵잖아요.

누디 진스는 스타일과 품질, 그리고 신념까지 삼박자를 갖춰 커뮤니티의 공감대를 얻은 거예요.


매장을 커뮤니티 허브로 – 음악과 수선이 어우러진 공간

누디 진스 매장은 단순히 청바지만 파는 곳이 아니에요.

동네 커뮤니티의 허브처럼 활용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매장 한쪽에 있는 수선 공간이 가끔은 작은 공연 무대로 변신하기도 해요.

지역의 신진 뮤지션부터 유명한 아티스트까지 불러서 라이브 음악을 즐기는 자리가 마련되죠.

청바지 수선을 매개로 사람들이 모이고 교류하는, 독특하고 따뜻한 커뮤니티 공간이 되는 거예요.

누디 진스는 이렇게 음악과 문화를 곁들여 브랜드 팬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장을 만들어왔어요.


스크린샷 2025-07-08 062619.png 누디진스 매장에서의 DJ잉 파티

물론 코로나19 기간 동안 이런 대면 행사는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최근 새로운 청바지 핏 ‘솔리드 올리(Solid Ollie)’ 출시에 맞춰 “월드 슬림 투어”라는 이름의 글로벌 이벤트를 다시 시작했답니다.

세계 곳곳 누디 진스 매장에서 음악이 흐르는 파티를 열어 오랜만에 팬들과 직접 만나 소통한 거예요.

또한 영국 맨체스터에 새로 여는 매장은 수선 작업장 겸 음악 공연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해요.

이 매장에서는 무료 수선은 물론이고, 라이브 공연, 수선 워크숍, 패널 토크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리며 지역 예술가와 팬들이 교류하는 장이 될 거라고 하네요.

말 그대로 매장이 커뮤니티 센터 역할을 톡톡히 하는 거죠.


초심을 지키며 팬과 함께 자라는 브랜드

누디 진스는 2001년 스웨덴에서 탄생할 때부터 “함께하는 커뮤니티”를 꿈꿔왔다고 해요.

2007년부터 이미 청바지 수선 서비스를 시작했을 정도로,

팔고 나면 끝이 아니라 제품의 평생을 책임지겠다는 초심을 일찍이 행동으로 보여줬죠.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초심을 잃지 않고 있어요.


환경을 생각하는 가치관,

오래 입는 패션에 담긴 추억,

음악이 흐르는 즐거운 만남까지.

이런 모든 요소들이 어우러져 누디 진스만의 팬 문화를 탄생시켰고 지금도 이어져오고 있어요.


누디 진스 매장에서 수선받은 낡은 청바지 한 벌 한 벌에는

그 주인과 브랜드가 함께 만든 이야기가 깃들어 있죠.

그리고 그렇게 쌓인 이야기들이 모여 브랜드와 팬이 함께 성장하는 팬덤의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스크린샷 2025-07-08 063230.png 누디진스는 공정한 임금, 유기농 면화, 투명성을 넘어 그들은 배려하는 커뮤니티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누디진스 홈페이지)


결국 한 번 맺은 인연을 오래도록 지켜나가는 것,

그것이 브랜드가 팬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요?


며칠 전 제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어요.

10년 전 큰맘 먹고 샀던 아끼는 탠디 구두의 깔창과 뒷굽이 낡아서, 무료 수선 서비스를 받았거든요.

정말 새 신발을 산 것처럼 기분이 좋았죠.

그런데 문득 아쉬운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나라 탠디도 누디 진스와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왜 이런 멋진 서비스가 팬덤을 만드는 브랜드의 철학으로 이어지진 못했을까요?

누디 진스는 팬들과 진정한 관계를 만들고 그 가치를 적극적으로 알렸지만, 탠

디의 서비스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잘 모르고 이용하지 않는 서비스로 남아 있어요.


결국 중요한 건 서비스 그 자체보다,

그 안에 담긴 철학과 스토리를 고객과 어떻게 소통하느냐에 있는 것 같아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참고자료: 스웨덴 누디 진스의 지속가능 경영 사례 (Pierre-Nicolas Schwab, IntoTheMinds, 2018)

누디 진스 쇼어디치 수선 매장 소개 (Rebecca Byers, TrendHunter, 2015)

누디 진스 공식 링크드인 포스트 (2023)

누디 진스 맨체스터 매장 소식 (Alexia Rhodes, LinkedIn,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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