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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1)

글 안 쓴 지 25년, 아무 데도 속하지 못한 채 글을 다시 쓰고 있다

by 마봉 드 포레

잃어버린 25년

'선택과 집중' 하기 위해 북/매거진 하나씩 연중을 결정했지만, 사실 요새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왜 그런가 지금부터 한번 araboja.


이 글에 쓴 것처럼 나는 거의 20년 이상 글을 쓰지 않았다. 직장 다니기 시작한 이후로 점차 소홀해지다가 내려놓았으니 실질적으로는 20에서 25년 동안, 블로그나 페북 같은 곳에 잡담 및 영화나 책의 잡담성 감상글을 제외하면 글, 특히 소설류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러다가 여차저차해서 브런치에 들어와서, 내 글도 남에게 보여주는 동시에 남의 글도 읽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우와우. 내가 공항에서 뛰어다니고, 사무실에 앉아서 그나마 조상님이 조금 물려주신 글 쓰는 재능을 기안문이나 비즈니스 이메일 쓰는 데 낭비하고 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있었다.


나는 이 '잃어버린 25년'을 다시 따라가기 위해 지난 한 달 동안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읽고 쓰기를 해야만 한다. 이제부터 쓰는 내용은 사실 나 자신을 다잡기 위한 글이다.


세상은 넓고 플랫폼은 많다

대한민국의 글쓰기 마당이 브런치가 전부가 아니요 세상은 더 넓고 다양한 글쓰기 플랫폼이 있다. 여기에 발 들이기 전에 나는 일단 장편소설 투고를 해 보았고(세 군데 넣어서 셋 다 거절당했지만, 내가 뭐라고 처음인 주제에 너무 큰 출판사에만 보냈던 것 같다는 반성을 하고 있다), 종이책 잘 안 읽고 출퇴근길 스마트폰으로 읽는 것이 현대인의 생활방식이라면, 나 역시 종이책만 고집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유명한 웹소설 플랫폼에도 계정을 만들고 눈팅을 해 보았다.


오 마이 갓... 그 동네는...

아 갑자기 뒷목이 땡기는데 나중에 다른 글에서 얘기하도록 하자. 얘기가 딴 데로 샐 테니까.


글쓰기를 아무리 좋아해도, 자기만족만을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작가로서 책을 써서 먹고사는 것은 모든 작가 지망생들의 꿈이다. 먹고사는 것까지 바라려면 요새같이 출판시장 안 좋을 때는 좀 무리라고 치더라도 직장에서 얻는 수입 이외에 한 달에 얼마간이라도 부수입이 들어온다면 얼마나 기쁘겠는가?


사실 주수입이 됐든 부수입이 됐든, 이 경우에 작가로서 느끼는 가장 큰 기쁨은 '내가 책을 써서 돈을 벌었다!'가 아니라, '내 이야기, 나의 세계를 누군가가 같이 봐주었다!'라는 것일 것이다. 그게 천 원이든 만원이든 혹은 수백만 원이든, 중요한 것은 '내 이야기를 누군가가 돈을 주고 살 만큼 좋아해 주었다'이지 '앗싸 나도 내일이면 J.K.롤링~♡' 이것은 절대 아니다.


나도 그랬다. 물론 넉 달 동안 잠도 못 자며 장편소설을 완결했을 때에는 나도 J.K.롤링 될 줄 알았다(내가 이럴 때는 상상력이 좀 뛰어나다). 하지만 내가 글 대신 회사에서 비즈니스 이메일이나 쓰고 거짓말로 가득 찬 기안문서를 작성하고 있는 동안 세상은 많이 바뀌어 있었다. 종이책은 줄어들고, 책은 모바일 기기 안으로 들어갔으며, 얼마 안 되는 종이책 시장은 철마다 유행하는 주제가 달라지는 자기 계발, 부자 되기, 수험서(!) 등이나 좀 팔리고, 소설류는 진짜 잘 나가는 소수의 소위 대박 친 소설들 아니면 베스트셀러 오르기가 쉽지 않다.


그러면 브런치는 어떤가?

