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가 말이 되기도 한다.
박물관 문을 나오자, 바람에서 돌냄새가 났다. 낮 동안 쌓였던 열기가 서서히 빠져나가고, 언덕 위 신전에는 조명이 켜졌다.
누군가는 ‘시간의 골든타임’이라고 부를 그 어스름.
나는 습관처럼 주머니에서 영수증을 꺼내 봤다가,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뒷면을 보고 괜히 웃었다.
오늘은 뭔가를 채우기보다 비워두는 게 맞는 날 같았다.
발길은 자연스레 박물관 옆 길로 향했다.
낮에 들렀던 ‘리틀 트리’ 간판이 보였다.
여전히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진열대에는 얇은 문학 잡지와 그리스 소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펼쳤다.
낮에는 카푸치노였으니, 밤에는 조금 다른 걸로.
고민 끝에 그 집 시그니처라는 ‘핫 레모네이드’를 시켰다.
상큼하고 따뜻한 액체가 목으로 넘어가자, 몸 안쪽에서부터 긴장이 천천히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커피가 내 정신을 세운다면, 레몬은 내 마음의 주름을 잠시 펴주는 종류의 음료였다.
창밖을 보니 디오니시오 아레오파기투 보행로 위로 사람들이 천천히 흘러갔다.
여행자와 현지인이 뒤섞인 그들의 걸음은, 마치 합창의 박자 같았다.
누군가는 손을 잡고, 누군가는 지도 대신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또 어떤 아이는 아이스크림을 떨어뜨릴까 말까 아슬아슬하게 들고 있었다.
그 풍경이 묘하게 편안했다.
오늘 박물관에서 보았던 ‘빈자리’의 느낌과는 다른, 일상의 소란하고 부드러운 가득 참.
나는 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한 모금 더 마셨다.
피식 웃음이 났다.
“그래도 결국 카페네.”
직장 생활 20년, 그 어떤 회의실보다 카페가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말이 지나치게 많아질 때는 쓴 커피가 필요하고, 마음이 요란할 때는 이런 따뜻한 레몬이 필요하다.
결국 어른이 된다는 건, 내 마음의 온도 조절을 내가 어느 정도는 할 수 있다는 뜻일지 몰라.
그때 진동이 울렸다.
한국발 카톡. ‘이사님, 내일 아침 일정 확인 부탁드립니다.
아테네 건 관련해서…’라는 말줄임표 뒤에는 뻔한 결론이 달려 있을 것이다.
나는 휴대폰을 뒤집어 놓고 창밖을 다시 봤다.
오늘만큼은, 최소한 오늘 밤만큼은, 내 마음의 빈자리를 회사 보고서로 채우고 싶지 않았다.
빈자리에도 용도가 있다.
공백이 있어야 문장이 숨을 쉬고, 쉬는 박자가 있어야 노래가 흘러간다.
박물관에서 보았던 빈 자리도, 어쩌면 관람객에게 말을 걸기 위한 ‘의도된 쉼표’였는지도 모른다.
서가 앞에 서서 책등을 한참 훑다가, 얇은 엽서 묶음을 발견했다.
파르테논 프리즈, 카리아티드, 그리고 작은 소년의 옆모습이 인쇄된 엽서까지.
나는 망설임 없이 소년 엽서를 골랐다.
계산대에서 펜을 빌려, 엽서 뒷면에 짧게 썼다.
‘빈자리가 말이 되기도 한다.’
쓰고 나니, 누군가에게 보내고 싶어졌다.
딱히 받을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다.
가족에게 보낼만한 내용도 아니고, 동료에게 보내면 시니컬하단 소리 들을 게 뻔하다.
그럼 나에게 보내자.
호텔 주소를 적다가 멈췄다.
굳이 우체통에 넣지 않아도, 지갑에 넣고 다니면 된다.
급할 때 꺼내 읽는, 작은 버팀목처럼.
“핫 레모네이드, 어땠어요?” 바리스타가 빈 컵을 치우며 물었다.
“생각보다 괜찮네요. 달지 않아서 더 좋네요.”
“그렇죠. 여기 와서 처음 그거 드시는 분들이 많아요. 오늘 박물관 다녀오셨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3층에서 조금 오래 서 있었어요. 비어 있는 자리들 앞에서요.”
그는 잠깐 웃더니, 소곤소곤 말했다.
“저도 그 방을 좋아해요. 가끔은 빈 게 더 크게 보이거든요.”
그 말이 반가웠다.
누군가 내 마음을 아는 듯한, 그런 반가움.
우리는 더 묻지도, 깊게 파고들지도 않았다.
커피와 레몬 사이의 간격만큼, 적당한 거리에서 고개만 한 번 끄덕인 채 각자의 일을 했다.
나이가 들수록 이런 대화가 더 좋다.
짧고, 정확하고, 오래 남는 대화.
자리에서 일어서기 전, 나는 영수증 뒷면에 아까 그 말을 한 번 더 적었다.
‘빈자리가 말이 되기도 한다.’ 똑같이 적었지만, 처음보다 조금 더 단단한 글씨였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바람이 선선했다.
돌계단 위에 앉아 있던 고양이가 하품을 하더니 무심하게 나를 한 번 쳐다보고 다시 잠에 빠졌다.
아테네의 밤은 그랬다.
