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
회사 근처 오래된 시장 입구에는 30년 이상 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진료해 온 병원들이 몇 개 있다. 재개발 대상인 이곳은 80년대(90년대에 지은 건물이 신식으로 보일 정도) 모습 그대로인 낡은, 정말 손대면 페인트칠이 우수수 떨어지는 그런 건물들이 남아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하수로 바로 위에 포석이 깔린 구불구불한 좁은 골목들 안에 순대국집(나의 장르실험 '용이 나타났다'에서 용을 처음 발견한 순대국집은 이 중 하나를 모델로 하고 있다), 설렁탕집(이런 곳에서 아직까지 살아남은 식당들은 무조건 맛집이라 점심시간에 뛰어가지 않으면 무조건 웨이팅이다), '얼음'이라는 입간판을 앞에 둔 정체 모를 가게, 신발 가게('수제'라고 쓰여 있다), 옷가게(시니어 룩 전문), 미용실, 모종 가게, 허름한 집들이 늘어선 주택가(주로 노인들이 살고 있다)...
정겹고 그립고 고향 같은가? 꼭 그런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대체 왜 이런 게 시장에 있는지 모르지만 '사교댄스' 학원이 무려 두 개나! 있다. 시장 아줌마 아저씨들이 춤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아직도 영업을 하는지 모르지만 콜라텍 간판도 있다. 시장 사람들이 장사 열심히 하다가 몸도 좀 풀 겸 가는 모양이다.
낡은 간판, 손으로 써서 벽에 붙인 메뉴판(가격만 계속 고친 흔적이 있다), 아직도 돌아가는 게 신기한 업소용 에어컨, 달강달강한 테이블과 의자들, 몇십 년동안 그 안에서 허리를 구부리고 국물을 끓이고 있었을지 모르는 주방 이모님들. 아마도 이 가게에서 가장 신식 물건일 카드 단말기.
나는 이러한 시장골목에 회사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진료를 받으러 병원에 와 있었다. 병원은 헐크가 밀면 그대로 뒤로 넘어갈 것 같은 오래된 상가 건물(상가인데도 'ㅇㅇ아파트'라고 쓰인 건물이다. 예전에는 아파트였을까?) 2층에 있었다. 입구가 어딘지 몰라 두리번거리다 보면 좁고 가파른 계단 위에 흰 나무판에 궁서체로 쓴 'ㅇㅇㅇ이비인후과'라는 세로로 쓴 간판이 보인다. 우와 간판만 봐도 이미 '달동네 박물관'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 삘이다.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병원 입구가 나타났다. 보통 진료실과 주사실이 독립된 방으로 구분되어 있고, 카운터 뒤에 접수와 수납 담당 간호사가 앉아 있는데 여기는 같은 공간에 파티션으로 구분만 해 놓은 진료실 안에서 오가는 모든 대화가 다 들린다. 여기 오는 환자들에게는 비밀이 없다.
자주 오는 단골 환자인지, 의사와 환자의 아주 친근한 대화가 들리는 가운데 카운터의 간호사 이모(간호사님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이모 분위기다)는 구부정한 조그만 할머니의 접수를 받고 있었다. 접수를 받는 종이는 80년대에 대량으로 인쇄해서 아직도 쓰고 있나 싶을 정도로 오래된 명조체로 인쇄한 양식이다.
할머니는 귀가 잘 안 들리는 모양이었다. 간호사 이모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짧아진다.
"전화번호요!"
"으응?"
"어르신 전화번호요! 전, 화, 번, 호!"
"으응?"
"전화번호! 전화!"
할머니는 "전화번호 내가 기억을 못 해!" 하며 복대처럼 배에 두른 가방에서 뭔가를 뒤적뒤적 찾아 간호사 이모에게 내민다. 세상에 폴더폰이네. 하긴 저런 어르신이 스마트폰은 갖다가 뭐에 쓰겠냐. 전화라 함은 무릇 잘 걸리고 잘 받아지면 되는 것을. 스마트폰은 어차피 전화번호 누르기도 힘드니 말이다.
