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에서 나는 왜 울컥했을까? (2편)

by 알렉

(이어서)

그래, 생각해보니 비행기 기내 잡지에서 스쳐 읽었던 기사 제목이었던가?

유명한 그리스 여배우가 자국 문화재를 되찾으려 애쓴 얘기였던 것 같다.

당시에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지금 여기서 접하니 퍼즐 조각처럼 연결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더 알고 싶어졌다.

조각상의 이야기만큼이나 박물관 자체에도 어떤 사연이 숨어 있는 모양이었다.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나는 결국 휴대폰을 꺼내 들고 카페 와이파이에 연결한 뒤, 테이블에 앉은 채로 '멜리나 메르쿠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곧 여러 자료와 기사들이 주르륵 나타났다. 조용한 책방 카페의 한켠에서, 나는 천천히 그녀의 이야기를 읽어 내려갔다.


스크린샷 2025-07-29 145202.png 멜리나 메르쿠니 사진 출처:위키백과


멜리나 메르쿠리(1920~1994). 그리스의 전설적인 영화배우 출신 정치인.

1980년대에 그리스 최초의 여성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인물.

그녀는 재임 시절 "문화는 그리스의 중공업이다"라고 선언할 만큼 조국의 문화유산에 남다른 열정을 쏟았다고 했다.

특히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어져 나간 대리석 조각들의 반환을 평생의 숙원으로 삼았다고 한다.

화면 속 사진 속의 그녀는 짧은 금발머리에 카리스마 있는 미소를 지닌 중년 여성으로, 연설대 위에서 두 손을 펼쳐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읽다 보니 나는 금세 또 하나의 이야기 속으로 깊이 빨려들어 갔다.

1982년 7월,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 문화정책 회의에서 메르쿠리는 전 세계를 향해 파르테논 조각 반환을 공식 요구했다고 한다.


"우리는 단지 한 점의 예술품을 돌려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의 문화가 담긴 상징적 기념물의 일부를 돌려달라는 것입니다."


그녀는 이렇게 호소하며, 파르테논 신전 조각들이 단순한 소유물이나 장식품이 아니라 그리스 문화정신의 정수이자 민족 정체성과 직결된 유산임을 역설했다고 했다.

영국이 19세기 초 엘긴 경(Lord Elgin)을 통해 가져간 이 조각들을 이제라도 본래 자리로 돌려놓아 고대 기념물의 원형을 복원해야 한다고, 그녀는 열정적으로 외쳤다.

이 연설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켜, 그 해 유네스코 회의에서 "모든 문화재는 원래의 소유국에 반환돼야 한다"는 결의안이 채택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스크린샷 2025-07-29 145452.png 메르쿠리는 1982년 멕시코에서 열린 유네스코 총회에서 “영국은 약탈한 아크로폴리스 조각품들을 돌려주어 원형을 복구하도록 해야 한다”고 연설하면서 ‘모든 문화재는 원래 소유국에게


전 세계 대표들 앞에서 눈물까지 글썽이며 조각 반환의 정당성을 호소하는 그녀의 모습은 곧 국제 언론을 타고 퍼져 나갔다.

메르쿠리는 이듬해인 1983년에는 대영박물관 관장이었던 데이비드 윌슨과 TV 공개토론까지 벌여 영국 측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했는데, 그 토론은 영국 내 여론에도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메르쿠리가 불러일으킨 움직임 덕분에, 한때 미적지근했던 영국 사회도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영국의 지식인, 예술계 인사들이 그녀의 뜻에 공감해 "파르테논 조각 재결합을 위한 영국위원회"라는 모임을 결성하는 등, 조각 반환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커져갔다.

나는 화면을 넘기며 계속 읽었다.

메르쿠리는 파르테논 조각 반환을 위해 새로운 박물관 건립이 필수적이라는 사실도 간파했다.

당시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있던 오래된 박물관은 협소하고 노후하여 대형 유물이나 조각들을 충분히 전시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영국 측은 "그리스에는 조각을 제대로 전시할 만한 시설이 없다"는 점을 반환 거부의 핑계로 삼고 있었고, 메르쿠리는 그 약점을 정면으로 파고들었다.

그녀는 장관 부임 후 곧바로 아테네에 최첨단의 새 박물관을 지을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1989년, 전 세계 건축가들을 대상으로 아크로폴리스 신박물관 설계 국제공모를 공식 발표하기에 이른다.

"머지않아 이 새 박물관에 엘긴 마블이 전시되기를 바란다"는 그녀의 말은 당시 그리스 국민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한다.

하지만 박물관 건설의 길은 험난했다.

