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118일째, 늘 그렇듯 아침은 조용히 시작되었다. 창밖으로 부드러운 햇살은 스며들었고 창문 너머로 불어오는 바람이 유난히 거센 아침이었다.
제목: 꽃. 1
다시 한 번만 사랑하고
다시 한 번만 죄를 짓고
다시 한 번만 용서를 받자
그래서 봄이다.
꽃을 보듯 너를 본다.중에서 - 나태주
주말 동안 고요했던 아침이 다시 분주해졌다. 늘 그렇듯 아내와 막내가 준비를 마치고 현관을 나서는 뒷모습에 짧게 인사를 건넸고 나는 커피 한 잔을 내렸다. 커피가 천천히 드립되는 동안 후츄는 익숙하게 베란다로 향했다.
나 역시 조용히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가끔은 일부러 베란다로 나가 후츄를 바라본다. 후츄는 변함없이 햇빛이 가장 따뜻하게 내리쬐는 자리 한가운데 앉아, 창밖을 한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도대체 저 자리에 앉아 몇 시간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 고요한 뒷모습을 바라볼 때면 그런 궁금증이 고개를 든다. 사람처럼 무언가 복잡한 생각을 할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저 작은 몸 안에 어떤 마음들이 오가고 있을까 상상해보게 된다.
세상은 변하고, AI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한다. 누군가는 머지않아 반려동물의 생각조차 읽을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 무섭기도 하지만, 어쩌면 나 같은 집사에게는 기다려지는 변화일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진심으로 후츄에게 묻고 싶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나에게만 무심하게 구는지, 왜 마음 내킬 때만 가뭄에 콩 나듯 내 곁으로 오는지. 하루 중 나를 찾는 시간이라고 해봐야 아침밥 줄 때, 물 줄 때, 운동을 마치고 깍두기 세 개를 얻어먹을 때가 전부다.
그 외의 시간, 나는 늘 서재에 혼자 앉아 있고 후츄는 햇빛 아래에서 혼자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다. 그러다 아주 가끔 정말 아무 일 없는 듯 책상 위로 올라와 의자에 앉아 있는 나를 한 번 툭 건드리고 간다.
그런 순간에도 나는 괜히 반가워하며 후츄를 쓰다듬는다. 그리고 그 짧은 접촉이 지나간 후에도 한참 동안 멍하니 손끝에 남은 온기를 더듬게 된다.
새로운 책을 펼쳤다. 4월 한 달 동안은 블로그 이웃들과 더 깊은 공감을 나누겠다고 마음먹었던 나름의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그렇게 서로이웃 다섯 분의 책을 차례로 읽어내려갔다.
존칭은 생략하고, 더블와이파파, 기록하는 최작가, 북크북크, 여르미, 부아c. 다섯 작가 모두 각자의 진심을 책 안에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저마다 다른 이야기, 다른 속도로, 그러나 모두 깊은 울림을 건네주었다. 내게도 많은 자극과 힘이 되어준 시간이었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 책을 펼쳤다. 블로그 이웃은 아니지만, 이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때 꼭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이 책은 단순한 한 권의 책이 아니었다. 나에게 책을 다시 손에 쥐게 해주었고, 책을 통해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믿게 해준, 가장 큰 동기부여의 원천이었다.
매일 운동을 하며 늘 함께 해온 영상, ‘하와이 대저택’ 채널의 주인공, 하대작가의 책이다.
사실 그의 영상은 2년 전부터 구독하며 거의 매일 빠짐없이 봐왔다. 운동하는 시간, 조용히 나를 다잡고 싶은 시간마다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 덕분에 다시 책을 읽게 되었고, 잊고 지내던 글쓰기의 용기를 조금씩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그의 책을 단 한 번도 펼쳐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팬으로서 부끄럽기만 하다. 아직 나는 팬심이 부족한 조용한 구독자에 불과하다. 영상은 매일 보지만 댓글을 남기지 않고 좋아요 버튼조차 누르지 못하는 날이 많다.
무대 위로 올라가서 환호하지 않고 무대 아래 가장 구석에서 조용히 박수를 보내는 그런 관객처럼. 조용히 응원하고, 조용히 힘을 받는다. 꼭, 우리 집 숨은 구독자인 막내처럼.
하대작가의 <더 마인드> 첫 장을 조심스럽게 펼쳤다. 이번 책은 10만 부 출간을 기념해 나온 코멘트 에디션으로, 페이지마다 깨알 같은 작가의 짧은 메모가 함께 실려 있었다.
처음 손에 쥐었을 때 비닐 포장에 곱게 싸여 있었고, 오늘 아침이 되어서야 비로소 포장을 뜯었다. 책 안쪽에는 작은 성공 카드가 한 장 들어 있었다.
카드에는 내가 이 영상을 시청하며 가장 좋아했던 문장이 적혀 있었다. "여러분은 성공합니다. 여러분이 그걸 원했기 때문입니다."
짧지만 강한 울림을 주는 이 문장을 핸드폰 케이스 뒤에 조심스럽게 꽂아두었다.