간호사 이모는 자기도 틀림없이 오랜만에 보는 이 폴더폰을 이리저리 눌러보다가 '자기 전화번호' 찾기를 포기하고 최근 통화 리스트를 뒤졌다.
"어르신! 여기 '둘째 아들' 전화번호로 적을게요?"
"뭐라고?"
"둘째 아드님! 번호로 적어요?"
"귀가 잘 안 들려! 귀먹은 병신이야."
아니 나이 들면 귀가 먹을 수도 있지 뭐 자기를 병신이라고까지 칭하나 싶었다. 할머니는 대기실(이라고 해봤자 카운터랑 진료실이랑 다 같은 공간)의 의자에 앉았다. 간호사 이모랑 주고받는 대화를 들으니 할머니는 혼자 살고, 아들들은 사업이랑 회사 때문에 바쁘고, 딸이 가끔 집에 와서 들여다본다 했다.
진료 순서가 되어 의사가 할머니를 불렀다. 아, 이 할머니 귀가 안 들려서 자기 차례인 줄도 모른다. 앞 진료 마치고 나온 환자 아줌마가 "어르신 들어오시래요!" 하며 할머니를 일으킨다. 구부정한 몸이 일으켜지지도 않아서 아줌마는 할머니 바지 허리춤을 잡고 할머니를 일으켜 세웠다. 환자 아줌마와 의사와 간호사까지 합세해서 할머니를 진료 의자에 겨우 앉혔다.
"어르신 어떻게 오셨어요!"라고 묻는 의사 목소리도 이미 할아버지다.
"어지러워! 어지러워서 걷지를 못해 내가."
"약 드셔 보신 적은 있어요? 어지러움 약?"
"없어!"
의사는 생각나는 것을 중얼중얼 모두 입 밖으로 내는 타입인지 의사가 "어떻게 하지? 어떡하지..."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대기실에 앉은 나한테까지 다 들렸다.
"어르신! 일단 어지러운데 먹는 약을 드릴 테니까요! 약 드셔보시고 괜찮으면 다음번에 오실 때는 약국에 가서 병원에 전화만 해달라고 하세요! 계단 올라오지 마시고!"
할머니가 대답이 없자 의사는 다시 중요한 부분만 고쳐서 말했다. "약 드릴게요, 약!"
"응, 약!" 할머니가 대답했다.
"어르신, 보청기는 안 끼세요? 보청기? 아... 안 들리시지 참..." 의사는 말끝을 흐렸다.
"계단 내려가시는 거 봐야 되겠는데?" 의사가 간호사 이모에게 말했다.
"제가 내려갔다 올게요!" 간호사 이모는 할머니를 데리고 나갔다.
내가 진료를 마치고 나왔을 때까지도 간호사 이모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의사가 처방전도 직접 뽑고 수납까지 다 하며 카드결제에 영수증까지 다 뽑아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진료실로 돌아가 다음 환자를 불렀다. 이런 행동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을 보니 의사는 혼자 이것저것 다 하는 것이 익숙함에 틀림없었다.
건물 반대쪽 계단으로 내려가면 바로 약국이라는 의사의 친절한 설명에 따라 올 때와 다른 문으로 나갔다. 스포츠 맛사지샵, 네일숍, 기타 등등 알 수 없는 업체들이 양쪽으로 늘어선 비좁은 복도를 지나니 건물 뒤쪽에 아저씨들이 담배 피울 때 말고는 안 올 것 같은 외부 계단이 나타났다. 내려가는 계단 역시 가파르고 좁았고 벽에 칠한 페인트는 손만 대면 부스러졌다. 밤에는 무서워서 절대 안 올 것 같은 골목이다.
약국은 의사 말대로 계단 내려가자마자 바로 간판이 보였다. 약 조제 들어간 동안 약국 문이 열리더니 아까 그 할머니와 간호사가 나타났다. 아니! 아까 전에 출발한 사람들이 왜 지금 온 거지?
