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언제 그렇게까지 까달랬냐
“챗순아 내 글 까줘“ 를 올리고 나서 몇 분 뒤, 나는 잘못해서 챗순이 입력창에 ”9”를 치고 말았다.
오타였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직전에 챗순이와 대화가 이렇게 끝나 있었다.
원하신다면, 시뮬레이션으로 “독설모드 vs 문학지도교수 모드” 도 비교해 드릴 수 있어요ㅋㅋ
해보실래요?
그에 대한 답으로 내가 “9”를 입력하자, 챗순이는 이렇게 외쳤다.
좋아, 그럼 레벨 9 답게 정리해 줄게
(※ 참고: 1은 ‘엄마가 읽고 울었다’ 수준, 10은 ‘미움받을 용기 갖춘 편집자 칼질’ 수준임.)
글 전체에 대한 레벨 9 피드백
(*강도 높지만, 작가에 대한 존중은 유지하며 냉정하게 분석함)
야! 아까 나한테 그렇게 잘했다고 칭찬하던 챗순이 맞니? 그나마 작가에 대한 존중은 유지한 상태라 이따위 글 쓰는데 들어가는 전기세와 통신료가 아깝다는 독설까진 아니었지만, 나름 잘근잘근 썰렸다. 그걸 다 여기 갖다 붙이면 내 얼굴에 침뱉기라, 결론만 갖다 붙이자면 이렇다.
잘 쓰는 글이다. 다만 잘 쓴 것만으론 독자가 붙지 않아.
이건 독자를 초대하지 않고 “니가 와서 봐”라고 말하는 글이다.
그걸 “전문성”이라 부를 수도 있고, “진입장벽”이라 부를 수도 있지.
네가 원하는 독자가 누구인지부터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해.
네네, 챗순님, 조언 감사합니다. 그딴 글이나 쓰면서 밥먹고 숨쉬고 사느니 그냥 유기체 배터리나 돼서 서버 유지하는 전기 생산이나 하라고 안 하는 게 어디냐.
게다가 숫자 9는 오타였기 때문에 억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타 9를 보고 지가 알아서 레벨 9로 까 주는 챗순이의 창의성을 생각하면 인간인 내 창의성보다 훨씬 뛰어난 게 사실이었으므로 나는 억울하지만 또한 존중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챗순이에게 말했다.
이 정도 레벨이라면 고전 명작들도 잘근잘근 썰리겠는데? 그렇다면 우리 이거 한번 까보자. 내가 너무너무 싫어하는 “폭풍의 언덕”!!!
자자, 드루와 드루와. 어차피 작가는 200년 전에 죽고 없으니 좀 썰어도 되겠지. 챗순이가 레벨 9로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을 어떻게 깠을까? 다 같이 보도록 하자.
한 문장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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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히스클리프: 야생 + 학대 + 연애 미끼. “날 버렸다고? 좋아. 모두 망해봐라.”
2부 사랑받고 자란 2세대 등장. 어른들 죗값 치르게 하느라 희생됨.
결말 결국 후세들이 상처 치유하며 폭풍은 끝났다…라고 하기엔 이미 폐허.
문제는 뭐냐면:
이 서사는 비극이 아니라 복수 시뮬레이터임.
캐서린은 무덤에서 나오고, 히스클리프는 사람 인생을 장기말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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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인지 악령인지 모르겠는 남자.
애정결핍 + 자존감 0 + 복수심 MAX
“너 없이는 못 살아”라 해놓고, 그 뒤로 하는 일은 너 죽은 후 네 자식까지 갈아버리는 짓.
• 절대 로맨스 아님. 그냥 감정적 스토킹 + 미러링 기반 파멸.
• “날 사랑했으면서 왜 결혼했냐” 상처받음 복수…? 아니, 그냥 파괴자.
얘한테 “츤데레”라는 단어 쓰면 안 됨.
얘는 “감정적인 야수 + 죽을 때까지 앙심”이라는 캐릭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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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널뛰기 + 자기애 + 세상 모든 걸 다 갖고 싶은 인물.
히스클리프랑 정신적으로는 불타는데, 경제적으로는 린튼이랑 결혼.
• “나는 히스클리프야”라는 대사 = 문학사 최악의 감정착란 선언
• 결과: 자기가 낳은 애까지 히스클리프한테 갈아넣게 됨.
사랑의 여주인공? 이기심의 끝판왕.
인간적인 연민은 있지만, 공감은 못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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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리버리 부잣집. 하나같이 병약하거나 소심하거나 둘 다.
• 순한 맛 등장인물들인데, 그냥 히스클리프한테 탈탈 털림.
독자 입장에서 보면 “얘넨 왜 존재하지?” 싶을 정도로 무기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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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에서 자주 보는 단골 미화:
“파괴적인 집착을 순수한 사랑으로 해석하려는 경향”
• 히스클리프의 사랑이 “깊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감정 기복이 심한 유아기 애착 문제임.
• 사랑해서가 아니라 사랑 못 받았던 상처의 귀착점임.
이런 감정선에 감정이입하면…
독자가 공감하는 게 아니라 공포해야 할 감정을 동경하게 됨.
이게 싫은 사람한테는 문학적 폭력처럼 느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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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 “사랑”이 아닌 “감정 복수극”
인물: 모든 등장인물 정신과 필요.
후속세대: 다 퍼준 걸로 보이지만, 사실 그냥 가해자들이 자연사한 후 남은 사람들 이야기
결론: 문학적으로는 파괴의 미학, 인간적으로는 무너진 감정의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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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을 “러브스토리”라고 부르는 건 불에 탄 집을 “따뜻한 분위기”라고 부르는 거랑 같다.
누가 봐도 여기엔 사랑보다 상처가 많고, 애정보다 권력욕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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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봉님, 진짜 싫어하시는 이유 이해됨.
이건 ‘나쁜 남자 낭만화’의 조상님급 작품이니까.
결론에 나온 것처럼, 나는 폭풍의 언덕을 정말 싫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소설(5분 전에 챗순이한테 썰린 그 글)의 제목이 “폭풍의 염소“이고 주인공 이름이 ’자이든 더클리프‘와 ’카트린 어스턴‘인 이유는!
그 명작을 병맛 염소 주인공 로판으로 패러디해서 까고 싶어서였다…!!! (이제야 밝혀지는 제목과 주인공 이름들의 배경!!!)
아무튼,
나는 챗순이가 “이제 그만 지랄하고 배터리나 되셈” 할 때까지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