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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됐지만, 정상영업합니다

무너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기분 탓입니다

by 마봉 드 포레

그날도 나는 의사 앞에서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속으로는 정신과 의사도 참 못할 짓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다니는 정신과 의사쌤은 백 미터만 걸어도 기나 도에 관심 있냐는 사람이 3명은 달라붙을 것 같은 선한, 그러나 믿음직스러운 얼굴에 황소 눈망울을 하고 있는 분이다. 지금은 이 척박한 동네에도 정신과 병원이 몇 개 더 생겼지만, 내가 다니기 시작했을 때에는 이 동네에 여기 하나뿐이었다.


그렇다면 병원이 몇 개 더 생긴 지금은 환자들이 분산돼서 좀 더 널럴하게 병원을 다닐 수 있어야 하는데, 최근에 재진을 위해 병원에 전화를 해보니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전에도 이 병원은 미성년자만 예약을 받고 나머지는 다 오픈런으로 운영했었다. 아침에 병원 문 밖에 대기명단을 걸어놓으면 좀비처럼 병원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앞다투어 달려와 이름을 적는다. 9시가 되기 전에 이미 그날 진료 접수 대기명단은 꽉 찬다. 나머지는 기다려 봐야 소용이 없으니 다른 날 와야 한다.


2년 만에 재진을 위해 전화를 했더니, 이제 대기명단을 당일 아침이 아니라 전날 저녁 6시 반에 걸어놓는다고 했다. 2025년에 온라인 예약이 아니라 전날 저녁부터 종이에 대기명단 작성이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하지만 정신과에 오는 환자들이 다 온라인 예약에 능한 것은 아니다. 우울증 환자만 올 것 같지만 ADHD, 치매, 알코올중독, 청소년 상담 등 환자 양상도 다양하다. 아무튼 오랜만에 다시 오는 환자는 무조건 진료를 봐야 하니, 나도 전날 저녁에 병원 복도에서 기다려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혹시나 해서 다른 병원은 어떤가 하고 전화를 돌려 보니 아이구 여기들은 더 기가 막히다. 초진은 무조건 예약하셔야 해요, 검사도 있고요. 지금 예약하시면 가장 빠른 날이 1월 23일...


...헐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람. 이 동네에 정신과 진료가 필요한 사람이 그렇게 많나? 정신과는 진료 특성상 1명당 진료 시간이 길다. 시간이 길다는 것은 답답해할 일이 아니라 그 정도로 섬세하게 환자를 봐준다는 소리니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 이 병원은 뭐 명절 전 방앗간에서 떡가래 뽑듯이 환자 쑥쑥 뽑아내고 돈 벌고 싶지 않겠어?


내가 다니는 병원 의사쌤 얘기로 다시 돌아가서, 의사쌤은 내가 책상 위의 크리넥스를 뽑아 가며 울고불고 코 풀고 하는 동안 룬 문자(Runes. 2세기-8세기에 북유럽과 게르만족이 사용하던 문자) 같은 글자로 내 진료차트에 뭔가 열심히 적고 있었다. '이 환자 완전 돌았음', '이 환자 내일이면 아파트에서 뛰어내릴 각', 혹은 '더럽게 징징거리네'라고 쓰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항공사 직원들이 진상 손님 핸들링 결과를 예약 리마크상에 축약어 섞어가면서 표시하듯이. 아니면 그냥 속기일지도 모른다.


그날 내가 의사쌤의 크리넥스를 여러 장 뽑아야만 했던 것은 대단한 일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냥 어두운 옛날 얘기를 하다 보니 억울하고 원통했기 때문이었다. 청소년 시절에 소소하게 몇 대 얻어맞거나 공부 잘하고 대학 잘 간 형제자매들과 나 자신을 비교하거나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하거나 하는 일들은 어디 말할 만한 일도 못 된다. 그 이외에는 큰 어려움 없이 살아왔으므로 사실 우울증도 걸리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큰맘 먹고 처음으로 정신과 병원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남들에 비해 너무 할 얘기가 없는데 어쩌지? 하고 걱정하기조차 했다.


