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물 찾으러 가요

브레보뉴 숲 (3)

by 마봉

《세라비: 장하다 라를르의 딸》은 장편 소설입니다.

◆ 캐릭터 소개

◆ 처음 오신 분은 1화부터 읽어 주세요.


게로스도 긴장이 풀리고 세라비는 아까 감옥에 안 보낸다는 약속을 받은 후에는 긴장이 거의 사라지고 없었기 때문에 숲에서 밤을 지내기 위한 준비는 순조로웠다. 게로스는 어린 나무를 잘라 와서 모닥불 곁에 앉아 단검으로 속을 파내기 시작했다. 부엉이가 우는 소리가 가끔 들리는 것을 제외하면 밤이 된 숲 속은 매우 고요했다.


“물소리 들리는 것 같아요.” 세라비가 말했다.


게로스는 나무를 파던 손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와는 다른, 뭔가가 졸졸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이거 가지고 물 찾으러 가게요.” 게로스는 이렇게 말하며 나무 속을 계속 도려냈다. 나무로 큰 컵 형태의 물건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며 세라비는 감탄했다.


“잘 곳도 잘 찾으시고, 이런 것도 만들 줄 아시고, 어떻게 이런 걸 다 할 줄 아세요?”


게로스는 뭐라고 대답할지 몰라 잠시 망설였다.


“글쎄요… 군사훈련?”


세라비는 쿡쿡 웃었다. “아, 네네…”


게로스는 전쟁 준비를 하며 진짜로 생존기술을 포함한 군사훈련을 직접 받았었기 때문에, 세라비가 자신의 대답을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살짝 안심했다.


“그러는 세르비카 대사님도 처음부터 산에서 노숙할 줄 아셨던 건 아니지 않나요? 역시 특수훈련을 받으신 거죠?”


“네네, 매일매일 받았답니다.” 세라비는 장난치듯 대답했다가, 게로스가 물그릇뿐만 아니라 버섯과 밤을 구울 수 있게 불 위에 생나무를 잘 깎아 움직이지 않게 포개어 얹어놓은 것을 보고 다시 물었다.


“그치만 이런 거 잘하시는 것 보면 손재주가 진짜 좋으신데요?”


“손으로 하는 건 다 잘하는 편입니다.” 게로스가 대답했다.


“와! 좋으시겠다. 왕이 아니셨으면 뭘 하셨을까요? 목수나 공예가? 아니면 의사?”


게로스는 나무를 깎던 손을 잠시 멈췄다. 세라비는 별생각 없이 던진 말이었지만, 게로스는 이 질문에 머릿속이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게로스는 잠시 동안 나무 깎는 것도 잊고 이 질문을 생각해 본 후, 이렇게 대답했다.


“태어날 때부터 직업이 결정되어 있어서 생각 안 해봤네요.”


그러나 세라비는 이미 망상 중이었다. “폐하 같은 의사 선생님이 계시면 사람들 맨날 아프다고 병원 앞에 줄 서있겠네요. 후후.”


게로스는 웃었지만 왠지 부끄러웠다. 살면서 외모에 대한 칭송 따위는 천 번도 넘게 들었지만 이런 식으로 들어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분은 왠지 나쁘지 않았다.


“다 됐네요. 가볼까요? 물이 진짜 있나.” 게로스는 맥주잔 크기의 나무컵 두 개를 보여주며 말했다. 두 사람은 모닥불에 흙을 살짝 덮어 불씨를 눌러 놓은 다음, 횃불을 들고 희미하게 들리는 물소리를 향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낙엽이 발 밑에서 바스락거리는 바람에 세라비는 물소리를 놓칠 뻔했다. 세라비는 낙엽 밟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 소리 등에 일일이 방해를 받는 반면 게로스는 물소리 하나에 집중해서 방향을 찾고 있었다.


“귀가 상당히 좋으시네요.” 세라비가 속삭였다.


“그래서 잠을 잘 못 자요.” 게로스도 작은 소리로 말했다. 엘로이즈 레모르스 양 암살 후로 방에서 잘 때조차 아주 작은 소리에도 깨도록 스스로 훈련해 왔던 것이다.