대단한 사건이 없어도 좋았고,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아도 좋았다.
오늘은 내가 나를 조금 더 알아본 날이었다.
호텔 방 문을 열자마자, 습관대로 노트북을 켰다가 다시 덮었다.
그 대신 다이어리를 펴고, 오늘의 문장을 적었다.
‘나는 왜 이 자리에 서 있는가.’ 오후에 파르테논 갤러리에서 떠올렸던 질문.
다이어리 책갈피에 소년 엽서를 끼워 넣고, 잠깐 눈을 감았다.
아주 옛날, 초등학교 때 박물관 숙제로 따라갔던 어느 날이 스쳤다.
유리 진열장에 얼굴을 붙이고 ‘이게 진짜야?’라고 묻자, 엄마가 웃으면서 “진짜지. 그래서 더 조심해야지”라고 하던 목소리.
잊혀 있다고 생각했는데, 박물관 냄새가 그 기억을 어딘가에서 밀어 올렸다.
그때의 나는 세상 모든 비밀이 박물관에 숨어 있다고 믿었다.
지금의 나는, 세상 모든 피곤을 카페에서 달랠 수 있다고 믿는다.
둘의 차이가 전부일까. 아니면 같은 문장에 쉼표 위치만 달라진 걸까.
잠들기 전, 휴대폰을 다시 켰다. 미처 읽지 않은 회사 메시지들이 줄줄이 떠 있었다.
‘이사님, 내일 아침 콜 괜찮으실까요?’, ‘보고서 초안 공유 부탁.’,
‘아테네 미팅 결과 요약 부탁해요.’
손가락이 잠시 머뭇거렸다.
그런 다음, 나는 간단히 답장을 보냈다.
‘한국 시간 오후로 미루죠. 오전에는 현지 일정 정리하겠습니다.’
인사 발령 후 체념하며 했던 ‘네, 알겠습니다’로 시작하던 답변에 작은 변주를 줬다.
사소한 것부터 고쳐 보면 어떨까.
빈자리를 보는 훈련은, 이렇게 작은 결정에서 시작될지 모른다.
다음날 아침, 체크아웃을 하고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창밖을 바라봤다.
전날의 박물관은 이미 내 뒤에 있지만, 그 ‘빈자리’는 어쩐지 내 안에서 더 선명해진 느낌이었다.
누락이 아니라, 여백. 결핍이 아니라, 호흡. 회사에서 밀려난 자리도, 언젠가 다른 문장을 위해 비워둔 칸이었을지 모른다.
인천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표 옆에, 다음 출장지 일정표를 펼쳤다.
암스테르담, 프라하, 빈, 파리. 일정표는 별 감흥 없이 빼곡했지만, 나는 한 줄을 새로 썼다.
‘각 도시의 박물관 옆 카페 찾기.’
피식, 혼자 웃음이 났다.
기껏 깨달음을 얻고 하는 일이 카페 리스트 작성이라니.
그런데 이게 내 방식이다.
거창하게 인생을 갈아엎는 성격이 못 된다.
대신 내가 걸어갈 길 옆에 작은 쉼표를 박아 두는 스타일.
카페는 내 쉼표다.
공항에 도착해 체크인을 마치고 탑승구 앞에 앉았다.
커피를 주문할까 하다가, 아테네의 마지막 잔은 어제의 레몬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생수병에 슬라이스 레몬 두 조각을 넣어 준 카페 직원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면서, 나는 소년 엽서를 지갑에서 꺼내 한 번 더 읽었다.
‘빈자리가 말이 되기도 한다.’
문득, 누군가에게 이 문장을 건네고 싶어졌다.
마음 속 리스트에서 한 이름이 떠올랐다.
‘영업 전략 진단팀’으로 올 때 내 짐을 묵묵히 옮겨주던 후배.
“이사님, 우리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죠?”라고 어색하게 말해주던 아이.
그때는 웃고 넘겼지만, 사실 그 말이 며칠이나 가슴에 남아 있었다.
나는 엽서 아래 작은 종이를 꺼내 짧게 썼다.
‘보고서가 전부는 아니야. 가끔은 빈칸이 더 많은 걸 말해.’ 그리고 사진을 찍어 후배에게 보냈다.
답장은 바로 오지 않았다.
괜찮다. 어떤 말은 늦게 도착할수록 더 오래 남는다.
탑승 안내 방송이 울렸다.
일어나 가방을 둘러메며 나는 아크로폴리스 언덕 쪽으로 고개를 한 번 더 돌렸다.
보이지 않는 방향이었지만, 어제의 빈자리들이 마음속에서 환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내가 돌아가야 할 자리도 언젠가 그렇게 보일까.
아니, 그건 이미 빛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애써 외면하고 있었을 뿐.
발걸음을 떼며 마음속으로 한 문장을 마침표 찍었다.
이 다음 도시에서도, 나는 아마 박물관 옆 카페에 앉아 있을 것이다.
커피든 레몬이든, 손에 따뜻한 컵 하나를 쥐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엿듣겠지.
그리고 또 다른 ‘빈자리’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 빈자리를 통해 내 삶의 문장에 새로운 쉼표 하나를 더해 보겠다.
이상하게, 그 생각만으로도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빈자리를 품고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게 내가 아테네에서 배운 가장 실용적인 철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