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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부자 Dec 25. 2024

<일상>24년 12월 24일 이브의 일상

올 해 처음이자 마지막 송년회를 한 이유는 바로 내 생각의 변화때문이었다

오늘은 명상, 목표 읽기와 쓰기, 공감 및 댓글 달기, 독서, 운동까지 모든 루틴을 계획대로 완수한 하루였다. 매일 루틴을 끝마치는 시간은 정확히 오후 1시 30분. 반려묘 후츄에게 간식을 챙겨주고 점심 대신 삶은 계란 두 개와 두유 한 팩을 먹은 후, 2시에 집 앞 이마트로 향했다.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날, 늘 먹던 집밥 대신 간단한 특별 요리를 준비해보고 싶어 들어갔다.


마트에는 평일 오후임에도 사람들이 꽤 많았다. 가장 먼저 정육 코너로 가서 목살과 등심, 삼겹살을 골랐다. 냉장고에 들어 있는 작년 김장김치가 지금은 묵은지가 되어 있어, 물과 고기만 더하면 그야말로 최상의 맛을 내는 김치찌개가 떠올랐다. 추운 날이면 우리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다.


몇 가지 물건을 담았을 뿐인데, 결제할 때는 결국 신사임당을 넘어 세종대왕까지 동원해야 했다. 무겁게 느껴지는 카트를 끌며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에는 볼링클럽 송년회가 예정되어 있어, 잠시 여유를 가지며 오늘 하루를 돌아보았다.


오늘 송년회는 다소 조촐했다. 올 초에는 20명 가까이 활동하던 동호회가 오늘은 9명만 참석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한 사람도 있고, 동호회를 그만둔 사람도 많았다. 작년까지는 바쁘게 송년회를 다녔던 것에 비해 올해는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 송년회였다. 왜 올해는 이렇게 조용한 한 해를 보냈을까 고민해보았다. 


작년까지 만해도 이 시기가 되면 매 주말 여기저기 송년모임을 한다고 바쁘게 지냈을 텐데 올 해는 오늘 송년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는 송년 모임이었다. 이런 모임 특히 오늘 같은 송년모임이 줄어든 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잠시 의미를 두고 생각을 해봤다. 왜 올해는 단 한번의 송년모임으로 마무리하는 걸까?


일단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내가 퇴사를 했기 때문이다. 내 퇴사로 인해 최소 두번의 송년 모임이 사라졌다. 그리고 친구들과 하던 볼링 동호회를 올해 초 와이프의 사고로 함께 하지 못해 한번의 모임이 사라졌고, 고등학교 친구들과 하는 친목모임도 원래 매년 12월에는 적어도 한번은 만나왔는데 올 해는 그 모임도 송년회를 취소했다.


오랜 친구들과 형님들과 함께하는 친목모임도 이번 달 초에 미리 모임을 가졌는데 당시 난 다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고, 캠핑을 하던 사람들과 만나고 있던 모임도 이제는 시들 해져서 송년모임이라고 할 정도로 만남을 가지지 않는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만날 사람이 없어서 모임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안도감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닌데 올 해 연말이 바쁘지 않은 이유가 뭘까? 곰곰 생각하다 내린 결론은 내 사고의 변화 때문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회사를 퇴사하기로 마음먹은 것도 나였으니 일단 그 하나의 행동으로 두번의 모임이 취소되었고, 나머지 친목 모임의 송년회도 사실 내가 적극적으로 만나자고 노력했다면 취소되지 않을 모임들이다. 그런데 난 올해 어느 모임에도 먼저 송년회를 하자는 의견을 내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가장 큰 이유는 루틴으로 시작해 이제는 어느정도 습관으로 자리잡은 내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 같은 마음 불편함 때문이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명상, 독서, 운동의 어렵게 만들어 온 오전 습관인데 전 날 저녁 술을 마시게 되면 다음날 지키기 어렵다. 


간단하게 저녁을 먹으며 마시는 술은 다음날 영향을 주지 않을 정도로 마실 수 있지만 송년모임같이 의미를 두고 만나는 자리는 사실 아직 내 술습관을 조절하지 못하기 때문에 과음을 하게 되고 그러면 여지없이 다음날 루틴은 실패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예 그런 자리조차 만들지 않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은 이유 중 하나는 와이프가 술을 못 마시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프기 전에는 나보다 술을 더 잘 마시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술을 많이 마시면 안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술자리에 함께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다. 그러니까 사실 와이프는 지금 금주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절주를 하고 있기 때문에 술 마시는 자리에 오래 있으면 불편해하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나도 함께 하는 술자리를 만들지 않고 있다.


친구 같은 와이프와 30년을 살면서 우린 늘 함께 밤새도록 술을 마시는 술친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올 해 초 사고로 인해 이제는 술 친구는 할 수가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리고 우린 서로 그 상황에 대한 배려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술 자리가 싫은 와이프는 나를 위해 1차에서는 아무런 내색 없이 웃으며 동행을 한다. 그리고 나는 웬만한 술자리는 1차에서 마무리하고 늦지 않은 시간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들 만으로 1년에 한 번 뿐인 송년모임이 이렇게 까지 줄어든 것에 대한 명쾌한 정답을 내지 못하는 답답함이 있었다. 퇴사도, 와이프의 사고도 시원하게 이거다라는 결론을 내가 내릴 수없는 불편한 감정이 남아 있었다. 곰곰 생각을 더 해봤다. 그리고 순간 그렇다! 이거다! 하는 뭔가 깨달음 같은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제 송년모임이 올 해 한 번 뿐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사실 처음에 생각했을 때는 내가 친구가 많이 사라졌나, 나이를 먹고 이제는 만날 사람이 없어진 걸까,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이제 내 인맥까지 없어진 걸까, 1년에 한번 만나는 송년회를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은 내가 50년을 잘 못 살아온 걸까 하는 생각들이 가득하였었는데 곰곰 생각을 해보니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결국 내 생각이 바뀌고 나서부터 이 모든 것들이 행동으로 이어졌고 그로 인해 나는 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송년 모임이 줄어든 명확한 원인은 퇴사도, 와이프의 사고도 아니라 내 생각의 변화에 따른 행동의 변화 때문이라는 것이다.


난 인생을 새로 살기로 생각했고,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 루틴을 만들기 시작했고, 독서를 시작했으며 독서를 통해 용기를 얻었고, 새로운 인생을 살려고 퇴사를 결심했다. 새로운 인생을 사는데 반드시 루틴은 지켜져야 했고, 루틴 중단의 불편함을 알게 되면서 나 스스로 술자리를 조금씩 피해왔고 결국 내가 아직 술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했고 그래서 난 이런 의미 있는 술자리를 만들려고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결론은 “내 송년모임이 줄어든 것은 인생을 잘 못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내 생각의 변화에 따른 행동의 변화다” 하는 생각을 하고 오늘 내 하루의 생각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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