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두 문장에서
느껴지는 다른 감정

"퇴원"이라는 말 속에서 희망을 "추가 시술"이라는 말 속에서 절망을

by 마부자

어젯밤 아내는 오랜만에 깊은 잠에 들었다. 밤 10시에 잠들어 아침 6시 40분까지 깨어나지 않았다. 병실에 들어온 후로 이런 숙면은 처음이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그녀의 평온한 숨소리를 들으며 어쩌면 그녀가 조금 더 나아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희망을 품었다.


아침에 눈을 뜬 아내는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다. "배고프다"는 첫 마디에 내 마음이 살짝 놀랐다. 오랜만에 듣는 이 짧은 말이 이렇게 반가울 줄은 몰랐다. 그녀는 자신이 밥을 먹겠다고 나섰고, 심지어 평소보다 더 많은 양을 먹어주었다. 그 모습이 마치 어느 날의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간 것 같아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아침 식사를 마친 뒤, 나는 양치와 세수를 권했다. 하지만 그녀는 "머리 감으면 되잖아"라며, 조금 장난기 어린 대답을 했다. 그 말을 듣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와 함께 머리를 감으며 오랜만에 조금 더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머리를 헹구는 중 그녀는 갑자기 "린스는 안 해?"라며 농담 같은 말을 했다. 그 한 마디에 담긴 여유가 반가웠다.


린스를 스스로 마무리하고, 깨끗하게 정돈된 모습으로 웃어 보이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미소는 오래도록 보고 싶던 그녀의 얼굴이었다. 내 마음 한켠에 걸쳐 있던 불안감이 조금씩 녹아내렸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그것을 지켜볼 수 있는 지금이 얼마나 감사한지.


아내와 함께 씻고 난 뒤, 병원에서 머리 CT 촬영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평소라면 가볍게 넘겼을 소식이지만, 그녀가 이 검사를 받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가야 한다는 사실은 나를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병원 복도의 공기마저 낯설게 느껴졌다.


CT 촬영은 금세 끝났지만, 아내의 얼굴에는 여전히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운동 삼아 1층 로비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처음 몇 걸음은 괜찮아 보였지만, 조금 걷다 보니 그녀는 곧 "그만 올라가자"며 투정을 부렸다. 그녀의 지친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쓰였지만, 그래도 조금 더 걷자고 설득했다. 천천히, 그녀의 걸음을 따라 한 바퀴를 더 걸었다.


놀랍게도 두 번째 바퀴를 마칠 때쯤, 그녀의 표정은 처음보다 덜 힘들어 보였다. 걸음걸이도 약간은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어제보다 조금 더 길어진 산책, 조금 더 견뎌낸 발걸음들. 작은 변화지만, 그 안에 담긴 그녀의 노력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버텨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또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품었다. 1층 로비를 걸었던 짧은 시간이 어쩌면 그녀가 다시 힘을 얻는 작은 계단이 될지도 모른다고 믿으며.


오전 회진에서 주치의의 말을 듣는 동안 마음이 복잡하게 얽혔다. CT 결과가 좋아졌다는 소식은 안도감을 주었지만, 남아 있는 혈관 문제와 그로 인해 전신마취가 필요한 시술의 가능성을 언급하자 다시 긴장감이 스며들었다.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다음 주 금요일에 상태를 보고 추가 시술여부가 결정되면 퇴원도 우선 퇴원하는 문제도 고려해봅시다"

"퇴원"이라는 말 속에서 희망을 찾으면서도, "추가 시술"이라는 말 속에서 수많은 '절망'이 떠올랐다.


순간적으로, 나는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시술은 나중에 하면 어떨까요?"


의사 선생님은 현실적인 답변을 주셨다.

"어려운 시술은 아니지만 가능성을 머릿속에 두고 있는 것 보다는 어차피 입원하셨는데 하고 나가시는게 좋지 않을까요?. 선택은 환자분이 하셔야 합니다."


그 말은 타당했지만, 그녀가 또다시 마취와 시술을 견뎌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결국, 다음 주까지 상태를 지켜보고 그때 가서 결정하기로 했다.


시간을 조금 더 벌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 시간이 결정에 대한 무게를 덜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주치의는 마지막으로, "누워만 있지 말고 자주 걸으셔야 합니다"라고 당부했다. 그녀를 위한 말이었지만, 그 말이 내 마음에까지 닿았다. 그녀가 누워 있는 모습에 익숙해지지 말라는 듯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다짐 같은 느낌이었다.


놀랍게도, 아내가 먼저 "좀 걸을까?"라고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이 작은 제안 하나가 내겐 큰 기적처럼 느껴졌다. 그녀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얼른 옷을 챙겨 입히고, 1층 로비로 내려갔다. 우리는 손을 맞잡고 천천히 두 바퀴를 돌았다. 힘든 내색 하나 없이 묵묵히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내가 지난 며칠 동안 품었던 걱정들이 살짝 풀리는 듯했다.


로비 한편에서는 작은 목판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작품 하나하나를 천천히 살펴보던 그녀는 어느 순간 "이런 걸 집에 하나 걸고 싶다"라고 말했다. 오래간만에 그녀의 목소리에서 들린 여유와 취향에 대한 말. 너무나 그리웠던 순간이었다. 작품의 가격표를 보고는 잠시 현실로 돌아왔지만, 우리는 "나중에 꼭 사자"며 웃음 섞인 약속을 남겼다. 그 약속이 지켜질 날을 떠올리며 병실로 다시 돌아왔다.


