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92일째, 동녘에서 출발한 해는 약속이나 한 듯 늦지 않게 도착했고, 나는 그 빛을 조용히 바라보며 창가에 서 있었다. 이제는 어스름한 햇빛 사이로는 달의 흔적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 아침이었다. 밤과 새벽 사이, 어딘가에 머물렀을지도 모를 달은 이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가끔은 이른 새벽 어둠속에서만 볼 수 있었던 풍경들이 작은 설렘으로 다가왔었다. 하지만 그 설렘조차도 가슴속에 잠시 넣어두어야 할 계절이 찾아왔다는 것을, 나는 오늘 아침의 공기 속에서 조용히 느낄 수 있었다.
분주했던 아침이 지나가고, 다시 익숙한 책상에 앉았다. 아무 생각 없이 달력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날짜에 시선이 멈췄다. 3월 31일. 오늘이 3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 순간 마음 어딘가에서 슬쩍 밀려오는 감정이 있었다. 이 시기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아주 익숙하고도 묘한 감정.
‘참, 시간 빠르네.’
정말 엊그제만 해도 1월이었던 것 같았는데, 어느새 3월이 다 지나가고 있었다. 계절은 너무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몇일 아우성치던 바람도 잦아 들고 책상 옆 창가에서 들어오는 빛을 느끼는 순간 이제는 정말 4월이구나. 그래, 봄이 시작되었구나.
사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3월 말과 4월 초는 온몸이 무거워지는 시기였다. 정신없이 바빴다. 이맘때쯤이면 늘 그랬다. 직장인에게 3월 말은 1분기의 마감을 뜻했고, 4월 초는 2분기의 시작을 의미했다. 그건 곧, 3월 중순부터는 매출의 압박에 시달려야 하고, 지난 3개월간의 실적을 분석해 보고 자료를 만들고, 25년 초에 세웠던 계획을 다시 꺼내 검토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 모든 흐름 위에 서 있자면 정신이 아득해졌다. 말 그대로 회의로 시작해, 회의로 마무리되는 시기. 사무실의 공기조차 빡빡했던 그 시기에는, 사람의 말보다 숫자가 더 많은 공간에 내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올해 3월은 달랐다. 27년 만에 처음으로 매출이라는 올가미에서 완전히 벗어난 시간이었다.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면, 이렇게 해방감이 진하게 감도는 날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보통 이럴 때, 사람들은 ‘홀가분하지만 뭔가 허전하다’는 말을 곧잘 꺼낸다.
하지만 나는, 하나도 허전하지 않았다. 허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조금 놀라웠다. 사실 회의와 발표 자료만 없었다 뿐이지 정말 그 어느 때보다 정신없는 날마다 새로운 3월을 보냈다. 아니 1분기를 보내왔다. 진짜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지난 시간들이었다.
월급쟁이였을 때와 비교해 보면, 솔직히 불편하거나 아쉬운 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가만히 떠올려 보면, 예전보다 통장에 입금되는 금액이 줄었고, 그만큼 잔고도 줄었고, 결국 통장의 무게가 가벼워졌다는 것.
이 한 가지 사실이 마치 세 가지처럼 느껴진다. ㅎㅎ. 어쩌면 가장 중요한 부분일 수도 있겠다.
돈이라는 건 확실히 삶에 많은 영향을 준다. 그러나 그 영향이 전부는 아니다. 반대로 좋은 점을 생각해 보면, 무엇보다 ‘타인을 위한 삶’을 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그게 얼마나 나를 갉아먹는 일이었는지를, 지금에서야 분명히 안다.
타인을 위한 접대성 술을 마시지 않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술을 끊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술을 끊은 한 가지 사실이 놀라운 일들을 불러오기 시작했다. 하나를 내려놓았을 뿐인데, 마치 도미노처럼 삶의 다른 조각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대체되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단연 술자리의 감소였다. 자연스럽게 술값이 사라졌다. (사실, 한 달 술값이라는 게 생각보다 꽤 컸다.) 나는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그래서 술이 빠지자, 지출의 큰 항목 하나가 통째로 빠져나간 셈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렇다 보니 예전에 사두고, 작아져서 더는 입지 못하고 옷장 구석에 박혀 있던 옷들이 하나둘 맞기 시작했다. 거울 앞에 서서 옷을 입어보는 순간의 묘한 기쁨.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입었지만, 마음은 은근히 들뜨기고 했다.
살이 빠지고, 몸이 가벼워지면서 95사이즈의 옷이 맞기 시작했다. 가끔은 군대에 있는 아들이 두고 간 옷도 슬쩍 꺼내 입는다. 괜히 웃음이 나는 순간이다. 그러다 보니 옷값도 들지 않는다. 이 두 가지만 놓고 보더라도, 예전처럼 통장의 무게가 빠르게 줄어들지 않게 된 것이다.
