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과 폭력을 딛고 90세까지 노래한 여자, 엘자 소아레스
오래전부터 얘기하고 싶었던 엘자, 샹송 가수 엘자(Elsa) 말고 나의 또 다른 엘자에 대한 글을 드디어 쓴다. 엘자 소아레스(Elza Soares).
엘자 소아레스는 삼바 음악 팬들에게는 유명하지만 국내에서는 약간 생소한 이름이다. 애초에 삼바라는 장르 자체가 카니발 이미지로만 소비되고 음악 장르로 깊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엘자는 입문용으로조차 잘 언급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아마 월드 뮤직 팬들, 재즈 팬들, 여성이나 흑인 음악사 관심 있는 사람 정도나 엘자 소아레스를 알 것으로 생각된다.
엘자는 1930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흑인 소녀였고 12살에 아버지의 권유에 의해 결혼해서 14살에 이미 아이 엄마가 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나이로 환산한다면 중학교 2학년, 3학년 때 이미 애를 낳은 것이다. 말이 좋아 아버지의 권유지 1940년대 브라질 빈민가에서는 극심한 빈곤으로 인해 십 대 초반밖에 안 된 여자아이들도 돈에 팔려나가듯이 결혼을 했다.
2026년 오늘날에도 이 '아동 조혼(child marriage)'의 관행은 인도, 방글라데시, 중동 일부 지역,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조혼 비율 세계 최고)에서는 여전히 흔해 빠진 일이다. 여자아이들은 빈곤 속에서 가장 먼저 교육의 기회를 차단당하고, 경제적으로 종속되며, 미성년 결혼을 금지하는 법이 있든 말든 돈 몇 푼에 팔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아내가 되며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몸으로 아이를 낳고 일자무식인 채로 육아와 노동을 하다가 마치 태어나지도 않았던 것처럼 죽는다.
엘자도 그런 어린 애엄마 중 하나였다. 엘자가 1953년 라디오 오디션에 나가 노래를 부른 것은 스타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아픈 아이의 약값을 벌기 위해서였다. 남편은 이미 사망하고 아이들만 딸린 극빈층 여성 - 아이가 몇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명의 아이들을 낳았고 그중 여러 명이 이미 죽고 없었다. 엘자는 오디션에서 자신의 남루한 옷차림(너덜너덜한 옷, 맨발에 가까운 차림)을 보고 "대체 어느 별에서 왔느냐(De que planeta você veio?)"고 비웃는 사회자(브라질의 전설적인 작곡가이자 방송인인 아리 바호주(Ary Barroso)에게 "배고픔의 별(Planeta Fome)에서 왔죠." 하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거기서 아일스 샤비스(Aylce Chaves)의 노래 'Lama(진흙, 진창, 수렁이라는 뜻 - 부른 노래조차 심상치 않음)'를 불러 최종 우승을 해서 진짜 자기 말대로 스타가 되었다.
엘자는 굶주림에서 벗어나고, 노래로 먹고살게 되었다. 그러나 가난한 흑인 여성에 거친 목소리, 하나도 안 얌전한 태도로 엘자는 인기도 많았지만 공격도 같이 받는 스타가 되었다. 얼굴도 안 이쁘고 거친 인상이라 대중이 원하는 삼바 디바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아름다운 여자 가수'가 되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그 못생긴 얼굴로 무대를 압도했다.
엘자가 브라질의 국민 배우이자 감독이자 제작자인 아마시우 마차로피의 1965년 영화 「O Puritano da Rua Augusta」(아우구스타 거리의 청교도)의 노래하는 가수 역할로 잠깐 출연한 이 동영상을 보면 못생겼지만 귀엽고 상큼하고 매력있고 끼도 넘친다(일단 무대에 섰다 하면 몸이 먼저 반응하는 타입인것 같다).
스타가 된 엘자는 브라질 축구의 신화인 가린샤(Garrincha - 폭력, 알코올, 여성편력 삼박자 다 갖춘 개새끼)와 사랑에 빠져 공개 연인이 되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새끼는 엘자랑 사귈 때 이미 처자식이 있는 상태였다. 언론은 모든 비난을 이미 문제녀 이미지의 엘자에게 덮어씌웠다. 남의 가정을 망친 여자라고. 엘자는 국민적 마녀사냥의 대상이 되었다. 1960년대에 이미 화려했던 축구 스타와 사회적 안전망이 하나도 없는 가수 사이에서 브라질 사회가 누구의 편이 되었을지는 뻔한 일이다.
후에 엘자는 인터뷰에서 "나는 그가 유부남이었다는 것을 몰랐다고 말한 적은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또한 "하지만 그 관계에서 내가 선택권을 쥐고 있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사랑이면서 동시에 감옥이었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대가는 엘자가 홀로 치러야 했다.
이 시기 엘자의 삶은 폭력(가린샤한테 계속 맞고 살았다), 술, 아이의 죽음이 겹쳐져 완전히 붕괴 상태였다. 가린샤는 무너지고, 엘자는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고립되었다. 한때 스타였던 엘자는 순식간에 잊힐 위기에 처했다.