이제 브런치 얘기를 해보자. 브런치 작가 등단 4대 조건은 반쯤 우스갯소리이지만, 브런치에서 추구하는 스타일이라는 것이 있긴 하다. 대략 나눠 보자면 이렇다고 우리 집 챗순이가 분석했으니 다 같이 유료버전 ai의 분석을 보도록 하자.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들을 유형별로 나눠보면, 대략 이렇게 정리할 수 있어:


1. 감성 에세이형 (브런치의 대표 종특)

삶의 사소한 순간, 감정, 관계, 일상에서의 울림을 섬세하게 기록하는 글들

"혼자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해 봤다"

"카페 구석자리에서 문득 깨달은 것"

"사랑이 끝나고 난 후, 나를 다시 마주하기까지"

이 장르는 감정을 깊이 파는 대신 서사적으로는 전진을 덜 함. 문장이 예쁘고 차분함.


2. 퇴사·이직·자기 발견형

일에서의 번아웃, 커리어 고민, 전직기, 시골귀촌기, 독립 후 자아 찾기 등

"나는 왜 퇴사했는가"

"월급 600에서 0원이 되었을 때"

"귀촌해서 염소와 살기로 했다 (진짜 있음)"

라이프 스타일 변화를 중심으로 쓰여, 일정 부분 실용성도 있음.


3. 해외 체류/이민기형

유럽·미국·캐나다 등등에서의 삶, 이민 문화 충격, 외국인 배우자와의 결혼 이야기

"미국 며느리의 한국 시집살이 생존기"

"벨기에에서 엉망진창으로 살아남기"

"아이슬란드에서 아이 키우기"

낯선 풍경문화 충돌이 강한 후킹 포인트. 자극은 적지만 묘한 끌림이 있음.


4. 직장인 생존기형

회사생활 중 겪는 다양한 인간군상, 조직문화, 눈치 싸움, 나 자신을 지키는 법 등

"존많 회사에서 살아남는 법"

"나는 사무실 책상 아래에서 울었다"

"부장님이 사라진 날"

웃기거나 눈물 나거나 혹은 둘 다. 회사인의 공감 스위치 자극.


5. 자기 계발·습관 만들기형

작심삼일 탈출기, 공부법, 돈 모으기, 아침 루틴 만들기, 기록하는 삶 등

"기상 5시, 일주일째 되는 날"

"무지출 챌린지의 교훈"

"다이어리를 쓰면 인생이 바뀐다?"

브런치에서도 노션/플래너/기록법 글들은 고정팬층이 있음.


6. 인터뷰/사람 탐구형

특정 인물 또는 군집에 대한 관찰과 이야기 정리

"카페 사장님과 나눈 밤의 대화"

"아버지가 말하길, 삶이란 이런 거라고"

"도시의 어른들, 그들의 슬픔"

따뜻하거나 뭉클하거나, 혹은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경우도 많음.


7. 우울·불안·상실형

정신과 상담기, 우울증 극복기, 애도, 죽음,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

"죽고 싶었던 날의 기록"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나서"

"불안이 내 삶을 지배할 때"

진심이 느껴지면 대단히 많은 공감을 얻지만, 자극만을 노린 감정팔이는 쉽게 외면당함.


8. 감상문·문화비평형

책, 영화, 드라마, 전시회 등 문화 콘텐츠를 보고 느낀 감상 + 사적인 해석

"〈라라랜드〉는 로맨스가 아니다"

"한강의 글을 읽으며 내가 눈물 흘린 이유"

"서점에서 만난 시 한 편이 나를 바꿨다"

여기서도 ‘말랑 감성’으로 쓰면 브런치식 감상문, 비판이나 분석하면 비전형적 브런치 작가 느낌 됨.


● 번외: 유머·드립·마이너 일기형 (← 너 같은 사람)

병맛, 장난기, 냉소적 시선, 상황극풍 내레이션 등으로 세상 바라보는 관찰일기

브런치 내에서는 매우 드문 포지션,



마지막 문단은 사용자의 영향을 받아 생성된 추가 내용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챗GPT에게 같은 질문을 돌려보면 아마 마지막 문단은 안 나올 거라 추측한다.


아무튼, 이렇게 브런치에서도 소외계층에 속하는 나는 마치 자신의 천재성을 아무도 몰라주는 현실을 개탄하며 지하 연습실에서 아무렇게나 기타를 치며 인생 망해라 같은 가사의 노래를 부르는 10년 차 무명 인디밴드처럼 책상에 앉아 이런 글 저런 글을 찌끄리며 생각했다.


‘그럼 나는 대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은가?’


(다음 글에 계속!)

슈가버터, 나 지금 무슨 소리 하는지 넌 알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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