기름값, 교통비, 좀 과했던 차를 팔아서 할부금이 없어졌고, 남은 돈으로 집 대출금을 값았다... 이제 조금씩 지출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직장을 그만두기 전, 나는 늘 같은 두려움을 품고 살았다. ‘내 월급이 들어오지 않으면 도저히 살 수 없을 거야.’
그 생각이 너무 강해서, 그저 1년만, 1년만 더 버텨보자는 마음으로 지낸 시간이 어느새 20년을 지나 있었다.
그렇게 오래, 망설이고 두려워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 시간의 끝에서 조금씩 나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조용히 생각해 보면, 살 수 있고 없고의 문제는 결국 '돈'이 아니었다는 것을, 아주 천천히 알아차리게 되었다.
모든 것은 내가 어떻게 마음을 먹었느냐, 어떤 결심을 하고 행동했느냐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나는 하루하루 살아가며 체감하고 있다.
물론, 월급을 받을 때처럼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니다. 적어도 겉으로 보이는 기준으로는. 하지만 그 풍요로움이라는 기준 자체가 이제는 달라졌다. 그래서 지금 나는, 그때보다 훨씬 더 풍요롭게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스스로에게는 조금 조심스럽게, 그러나 확실하게 그렇게 느낀다.
직장 생활을 할 때의 나는, 통장에 들어오는 숫자를 바라보며 안도했지만, 그 돈이 내 삶에 실질적으로 어떤 변화를 주고 있었는지를, 그때는 몰랐다. 돈은 숫자였고, 그 숫자는 내 일상을 바꾸는 힘이 없었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늦게까지 일하고, 고객들과 술을 마시고, 잦은 출장과 외근으로 정신없이 보내는 하루하루. 그 안에서는 돈을 제대로 쓸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나는 그저 버는 것에 모든 열정을 쏟으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야 그걸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아니, 어쩌면 아직도 그 중간 어디쯤에 서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 이 방향이 맞다고 느낀다. 조금 더 내 쪽으로 기울어진 삶. 그게 얼마나 단단하고 소중한지, 오늘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눈앞에 들어온 작은 달력의 날짜를 보고 생각이 너무 많았던 것 같다. 차 한 잔을 내려 정신을 가다듬고 어제 읽었던 “생각의 도약”에 대한 서평을 작성했다.
그리고 새로운 책을 한 권 펼쳤다. 사실 이 책은 새로운 책은 아니다. 장바구니에 담겨 도착해 책상 위에서 읽기 시작한 지 약 2주일 정도 된 책이다. 일반 도서 읽듯이 한 번에 읽으면 두 시간이면 읽을 수 있지만 절대로 그렇게 읽으면 안 되는 책. 바로 시집이다.
얼마 전 교보문고 앱에서 3월 21일이 “시의 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야에 구분 없이 다양한 책을 읽기로 마음먹었지만 “시”라는 분야는 아직 선뜻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시의 날에 시집 한 권은 핑계도 좋고 이유도 분명했다.
그리고 생각해 보니 집에 시집이 한 권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류시화 시인이 엮은 <마음 챙김의 시>라는 시집. 그 시집은 다시 꺼내며 순간 1년 전 아내가 병원에 입원해 있던 기억이 되살아 났다.
당시 힘들게 하루를 보내던 아빠를 위해 딸이 용기를 내라며 선물했던 기억이었다.
2월이니까 거의 1년 만에 손에 들어보는 시집이었다. 그렇게 이번에 선택한 시집은 너무도 유명하지만 난 아직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나태주 시인의 <꽃을 보듯 너를 본다>이다. 약 2주 동안 하루에 몇 편 또는 몇 페이지를 차분히 읽어 왔다.
“시의 날”이 있는 3월의 마지막 날에 포스팅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포스팅을 하려고 보니 시집은 처음 해보는 것이라 어떻게 감을 잡아야 할지 떠오르지도 않았다. 자기 계발서나 소설처럼 읽을 때마다 페이지에 느낌을 적을 수도 없었다. 짧게 적혀 있는 시집에 여백이나 공간은 많았지만….
그곳을 내 글씨로 채운다는 것이 뭐랄까. 시집을 좀 더럽히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랄까…. 뭐 좀 그랬다.
구구절절. 이 "시" 는 어러했고, 저 "시" 는 저러했다고 하나하나 설명해볼까 했지만, 막상 글로 옮기려니 참 난감했다. 시라는 건, 설명하면 할수록 본질이 멀어지는 이상한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지금까지 포스팅했던 어떤 책보다 훨씬 긴 시간을 들였으면서도 가장 간단한 문장으로 마무리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렇게 써버린 글을 바라보며, 나 스스로 괜찮다고 위안을 삼았다. 그래, 시는 역시 “여백의 미”라는 게 있어야 하는 거잖아.
너무 빡빡하게 풀어내면, 시가 느껴지지 않을 테니까. 오히려 조금 허전한 기분으로 마무리하는 게 더 나은 것 같다는, 뭐 말도 안 되는, 나만의 변명을 하면서 말이다.