하지만 담배를 안 피워도 폐암에 걸릴 수 있듯이,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지 않아도 우울증에 걸릴 수 있는 법이다. 많은 성공한 사람들이 우울증으로 그 많은 재산과 그 사람만 바라보는 수많은 지인들과 팬들을 뒤로하고 목숨을 끊는다. 오히려 살면서 단 한 번도 영화를 누려보지 못한 사람들이 몸만 겨우 누일 수 있는 방에서 겨울엔 전기장판, 여름엔 선풍기로 이 독한 한반도의 사계절(아니 이젠 2 계절)을 버티면서 자연사할 때까지 살아간다. 어느 쪽이 더 불행한지는 나도 모르겠다. 불행은 배틀 붙이라고 있는 게 아니므로.


아무튼 원인은 모르겠고 난 증상이 있으므로, 나는 그날도 너무나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내 얘기를 다 들어주고 있는 의사쌤에게 살다 살다 처음으로 온갖 얘기를 다 늘어놓고, 대기실에 사람이 앉아 기다릴 자리도 없을 만큼 가득가득한 것을 생각하며 내가 빨리 일어나야 뒷사람이 오래 안 기다리지, 생각하며 적당히 얘기를 마무리 지었다. 다른 환자들 대기시간까지 생각해 주는 착한 환자라고 딱히 진료비를 깎아 주지는 않았지만, 나는 병원 이름이 적힌 약 봉투를 받아갖고 나오면서 왠지 이 약만 먹으면 이제 괜찮아질 거라는 기대감에 희망차게 병원을 나설 수 있었다. 물론 혹시라도 식구들이나 회사에서 내 가방 위로 삐져나온 정신과 병원 이름이 적힌 약봉투를 발견하면 곤란해질 것을 우려하여 봉투는 잘게 찢어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써내려 가니 마치 내가 우울증도 매우 즐겁게 받아들이고 우울증 약도 무슨 사탕 받아 오듯이 갖고 와서 먹는 것 같이 들릴 수도 있는데, 글쎄 나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하고 싶은 게 없고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매우 무기력한 상태이다. 그래도 이런 개소리라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게 다행일 정도다. 그러니 '개그 판타지 작가'라고 간판까지 걸어 놓고 우울증 얘기를 써갈겨 놓는 모순을 보여줌으로써 말랑말랑 아련아련, 내 마음도 민들레 홀씨되어 날아가고 싶은 글만 가득한 브런치의 감성과 감정을 강요하는 글들 사이에서 썩은 내를 풍기며 민들레 홀씨 대신 곰팡이 포자를 날려 보낼지라도, 이렇게 해서라도 저 이상한 인간이 조금이라도 의욕 같은 것이 생겨 세상에 민폐를 조금 덜 끼칠 수 있다면 다행이라 여겨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다시 의사 얘기로 돌아가서.


그날은 내가 오전 진료 마지막 환자였다. 간호사들은 점심 먹으러 자리를 비웠고, 나는 병원 나서기 전에 보부상 같은 가방을 정리하느라 잠깐 대기실에서 부시럭거리며 앉아있었다. 그때 의사가 진료실 문을 닫더니 갑자기 음악을 있는 대로 크게 틀었다. 그것도 웬 힙합을. 산속에서 저 하늘에 떠가는 구름이나 새들하고만 얘기할 것 같은 순박하게 생긴 양반이 갑자기 진료실이 홍대 클럽이라도 되는 것처럼 크게 힙합 틀어놓고 휴식을 취하다니 이런 뜻밖의 면이 있나. 설마 생긴 거와는 달리 정신과 계의 팝핀현준이라던가?


'저 의사쌤은 자기가 받는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까?(설마 진료실 안에서 댄스?)'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나는 병원을 나왔다. 뭔 놈의 남 걱정이람. 정형외과 의사도 자기 허리 아프면 셀프 주사라도 놓고, 정신과 의사도 자기 정신 아프면 다른 의사한테 상담 받던가 하겠지 뭐. 지가 아픈 주제에 오지랖은. 그러고 보면 전에 안과병원 갔을 때도 환자가 정말 징그러울 정도로 많았는데 그래서인지 의사 얼굴이 아주 피로에 쩔어 보여서 내 눈알 사진 대신 의사 안색이나 살피고 있었다. 남 걱정 하지 말고 나나 잘하자. 내가 지금 누굴 걱정해.


하지만 몇 년 후인 지금 나는 다시 그 힙합 틀고 휴식 취하는 황소 눈망울의 의사를 다시 찾아가야 한다. 이번에는 약 내 맘대로 끊지 말아야지. 세상에 아픈 사람은 많지만 다 죽지는 않는다. 이번에도 약 잘 먹어 봐야겠다.


'마봉식당 정상영업합니다'라는 현수막이 걸린 다 무너진 집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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