"아이고, 내려오다가 나도 같이 넘어져서..." 간호사 이모가 나를 보더니 멋쩍은 듯이 말했다.
"다친 데는 없어요?" 약사 아줌마가 물었다.
"손목 조금..." 간호사 이모가 말했다. "일단 어르신 좀 앉혀드리고!"
약사까지 합세해 할머니를 겨우 의자에 앉혔다. 약사 이모와 간호사 이모가 번갈아 가면서 다음번에 올 때는 그냥 택시 타고 약국에 와서 병원에 전화해 달라고 하라는 얘기를 중요한 단어만 크게 외치면서 어떻게든 이해시키려고 하는 동안 나는 점심시간이 빠듯해서 재빨리 약국을 나왔다.
독거노인, 폴더폰, 귀가 안 들려도 보청기도 안 해주는 자식들, 아들들은 바쁘다는 걸 보니 본 지도 오래된 것 같고 딸만 가끔 와서 들여다보는 혼자 사는 할머니. 혼자서는 의자에도 못 앉고, 어떻게든 앉고 나서도 지팡이를 짚어도 일어나지를 못해서 주위 사람들이 바지춤을 끌어올려 줘야 하는 노인네.
아직은 훈훈한 이웃의 정이 느껴지는 광경이라고 말랑한 기분이 되기는커녕 기분이 매우 울적하고 더러웠다. 혼자 사는 병들고 가난한 노인은 병원에 오는 것도 이렇게 힘들다. 자식들이 돌봐주지 못한다고 혼자서 이렇게 꾸역꾸역 힘들게 다니는 것이 맞나?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는 이런 노인들까지 돌봐줄 제도가 없나?
할머니가 이런 오래된 병원에 찾아오는 것은 깨끗한 새 건물에 있는, 젊고 바쁜 사람들이 앉아 있는 병원보다 이런 병원이라면 왠지 자기를 봐줄 것 같아서이지 않았을까. 왜냐면 조금만 더 가면 엘리베이터가 있는 새 건물에 이비인후과가 또 있는데 굳이 할머니는 이 좁고, 지저분하고, 오래되고 의사 혼자 1인 2역에서 1인 3역까지 하는 병원까지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계단을 올라 여기까지 온 거니까. 새 건물의 병원에서는 귀도 안 들리는 자기한테 접수받느라 사람들이 기다리고, 의자에 앉거나 일어날 때 누군가 붙잡아 줘야 하고, 간호사가 그 바쁜 와중에 밖으로 나와 자기를 챙겨주는 것이 남들에게 폐를 끼치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니까.
물론 이것은 내 생각일 뿐이다. 나야 여기가 제일 회사에서 가까운 데라 왔지만 이 할머니가 굳이 엘리베이터가 있는 병원 말고 여기 온 것은, 아마도 다른 데보다 여기가 덜 무서워서가 아닐까, 싶었다. 몸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고 사람들 말도 잘 들리지 않는 세상에서 다들 바쁘고 급하고 빠른 사람들 사이에 혼자만 비틀거리면서 걷고 들리지 않아서 또 묻고 다시 물어보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람은 주눅이 들고 쭈그러지게 된다. 말을 하면 안 될 것 같고, 사람들 길 가는 거 방해하면 안 될 것 같고, 하지만 내 몸은 마음대로 안 움직이고, 귀는 안 들리고.
중국 곰 한 마리 데리고 오는 데 350억이나 들일 거라면, 이런 노인들 돌봐주는 데 좀 쓰면 안 되나.
난 가끔 세상의 돈은 다 이상한 데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100세를 살게 되는 이 세상에서 나는, 우리 모두는, 언젠가 늙고 힘없고 병들고 가난(이건 사바사지만)해지면 과연 사회에서 어떤 취급을 할까?
어딘지 기분이 찝찝하고, 왠지 더러운 시장 골목에서 고개를 돌리고 싶어지는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