카마는 그믐달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 달인 로나는 통통한 반달이었다. 카마보다 작지만 광도가 더 높은 로나가 하늘 위로 높이 떠오르자, 나무와 가지와 잎사귀들이 은은한 은빛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바람은 잔잔했지만 공기가 꽤 찼다. 세라비는 차가워진 손을 비볐다. 목덜미에 한기가 올라와 세라비가 부르르 떨자 게로스는 들고 있던 횃불을 세라비에게 잠깐 들고 있으라고 주었다. 세라비가 횃불에 한쪽 손을 쬐며 아 따뜻하다~ 하고 있는 동안 게로스는 자신이 매고 있던 크라밧을 풀어 세라비에게 건네주었다.


“추우니까 목에 매세요. 내일 많이 걸어야 해서, 감기 걸리면 안 됩니다.”


게로스는 세라비가 크라밧을 맬 수 있도록 횃불을 받아 들고 기다렸다. 세라비는 크라밧을 목에 매려다 말고 잠시 머뭇거렸다.


“왜요?” 게로스가 물었다.


“방금 생각난 건데… 폐하는 왕이시니까 이런 상황에서는 제가 폐하한테 추울까 봐 옷도 벗어 드리고 밥도 챙겨 드리고 시중도 들어야 하지 않나요?”


‘허이구.’ 게로스는 세라비가 아랫것의 역할을 생각나는 대로 다 읊고 나자 말했다. “대사님, 혹시 우리나라 국민이세요?”


“아닌데요.” 세라비가 대답했다.


“그 나라 국민도 아닌데 뭐 하러 거기 왕 시중을 들어요?”


세라비는 그런가? 하고 생각했다.


“제가 협력하자고 한 이상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협력하는 겁니다. 이상한 생각 하지 마시고 빨리 매세요. 물 떠서 돌아가야죠.”


‘내가… 왕하고 동등한 위치에서… 협력을!’ 세라비는 속에서 감격이 뜨겁게 몰아쳐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크라밧을 자기 목에 재빨리 매었다. 크라밧은 아직 게로스의 체온이 남아 있어 따뜻했다. 게로스는 세라비가 크라밧을 목에 묶은 모양을 보고 그녀가 평소에 스카프 같은 걸 안 매고 다니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진짜 못 묶었네요. 잠깐만 이것 좀 들고 있으세요.” 게로스는 세라비에게 횃불을 들게 하고는 세라비가 목에 맸던 크라밧을 다시 풀어서 차곡차곡 잘 접은 다음 다시 매듭까지 지어 잘 묶어 주었다. 세라비는 왕과 동등함! 이라는 감동에 휩싸여 게로스가 자기 목에 크라밧을 묶는지 뭘 어쩌는지 깨닫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자, 이제 됐어요. 안 풀릴 거예요.” 게로스는 로나의 빛에 비친 세라비의 옆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와, 이 사람 무슨 생각하는지 다 보인다…’


숲 사이로 졸졸거리는 물소리가 점점 더 선명해졌다. 달빛 아래 나뭇가지 틈새로 은색 실처럼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개울이었다. 돌과 자갈 사이를 비집고 흐르는 맑은 물이 로나의 빛을 반사하여 반짝이고 있었다.


세라비는 개울에 손을 담가 보았다. 물은 차갑고 맑았다. 세라비는 앗 차가워! 하면서 손바닥으로 물을 떠올려 마셔 보았다.


“마셔도 될 만한 물인지 확인하고 드시는 거 맞죠?” 손바닥으로 물을 떠서 열심히 마시고 있는 세라비에게 게로스가 물었다.


“저는 강가에 사는 사람이랍니다. 수질 정도는 확인하고 마시고 있어요.”


“강가요? 출퇴근하시려면 힘드시겠네요.” 게로스는 카론 강이 이카레이유 외곽으로 흐른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이렇게 말했다.


