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수명은 사원증의 유효기간보다 짧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당시 재직중이던 회사의 상사가 돌아가셨던 날 쓴 글입니다.
생각해보니 그집 아들 이제 20대 후반이겠네요. 잘 살고 있길...
오늘 오전, 회사 상사였던 그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 이제 다시는 그분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퇴근하기 전, 부조 넣을 봉투를 찾으려고 사무실 캐비닛을 뒤지다가 옛날 옛적에 아직 내가 이 회사 들어오기도 전에 그분이 만들어놓으신 파일을 발견했다. 겉에 이니셜이 써 있어서 어라? 하고 열어본 파일 안에는 아직도 생생한, 그분이 여기저기에 메모를 해놓으신 회람지와 프린트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다른 캐비닛에서는 사진이 박혀있는 그분의 사원증도 발견했다. 회사 창립 초반에 만든 것으로 유효기간이 올해 10월까지로 되어 있었다. 사원증의 유효기간까지도 못 사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착잡했다.
사람은 죽어도, 프린트물과 사원증은 남는다. 사원증은 그댁 식구들께 전해 드릴까 하다가 나는 그분하고 별로 가까운 직원도 아니어서 그냥 사무실 책상에 올려 놓았다. 누군가 친한 분이 전해 드리겠지.
장례식장에 가니 그분하고 똑닮은 꼬마가 "이모 친구에요?" 하고 물었다. 핸드폰 바탕화면 사진으로 보여 주시던 그집 꼬마다. 우리가 그집 처제 나이랑 비슷해서 이모 친구인줄 알았나보다. 장난감을 갖고 돌아다니면서 놀던 꼬마는 영정 앞에 까치발을 하고 그분이 자주 드시던 사탕을 올려놓았다. "아빠가 좋아하는 사탕!" 하면서.
어른들이 다 바빠서 꼬마는 장난감을 들고 혼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놀다가 사이다를 마시러 왔다. 자세히 보니 꼬맹이는 아빠 얼굴도 닮았고, 걸음걸이도 닮았고, 말투는 거의 똑같았다. 똘방똘방하고 재치있는 아이로, 크면 진짜로 아빠하고 똑같아질 것 같았다.
영정 사진은 너무 편안하게 미소짓고 있는 얼굴이었다. 아직 실감이 나지 않긴 하지만 그리운 마음이 왈칵 솟았다. 보고 싶을거다. 다들 너무 보고 싶어할 거에요. 말투며 표정이며 글씨체까지 너무 생생해서, 보내드려야 한다는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만화 백귀야행에 이런 말이 있었던것 같다. "우리가 죽은 사람들을 그리워하듯, 그들도 우리를 그리워한다." 극락이든 무릉도원이든 천국이든 뭐든 좋으니까 죽은 후에도 다시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장소를 확실히 제공해 준다면 뭐든 무슨 종교든 믿겠다. 그리고 뭐가 또 나올지 모르니 캐비닛 뒤져서 뭐 찾는 일은 그만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