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 모양의 구
어렸을 때 집에 창비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 이 있었다. 내가 아직 읽는 줄도 모르고 부모님이 친척집에 줘 버려서 지금은 없다. 중고책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사자왕 형제의 모험. 개구장이 에밀과 함께 말괄량이 삐삐의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유명한 작품이다. 삐삐는 싫어했지만(원래 캔디나 삐삐 같은 하지 말라는 거 골라서 하는 애들이 싫었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은 참으로 정감가고 재미있고 하지만 어쩐지 슬픈 여운이 남는 책이었다. 두 형제가 낭길리마로 떠난다고 빛이 보여 형~ 어쩌구 하면서 떠났지만, 사실은 벼랑 아래에는 저승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데 형이 그냥 구라친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지금 이 나이에도 '낭길리마가 구라라는 생각이 든건 그냥 기분 탓이고 사실은 진짜로 낭기열라와 벼랑하나를 사이에 두고 연결된 또다른 세계가 있는게 맞다' 라고 믿고 싶어지는 것은, 전쟁도 끝나고 이제 좀 살만해질까 했더니 온몸이 마비되서 죽게 생긴 가엾은 형의 운명이 못내 눈물겨워서인지도 모른다.
다시 번역 얘기로 돌아가서, 이 책은 창비에 들어있는 나의 소유였으나 부모님이 물어보지도 않고 친척집에 줘 버린 창비의 민화집들처럼 이제 내곁을 떠난지 여러 해가 지났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 생일날, 친하던 선생님께서 '빼앗길 수 없는 나라' 라는 책을 선물로 주셨다.
바로 '사자왕 형제의 모험' 이었다.
중학교 3학년때 번역이고 나발이고 뭘 알 리가 없었으나, 이미 전에 읽은 창비판이 있었기 때문에 비교는 금방 가능했다. 번역에서 단어나 문체 같은 것까지 따지려면 아직 한참 멀었으나, 고유명사가 달라진 것은 금방 눈에 보였다. 바로 형제가 낭기열라(새 책에는 '낭기얄라'라고 되어있고 스펠링은 Nangyala의 y위에 점 두개 찍혔다)에서 살게 되는 지역의 지명인데, 창비판에서는 이것을 '벚나무 골짜기' 라 했고 '빼앗길...'에서는 이것을 '셔시베리스달렌' 이라고 했다.
'벚나무 골짜기'와 '셔시베리스달렌(역: 벚나무 계곡)'.
개인적으로 전문서적이 아니고 문학이라면 전자가 백배 아름답다고 나는 생각한다.
셔시베리스달렌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번역자의 선택이고 번역자의 취향이다. 번역의 스타일 중 이런 식으로 각주나 역주를 사용해서 원본에서 사용된 단어를 거의 손대지 않고 설명을 넣어 그대로 사용하는 스타일이 있다. 전문서적이나 전공서적 등에서 그 단어를 우리말로 대체할 적당한 단어가 없거나 혹은 번역했을 경우 뜻이 왜곡될 위험이 있거나 혹은 그냥 원어 그대로 써도 모두모두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거나 할 경우에 보통 이렇게 번역한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취향은 역시 전자다.
물론 본래의 뜻을 왜곡시키거나 뉘앙스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 위험이 크기는 하겠지만, 영어처럼 그 언어를 아는 사람들이 많은 언어가 아니고 이렇게 '스웨덴어' 같은 살다살다 첨 보는 언어를 굳이 번역해야 한다면, 나는 셔시베리스달렌이 실제로는 벚나무의 아주 먼 친척뻘 되는 나무들이 있는 골짜기라 할지라도 '벚나무 골짜기' 로 번역하는 쪽을 택하겠다. '셔시베리스달렌' 보다는 '벚나무 골짜기' 쪽이 사자왕 형제가 새로 살게 된 곳이 어떤 데인지 더 잘 상상되고, '셔시베리스달렌' 이 우리말로 딱히 표현하기가 어려워서 원어 그대로 대체해야 하는 경우는 더더욱 아닌 것 같고, 무엇보다도 '벚나무 골짜기' 라는 말 자체가 아주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또한 벚나무 골짜기의 옆동네인 '들장미 골짜기' 를 '턴로스달렌', 형제가 살게 되는 집인 '기사의 집' 을 '리따르고르덴' 으로 쓰는 등 이미 고유명사만 가지고도 이질감을 잔뜩 안겨주었지만, 아름다운 삽화가 그대로 다 붙어있고 책 자체의 편집한 모양새가 이쁘장한 관계로, 그리고 선물이기도 한 관계로 아직도 인구밀도 빡빡한 우리집 책장에 한자리 잘 잡고 앉아 있다.
이렇게 한 작품을 서로 다른 번역자가 번역했을 때 제일 먼저 확실하게 티나는 경우가 바로 '말장난' 이 들어있을 경우다. 존경하여 마지않는 고 아시모프님께서 쓰신 '아자젤' 시리즈는 번역한 사람의 머리에서 틀림없이 열댓번은 김이 났을 말장난 좀 들어있는 소설이다. 한 SF 단편집에도 아자젤 시리즈 중 하나가 껴있는데, 나중에 나온 '흰눈 사이로 달리는 기분' 에서도 당연한 일이지만 중복이 된다. 그 회차를 빼고 책을 낼 수가 없는 것이, 바로 단편집의 아자젤 이야기가 화자(나)가 조지 비터넛을 처음 만나는 것부터 시작하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농구선수인 남자친구가 대박을 치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조카를 위해 조지는 아자젤을 불러낸다.
농구가 뭐야?" 그가 말했습니다.
"바구니처럼 생긴 공을 말하는 거야? 그렇다면, 바구니는 또 뭐야?
...하고 써놓은 것은 '흰눈 사이로 달리는 기분' 이고,
농구가 뭔데?" 아자젤이 말했죠.
"농 모양의 구인가? 만약 그렇다면, 농은 또 뭐야?
...가 '코믹 SF 걸작선' 이다.
굳이 원서를 찾아 읽지 않아도 농구는 basketball.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 미국 사람과 영어로 대화하는 아자젤은 농구를 basket + ball 로 이해했기 때문에 'basket 처럼 생긴 ball' 이냐고 물었던 거지만, 번역해서 한국말로 물어본다면 '농 + 구 = 농 모양의 구' 가 되어야 원작자가 의도한 말장난에 더 가까이 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농구' 가 바로 '바구니 모양의 공' 으로 연상되려면 최소한 초등 3학년 이상의 기초 영어 실력이 필요하다. 이 책을 평생 한번도 영어교육을 받아보지 못한 산간지방의 노인장이 읽으신다면, 암만 잘 읽어도 이 부분은 이해 못하고 패스다.
이렇게 썰을 풀고 보니.
남이 해놓은 번역갖고 뭐라할게 아니라 내 번역은 제대로 되었나 다시한번 돌아보는 겸허한 자세를 보이는 것.
그것이 진정한 번역가의 첫 자세다.
그러므로, 너나 잘하세요, 인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