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반숙에 실패했다

중식 봉사, 그리고 계란후라이... 그 깊은 의미와 철학에 대하여

by 마봉 드 포레

발바닥 신자, 주일 중식 봉사에 참여하다

성당 구역장님한테 이번 주 주일 중식 봉사에 와 달라고 부탁하는 문자가 왔다. 다른 성당들도 많이들 하지만 우리 본당도 주일에 구역별로 돌아가면서 중식 봉사를 한다. 메뉴는 구역장님 맘이고 가격은 일괄적으로 3천 원을 받는다. 주일 11시 미사가 끝날 때쯤 신부님이 주보 뒷면의 공지사항을 읽어주시는데 거기에 메뉴가 공개된다. 가끔은 자부심으로 가득한 구역에서 올린 대로 "돌아온 김셰프!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바로 그 전설의 짬뽕밥" 같은 문구도 읽어 주시곤 한다.


나는 주일에 미사만 왔다갔다하고 아무런 봉사를 안 하는 소위 말하는 '발바닥 신자'다. 그런 나에게까지 와달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일손이 매우 부족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내가 살림을 안 하다 보니 요리도 못하고 할 줄 아는 것도 없어서 망설이자 구역장님은 "와서 설거지라도 해주세요."라고 하셨다.


설거지라면 내가 좀 하는 편이다. 솔직히 식세기보다 잘한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야말로 나의 특기를 보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8시 미사 끝난 다음 바로 주방으로 달려갔다.


구역장님은 자기도 요리 잘 못한다며 맛에 신경 안 써도 되게 비빔밥이나 하자고 하셨다. 이미 고수로 보이는 주부 자매님들이 자리를 잡고 일을 하고 있었다. 이분들은 실제 요리 담당으로 메인 인력이다. 나 같은 것이 알짱거리면서 동선에 방해가 되면 안 된다. 나같이 할 줄 아는 거 없는 일꾼 자매 1과 나는 저기 방해 안 되는 구석으로 가서 애호박 한 다라를 반달 모양으로 썰기 시작했다.


일꾼 자매 1은 첫마디로 나이부터 물어보았다. 자기가 나보다 나이가 두 살 위라는 걸 알고 나서 자매님은 그다음부터 뭐가 그렇게 할 얘기가 많은지 이런저런 얘기를 시작했다. 시댁 얘기에 다른 자매님 활동 얘기에(누군지도 모른다) TV 얘기에... 주변은 시끄럽고 알아듣기도 힘들고 대답할 기운도 없어 대충 맞장구치면서 호박을 써는 일에 정말 집중하는 척했다. 칼질 그다지 잘 못하는 내가 오늘만큼은 서부의 칼잡이가 되어 혼신의 힘을 다 해 초고속으로 호박을 썰었다.


호박을 다 썰어 고수님들께 볶아달라고 가져다 드리자 이번에는 부루스타가 테이블마다 놓였다. 구역장님이 계란 9판을 가지고 오셔서 다 부치라고 했다.


계란... 그 깊은 의미와 철학에 대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요리 위에 올라가는 계란은 매우 그 의미가 깊고 엄숙하다. 일단 냉면이나 쫄면을 남과 나눠 먹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반쪽만 들어가 있는 삶은 계란을 누가 먹을 것이냐를 가지고 두 사람이 첫 젓가락을 뜨는 그 순간부터 신경전이 계속된다. 서로 양보하지만 이게 예의상 하는 양보인지 진심인지 알 수가 없다. 결국 못 이기는 척하고 먼저 집는 사람이 최후의 승자가 된다.


뿐만 아니라, 나처럼 간짜장 원리주의자들은 간짜장에 계란후라이를 얹어주는 집을 기억했다가 다음에 또 찾곤 한다. 요새는 간짜장에 계란후라이를 안 얹어주지만, 가끔 클래식한 주인장이 있는 중국집들은 간짜장에 계란후라이를 얹어주어 내면의 노스탤지어를 표현하곤 한다. 그런 집들은 한번 더 가 줘야 한다.


한국인의 소울푸드인 라면은 또 어떠한가. 친구랑 먹으려고 라면 끓이다가 계란을 생각 없이 휘휘 저어 풀어버리는 사람은 영문도 모르고 친구에게 손절당하기 일쑤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이 비빔밥에 올라가는 계란후라이도 그 의미가 매우 크다. 비빔밥에 아무리 훌륭한 나물이 올라가 있다 하더라도 계란후라이가 없으면 완성되지 않는다. 돌솥비빔밥에는 마지막에 날계란 노른자를 톡 까서 얹어주면 되지만 일반 비빔밥에 올라가는 계란은 특별한 스킬이 필요하다. 일반 비빔밥에 올라가는 계란후라이를 하는 자는 그 익힘에 있어서 철학과 순발력과 섬세함이 필요하며 심지어 여러 개의 계란을 동시에 익히는 중이라면 절대적인 멀티태스킹 능력이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절! 대! 완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덜 익혀 터지고 죄다 흘러내리면 안 된다. 위에 얹었을 때 노른자는 탱글탱글 살아있으되 젓가락으로 콕 눌렀을 때 1/3은 익은 상태로 나머지 2/3이 살며시 흘러내려야 한다.


