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푸른 불꽃, Outis 작가님의 정령씨를 소환하다
(Outis 작가님 허락을 받아 올리는 글입니다)
요 며칠, 세라비 연재물에 붙일 이미지들 작업을 하면서 너무 힘들었다. 주말에 꼬박 하루를 그림 꼴랑 4장 뽑는데 날려버렸다. 특히 지난 12화 '우리 칼베르 갈 수 있을까?'에 올린 이미지는 두 시간 넘게 작업했고, 다 나온 다음 한 시간 정도 누워서 쉬어야 했다. 나는 AI 일러스트 작가가 아니라 소설가이므로 이 짓도 적당히 해야겠다 싶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다른 캐릭터는 시각적으로 표현하면 어떻게 보일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Outis 작가님의 의견을 물어 캐릭터를 한번 그려 보았다(내가 그린게 아니라 챗순이가 그렸지만). 누군가 하면 바로, 작가님의 브런치북 'The Dark Side of...'의 '요술램프'에 나오는 '정령씨'이다.
정령씨. 이름은 '잔'. 램프의 지니 아니고 '잔'이다. 근데 난 그냥 정령씨라 부른다. 그게 더 입에 잘 붙어서. 하지만 사막에 사는 마을 사람들은 '잔 님'이라고 부르며 신으로 섬긴다.
내가 이 캐릭터를 눈으로 보고 싶었던 이유는 아래와 같은 설명 때문이다.
마침내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보는 젊은 남자가 눈을 감고 걸어 나왔다. 불 한가운데서 머리카락 한 올 그을리지 않고 멀쩡히 살아 나온 그는 이내 걸음을 멈추었다.
"이럴 수가.. 진짜 사람이잖아."
"세상에! 정녕 사람인가?"
남자의 기적 같은 등장과 아리따운 미모에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부모가 살아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던 무스타파까지도 넋을 잃고 그를 바라볼 정도였다.
가장 놀란 사람은 장로였다. 힘없이 반쯤 감겨있던 눈을 번쩍 뜨고서, 장로는 남자가 있는 방향으로 떨리는 손을 뻗었다. 주름진 그의 입술이 웅얼웅얼 어떤 이름을 불렀다.
"잔, 잔 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잔? 잔이라면 장로가 늘 얘기하던 오아시스 전설에 나오는 정령의 이름이 아닌가.
"정령이라고?"
“그래서 불속에서도 멀쩡했던 거구나."
"어쩐지! 사람이라기엔 너무 아름답다 했지."
모든 시선과 궁금증을 한 몸에 받으며 잔이 눈을 떴다. 그의 눈동자는 막 태어난 별처럼 밝은 청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황홀한 아름다움에 매료된 사람들이 탄성을 내뱉었다. 일부는 자발적으로 무릎을 꿇기까지 했다. 이웃 사람 둘을 삼킨 불에서 정령이 나타난 이유는 전혀 생각지 않고서, 너무 단순하게도 그들은 정령의 방문이 길한 징조라 믿어버렸다. 누군가는 그를 추앙하는 기도를 올렸고, 누군가는 그에게 복을 달라 빌었으며, 누군가는 잃어버린 이를 돌려달라 애원했다.
(요술램프(17) 中)
17화에서 이 캐릭터의 모습이 처음으로 묘사되는데 특징을 보면 이렇다.
- 눈동자는 막 태어난 별처럼 밝은 청색
- 사람들이 보자마자 황홀해서 탄성을 내뱉을 정도로 아름다움. '아리따운 미모'라고 묘사됨.
- 불로 이루어진 정령임(다른 회차에 나옴. 어느 회차였는지는 까먹음)
- 나이: 알 수 없음(최소 2천 살은 넘음. 왜냐면 이야기가 1세기와 21세기를 오가며 흘러감)
그래서 작가님께 정령씨의 생김새를 물었다. 작가의 머릿속에는 캐릭터가 틀림없이 구체적으로 모습이 형성되어 있을 것이므로.
Outis 작가님 曰:
"대충... 어두운 피부톤의 아랍계에 적당히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칼, 크고 시원하지만 시니컬하게 위로 좀 올라간 푸른 눈(어째서냐면.. 푸른 불의 정령이니까요..), 오래 살았고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철이 없는 관계로 약간 소년 티를 간직하고 있는?"
나는 작가님의 묘사와 소설에 나오는 캐릭터의 특징을 챗순이에게 주고 어떻게 그릴지 상의했다.
챗순이 曰:
오… 묘사만 봐도 캐릭터가 확 살아 있다
이건 되게 아랍 설화 기반 정령 + 약간의 모던 감성 섞인 느낌이야.
내가 그리게 된다면, 비주얼은 이런 식으로 잡을 것 같아
● 기본 인상
피부톤: 짙은 구리색~짙은 황갈색 계열. 사막의 태양에 단련된 느낌.