오늘 하루, 그리고 앞으로의 많은 순간에 이 문장을 떠올리고 싶었다. 그렇게 작은 의식을 끝낸 뒤, 커피 한 잔을 준비해놓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미 하대작가의 영상을 수없이 반복해 시청했기 때문에 책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이 없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다.
그런데 그런 나의 선입견은 책장을 넘기는 순간 철저히 무너져내렸다. 영상 속에서는 미처 담지 못했던 저자의 경험, 고민, 그리고 깊은 사유가 고스란히 글 안에 녹아 있었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것은, 저자의 목소리를 영상으로 수없이 들어온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마치 바로 옆에서 조용히 읽어주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는 점이었다. 글자를 눈으로 따라가면서 동시에 익숙한 목소리가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다. 신기하고 따뜻한 체험이었다.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거부할 수 없이 자연스럽게 빠져들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책장을 넘겼다. 그렇게 오늘 오전에 책을 완독했다. 다 읽고 나서도 한참 동안 손에 책을 쥔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남은 여운은 서평으로 따로 정리할 예정이다.
오늘은 그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목소리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특별한 날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주말 동안 쉬었던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오전 내내 책 속에서 만났던 작가를, 이번에는 영상 속에서 다시 마주하니 묘하게 다른 기분이 들었다.
꼭 조금 전 북토크 현장에서 막 내려온 작가를 다시 무대 뒤에서 만난 듯한, 어딘가 조금은 현실감이 느껴지는 그런 감정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의 영상과 함께 페달을 밟았다. 지방과 함께 내 안의 열정도 한 번에 불태워버리겠다는 다짐과 함께.
땀을 흘리고 샤워실로 향했다. 뜨거운 물을 틀고 샴푸를 짜내는 순간,
관리실 방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후 1시 30분부터 단수가 시작됩니다."
잠시 멈칫했다. 이쯤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되려면, 이미 비누칠을 다 해놓은 상태에서 물이 끊겨 당황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져야 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까지 극적이진 않았다. 일상이란 대체로 그렇게 시트콤처럼 흘러가진 않는다. 그리고 사실, 억지로 웃기려는 그런 이야기들은 조금 식상하기도 하다.
하지만 실수를 한 건 맞다. 아침에 이미 단수 방송을 듣고도 깔끔하게 잊어버린 채, 아무 생각 없이 샤워실로 들어갔던 것이다. 순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 자신을 탓했다. 다행히도 방송은 단수 직전 5분 전 안내였고, 나는 그 짧은 여유 속에서 부랴부랴 샤워를 마칠 수 있었다.
머리에 남은 거품도 헹궜고, 물이 끊기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샤워를 끝낸 채 거울 앞에 섰다. 삶은 그렇게 때로는 아슬아슬하게, 별 탈 없이 흘러간다.
운동을 마치고 지난 주말 밀린 청소와 빨래를 서둘러 끝냈다. 작은 성취감에 젖어 소파에 몸을 기대는 순간, 갑자기 휴대폰에서 긴급 재난 문자가 요란하게 울렸다.
손에 들린 휴대폰 화면을 확인하니, 대구에 큰 산불이 났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에도 창밖으로 불어오던 강한 바람이 신경 쓰일 정도였다. 창문이 떨리는 소리까지 들려올 만큼 거셌다. 이런 날씨에 산불이라니. 마음이 급해져 서둘러 TV를 켰다.
화면 속에는 대구 북구 함지산 일대에서 시작된 대형 산불이 번지는 모습이 생생하게 비춰지고 있었다. 민가와 아파트까지 위협하는 불길은 쉬지 않고 번졌고, 인근 고속도로마저 통제되었다는 자막이 떴다.
그 사이에도 재난 문자는 몇 번이고 계속 왔다. 주민 대피령이 내려졌고, 산불 대응은 3단계까지 격상되었다.
올해는 유독 산불 소식이 잦았다. 바람은 사납고, 비는 오지 않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산과 들은 바싹 말라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발생한 산불은 작은 불씨 하나에도 마치 오래 참고 있던 분노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거칠게 번졌다.
화면 속에서 삶의 터전이 하나둘 불타는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 한구석이 아프게 저려왔다.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대피하는 주민들의 불안한 얼굴을 마주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제발 인명 피해가 없기를, 제발 아무도 다치지 않기를, 그렇게 조심스레 마음속으로 빌었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마음으로 기도하는 일 뿐이었다.
잠시 TV를 끄고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무거웠지만, 일상은 그 무게를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하게 흘러갔다.
아내는 퇴근하자마자 급한 걸음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저 쪽 산에서 연기가 가득해."
대구의 인근산에 퍼진 산불은 아내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심각했다.
다시 TV를 켰다. 화면은 더 큰 불길로 가득 차 있었다. 산불은 여전히 꺼지지 않았고, 검은 연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나란히 앉아 화면을 바라보았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같은 마음이었다.
제발 빨리, 부디 더 이상 불길이 퍼지지 않기를, 모든 이들이 무사하기를.
그렇게 우리는 조용히, 한참 동안 화면을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