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땡이를 추억하며
땡땡이는 우리 동기들 중에서 제일 예뻤다. 각자 출신 분야도 나이도 지원분야도 다 다른 우리 동기들 사이에서 땡땡이는 가장 돋보이는 미인이었다. 미인이면 성격이 안 좋을 거라고 생각했던 편견과는 달리(?) 성격도 제일 착했다. 눈 크고 턱이 얄쌍하니 도시미인처럼 생긴 주제에 말끝에는 어느 지방인지 분간이 안 가는 사투리가 살짝 묻어있어 말 한마디만 걸어 봐도 아, 이 사람은 친절하고 다정하고 적어도 남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겠구나,라는 직감이 왔다.
그렇게 착한 애한테 세상은 물론 회사도 그다지 친절하지는 않았다. 정직원 전환 때 학력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았고 경력은 여기서 더 깎는 게 가능하랴 싶을 정도로 내리치기 당했다. 그래도 땡땡이는 워낙 착하고 일도 잘하고 성실해서 금방 인정받았다. 그런데 이렇게 착하고 일 잘하는 애들은 주변 사람들의 칭찬만 받는 게 아니다. 이런 애들을 귀신같이 알아보고 들러붙어서 호구 취급하며 빨대 꽂는 못된 것들이 있다.
땡땡이는 그 회사에서 일하는 내내 그 못된 것한테 쪽쪽 빨리면서 살았다. 그 못된 것은 땡땡이를 지 수족처럼 부리고, 온갖 잡일을 다 시키면서 시녀처럼 데리고 다녔다. 그 이쁜 애가 살이 쭉쭉 빠져서 갸름하던 얼굴이 수척한 브이라인이 되고 원형탈모가 오도록 그 못된 것은 땡땡이를 못살게 굴었다. 그러면서 사람들한테는 나랑 제일 친한 애는 땡땡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친하긴 뭘 친해. 걔한테 너를 거부할 권한이라도 있냐. 다른 부서로 옮겨달라고 위에 얘기해도 그 못된 것이 절대 놔주지를 않아 땡땡이는 그 못된 것이랑 내내 같이 일하고, 출장도 교육도 외근도 걔만 따라다니고, 혼자서는 밥 못 먹는 그 못된 것이랑 밥도 먹고 커피도 마셔야만 했다. 물론 다른 친한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렇다고 걔가 들러붙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 그 착한 애한테 그런 귀신같은 게 들러붙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참 모를 일이다.
땡땡이는 회사에서 인정받아 진급도 하고 다른 부서로도 옮겨 드디어 그 못된 것한테서 벗어났지만, 회사 월급 같은 푼돈을 위해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 시간에 집에서 애 키우며 재테크 공부나 하라는 남편의 권유로 회사를 그만두었다. 땡땡이가 얼마나 무수한 어려움과 내려치기를 극복하며 그 자리까지 올라갔는지 남편이 알고 있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땡땡이는 그 말을 받아들여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그것은 결과적으로는 잘 된 일이었다. 걔가 그렇게 빨리 갈 줄 알았더라면 사실 더 빨리 회사를 그만두는 편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만난 땡땡이는 행복하다고 했다. 나는 전혀 모르는 부동산이 어쩌고 학군이 어쩌고 그런 얘기들이 대화에 섞여 나왔지만, 땡땡이는 여전히 땡땡이였다. 예쁘고 건강하고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땡땡이가 아픈 줄 전혀 몰랐다.
어느 날 땡땡이의 남편이 갑자기 소식을 알려 왔다. 이 나이가 되니까 이제 부모님 세대뿐만이 아니라 어제까지 멀쩡해 보이던 내 나이보다 젊은 애들이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져서 먼저 가는 일은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땡땡이가 아프다는 사실도 모를 정도로 어쩌다 연락하는 사이였던지라 나는 누군가가 나쁜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 몇 달 전에 봤을 때만 해도 나보다 건강해 보였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수술도 잘 되고 치료도 잘 받아서 본인도 주변 사람들도 이젠 괜찮은 줄 알고 있다가, 최근에 재발해서 다시 치료받던 중 갑자기 상태가 나빠져 병원으로 옮겼으나…라는 얘기였다.