내가 읽은 기사에 따르면, 1차 국제공모에서 당선된 설계안으로 1990년대 초 착공을 추진했으나 부지 발굴 과정에서 대량의 고대 유적이 출토되는 바람에 공사가 중단되었다고 했다.

유적 보존 문제로 논란과 소송이 이어졌고, 정권 교체로 메르쿠리가 한동안 장관직을 떠나기도 하면서 계획은 표류했다.

안타깝게도 메르쿠리는 1994년 병으로 세상을 떠나 이 프로젝트의 결실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의 뒤를 이어 많은 이들이 이 꿈을 놓지 않고 노력한 결과, 2000년대에 들어 그리스 정부는 수정된 설계안으로 다시 국제공모를 진행했고 마침내 공사가 재개되었다.



스크린샷 2025-07-29 145643.png 신축 된 박물관과 언덕위에 파르테논 신전이 보인다. [출처:베르나르추미 건축 사무소]


마침내 2009년, 아크로폴리스 언덕 기슭에 현대적인 신축 박물관 건물이 완공되었다.

개관식 사진을 보니, 유리와 콘크리트로 지어진 세련된 건물이 고대 언덕을 배경으로 서 있었다.

특히 최상층 전시실은 파르테논 신전의 평면과 똑같은 직사각 형태로 지어졌고, 건물 전체를 사방에서 자연광이 들어오는 거대한 통유리로 둘러싸 파르테논 신전을 그대로 조망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검색하다 보니 이 박물관의 구조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도 나타났다.

박물관은 3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입구 중정에서부터 발굴 현장을 내려다볼 수 있다고 했다.

1층에는 아크로폴리스 경사면에서 발견된 기하학적 양식과 흑채 양식의 방대한 도기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고, 2층에는 크리티오스 소년을 비롯한 아르카이크 시대와 고전 시대의 조각상들이 갤러리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고 했다.그리고 3층이 바로 그 유명한 파르테논 갤러리다.

무엇보다 감탄스러운 것은, 최상층 파르테논 갤러리에 대한 설명이었다.


스크린샷 2025-07-29 150213.png 3층 파르테논 갤러리 통창 뒤로 파르테논 신전이 보인다. 출처: 사진 표기 참조


이 전시실은 파르테논 조각들을 위해 특별히 설계된 유리벽 챔버로, 파르테논 신전의 방향과 치수에 정확히 맞춰진 직사각형 중심부를 둘러싸고 있다고 했다.

현재 그리스가 보유한 파르테논 신전 조각들이 원래 위치 그대로 배치되어 있지만, 한 눈에 봐도 군데군데 빈 자리가 있다고 한다.

그 빈 공간들은 다름 아닌 지금 영국에 있는 조각들의 자리였다.

박물관 측은 그 자리에 석고 복제품을 대신 전시해 놓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어느 부분이 비어 있는지가 더 도드라져 보였다.

관람객들은 이 빈 공간들을 통해, 본래 하나의 연속된 행렬도처럼 이어졌어야 할 파르테논 신전의 부조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흩어진 채 단절되어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고 했다.

나는 이 대목을 읽으며 가슴이 묘하게 저려옴을 느꼈다.

마치 박물관 자체가 "우리 집에 돌아오지 못한 식구들이 여기 빈자리로 남아 있다"라고 조용히 외치는 듯했다.

더 찾아보니, 파르테논 동쪽 페디먼트 조각들은 아테나의 탄생을 나타내는 그리스 신화의 장면을 담고 있다고 했다.

제우스가 심한 두통으로 헤파이스토스에게 도움을 요청한 그 유명한 이야기 말이다.

그런 신화적 서사가 담긴 조각들이 지금도 런던과 아테네로 나뉘어져 있다니, 왠지 이야기 자체도 반쪽짜리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크리티오스 소년에 대한 추가 정보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검색 결과에 따르면, 이 조각상은 고대 그리스 조각에서 콘트라포스토를 사용한 최초의 조각상으로, 미술사가 케네스 클라크는 이를 "예술사상 최초의 아름다운 누드"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현재 높이는 지지대를 포함해 117cm로 실물보다 상당히 작다고 했다.

아까 옆 테이블 사람들이 "소년 크기"라고 한 말이 정말 맞았던 셈이다.

그리고 이 조각상은 2층 갤러리 중앙에 위치하며, 아르카이크 예술에서 고전 예술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대표작이라고 했다.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으로 슬퍼하는 젊은 여신 아테나의 아름다운 부조도 소개되어 있었다.

연간 약 150만 명이 방문하는 이 박물관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박물관 중 하나로, 오직 하나의 고고학적 유적지인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와 그 경사면의 발견품들만을 소장하고 있다고 했다.

