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소년의 눈에는 보였다
《세라비: 장하다 라를르의 딸》은 장편 소설입니다.
◆ 캐릭터 소개
◆ 처음 오신 분은 1화부터 읽어 주세요.
세라비는 플로르를 보고 너무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왕자만 혼자 브레스부르에 두고 와서 항상 마음에 걸렸었는데, 다행히도 왕자는 매우 건강해 보였다. 세라비는 페르카 원장의 안부를 묻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묻고 들려주며 오랜만에 네 사람이 모두 모인 시끄러운 시간을 보냈다.
“폐하께서 왕자님이 오시면 어디를 보여드릴지 미리 둘러보자고 하셨답니다.”
세라비의 말에 플로르는 ‘내가 파렌베르크 궁에 여러 번 온 건 폐하도 잘 아실 텐데, 그동안 뭔가 달라진 곳이 있나?’하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미리 궁을 돌아보게 하며 준비를 했다는 말에 플로르는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옆에서는 레이첵이 레이한테 자기 없는 동안 분명히 기록을 대신해 주겠다고 약속해 놓고 왜 아무것도 안 적어놨냐면서 시끄럽게 항의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제가 여기 남고 레이 형님을 브레스부르로 보냈죠! 분명히 뭐든지 다 기록해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아 글쎄 진짜 별거 없었다니까요! 식사나 몇 번 하는 정도였어요.”
“그럼 그동안 뭐 하셨는데요?”
“왕자님이랑 세르비카 군 기다리면서 마법 연구도 하고 세계 평화랑 나라 걱정도 하고…”하고 레이는 플로르 왕자 쪽을 흘끗 쳐다보면서 말했다. “왕자님 오시면 같이 돌아보려고 왕궁도 돌아봤죠.”
‘아, 그냥 다 같이 왕궁 한번 돌아본 거구나.’ 플로르 왕자는 약간의 서운함과 왠지 모를 불안감을 가슴속에 눌러 담으며 생각했다.
이카리아 왕자의 방문을 환영하는 의미로 그날 저녁에는 왕궁 서관의 연회실에서 게로스와 총리대신인 앙투안 마르시에, 코린과 세드릭, 그리고 다른 볼일로 파렌베르크에 와 있던 게로스의 오촌 숙부 발렌도르 대공 오귀스트와 아나이스 대공비가 이들을 맞이했다. 팔레 에클라에 손님이 오면 어머니인 플로렌틴 왕비가 맡았던 역할을 알고 있던 플로르 왕자는 게로스가 보통 왕비나 왕실의 여자 어른이 총괄하는 의전이나 외빈 접대까지 모두 직접 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에 플로르 왕자가 방문했을 때에는 게로스의 할머니인 선왕비가 그 역할을 하고 있었고, 마지막으로 파렌베르크를 방문했을 때에는 선왕비가 쇠약해져 지금 같이 식사 중인 아나이스 대공비가 임시로 대신하고 있었다. 왕궁 내부의 사교나 접대에 대해 익숙지 않은 세라비나 레이는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겠지만 플로르의 눈에는 보였다. 파렌베르크 궁에는 지금 내궁 업무를 해줄 사람이 없었다.
‘그냥도 엄청 바빠 보이는데, 내궁 업무까지 다 직접 하면 정말 잠잘 시간도 부족할 텐데…’하고 플로르는 생각했다. 실제로, 게로스가 그들과 식사 중일 때만 빼고, 서관으로 걸어가는 도중이나 식사가 끝나고 수정 테라스로 차를 마시러 가는 도중에조차도 계속해서 여러 사람이 다가와 게로스에게 무언가를 묻고 허락을 받고 갔다. 걸어 다니고 있어도 모든 곳이 집무실이나 다름없네, 라고 플로르는 생각했다.
플로르는 대체로 한가해 보이던 아버지 마르셀 왕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왕은 원래 저런 자리가 맞다, 라고 그는 생각했다. 아버지가 좋은 왕이 아닌 것은 플로르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아버지는 실제로 아무 일도 안 했고 세라비의 삼촌이자 레이첵의 아버지인 세르비카 경이 조용히 그 일을 대신하고 있었다.
플로르는 게로스가 지치거나 피곤해 보이는 기색 없이 그 모든 것을 하는 것을 보며 조용히 자신이 왕이 된 모습을 상상했다. 그도 저런 왕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플로르는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성정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아버지 같은 왕이 안 되고 게로스 같은 왕이 될 수 있을지 플로르는 알 수가 없었다.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에 잠겨 식사를 하던 플로르는 다시금 묘한 위화감 - 세라비가 “폐하께서 왕자님이 오시면 어디를 보여드릴지 미리 둘러보자고 하셨답니다.”라고 했을 때 이상하게 마음 한 켠에 눌러앉았던 살짝 불쾌한 기분 - 을 느꼈다.