애기는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간 초딩 1학년 꼬꼬마였다. 애기는 왜 엄마 사진이 책상 같은 데 올려져 있고 사람들이 많이 와서 우는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심지어 엄마가 아직 병원에 있는 줄로 안다고 했다. 그 아이는 장례식장 구석에서 사촌들하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땡땡이 사진은 급하게 찾는 바람에 영정사진 같지도 않고, 땡땡이의 미모가 하나도 안 보이는 그런 사진이었다. 아니 얘가 얼마나 예쁜 앤데 사진 이거밖에 없어?
어디 놀러가서 찍은 사진인 듯 사진 속의 땡땡이는 편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가려고 회사에서 그 고생을 하면서 아둥바둥 살았냐, 하고 나는 사진 속의 땡땡이에게 말했다. 걔의 인생을 생각하니 분통이 터졌다. 이럴 거였으면 그냥 대충 살지. 일도 대충대충 보이는 것만 하고, 그 못된 것한테도 좀 들이받아 보고, 야근도 하지 말고, 그냥 설렁설렁 살지.
땡땡이랑 이목구비가 닮은 어머니가 절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뵙는 땡땡이 어머니를 끌어안고 나는 나라 잃은 사람처럼 통곡을 했다. 오히려 땡땡이 어머니가 나를 위로해 주셨다.
평소에 땡땡이랑 자주 연락하고 살았던 친구들은 이미 화장이 다 지워진 엉망진창인 얼굴로 앉아 있었다. 누군가가 “땡땡이 핸드폰 마지막 화면이 애 단체복 사이즈 고르는 화면이었어요...” 하고 말했다. 급하게 가느라 애기 옷 사이즈도 결국 못 골라주고 간 모양이었다.
동기들이 다 애 키우는 엄마아빠들이라 그런지, 손에 장난감을 들고 입으로 슈우웅~ 소리를 내며 놀고 있는 애기 모습이 눈에 띌 때마다 다들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애기는 딱 고만한 아이를 키우고 있던, 눈물 많은 남자 동기한테 다가와 눈물 닦으라고 휴지를 몇 장 뽑아주었다. 남자 동기는 결국 그 자리에서 통곡을 하고 말았다.
생전에 땡땡이를 그렇게 괴롭히던, 걔의 암세포 지분의 80% 이상을 갖고 있는 그 못된 것도 그 자리에 와 있었다. 나는 육개장 그릇을 들어 그 못된 것 머리에 부어버리고 싶었다. 그 못된 것도 거기 앉아서 즙을 짜고 있었다. 지가 땡땡이한테 어떤 존재였는지 전혀 모르는 듯했다. 왜 사람들이 땡땡이 빈소 가는데 자기랑 같이 가기를 다 피하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차 있는 사람이랑 같이 가야 되는데 아무도 자기를 데려가 주지 않아 그 못된 것은 어떻게 겨우겨우 동행을 찾아 그 자리에 와 있었다. 순간 그 못된 것과 마주해야 했던 땡땡이의 남편 심정이 어땠을지 궁금했다. 남편도 그 못된 것 때문에 땡땡이가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잘 알 테니 멱살 잡고 머리채 잡고 싶었을 텐데, 그랬다는 얘기가 안 들리는 것으로 보아 잘 참아낸 모양이다.
딱 이맘때였다, 땡땡이가 그렇게 갑자기 떠난 것은. 햇볕 좀 따스해지고 벚꽃 꽃망울 좀 올라오고 화단에는 성질 급한 목련도 피고 하던, '아 이제 진짜 봄이네~' 싶은 때였다. 누군가 다녀와서 찍어 보내준 땡땡이의 마지막 자리에는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들, 꽃, 묵주, 그리고 애기가 가져다 놓은 장난감 몇 개가 놓여 있었다.
급하게 내건 영정사진과는 달리 액자에는 예쁜 사진으로 골라서 담겨 있었다. 나는 그제야 나는 마음이 한결 놓였다. 뭐니 뭐니 해도 땡땡이는 우리 동기들 중에 최고 미인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