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리브랜딩 『의식(ritual)로 바꾸면 벌어지』

코스기유, 코엔지 목욕탕이 ‘지역 커뮤니티 허브’가 되기까지(1)

by 알렉

“목욕탕이 진짜 커뮤니티 허브가 될 수 있을까요?”
아마 대부분은 고개를 갸웃할 거예요.

‘빨리 씻고 나가는 곳 아닌가요?’ 하고요.

그런데 도쿄 스기나미구 코엔지에 자리한 전통 센토 코스기유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죠.

‘깨끗하고 기분 좋은 물’을 끓이는 일을 넘어, 동네 사람들이 하루의 무게를 내려놓고 잠깐의 비일상을 맛보는 ‘열린 거실’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묻고 싶어져요.

“집집마다 욕실 있는 시대인데, 왜 사람들은 굳이 코스기유로 갈까요?”

먼저 코스기유의 이름부터 천천히 불러볼게요.

코엔지 목욕탕 코스기유.

이 다섯 글자를 소리 내어 읽는 순간, 엷은 온천 냄새와 뜨끈한 김, 나무 대야가 부딪히는 소리, 카운터 너머에서 건네는 ‘오츠카레사마(수고했어요)’가 함께 떠오르죠.

동네 목욕탕의 감각은 늘 오감으로 기억돼요.

그래서일 거예요.

코스기유 이야기를 꺼내면, 누군가는 어린 시절 외할머니 손에 이끌려 갔던 대중목욕탕을 떠올리고, 또 누군가는 여행지에서 들렀던 온천의 고요를 떠올리죠.

추억과 현재가 겹치는 곳, 그게 코스기유예요.

하지만 추억만으로는 오래 못 가요.

진짜 질문은 여기서 시작돼요.
“전통을 지키면서도, 지금의 도시 생활자에게 왜 필요해야 할까요?”
“목욕이라는 평범함을, 어떻게 ‘작은 비일상’으로 바꿀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 변화가 지역과 세대를 넘나드는 팬덤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이 글은 그 질문에 조심스럽게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에요.

역사를 들춰보고, 운영 철학을 살피고, 때론 엉뚱하고 재치 있는 이색 이벤트들을 훑어보며, 마지막엔 브랜드 확장과 지속가능성,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의 이야기로 돌아오려 해요.

설명보다 대화에 가깝게, ‘정말 그럴까?’ 하는 마음속 의심도 함께 손잡고요.

“방법은 이래요.” 하고 일방적으로 말하기보다, “먼저 같이 살펴볼게요.” 하고 천천히 걷는 속도로요.


왜 하필 ‘목욕탕’일까요?

도시엔 콘텐츠가 넘쳐요. 카페도, 갤러리도, 팝업스토어도, 게임 라운지도 있어요.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퇴근길·러닝 후·주말 오후에 굳이 코스기유를 찾아요. 목욕은 ‘의식(ritual)’이기 때문이에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몇 분 사이, 우리는 하루의 소음을 잠깐 꺼요.

스마트폰을 내려놓을 핑계가 생기고, 몸이 먼저 느긋해진 뒤 마음이 따라 풀리죠.

이 짧고 반복 가능한 의식이 사람을 다시 오게 만들어요.

코스기유는 이 반복 가능성을 ‘작은 비일상’으로 설계했어요.

익숙한 우유탕은 언제 가도 반겨주는 기본값이 되고, 계절과 주간 테마로 바뀌는 탕은 오늘만의 이유가 되죠.

어떤 날은 유자 향으로, 어떤 주는 토마토로, 어떤 주말은 동네에서 뛰고 온 러너가 냉탕–온탕을 오가며 회복해요.

익숙함과 변화의 리듬을 한 공간 안에 포개면서, 코스기유는 사람들의 생활 루틴 속으로 들어가요.

‘시간 나면 가는 곳’이 아니라, ‘시간을 만들어서 가는 곳’이 되는 거죠.


짧은 역사 스케치, 그러나 핵심만

코스기유는 오래됨을 자산으로 삼되 낡음에 갇히지 않았어요.

