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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부자 Dec 25. 2024

<생각> EBS 다큐프라임 태평양
2부 미스터리한 세상

태평양 거북이의 산란을 통해 깨달은 모성애로 인한 눈물 

어제 처음이자 마지막 송년회를 거창하게 치르지 않아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았지만 집에 들어와 다큐멘터리를 보느라고 좀 늦잠을 잤더니 평소보다 늦게 아침을 시작했다. 어제 본 다큐멘터리는 EBS에서 촬영한 3부작 <다큐프라임-태평양>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티브이를 잘 보지 않지만 어제는 술 한잔하고 들어온 김에 와이프와 이야기도 할 겸 티브이를 틀었다가 와이프도 나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본 프로그램이었다.


3부작 중 2부의 오늘 내용은 태평양 과학으로도 풀리지 않는 5만여 마리 거북이의 대이동과 산란에 관한 이야기를 오랜 시간 촬영한 내용을 위주로 방송되었다. 산란의 과정부터 태어나서 바다로 나가 다시 돌아와 산란하는 과정을 그린 다큐는 생명과 죽음의 경계를 잇는 신비한 세계가 인간만이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노을빛이 물결 위에 희미하게 비치는 해안가에서 거북이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천천히 모래사장을 향해 나아간다. 그들의 발걸음은 느리고도 힘겹지만, 그 목적은 단 하나,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기 위함이었다. 


산란지를 찾은 어미 거북이는 후각과 본능에 이끌려 수십 년 전 자신이 태어났던 바로 그 자리로 돌아오고, 그곳에서 그녀는 생명을 담은 알을 한 알 한 알 모래 속에 묻기 시작한다. 이 행위는 본능적이면서도 경건한 의식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 신성한 의식이 끝나기도 전에 생태계의 또 다른 강자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하늘을 맴도는 독수리들. 이들은 거북이 알을 탐내며 지는 노을 속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다. 날카로운 부리를 가진 독수리들은 거북이의 알을 노리고 순식간에 내려와 공격을 하고 어미 거북이는 자신의 알을 보호하기 위해 뒷발로 모래를 부지런히 덮으며 방어를 한다.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자신의 몸으로 알을 감싸 안고 독수리의 공격을 막아 내지만 독수리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사진 출처- EBS 방송

공격의 강도는 점점 거세지고, 결국 독수리들은 거북이의 눈을 노리기 시작한다. 그들의 날카로운 부리는 거북이의 한쪽 눈을 꿰뚫고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거북이는 자신의 알을 끝까지 지키려 하지만, 이미 한쪽 눈을 잃은 그녀는 더 이상 저항할 힘을 잃고 만다. 


산란지를 지키려는 모든 노력을 다한 후, 암컷 거북은 쓸쓸히 바다로 돌아간다. 한쪽 눈을 잃은 어미 거북이의 뒷모습은 절망과 희생, 그리고 생명을 향한 집념이 혼재된 감정을 나의 가슴에 영원히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겨두었다.

사진 출처- EBS 방송

이 장면은 나에게 단순히 자연의 먹이사슬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의 일부로 생각되지 않았다. 특히 어미 거북이가 자신의 알을 지키기 위해 한쪽 눈을 희생한 모습은 인간의 모성애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깊은 사랑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


인간 사회에서 모성애는 종종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자식을 지키고 보호하려는 본능으로 묘사되곤 한다. 갓난아기를 돌보며 밤을 새우는 어머니, 위험 앞에서 본능적으로 아이를 감싸 안는 어머니의 모습은 인간의 모성애를 대표적으로 상징한다. 그러나 오늘 시청한 영상의 거북이의 행동은 나에게 깊은 질문을 던진다. 인간만이 모성애를 가진 존재일까?

사진 출처 - EBS

거북이의 행동은 본능이라는 단어로만 축약할 수 없는, 더 깊은 차원의 애정을 담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거북이는 눈을 잃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알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몸부림쳤다. 


이는 자신의 생명보다 알 속에 깃든 생명을 더 소중히 여기는 어미의 마음을 보여준 것이다. 단순한 본능을 넘어, 이는 자연 속에서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절대적인 책임과 희생의 결정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장면은 단순히 모성애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인간에게 자연과 생명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경고의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을 했다. 거북이가 처한 위협은 독수리뿐 만 아니라, 인간이 초래한 환경 파괴 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해양 오염, 산란지의 감소, 기후 변화로 인해 거북이와 같은 해양 생물들은 매년 점점 더 많은 생존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자연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자연의 보존과 생명체의 보호를 위한 행동의 필요성을 호소하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었다.


거북이가 보여준 희생적인 사랑은 우리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으로 다가왔고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언젠가 우리는 이 경이로운 생명들의 이야기를 다시는 들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쪽 눈을 잃은 채 바다로 돌아가는 거북이의 모습은 나에게 보는 내내 눈물을 흘리게 했고, 암컷 거북의 희생은 단순히 자신의 새끼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 그것은 자연 속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생명의 연속성을 위한 숭고한 의지이자, 인간에게 전하는 무언의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을 했다.


오늘 크리스마스이브날에 어중간한 술을 마시고 생각지도 못한 이 장면을 보며 느낀 감정은 단순한 슬픔과 안타까움을 넘어 그것은 생명의 본질과, 우리가 자연 속에서 어떤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으로 다가왔다. 


과연 우리는 어미 거북이처럼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자연과 다른 생명체를 위해 어떤 책임을 질 수 있을까? 그러나 거북이의 모성애가 내 감정을 흔드는 이유는, 나 스스로 자연의 일부로서 본능적으로 그 메시지를 이해하고 공감하기 때문일 것은 아닐까?


결국, 계획 없이 보게 된 한 편의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펼쳐진 이 작은 생명의 이야기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자연의 숭고한 진리이자, 인간이 지켜야 할 책임이라는 사명감 같은 다짐을 새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다큐멘터리가 끝나고 나도 와이프도 어떤 말도 이어 갈 수 없었다. 그저 한동안 티브이에서 나오는 광고장면을 보고 한참을 좀 전에 우리가 본 그 믿기지 않는 모성애에 대한 감정을 느끼며 소파에 앉아 흐르는 눈물을 닦을 뿐이었다.


그리고 서로의 감정이 조금은 안정되었을 때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대 위에 누워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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