세라비는 개울물을 게로스가 건네준 나무그릇에 담으면서 생각했다. ‘이 분은 확실히 친절하고 생각보다 격식도 없으시긴 하지만, 내가 사실은 라를르 마을에 사는 백수고 이번만 삼촌이 억지로 보내서 온 거라고 하면 과연 어떻게 생각하실까? 지금은 칼같이 ‘세르비카 대사님’이라고 불러주시긴 하지만, 난 사실 진짜 외교관이 아닌걸…’


세라비가 대답이 없자 게로스는 ‘이분 또 뭔가 생각에 빠졌군… 일단 놔두자.’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는 그릇에 물을 다 담은 다음 여전히 뭔가 생각에 잠긴 세라비를 데리고 모닥불 곁으로 돌아갔다.


게로스는 아직 살아있는 불씨에 마른 낙엽과 잔가지들을 태워 모닥불을 다시 살리면서 세라비가 여전히 심각한 얼굴로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을 지켜보았다. 강가에 살면서 이카레이유에 출퇴근하냐는 질문이 혹시 실례되는 질문인가? 세드릭을 비롯한 외교국 직원들은 다 파렌베르크에서 근무하니까 이카리아도 그런 줄 알았는데, 뭔가 말을 잘못한 건가?


“물은 아래쪽을 향해 흐를 테니 내일은 개울을 따라서 가는 게 좋겠습니다. 내일 아침 해 뜨는 대로 바로 출발할까요?”


“네.” 세라비는 여전히 생각에 잠긴 채로 대답했다.


“피곤하실 테니 먼저 주무시는 게 좋겠습니다. 제가 깨워드릴 테니 그때 교대해 주세요.” 게로스는 세라비가 갑자기 우울해하는 것 같아 조금 불안했지만 어쨌든 잠은 재워야 할 것 같아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코트를 벗어서 세라비에게 주었다.


“이건 왜요?”


“제 코트가 더 기니까 이걸로 덮으세요. 대사님 옷은 저한테 주시구요.”


“이 옷을 입으시게요? 안 맞으시잖아요!”


“안 입고, 그냥 덮고만 있을 테니까 주세요.” 게로스는 세라비가 또 이상한 논리로 반대할까 좀 더 확고한 어조로 못 박았다. “이럴수록 잘 시간만 줄어드니까 제 말대로 해 주세요.”


세라비는 군소리 안 하고 코트를 벗어서 게로스와 교환했다. 그리고는 가방을 베개처럼 베고, 게로스의 코트를 덮고 누웠다. 게로스는 세라비의 코트를 어깨 위에 걸치고 모닥불에 가끔 낙엽과 잔가지들을 얹어 불을 살리며, 나뭇잎 사이로 부는 바람 소리와 멀리서 희미하게 들리는 물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내일은 여길 나갈 수 있을까? 솔렌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람들이 찾고 있을 텐데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을까? 코린이나 클로드도 다들 걱정하고 있을 텐데, 당황하지 않고 절차대로 잘들 하고 있으려나.


잠시 후 세라비 쪽을 보니 세라비는 안 자고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다.


“안 피곤하세요?”


“너무너무 피곤해요.” 세라비가 대답했다.


“근데 왜 안 주무세요?”


“폐하,” 세라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사실 고백할 게 있습니다.”


게로스는 세라비가 갑자기 진지하게 나오자 당황했다. 고백? 혹시 진짜 첩자인가? 아니야, 세르비카 대사 성격상 담 넘다가 정원수 가지 부러뜨린 것 갖고도 저렇게 비장하게 나올 수 있다. 게로스는 ‘설령 진짜 첩자라 할지라도 일단 편하게 말하도록 해 주자.’라고 마음먹고 이렇게 말했다.


“대사님, 저는 분명히 감옥 안 보낸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니 뭐든지 편하게 말씀하세요.”


“감옥에 갈 일은 아니긴 하지만, 말씀드리면 제게 실망하실 수도 있어요.” 세라비가 뭔가 각오한 듯이 이렇게 말하는 바람에 게로스는 점점 불안해졌다. 그러나 편하게 해 주기 위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괜찮으니까 얘기하세요. 그럼 그다음에는 대사님이 저한테 실망하실 만한 얘기를 해 드릴게요.”


세라비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게로스를 바라보았다. 게로스는 믿으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달빛 비친 숲속 개울가에서 게로스가 세라비 목에 크라밧을 매어주는 장면 ⓒ Mabon / AI

◆ Illustrations by Mabon de Forêt(AI-assis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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