오래된 목조 기와지붕과 도쿄형 센토의 외관은 가능한 한 보존하고, 내부 동선·설비는 필요할 때마다 보강했죠.

덕분에 공간은 추억을 담는 그릇이면서도 오늘의 몸에 맞게 작동해요.

여기에 한 가지 더, 코스기유는 오래된 장소가 흔히 빠지는 ‘신화화’의 함정—즉, “예전 그대로가 최고야”라는 태도—를 경계했어요.

‘깨끗하고 기분 좋은 물’이라는 원칙만 남기고, 나머지는 시대에 맞춰 유연하게 업데이트했죠.

그래서 이곳은 과거형 장소가 아니라 현재진행형 브랜드예요.


철학 ☞ 동네의 ‘열린 거실’을 지키는 일

코스기유의 운영 철학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래요.
“동네 사람들이 편히 숨 고를 수 있도록, 오늘도 깨끗하고 기분 좋은 물을 끓인다.”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죠.

그런데 실행은 놀라울 정도로 일관돼요.

가격 장벽은 낮추고(누구나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도록), 서비스의 질은 높이고(물·온도·청결·동선), 환대의 톤은 인간적으로(반가움, 눈인사, ‘여기선 그냥 쉬세요’ 하는 분위기) 설계해요. 그래서 코스기유는 ‘한 번 가보면 아는 곳’이 아니라, ‘두세 번 가면 내 자리 같은 곳’이 돼요.

사람을 단골로 바꾸는 건 이벤트가 아니라 정직한 일상이니까요.


운영 ☞ 익숙함(우유탕)과 변화(테마탕)의 리듬

코스기유의 대표명사라면 단연 우유탕이죠. 적당한 탁도와 온기가 주는 심리적 안정감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먹혀요.

여기서 코스기유는 한 발 더 나가요.

테마탕과 온냉 교대욕을 유연하게 배치해 취향과 컨디션을 존중해요.

“오늘은 가벼운 향, 내일은 단단한 회복”처럼요. 덕분에 방문 동기가 ‘피로 회복’에서 ‘작은 기쁨’까지 넓어져요.

그리고 목욕 이후를 잇는 작은 휴게 공간, 우유·커피·맥주 같은 가벼운 보상, 만화 코너 같은 머무를 이유가 뒤따라오죠.

목욕을 경험의 시퀀스로 본 거예요.

들어와서—씻고—담그고—쉬고—나가는 그 몇 단계를, 기분이 더 좋아지도록 다듬는 것.

간단하지만 많은 공간이 놓치는 디테일이에요.


이색 이벤트 ☞ 낯선 조합의 ‘재미’가 새 팬을 부른다

질문 하나 더 던져볼게요.
“목욕과 게임, 어울릴까요?”
대답은 ‘생각보다 아주 잘’이에요.

코스기유는 격투 게임 토너먼트 같은 엉뚱하면서도 안전하게 디자인된 이벤트로 화제를 모았어요.

‘목욕=고요’라는 편견을 안 무너뜨렸냐고요? 오히려 ‘목욕=즐거움’이라는 새로운 기억을 심었어요.


그 순간 코스기유는 단순한 시설에서 문화공간으로 격이 바뀌어요.

어떤 날은 동네 뮤지션이 욕실을 무대로 작은 공연을 하고, 또 어떤 주말에는 하나후다(花札) 같은 전통 놀이가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돼 젊은 층의 호기심을 자극하죠.

낯선 조합은 사람을 불러 모으는 이야기가 돼요.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 팬덤을 만들어요. “그 목욕탕, 늘 뭔가 재밌는 걸 해.”


지역성 ☞ ‘우리 동네 목욕탕’이 되는 방식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더 있어요.

코스기유는 지역을 향해 먼저 손을 내밀어요.

새 지점을 열 때 지역 한정 프리오픈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먼저 동네 주민과 직장인이 주인이 되도록’ 하는 배려죠.

이건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관계 설계예요.

지역과의 신뢰가 쌓이면, 자연히 재방문율과 구전 추천이 따라와요.

‘코엔지에 가면 코스기유’라는 문장이 사람들 사이에서 약속처럼 돌아다니게 되죠.

