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권의 책을 통해 철학은 사실 너무 현실적인 학문이란것을 깨닫게 되었다.
새벽 공기가 차가운 듯 상쾌하게 느껴졌다. 창로 희미하게 번져가는 아침 햇살을 보며 나만의 작은 루틴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명상으로 고요하게 마음을 다듬고, 오늘 이루고 싶은 목표들을 노트에 적어나갔다. 블로그 이웃의 을 읽고 공감의 댓글을 남기며, 그들이 살아가는 하루의 조각들을 내 마음에 담았다. 이 작은 루틴들은 하루를 정리하고 새롭게 채워나가는 나만의 약속이자 의식이다.
이렇게 차분한 마음으로 책장을 펼쳤다. 오늘 내 손에 든 책은 딸이 얼마 전 선물해 준 로랑스 드빌레르의 신작, *‘철학의 쓸모’*다. 사실 철학이라는 단어는 늘 나를 긴장시키는 단어였다. 무언가 고차원적이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선입견이 먼저 떠올랐다. 그러나 이번 책은 다르다는 걸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제목에서부터 전해지는 질문, ‘철학은 과연 지금 우리 인생에 쓸모가 있는가?’라는 물음이 나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이 책을 추천해 준 블로그 이웃 두 분, ‘여르미도서관’과 ‘희망꽃’님은 나에게 늘 깊은 영감을 주는 분들이다. 이분들은 블로그를 통해 나를 새로운 책의 세계로 안내해 주곤 했다. 얼마전 읽고 작성한 '모든 삶을 흐른다'의 후기에 댓글로 추천해주셔서 의심 없이 선택을 했다.
사실 철학에 대한 내 첫 경험은 그리 쉬운 여정은 아니었다. 올 6월, 딸이 선물해 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처음 접했을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살짝 얼굴이 뜨거워진다. 책을 받아 들었을 때 두께에 한 번 놀랐고, 첫 몇 장을 읽으며 그 복잡하고도 심오한 문장들에 다시 한 번 놀랐다. 한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여러 번 되짚어야 했고, 결국 10%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책을 덮었다. 그때 결심했다. 언젠가는 독해력을 키워 이 책을 꼭 다시 읽어내겠다고.
그런 내가 이번에는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철학 책을 다시 펼쳤다. 딸이 얼마 전 선물해 준 ‘모든 삶은 흐른다’를 읽으며 철학에 대한 작은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 책은 완전한 철학서는 아니었지만, 저자가 인생의 여러 순간들을 바다에 비유하며 풀어낸 글들이 내게 큰 울림을 주었다. 그때 비로소 철학이란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고 삶으로 경험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학의 쓸모’는 예상대로 어렵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술술 읽혔다. 작가의 필력이 좋은 탓인지, 아니면 나 스스로 철학에 조금 더 익숙해진 덕분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철학이 결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이 책은 철학이 사색과 추상적인 개념에 머무르지 않고, 마치 삶의 사용설명서처럼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내가 그동안 품었던 ‘철학은 어렵다’는 선입견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것을 느꼈다.
책에 몰입하다 보니 어느새 세 시간이 흘렀다. 중요한 약속이 있어 아쉽지만 책을 덮고 운동을 시작해야 했다. 요즘 나는 실내자전거를 타며 유튜브 채널을 보는 시간을 또 다른 자기 개발의 시간으로 삼고 있다. 오늘 선택한 영상은 ‘하와이 대저택’ 채널에서 소개한 롭 무어의 ‘부와 성공의 기회’에 대한 리뷰였다. 이 영상은 항상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지만, 오늘은 특히 운이 좋은 사람들의 특징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영상에 따르면 운이 좋은 사람들에게는 네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일상속에서 사소한 기회를 만들거나 ‘알아채는’ 능력이 있다.
2. 직감에 귀를 기울여 다소 가볍고 긍정적인 결정을 내린다.
3. 긍정적인 언행을 하며, 가장 최고의 모습을 상상하는데 어려움이 없고, 거리낌이 없다
4. 행동을 하면서 만나는 모든 일을 ‘나를 위해 일어난 일’이라고 말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나 스스로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얼마나 기회를 알아채고, 긍정적인 결정을 내리며, 내 삶을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운동을 마친 뒤, 울산에 계신 형님과의 약속이 떠올랐다. 오랜만의 만남이기에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차에 올라 운전대를 잡았다. 퇴사 후 처음 하는 장거리 운전이었다. 불과 지난달까지만 해도 한 달에 최소 3,000km는 도로 위에서 보내며 영남을 누볐는데, 한 달 사이 이렇게 운전이 낯설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차창 너머로 스치는 풍경이 익숙하면서도 어쩐지 어색하게 느껴졌다.
운전 중 피곤함이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사람이란 참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루 종일 핸들을 잡고 있어도 끄떡없었는데, 이제는 몇 시간의 거리도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니. 반복되던 일상이 멈추고 나니, 내 몸도 익숙했던 일들을 잊어가는 모양이었다.
울산에 도착해서 오랜만에 보는 나에게 형님의 첫 마디는 "쉬더니 얼굴이 좋아졌네" 였다. 우리 두사람은 환하게웃으며 가벼운 포옹을 하고 인근 식당으로 이동을 해서 즐거운 대화를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퇴사 후의 마음과 내가 꿈꾸는 미래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사실 이렇게까지 진솔하게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형님의 편안한 표정과 맞장구에 나도 모르게 마음의 문이 열렸다. 형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을 들었고, 때로는 따뜻한 말로 조언을 건넸다. “꿈을 꾼다는 건 좋다. 하지만 가끔은 꿈을 이루기 위해 현실적인 계획이 필요해.” 형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어딘가 무거우면서도 가볍게 마음에 닿았다.
내가 꿈꾸는 미래와 형님의 조언이 교차하는 대화 속에서 마음속 어딘가에 불이 켜지는 느낌이었다. 방향을 잃고 깜깜한 밤길을 걷다 갑작스레 가로등이 들어온 것처럼, 형님과의 대화는 내 안에 숨죽이고 있던 무언가를 다시 일깨우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술 한잔을 하고 헤어져 숙소로 가면서 밤하늘을 보니 별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울산의 바람은 조금 차가웠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해져 있었다. 오늘 하루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해 준 하루였다. 이렇게 채워진 마음으로 내일은 또 다른 길을 걸어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철학에서 시작해, 삶의 지혜를 배우고, 나 자신을 돌아보며 마무리되었다. 매일 쌓이는 이런 작은 순간들이 내일의 나를 만들어갈 것이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내 삶은 흐르고 있고, 그 흐름 속에서 나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