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109일째, 이른 아침, 창 너머로 들려오는 낯선 분주함에 눈을 떴다. 뭔가 무거운 것이 바닥을 긁는 듯한 소리, 그리고 굉음. 아침의 적막을 깨고 들어온 그 소리에 이끌려 베란다로 나갔다.
우리 라인의 위층에서 어딘가에서 이사를 준비하고 있는 듯했다. 사다리차가 창문을 지나 우뚝 솟아 있었다. 마치 베란다를 스쳐가는 거대한 나무기둥처럼. 기계가 뿜어내는 소리가 조용했던 아침 공기속을 파고 들었다.
시간을 보니 6시 30분. 이미 대부분의 준비는 끝난 듯했고, 7시를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누군가는 나보다 훨씬 이른 아침을 살아내고 있다. 내가 잠의 유혹을 억지로 이겨내는 그 시간에 어떤 이들은 새로운 집으로 향하는 시작의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제목: 화살기도
아직도 남아있는 아름다운 일들을
이루게 하여 주소서
아직도 만나야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여 주소서
아멘이라고 말할 때
네 얼굴이 떠올랐다
퍼뜩 놀라 그만 나는
눈을 뜨고 말았다.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중에서 - 나태주
명상을 마치고 오전 7시. 평일이라면 이미 집 안은 분주해졌을 시간이지만, 주말의 이 시간은 아직 깊은 밤의 연장선에 머물러 있다. 아직 잠든 아내와 막내 덕분에 주말 오전은 조용하고 단정한 고요로 가득 찬다.
평일 아침의 7시부터 9시는 늘 어수선하다. 두 사람의 서두르는 움직임 사이에서 집중이라는 단어는 좀처럼 자리를 찾지 못한다. 그러나 주말엔 다르다. 눈을 뜬 직후부터 책상에 앉을 수 있고, 마음은 조금 더 안정된 상태로 집중력을 끌어올린다.
아내와 막내가 아직 잠든 이 고요 속에서, 나는 마음껏 나의 시간을 누린다. 그리고 어쩌면 이 조용한 순간이 가능한 건 그들의 깊은 잠 덕분이라는 생각에, 아무 말 없이 작게 감사하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충분히 고마운 시간들이 있다. 주말 아침의 고요는 그렇게, 나에게 가장 소중한 집중의 시간을 선물해준다.
어제 완독한 <인문학 필독서 50>을 다시 꺼내 들었다. 후기를 쓰기 위해, 플래그를 꽂아둔 페이지를 조심스레 펼치고, 밑줄을 그어두었던 문장을 다시 한 줄씩 읽었다. 키보드를 두드려 그 문장을 컴퓨터에 옮겨 적는다. 단순한 입력은 아니다. 이건 나만의 방식으로 다시 한 번 책과 대면하는 시간이다.
난 서평을 쓸 때도 책 속의 문장을 직접 손으로 타이핑한다. 문장을 다시 옮기는 동안, 나는 그 문장과 다시 마주하고, 그 문장이 나에게 건네려는 말을 천천히 되새긴다.
비록 필사는 아니지만, 이 순간의 마음은 필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문장을 옮기며 그 의미를 곱씹고, 다시 음미한다.
물론, 사진을 찍어 챗GPT에게 텍스트로 변환해달라고 요청하면 금세 해결된다. 기술적으로는 아무 문제도 없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건 나와의 조용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록은 내가 아내와 볼링장을 가거나, 책을 펼 수 없는 상황에서도 나만의 독서노트가 되어준다. 손으로 직접 옮긴 문장들을 들여다보면, 그때 손끝에 전해지던 키보드의 타격감까지 되살아나는 것 같다.
마치 문장이 다시 내 손을 통해 살아나는 듯한 느낌. 복사하고 붙여넣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쾌감이다. 그것은 정보를 옮기는 행위가 아니라, 내 안에 새기는 과정에 가깝다.
그렇게 <인문학 필독서 50>의 정리를 마쳤다. 포스팅도 올렸고, 책 속의 내용은 서평과 '책의 남은 이야기'를 통해 조금씩 풀어갈 예정이다. 그에 앞서, 책을 덮고 난 직후의 인상을 간단히 남겨두고 싶어졌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아쉬움이었다. 내용이 부족하다는 뜻은 아니다. 작가가 소개한 책들이, 소개하기엔 너무 짧게 느껴졌다는 점에서다. 조금만 더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스스로에게 웃음이 났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보면, 책 50권을 다루는 이 시리즈는 아마 100부작은 나와야 하지 않을까. 추천 이유, 읽어야 할 이유, 저자의 생각, 함께 읽을 책까지 담다 보면, 독자보다 작가가 먼저 지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이 정도로 아쉽고 부족함을 느낄 정도라면, 이 책을 쓴 작가는 오죽했을까.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을까. 다 담지 못하는 속상함은 또 얼마나 컸을까.