커뮤니티 허브는 광고로 선언되는 게 아니라, 일상의 반복 속에서 생겨요.


브랜드 확장 ☞ ‘도나리’와 ‘하라주쿠’의 의미

브랜드가 확장할 때 가장 쉽게 잃는 게 정체성이에요.

코스기유는 다르게 갔어요. 본점 옆 ‘코스기유 도나리(옆집)’로 생활 동선을 확장하고, 하라주쿠 2호점으로 도시 접점을 넓히되, 핵심 가치는 그대로 가져갔죠.

‘깨끗하고 기분 좋은 물’이라는 다른 무엇으로 대체 불가능한 핵심경험(코어 익스피리언스)을 지키면서, 그 전후 문맥—쉬고, 읽고, 마시고, 얘기 나누는—을 풍성하게 만든 거예요.

이렇게 ‘탕’을 중심으로 작은 도시 생태계를 짜면, 브랜드는 공간 하나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이 돼요.


미디어 & 팬덤 ☞ 기록하는 브랜드, 참여하는 팬

코스기유의 디지털 행보도 흥미로워요.

웹사이트, 노트(note), X·인스타그램을 통해 일상을 기록하고,

그 기록을 함께 나눌 이유로 바꿔요.

이때 중요한 건 톤이에요.

광고 문구보다 사람 이야기가 전면에 오죠.

편집부를 별도로 꾸려 ‘왜 이 일을 하는가’를 꾸준히 풀어내는 것도, 팬과의 거리를 좁히는 방식이에요.

팬은 ‘소비자’에서 ‘참여자’로 진화하고, 때로는 기획자/파트너가 되기도 해요. ‘도나리’를 만든 팀처럼요.

코스기유의 팬덤은 그래서 흔한 ‘팔로워’ 수치가 아니에요.

서로의 일상을 부드럽게 잇는 느슨한 연대에 가까워요.


지속가능성 ☞ 오래가려면 오늘 할 일을 제대로

전통 공간의 가장 큰 숙제는 지속가능성이에요.

코스기유는 수익원을 단일화하지 않아요.

기본 입장 수입 위에 멤버십(도나리), 굿즈·콜라보, 공간 협업 등을 얹어 다각화해요.

보존·리노베이션은 주기적이고 가벼운 수선과 상징적 요소의 정기 갱신을 병행해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한 번 와본 사람을 다시 오게 만드는 품질이죠.

결국 남는 건 ‘오늘의 물’이에요. 깨끗함·온도·동선·환대—이 4가지를 해치지 않으면, 코스기유는 오래가요.

오래가는 곳이 되면, 지역은 이 공간을 스스로 지켜야 할 가치로 받아들여요.

지속가능성은 숫자만으로 증명되지 않아요. 사람의 습관으로 증명돼요.


[해외 사례] 어디·무엇·배울 점 (일본/대만/홍콩 중심)


Taipei | Eslite Bookstore (誠品書店)
24시간 서점 모델로 ‘머무는 리테일’을 구현해요.

책–음악–전시–카페의 연동 동선이 체류 시간을 늘리는 설계라는 점을 배울 수 있어요.


Hong Kong | G.O.D. (Goods of Desire)
홍콩 일상문화·로컬 유머를 디자인으로 번역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도시 정체성을 팬 커뮤니티로 연결하는 스토리텔링이 강점이에요.


Tokyo | Sento × Running
러너 짐보관/샤워 연결 서비스처럼, 일상 루틴과 결합한 사용 맥락 디자인은 재방문을 높여요.

코스기유의 ‘달리목욕탕 리브랜딩: 의식(ritual)로 바꾸면 벌어지는 일는 코스기유’와 관점이 같죠.(다음편에 집중적으로 다뤄 볼 브랜드에요^^)


작지만 선명한 공통점은 이거예요.

머무를 이유와 다시 올 이유를 생활 맥락에 심는 것.

코스기유는 그걸 ‘탕’이라는 원초적 경험을 중심으로 풀었어요.


결국 씻는 곳을 넘어 코스기유가 보여준 도시의 거실이라는 명징한 선언이 있다고 생각해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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