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이런저런 이유들이 있다
원거리 여행에 현재의 제트엔진을 사용한 여객기가 절대적인 운송수단인 것처럼 보이지만, 한때는 비행선이라는 것이 있었다. 유럽에서 미국까지 이틀정도면 도착했고 진짜 부자만 탈 수 있었다. 그러다가 부력 생성에 헬륨대신 수소 쓰다 폭발하는 사고가 난 이후 비행선 시대는 끝나고 비행기의 시대가 되었다.
초기에는 비행기 창문은 집에 있는 창문처럼 네모였다. 그랬다가 고고도 비행 시 기압차가 창문 네모 모서리에 몰리면서 비행기가 터져 추락하는 사고가 두 번 발생했다. 그 이후로 여객기 창문 모서리는 둥글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타는 비행기의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도 과거에 발생한 사고에서 터득한 지식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비행기의 시대 역시 비행선처럼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더 안전하고 빠른 운송수단이 나타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지금 우리가 흑백 동영상으로 촬영된 비행선 영상을 보며 어우 저런 걸 무서워서 어뜨캐 타고다녔냐! 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대충 오십 년 후에는 어우! 저시대 사람들은 저 위험한 비행기를 타고 저렇게 많이 다녔네 라고 ㅉㅉ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2024년 12월 31일, 나는 가족들과 베트남에서 여행 중이었다.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보니 호텔에서는 나름 이런저런 이벤트를 준비했다. 바닷가 쪽에 테이블이랑 의자도 갖다 놓고, 무료 음료 나눠주고, 밴드 부르고, 럭키드로우 하고, 퀴즈 게임도 했다. 손님의 대부분이 한국인이다 보니(경기도 다낭시라고들 한다) 질문을 못 알아들어서 잘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2025년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영어를 못하는 한국사람들도 텐! 나인! 에잇! 이건 할 줄 아니까 모두 다 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이게 대체 뭐람. 엄청난 불꽃놀이를 할 줄 알았는데 을왕리 편의점에서 사다 터뜨리는 것보다 소박한 폭죽이 터졌다. 내가 다 부끄럽네. 큰 호텔이니까 으리으리하게 불꽃놀이를 해줄 줄 알고 잠 안 자고 기다린 건데.
불꽃놀이에 진심인 한국인 숙박객들은 나와 동일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애걔걔~ 하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렸으니까. 그래도 그것도 불꽃놀이라고 사람들은 어쨌든 SNS에 뭐라도 올리게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 뭔가 터지는 장면이 보기가 힘들었다. 당시 항공사 직원들, 특히 한국의 국적사 직원들은 자기 회사 일이 아니어도 모두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블라인드에는 같은 회사도 아닌데 우울감과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승무원들의 글이 계속 올라왔다. 누구나 자기가 그 상황이 될 수 있었다고 느끼고 있었다. 고인이 되신 승무원들과 같이 일했던 동료들은 성공적인 동체착륙 후에 이제 살았다! 하고 안도했을 동료들이 순식간에 밤하늘 폭죽 터지듯이 폭발해 버리는 장면을 TV에서 몇 번이고 다시 또다시 보다가(나중엔 뉴스에서 폭발 직전까지만 보여주도록 바뀌었지만 이미 늦었다) 정신적인 대미지를 너무 크게 입어 비행은 물론이고 일상생활도 겨우 할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폭죽이 너무 초라해서인지, 나도 바닷가에 소박하게 쌓아 터뜨리는 폭죽 동영상을 찍다가 새해를 맞이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생각나 집어치우고 말았다.
물론 아이폰이 밤에는 쓰레기라 동영상을 마치 지구 폭발하듯이 찍은 이유도 있다.
이와 같이 모든 일에는 이런저런 이유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