엘자는 방송에서도 사라지고 음반 계약도 끊기다시피 했으며 문제 인물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엘자는 작은 무대나 해외 공연 등을 하며 끝까지 버텼다. 그녀는 작은 무대에서 노래하며 번 돈으로 근근이 먹고살았고 인터뷰에서도 '다시 가난해졌다'라고 말했다.
놀랍게도! 그녀가 다시 재기한 것은 그녀의 나이 70이 넘어서였다. 세상에 70이 넘어서 재조명된 스타가 있었던가? 그게 바로 엘자 소아레스다. 그녀는 남들 다 은퇴하고도 남을 나이에 가장 실험적이고, 가장 정치적이고 가장 거친 목소리로 다시 돌아왔다. 가사도 빈민, 여성,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 아주 대놓고 파격적으로 노래했다. 대표적인 것들로는:
A Carne(칠리 콘 카르네 할 때 그 카르네), 2002년(72세)에 발표
(1998년 '파로파 카리오카(Farofa Carioca) 밴드가 발표한 곡을 2002년 앨범 《Do Cóccix Até O Pescoço(꼬리뼈부터 목까지)》에서 엘자가 커버한 곡)
"시장에서 가장 값싼 살(고기)은 흑인의 살이다."
Maria da Vila Matilde(빌라 마틸지의 마리아 - 그냥 아무 마을의 아무 여자 이름), 2015년(85세)에 발표
"다음에 네가 나를 때리면, 난 전화할 거야, 경찰에."
Mulher do Fim do Mundo(세상의 끝에 선 여자), 2015년(85세)에 발표한 동명 앨범 타이틀곡
"나는 끝에 와 있다. 나는 이미 많은 것을 잃었다. 나는 더 이상 보호받지 못한다."
내가 엘자 소아레스 노래 중에 처음 접한 노래는 "Edmundo(In the Mood)"라는 노래다. 원래 글렌 밀러 오케스트라(Glenn Miller Orchestra)의 스윙재즈 히트곡이었던 'In the Mood'에 포르투갈어 가사를 붙여 부른 이 노래는 댄스스포츠 삼바 출 때 자주 나오는 곡이라서 알게 되었다. 노래가 너무 신나고 재밌어서 찾아보다가 엘자 소아레스라는 인물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근데 노래 가사는 황당무계하다.
에드문두는 자기가 뭘 하는지 전혀 몰라
걔는 정말이지 너무 산만한 사람이야
사람들이 그러는데, 어느 날 밤 집에 돌아와서
잠자리에 들기 전에 완전 난리를 쳤대
베개 위에는 슬리퍼를 모셔 두고
정작 자기는 바닥에 누워 잤다는 거지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는
목욕하려고 욕조에 물을 가득 받고
부엌에 가서는 목욕 가운을 튀겨버리고
욕조 물은 숟가락으로 휘휘 저었대
빵에는 치약을 듬뿍 바르고
커피잔으로 세수를 했지
정말 심하지
이 사람은 자기가 뭘 하는지도 모른다니까
난 그가 참 안쓰러워
오 에드문두
다들 이제 그는 가망이 없대
이 노래에 맞춰 삼바 베이직 루틴을 추는 동영상(전설의 라틴댄서 세르게이 수르코프 & 멜리아).
(삼바 베이직 동영상 찾다가 이 영상 보고 노래가 좋아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엘자 소아레스는 2022년(얼마 안 됐다) 91세의 나이로 노환으로(병이나 사고 아님) 사망한다. 엘자의 커리어를 말아먹은 그 축구선수 새끼(가린샤)는 엘자하고 결혼은 했는데 평생 심각한 알코올 중독이었고, 폭력에 알코올로 절여져 살다가 1983년에 49세로 이미 사망한 뒤였다. 소름돋는 것은 엘자를 평생 고통스럽게 한 가린샤와 엘자의 사망일이 1월 20일로 39년의 시차를 두고 정확히 같은 날짜였다. 우연 치고는 너무 기막힌 두 사람의 사망일에 브라질 언론도 이 일을 대서특필했다.
엘자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사망 직전까지 활동했다(사망 한 달 전까지 라이브 무대에 올랐고 사망 이틀 전에는 라이브 DVD 녹화 공연까지 했다). 진짜 무시무시하고 엄청난 인간승리 그 자체다. 2016년에는 86세의 나이로 리우 올림픽 개막식에 섰다(섰다고 하기엔 거동도 불편해서 무대에 앉아만 있었지만). 어쨌든 국가가 인정한 브라질의 얼굴이었던 셈이다.
그녀의 노래 "Mulher do Fim do Mundo(세상의 끝에 선 여자)"의 가사 중에 "난 끝까지 노래할 거야 (Me deixem cantar até o fim)"라는 구절이 있다. 본인이 직접 부른 그 가사 그대로 정말 세상을 떠나기 이틀 전까지 마이크를 놓지 않았던 셈이다. 어마어마한 열정과 엄청난 인생여정을 기억해 주시기 바란다. 엘자가 지구 반대편의 나라에서도 자신의 노래를 듣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면 아마 저 세상에서도 기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