그만큼 전문성과 집중도가 높은 박물관이라는 뜻이었다.

내려다보니 식었던 커피잔을 언제 다 비웠는지도 모르게, 나는 어느새 메르쿠리의 이야기에 깊이 빠져 있었다.

화면을 더 스크롤하자, 메르쿠리가 생전에 남긴 한 마디가 내 눈을 멈추게 했다.


"죽기 전에 아테네에서 이 대리석 조각들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만약 내가 죽은 후에 돌아온다면, 그때 나는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이것은 메르쿠리가 말년까지 품었던 간절한 바람을 담은 말이었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 생전에 반드시 조각들을 다시 모셔오겠다"는 각오로 뛰었지만,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저 말처럼, 혹여 자기 죽음 뒤에라도 조각들이 돌아온다면 그 순간 자신은 다시 태어나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라 했단다.

화면 속의 그녀 사진은 생전 어느 인터뷰 자리에서 담담히 미소 짓고 있었지만, 그 짧은 글귀에 담긴 절실함을 생각하니 왠지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겐 그저 "박물관 구경 한번 하라"는 권유 쯤으로밖에 안 들리던 조각 반환 이야기가, 이제는 이렇게 내 가슴에 와 닿는다니.


나는 폰을 내려놓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리석 소년의 이야기로 시작된 작은 호기심이, 결국엔 이 박물관 자체의 이야기까지 나를 이끌었다.

박물관은 고고한 돌덩이들과 유물들만 가득한 곳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곳에도 사람들의 열망과 꿈의 서사가 깃들어 있었다.

하나의 조각상이 처음으로 인체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던 순간이 있었다면, 먼 훗날 한 여인은 그 조각상들이 제자리를 찾게 하려 자신의 생을 바쳤다.

그리고 지금도 그 박물관의 3층 파르테논 갤러리에서는 매일 150만 명이 넘는 관람객들이 그 빈 자리들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느끼고 있을 것이다.

메르쿠리가 꿈꿨던 "완전한 재결합"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녀의 열정으로 지어진 이 아름다운 박물관에서 사람들은 예술과 역사, 그리고 한 여인의 숭고한 의지를 동시에 만나고 있는 셈이었다.

나는 메르쿠리라는 사람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지만,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마음이 뜨거워졌다.

그녀가 품었던 절박한 염원, 그리고 그 염원을 담아 세워진 이 현대적인 박물관... 지금 내가 옆에서 바라보고 있는 이 건물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박물관 유리창 너머로 비치는 붉은 석양은 마치 그녀가 남긴 열정의 잔광인 양 느껴졌고, 그 안에서 빛을 받고 있을 대리석 소년과 수많은 유물들은 오래도록 잊고 지냈던 어떤 감수성을 내게 일깨우는 듯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다시금 박물관 건물을 바라보았다. 언제부턴가 돌처럼 굳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내 마음에 서서히 온기가 번지는 것을 느꼈다.

예술에 무심하다 못해 냉소적이기까지 했던 내가, 한낱 돌덩이 조각 하나와 박물관 하나의 사연에 이렇게 마음을 빼앗길 줄이야. 스스로에게서 한 수 배우는 기분이랄까.

사람의 마음이란 참 모르겠다는 생각이 다시금 피식 웃음을 자아냈다.

카페 문을 밀고 밖으로 나서자 어느덧 저녁빛이 거리 위에 내려앉고 있었다.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로는 보랏빛 노을이 깔리고, 그 아래 박물관 건물에도 하나둘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문득 박물관 관람 시간이 궁금해져서 검색해보니, 평소에는 오후 8시까지, 금요일에는 오후 10시까지 개방한다고 되어 있었다.

아직 시간이 있었다.

카페에서 나와 박물관을 등지고 걸음을 떼려던 찰나, 나는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뒤돌아서 박물관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아직도 몇몇 관람객들이 출입하고 있었다.

내일이면 다른 도시로 떠나야 하는 출장객 신분이지만,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언제 다시 이런 기분으로 박물관 문턱을 넘을 수 있을까 싶었다.

나는 괜스레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래… 인생 모르는 거야." 아테네의 작은 책방 카페에서 우연히 접한 예술과 박물관의 이야기가 내 삶의 결을 이렇게나 어루만지고 지나갈 줄 누가 알았겠는가.

가슴 속에는 아직도 방금 읽고 들은 이야기들의 여운이 남아 있었다.

그 여운을 고스란히 품은 채, 나는 천천히 박물관 입구를 향해 한 걸음 내딛었다.

어쩌면 크리티오스 소년이 그러했듯이, 오랫동안 굳어 있던 내 일상이 이제 살며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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