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브런치에 작가신청을 하면서 든 생각은 ‘여긴 다들 감성글을 올리는데 나 같은 불량하고 정신 사나운 글만 쓰는 사람이 작가 신청을 해도 되나?’ 라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SNS도 잘 안 하고, 계정은 있지만 다 비공개로 사용한다. 블로그(이글루스)는 해봤다. 지금 ‘감성 없는 감상문’에 올리는 글들은 다 20년 전부터 이글루스에 올렸던 글들을 고쳐서 올리는 것이다.
처음에는 기록을 위해 수정 없이 그대로 올리려고 했는데, 그때 아직 젊어서(?) 그랬는지 쓸데없는 잡담도 너무 많고…물론 이게 내 개인 블로그라면 잡담 90%에 영화나 책 내용 10%라도 상관없겠지만 브런치는 – 보니까 정보성 글도 많고 영화나 책이나 뮤지컬 리뷰들도 진짜 공들여서 포맷 맞추고 자료조사 열심히 해서 올리는 곳이었다. 그러니 그런 분들이 활동하시는 곳에 어줍잖은 내 감상 따위를 진짜 리뷰라고 해서 올리면 정말 부끄럽고 죄송한 일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도 나름 내 감상을 올리고 싶었다. 책이나 영화를 보고 진지하게 분석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남들은 쳐다도 안 보는 이상한 부분에 꽂혀서 우와우와 으악으악 하는 나 같은 사람도 어딘가 분명히 있을 거니까. 영화관 근처에 있는 카페에 가면 꼭 그런 인간들이 있다. 멀쩡한 영화 보고 나와서 주인공 얘긴 안 하고 거기 나온 악당이 사실은 얼마나 비감한 인생을 살았을지 토론하는 인간들. 영화에 나온 바보 캐릭터가 알고 보면 바보인 척 하면서 모든 걸 다 뒤에서 조종한 흑막 배후라는 설정이나 그리고 있는 진짜 시간 남아 도는 인간들. 나도 보통은 그런 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내 글을 올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브런치에서 뭘 보고 나를 작가 승인을 해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 제출한 글을 잘 안 읽고 승인해 준 것 같다 – 뭔가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되는 사건도 없었고(곧 생길 수도 있다. 업무시간에 일 안하고 글 쓰는 거 윗사람이 본 것 같으니 7월엔 내 책상 없어질 수도) 감성 따윈 개나 준 지 오래인, 매일매일 입에 욕이나 달고 사는 나 같은 인간도, 괘씸하게도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되었다.
그렇다, 가끔은 나도 말랑하고 싶다. 나도 사실은 감성이 풍부했다! 진짜다! 그런데 세상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다. 아무도 관심 없겠지만 내 얘기를 좀 해 보겠다. 자자, 들어와서 앉아봐. 내가말야 25년째 회사 다니는 회사원이거든. 그래서 브런치에 뭘 쓰고 싶냐고 했을 때 나도 당연히 회사 다니면서 봤던 진상 같은 인간들(참고로 나는 항공사 직원이다 – 승무원 아님)이랑 진상력 만렙인 거래처 인간들 얘기나 잔뜩 쓰려고 했었어. 왜냐면 승무원을 제외하고는 항공사 일반직으로 일하면서 에세이 쓰는 사람 별로 없더라고. 그래서 그런거나 좀 쓰고 잘 쓴 남의 글들 좀 기웃기웃 하면서 내 개소리 기록이나 좀 남기고 그렇게 브런치 운영하려고 했어.
사회생활 하다 보니 말랑함도 감성도 아련함도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나도 한때는 그런 게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작가가 되고 싶었다. 작가가 글 써서 먹고 사는게 얼마나 힘든지 몰랐을 때 나는 내가 어른이 되서 작가가 되면 분위기 좋은 카페나 경치 좋은 어딘가의 도서관 같은 곳에서 예쁜 글을 쓰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처음에 들어간 직장의 일터가 하필이면 공항이었다. 왜냐고? 여행 좋아하고 비행기 타는 것도 좋아했거든. 지금은 여행보다는 집에 있는 게 더 좋고 비행기 타는 것도 싫다. 그렇게 유니폼 입고 쪽머리 한 채로 인천공항에서 발에 물집 잡혀 가며 면세점에서 무아지경이 되서 돌아다니다가 늦게 오는 승객 찾으러 뛰어다니고, 뭐가 맨날 그렇게 건방지다고 ㅈㄹ인지 모를 나이어린 선배들한테 갈굼도 당해보고, 왜 이 비행기가 지연되었는지 설명하다가 싸대기도 맞아볼 뻔 하면서 15년이 넘게 공항에서 일했다. 지금은 오피스근무를 하고 있다. 내가 이 얘기를 왜 하느냐면 나도 직장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갬성이 충만했다는 얘기를 하려고 이렇게 밑밥을 까는 거다.
아, 얘기가 또 옆으로 샜네(자주 샌다). 아무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브런치에 처음 인사를 올리게 되었다는 것이고 미리부터 아무말 대잔치 하게 될거라 죄송하다는 것이다. 반갑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