처음에 다 터뜨려 앞뒤로 완숙 부친 계란후라이가 몇 개 나오자, 자매님들이 "이건 우리나 먹어야겠다."라고 하셨다. 순식간에 우리나 먹어야 할 계란후라이들이 수십 개가 쌓이자 누군가 나와서 뭐라고 한 마디 했다. 프라이팬 앞에 선 자들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기름을 넉넉하게 두르기 시작했다. 이제 제대로 된 계란후라이들이 차곡차곡 쟁반에 놓였다.


배식의 길

본격적인 배식 준비가 시작되었다. 테이블마다 김치 그릇을 돌렸다. 위층에서 '하느님의 어린양' 노래가 나오자(거의 끝나간다는 뜻이다) 최고참 자매님이 "빨리 우리 먼저 밥 먹자"라고 하셨다. 다 같이 비빔밥 한 그릇씩을 앞에 두고 앉았다.


이미 몸이 너무 힘들어서 머슴처럼 고봉밥을 먹고 싶었는데 다들 소식하시는지 얌전하게도 퍼 주었다. 망친 계란이 봉사자 수보다 분명히 더 많을 텐데 계란후라이도 딱 하나만 얹어주었다. 매우 빈정상했다. 그러나 기분 나빠할 시간이 없었다. 재빨리 먹고 치운 다음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에 각자 포지션에 서야 했다.


설거지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당연히 내가 설거지를 하려고 했는데 이미 설거지통 앞에 사람이 다 서 있었다. 나 그럼 뭐 하지? 근데 그런 걱정할 새도 없었다. 쟁반하고 그릇 더 달라는 거 갖다 주기만도 바빴다. 여기저기서 밥 떨어졌어요! 냉국 좀 더 주세요! 고추장 어딨어요! 여기 계란 좀! 이런 소리들로 아우성이었다.


쉴 새 없이 들어오던 중식 줄이 드디어 끝났다. 밥 푸던 사람도 주걱을 내려놓았다. 이제 치우면 되나?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할아버지들 십여 명이 나타났다. 냉장고에 넣었던 김치를 도로 꺼냈다. 어르신들은 여기 성당이고 지금 대낮인데 막걸리까지 드시기 시작했다. 모자랄까 봐서 배식을 어찌나 칼같이 했던지 계란부침도 남고 반찬도 남았다. 나도 한 개밖에 못 먹은 계란을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에게 후하게 마구 나눠주었다. 막걸리 드시던 어르신들은 계란후라이를 잔뜩 갖다 주자 매우 좋아하셨다. 막걸리 잔이 쉴 새 없이 오갔다. 집에는 어떻게들 가셨는지 모르겠다.


설거지의 쓰나미... 그리고 마무리

폭풍 같은 설거지의 쓰나미가 몰아닥쳤다. 뒷정리할 때는 아저씨들도 투입되었다. 씻어야 할 통들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안 하던 거 여기선 왜 이렇게 잘하냐고 남편 구박하는 자매님도 있었다. "당신은 이제부터 집에서도 설거지 담당이오!" 하는 소리와 아니~ 내가 뭘 얼마나 안 했다고 그래~ 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다 같이 아무리 씻고 씻어도 끝나지 않는 설거지를 하고 음쓰 버리고 바닥 물청소까지 하고 나니 구역장님이 너무들 고생하셨다며 남은 비빔밥 재료를 싸서 하나씩 나눠주셨다. 내가 받은 봉지를 보니 두 끼 정도는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에 젖을까 봐 운동화 안 신고 굽 없는 샌들을 신은 나를 매우 치고 싶었다. 아줌마들이 왜 다 운동화를 신고 왔는지 이해했다. 발이 너무 아파서 절뚝거리면서 집으로 가다 발이 미끄러져 스벅에 가서 벤티사이즈 아아를 시켜 쭈압 빨았다. 아 조금 살 것 같다. 몽롱하던 정신이 조금씩 돌아온다. 아직 따뜻한 밥과 나물반찬을 바라보니 내가 같이 만든 거라 그런지(재료만 썰었을지라도)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보인다. 집에 가서 이거 다 퍼담고 계란 두 개 반숙으로 부쳐서 저녁밥으로 먹어야지!


그러나 이날 이후 구역장님은 나를 다시 중식 봉사에 부르지 않으셨다. 생각보다 별 도움이 안 된 모양이었다. 아니면 나의 계란 철학에 반대하시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오라고 해도 솔직히 아직까지는 자신이 없다. 언젠가 더 빠른 손길로 계란 10개를 반숙으로 부칠 수 있는 그날이 오면, 내가 먼저 문자를 드릴 생각이다.


이 따위 망나니 같은 글을 감성 SF로 오마주한 김경훈 작가님의 글도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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