딸이 가져온 배를 깎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배 한 조각을 먹을 때마다 그녀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졌다. “달다”는 짧은 감탄에 내 마음도 달아지는 기분이었다. 잠시 후 그녀가 티브이를 켜달라고 요청했다. 평소에는 자제하려 했지만, 오늘만큼은 하루 한두 번쯤 괜찮다는 마음으로 리모컨을 건넸다. 티브이 속 작은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와 그녀의 잔잔한 미소가 방 안을 채웠다.


오후에는 지인이 병실을 찾아왔다. 아내와 가까운 사이였던 그분은 대화를 나누며 그녀에게 힘을 실어주려 애쓰는 모습이 참 따뜻했다. 아내도 그분의 말에 귀 기울이며 가끔씩 미소를 보였다. 두 사람 사이의 대화 속에는 오래된 믿음과 애정이 담겨 있는 듯했다. 그 순간을 바라보는 내 마음에도 작은 위로가 찾아왔다.


이어 대전에 사시는 형님과 강원도에서 먼 길을 오신 장모님, 처형, 그리고 형님까지 차례로 병문안을 왔다. 장모님이 병실에 들어오시자마자 당신의 딸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히셨다. 그것은 안쓰러움과 걱정이 뒤섞인 어머니의 마음 그 자체였다. 하지만 아내의 상태가 생각보다 좋은 것을 확인하시고는 조금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장모님이 아내의 손을 꼭 잡고 "괜찮아질 거야"라고 조용히 말씀하시는 순간, 병실 안에 잠시 따뜻한 침묵이 감돌았다.


처형과 형님도 처음 봤을 때와는 달리 아내의 정신이 맑아진 모습을 보고 나니 얼굴에 묵직했던 걱정의 그림자가 옅어지는 듯했다. 특히 형님은 농담을 섞어 동생의 긴장을 풀어주려 애쓰셨고, 처형은 동생의 손을 꼭 잡은 채로 속마음을 전하며 다정한 응원을 건넸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가족들의 방문은 그녀에게 큰 힘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그녀가 온전히 회복되지 않았더라도, 그 따뜻한 기운이 한 겹씩 힘을 더해줄 것이다. 가족들과 지인의 존재가 만들어낸 이 오후의 풍경은 우리 모두에게 다시 한번 희망을 떠올리게 했다. 삶의 무게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인지, 오늘 나는 또다시 깊이 느꼈다.


생각난 김에 인천에 계신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렸다.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어머니는 여전히 아내의 상태를 걱정하고 계셨다.

"너 나한테 애들 엄마 상태에 대해 거짓말하고 있는 거 아니지?"

라는 어머니의 질문에 순간 가슴이 뜨끔했다.


물론 걱정을 덜어드리려고 최대한 좋은 소식만 전했지만,

그 말 속에 담긴 진심이 느껴져 한순간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다행히 지금 아내의 상태는 전보다 많이 좋아졌다.

나는 사실대로 말씀드리며, "진짜예요. 지금은 괜찮아요"라고 안심시켰다.

그리고 곧바로 영상통화를 연결해 어머니와 아내가 직접 대화할 수 있도록 했다.

화면 속에서 아내는 밝은 목소리로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었고,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으며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을 보시던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며 마음이 조금 놓이신 듯했다.

"그래, 이렇게 직접 보니까 한결 마음이 편하다"고 말씀하셨다.

아내의 밝은 모습이 어머니의 불안을 덜어준 것 같아 다행이었다.


통화를 마치고 나니, 내가 이렇게 두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내 하루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닐까 싶었다.


저녁에 모두 병실에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행히 딸이 병실에서 아내를 돌봐주기로 해서 오늘은 처가 식구들과 집으로 향했다. 음식을 조금 해왔다고 하더니, 아내를 걱정하며 정성스럽게 준비해 오신 음식들이었지만, 그 양이 꽤 많아 보였다. 모두가 마음을 담아 가져온 만큼 어떻게 다 먹어야 할지 고민스러웠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당분간은 반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가족들과 오랜만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무척 소중하게 느껴졌다. 정갈한 밥상 위로 오가는 대화와 따뜻한 웃음소리가 이어졌고, 오랜만에 술잔도 조심스럽게 곁들였다. 술기운이 살짝 오르자 묵혀 두었던 이야기들이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모두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아내에 대한 걱정과 응원이 한데 모여 푸근한 저녁을 완성했다.


한편, 아내는 오늘도 한 걸음 더 나아간 모습을 보여주었다. 스스로 운동도 하고, 가족들과의 만남 속에서 활기를 되찾아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작은 변화들이 쌓여 큰 회복으로 이어질 거라는 희망이 조금 더 단단해졌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한 저녁, 그리고 아내의 밝아진 모습을 떠올리며 마지막 술잔을 들었다.

앞으로 더 나아질 날들을 기대하며 하루를 이렇게 마무리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오늘은 분명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아내에게 더 나은 내일을 준비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