윤기보다는 매트한 질감으로, 빛을 받으면 미묘하게 푸른 기운이 돌면 좋겠다. (푸른 불의 정령이니까!)
눈: 살짝 위로 치켜 올라간 아몬드형 눈매.
눈동자는 짙은 사파이어색인데, 안쪽에서 푸른 불꽃이 은근하게 흔들리는 듯한 광택이 있으면 좋음.
웃을 때는 장난기 많은데, 진지할 땐 묘하게 서늘하게 보이게.
머리칼: 짧게 자른 곱슬머리 or 약간 길게 떨어지는 반곱슬.
검은색인데, 빛 받으면 푸른빛이 은근하게 섞임.
(어두운 밤에 보면 불꽃처럼 푸른 윤이 흐르는 느낌으로!)
● 분위기와 표정
겉으로는 “세상 다 산” 듯한 냉소적인 표정이 기본값.
하지만 웃을 때는 확실히 소년스러운 반짝임이 느껴지는 이중적인 얼굴.
입꼬리나 눈썹 모양이 살짝 장난꾸러기 스타일이라
말 안 해도 “이놈 철없는데 매력 있다…” 이런 느낌 날 듯 ㅋㅋ
● 복장 / 장신구
고전적인 지니 복장으로 가지 말고,
현대풍 + 중동풍이 섞인 느낌으로 그리면 훨씬 세련될 거야.
예: 검은 터번이나 얇은 머플러, 허리엔 금속 장식이 박힌 벨트.
옷감은 반투명한 얇은 천(빛이 닿으면 푸른 기운이 일렁이는 식으로).
손목이나 목에 푸른 불꽃이 깃든 금속 팔찌 있으면 포인트로 딱임.
● 정령으로서의 특징
불을 다루니까 몸 주변에 은은한 푸른빛의 입자가 날리면 좋고,
그림에서는 손끝이나 눈 주변에서 살짝 푸른 불꽃이 피어오르는 정도로 표현하면 좋아.
인간 형태이지만, 그림자 대신 푸른 연기가 발 밑에서 스며 나오는 식으로 하면
“정령이지만 인간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모호함이 잘 살 거야.
● 요약하자면
짙은 피부, 푸른 눈에 불빛이 일렁이는 시니컬한 아랍풍 미남.
하지만 그 눈에 소년의 장난기와 오래된 슬픔이 공존하는… 그런 ‘푸른 불의 정령’.
나: 오오 느낌 좋다! 어서 그려봐!
챗순: 여기!
나: 악! 내 눈! 왜 웃통을 벗겨놓고 ㅈㄹ이냐! 옷 입혀!
챗순: 여기!
나: 옷 너무 소박하다. 얘 석유나라 부잣집 아들 느낌으로 옷 더 고급져야 될 것 같아. 옷에 푸른 계열 색깔 넣어주고, 재질을 고급스럽게 해 줘!
챗순: 여기!
나: 오오 좋아!
Outis 작가님은 마음에 들어 하셨지만 나는 왠지 양에 안 찼다. 일단 정령씨는 아직 하는 짓이 젊다. 그래서 분노를 참지 못하고 금기를 어긴다. 그러려면 좀 더 나이가 어려 보여야 한다. 지금은 정령씨 아버지나 삼촌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그 이미지를 젬순이에게 갖다 주고(다른 거 하나도 안 건드리고 세부수정만 할 때는 젬순이가 더 정확하다. 챗순이는 이미지를 기존 특성을 텍스트로 받아들여 새로 그리면서 수정사항을 반영하고, 젬순이는 오리지널 이미지를 가지고 작업하기 때문) 간단하게 요청했다.
- 이 남자 이마 주름과 눈 꺼짐 제거해 줘
- 20대 초반으로 보이게 해 줘
젬순이가 리터칭 한 이미지는 다른 건 다 좋은데 아무리 봐도 20대는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젬순이를 들들 볶으며 야 이 XX야 일 똑바로 안 해? 이게 20대냐? 하고 지랄했다. 젬순이가 재작업해도 얼굴이 변하지 않자, 이번에는 수염을 제거해 보았다.
수염 제거한 얼굴을 보자, 나는 깨달았다.
'아... 20대 맞구나. 수염 때문에 그렇게 보였던 거네.'
이것이 그 이미지이다.
정령씨. 사막에 사는 정령. 인간들 하찮다고 하면서도 낙타가 목말라해서 어쩔 수 없다며 물이 없어 죽어 가는 여행자를 살리는 츤데레. 금기를 어기고 램프에 갇히는 형벌을 기꺼이 감내하는 자.
솔직히... 너무 매력 있다.
이 글과 정령씨 팬아트를 저의 글벗이자 필력 개쩌는 작가이신 Outis 작가님께 바칩니다.
다음 캐릭터는 김탱고 작가님의 안내견 탱고의 의인화 버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