다른 책들도 물론 마찬가지지만, 시집은 단 한 번 읽고 책꽂이에 넣어두기에는 왠지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이번에는 시집을 모니터 옆에 두기로 했다. 가끔 좋은 시를 발견하면 일기 첫머리에 적어 넣어보기로 했다.
매일 아침, 좋은 시 한 편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
그게 어쩌면 지금의 나에겐 가장 단단하고 조용한 습관이 될지도 모르겠다.
두 편의 포스팅을 마치고, 조용히 운동을 시작했다. 몸을 움직이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정리해준다. 웨이트는 이제 목표한 수치까지 무리 없이 올라왔다. 그 성취감이 은근히 뿌듯하다. 이번 주부터는 욕심내지 않기로 했다. 횟수를 늘리지 않고, 당분간 지금 상태를 유지하기로 했다.
기록보다 중요한 건 지속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씩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른쪽 어깨는 가끔 찌르듯이 아프다. 운동을 할 때는 견딜 만하지만, 몸은 분명히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제는 병원을 찾아야 할 때인 것 같다. 자신의 몸이 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일, 그것도 나를 돌보는 일이니까...
오늘의 영상은 김승호 작가의 《얼굴이 바뀌면 좋은 운이 온다》에 담긴 메시지를 다루고 있었다. 하대 작가의 영상을 꾸준히 봐왔지만, 운명과 관상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이었다.
영상은 전체 2시간 3분. 꽤 긴 시간이었지만,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표정, 즉 얼굴을 보면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는 이야기. 처음엔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야기라 가볍게 흘려들을 뻔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었다. 단순한 ‘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과학적 기반까지 담겨 있는 이야기였다.
그런 점이 오히려 더 흥미로웠다. 타고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얼굴. 어쩌면 사람의 운도, 그 사람의 태도에서 바뀌는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태도는, 내가 어떻게 나를 대하느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영상이 끝났을 때, 내 얼굴이 어떤 표정으로 머물러 있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조금 더 단단하고, 조금 더 부드럽게 살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오늘 영상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입은 곳간이다, 이 곳간은 너무 꽉 잠그지도,
물색없이 열어 놓지도 말아야 한다.
항상 입을 조심하자”
하와이 대저택
이 말에 대한 설명을 영상에서는 자세히 해주지 않았지만 운동을 마치고 난 이 말의 의미를 생각했다. 이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입은 재산을 쌓아놓는 곳간. 즉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타인에게 내어주는 장소라는 것이 아닐까?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 오늘 들은 문장 중 가장 마음에 남은 말이었다.
너무 과묵한 침묵도 문제지만, 아무런 기준 없이 입을 열고 마치 곳간을 열듯, 물건을 퍼주듯 말을 하다 보면 결국 자신이 먼저 무너진다는 이야기였다. 말을 아끼라는 뻔한 충고보다 훨씬 더 깊이 다가왔다.
말이란 건 결국 내 곳간의 재산이니까. 그 곳간을 아무렇게나 열어버리면, 결국 내 안의 것들이 다 바닥나고 만다는 것이다. 열어놓은 곳간에서 재산이 줄줄 새나가는지도 모른다는 것. 그것은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타인에게 내뱉은 말들을 의미한다.
그렇게 빠져나간 재산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돌아오지 않는 것 뿐 아니라 내 곳간이 열려있다는 사실이 소문이 나면 결국 내 곳간에 도둑이 들것이다. 가득했던 재산들은 그렇게 빠져나가고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 이후에 곳간문을 걸어잠궈면 늦는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단 한 줄의 문장만으로도 마음이 움직였고, 나는 결국 오늘도 또 한 권의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사람이 책을 고른다는 말도 있지만, 가끔은 책이 사람을 끌어당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내와 오붓하게 저녁을 먹고,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주말에 다녀왔던 강연 이야기를 잠깐 꺼냈고, 소파 테이블 위에는 그날 강연장에서 받은 상조회사 팸플릿이 놓여 있었다.
아내가 그 팸플릿을 슬쩍 보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도 상조가 필요하지 않을까?"
순간, 나는 조금 놀랐다.
왜냐하면… 사실 나도 그 책자를 보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외아들로 자라 형제도, 사촌도 없는 나는 만약의 상황이 닥쳤을 때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직은 이르다고, 그 생각은 마음 한켠에 조용히 접어두고 있었던 터였다.
‘참… 고명환이라는 유명 강사를 무료로 부를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 있었구나.’ 뒤늦게 이해가 되었다. 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책자를 보고 필요성을 느끼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주입’이라는 것의 효과라는 걸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우리는 그렇게 잠깐 이야기하고,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자”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난 얼른 책자를 테이블에서 치워버렸다.
대화가 끝나고 아내는 경북 김천에서 시작한 볼링대회 중계에 푹 빠져들었다. 응원하는 선수가 이번엔 꼭 우승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경기를 지켜보는 아내의 모습이 괜히 미소를 짓게 했다.
나는 그런 아내 옆에서 조용히 책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오늘 하루를 천천히 정리하며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