그는 항상 게로스만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에 게로스가 어디를 보고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짓는지 미세한 것까지 놓치지 않고 보고 있었다. 그날 테이블에 앉은 사람은 10명이나 되었기 때문에 게로스는 상대해야 할 사람이 많았다. 그 식사는 오늘 도착한 이카리아의 왕자 플로르를 위한 자리였기 때문에 게로스는 특별히 플로르가 음식은 잘 맞는지, 브레스부르에서 며칠이나 마차를 타고 오느라 피곤할 텐데 뤼미에르관은 편안한지, 푹 쉬었는지 등등 세심하게 챙기면서도 동시에 오랜만에 수도에 올라온 대공 부부도 대화에서 소외되지 않게 배려하고 있었다. 이미 여러 번 식사를 같이 한 듯한 세라비나 레이, 그리고 굳이 말 시키지 않아도 뭔가 적느라 정신이 없는 레이첵 등은 게로스도 굳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플로르 - 사랑에 빠진 소년의 눈에는 게로스가 말을 굳이 시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시선을 어디론가 주고 있는 것이 보였다.
‘폐하가 세르비카 양을 자꾸 쳐다보네.’
플로르 왕자는 게로스가, 오늘따라 감사하게도 게로스가 말을 안 시키는 바람에 음식에만 오롯이 집중하며 이것저것 맛있다고 열심히 먹고 있는 세라비 쪽을, 다른 사람과 대화할 때만 제외하고(그는 대화 중인 상대에게는 대화가 끝날 때까지 미소를 지은 채 상대방의 눈을 보며 말했다. 마치 당신과의 대화 말고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은근하게 슬쩍슬쩍 뭐 하는지 쳐다보는 것을 확실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너무 잘 먹어서 그런가? 젊은 여자분이 식탁에서 저렇게 대놓고 잘 먹는 건 확실히 보기 힘들긴 하지.’ 이제까지 여행하면서 세라비와 옥수수죽이나 구운 감자나 고구마 같은 것을 나눠먹으며 함께 했던 플로르는 세라비가 뭐든지 잘 먹는다는 것을 굳이 이상하게 여길 기회가 없었다. 산을 넘을 때는 뭐든지 다 맛있었고 빨리 먹고 움직여야 했으므로 예절 따위 챙길 일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자리에서 보니 세라비는 우아한 척하려고 노력은 하는 것 같지만 아무튼 신나게 잘 먹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대공 부부는 피곤하다며 쉬러 돌아갔고, 총리대신도 내일 아침 일찍부터 일정이 있어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떴다. 플로르는 게로스를 따라 수정 테라스로 걸음을 옮겼다. 수정 테라스는 보통 게로스가 자주 보는 신하들과 차를 마시는 장소로(보통 그들이 야근할 때 잠 깨고 더 일하라며 데리고 왔다) 손님을 맞이하는 곳은 아니었기 때문에 플로르는 ‘아, 폐하가 나에게 보여주려고 돌아보게 했다는 장소가 혹시 여긴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 여기를 다시 오다니 여러 가지가 생각나네요.”하고 세라비와 레이와 레이첵이 뒤에서 떠들어대는 것을 들으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왜요? 여기가 특별한 장소인가요?” 플로르가 물었다.
“저희가 처음에 여기로 벽을 타고 올라와서 폐하를 뵈었거든요.” 세라비가 말했다.
“벽이요?” 플로르가 놀라서 되물었다.
“신분을 밝히고 들어올 수가 없었거든요.” 레이가 말했다.
플로르 왕자는 이들이 문 앞에서 이카리아 사신이라고 신분을 밝히고 들어올 수는 없었겠다고 인정은 하면서도, 벽을 타고 올라와 갑자기 나타났던 그 모습을 상상하곤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마 칼베르 외교사에 길이 남을 대 사건 중 하나일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이윽고 수정 테라스의 티 테이블에 앉은 세라비는 “어머나! 에클레르가 이렇게 많이…!”하고 감탄했다. 테이블 가운데에 과일을 얹거나 여러 가지 크림을 짜 올린 여러 종류의 에클레르가 가득 쌓여 있었던 것이다.
세라비는 게로스가 며칠 전 오스틴 대사와의 회담 결과를 알려주러 뤼미에르관에 찾아왔던 날을 기억하고 일부러 에클레르를 많이 갖다 놓게 한 것을 깨달았다.
‘의외로 섬세하신 분이네.’ 세라비는 게로스가 아직 무섭긴 했지만 좋은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종류가 너무 많다. 혹시 플로르 왕자님도 에클레르를 좋아하시나?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엄청나게 쌓아놓을 리가 없지. 역시 에클레르는 남녀노소 안 가리고 다들 좋아하나 보네!’
게로스는 세라비가 에클레르를 보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매우 뿌듯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세라비를 보고 있는 모습을 플로르는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으로 지켜보았다.
◆ Illustrations by Mabon de Forêt(AI-assis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