물론 내가 작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한 권의 책 서평을 쓰는 데도 난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게 나다. 하물며 인문학이라는 다소 무겁고 어려운 주제를 가진 책 50권의 후기를 써 내려간다는 건, 단순한 노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건 진심이자, 긴 시간과 열정을 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오늘은 새삼 다시 깨닫는다. 작가는 정말, 쉽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이 여전히 내 마음속에 있다는 사실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내 꿈은 여전히 그 방향을 향해 있다. 조심스럽지만 단단하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오전엔 초집중 상태로 책 서평을 완성했다. 한 편의 포스팅을 완료하고 나면 어딘가 몸이 가벼워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 책상에서 일어나 거실로 향하는 길, 기다렸다는 듯 두 사람이 방에서 나왔다.
안방에서 아내가, 작은 방에서 막내가. 마치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조용히, 그러나 분명한 존재감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 틈에 빠질 수 없는 후츄도 있다. 안방 문틈 사이로 고개를 내밀며 ‘나도 있다’는 눈빛을 보내온다. 조용한 존재감이지만, 확실히 그 안에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아침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냉장고를 열었다. 어제 분명 무언가를 양손 가득 들고 왔던 기억이 있다. 꽤나 땀을 흘리며 고생했던 시간이었다. 그런데 냉장고를 열어보면 늘 같은 풍경이다. 먹을 게 없다. 분명 채워넣었는데, 이상하게도 눈에 보이는 건 없는 상태.
가끔은 농담처럼 이런 상상을 한다. 아마도 우리 집 냉장고 안 어딘가에 거대한 코끼리 한 마리가 앉아 있는 게 아닐까. 넣어둔 음식들을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먹어치우는 능력자. 그게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막내가 말했다. 주말 오전은 간단히 브런치로 하자고. 간단한 브런치. 그 말의 ‘간단함’을 음미하며, 내가 준비한 과정을 아주 간단히 되짚어본다.
먼저 토스트기에 식빵을 넣는다. 한두 장이 아니다. 열 장. 차례차례 굽는다. 계란은 여섯 개. 소금을 약간 넣고 휘휘 저어 풀어준다.
스팸도 꺼낸다. 그대로 굽기엔 너무 짜서, 뜨거운 물에 한 번 데쳐 기름기와 짠맛을 뺀다. 계란은 두번에 나눠 부치고, 햄은 10등분을 초 집중해서 동일하게 썰어낸다. 노릇하게 구워 접시에 담는다.
구워진 식빵 위에는 어제 사온 블루베리 잼을 바르고, 그 위에 부친 계란, 다시 햄, 그리고 케찹과 마요네즈를 적당히 짠다. 마지막으로 땅콩가루를 톡톡 뿌리면 비로소 한 조각이 완성된다. 이런 단순한? 과정을 열 번 반복하면 토스트 10개가 된다. 간단하다...
음료는 각각 취향이 다르다. 아내는 커피, 막내는 핫초코. 다행히 정수기에서 온수가 나와 주전자를 꺼낼 일은 없다. 작은 위로였다. 그렇게 주말 아침 간단한 아점용 브런치가 완성되었다.
“나와서 드세요.” 라는 말에 어제와 마찬가지로 마파람 게눈 감추듯 먹는 막내를 보며 난 오늘도 여지없이 나의 존재를 깨 닫는다. 난 아직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점심을 먹고 아내와 함께 볼링장으로 향했다. 아내는 볼링공을, 나는 한 권의 책을 들고.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그렇게 조용히 집으로 돌아왔다.
간단히 차린 브런치를 결과적으로는 과하게 먹었다. 저녁 무렵, 모두가 공통적으로 말한다. 별로 배가 고프지 않다고. 그래도 저녁을 완전히 건너뛸 순 없다. 결국 어제 남겨뒀던 보쌈 고기와 반찬들을 꺼내 두고, 각자 배고플 때 알아서 챙겨 먹는 걸로 조용히 합의했다. 그리고 나는 책상에 앉았다.
주말의 첫날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를 만큼 빠르게 흘렀다. 다시 책을 펼치고, 새로운 글을 쓴다. 어느 순간부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아주 조금씩, 내가 변화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예전엔 조금만 앉아 있어도 불편했던 엉덩이가, 이젠 생각보다 오래 자리에 머문다.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리는 순간,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손가락이 움직인다.
단어들이 머리에서 흐르기 전에, 이미 손끝에서 먼저 시작되는 느낌. 가끔은 이런 모습을 영상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마저 든다.
바쁜 하루의 끝자락, 문득 이런 사소한 변화들을 남기고 싶어졌다. 특별한 감정은 아니지만, 이런 생각이 스쳐갔다는 사실을 기록해두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