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함’에 이란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by 마부자

회색빛 구름이 비를 뿌려 대지를 적시고 잠시 밝은 태양이 적신 대지를 말리기를 반복하는 변덕스러운 오후 창문을 열고 그안에 숨은 바람과 함께 독서를 마치고 한권의 책을 영상으로 만난다.


오늘의 책은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에 관한 책이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쇼펜하우어는 일명 뼈때리는 말을 하기로 유명한 철학자 즉, 아픈곳을 콕콕 찌르는 명언을 남긴 대표적인 철학자이다. 오늘 그 문장들 중에 나를 사로잡은 것은 이 문장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단지 시간을 보낼 생각만 한다면
정신이 꽉 찬 사람들은 시간을 활용한다.
빈약한 정신을 지닌 사람이 무료하게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는 것은
그들의 지성과 의지가 스스로
활동을 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 종종 몸속 모든 힘이 정체 상태에 빠진다.
무료함이 찾아오는 것이다.

이러한 무료함에 대처하기
위해단지 일시적이고 임의로 취한 하찮은 동기를
앞에 내세워 의지를 자극하고 그렇게 활동을 개시한다.
그러나 이러한 동기는
그때 그때 그 효력이 달라지기에
또 다시 사람을 무력하게 만든다.”

하와이 대저택 제공 쇼펜하우어


무료함.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무료함’이라는 단어는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익숙했다. 그동안 바쁘게 움직이며 모른 척 지나친 감정이었다.


무료함이란 말은 얼핏 들으면 여유로움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그것을 정신의 빈곤으로 보았다. 무료함은 지성과 의지가 스스로를 움직이지 못할 때 찾아온다고 그는 말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노력'이라는 단어와 마주하게 되었다. 우리는 대부분 노력하며 산다. 더 나은 삶, 더 큰 성취, 더 많은 돈, 더 높은 지위 등 노력은 결핍을 채우기 위한 수단처럼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그 결핍이 채워졌을 때 정말 만족하는가?


쇼펜하우어는 그 지점에서 ‘무료함’이라는 내면의 공허함이 찾아온다고 강조한다. 결핍이 사라지고 나면 우리는 오히려 지루함과 공허함을 느낀다.


그래서 다시 어떤 자극을 찾아야 한다. 작은 목표라도 설정해 몸을 움직이고 마치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그 목표는 임시적이고 가볍다. 그렇기에 다시 무력함이 덮쳐온다. 이것은 삶이라는 악순환에서 도무지 빠져나갈 수 없는 무한 반복인 것이다.


고통을 참으며 노력하고 목표에 도달하면 무료함이 생기고 그 무료함을 없애려 또다시 고통스러운 노력을 반복한다.


그리고 나는 오늘 그 악순환에 나 역시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 오는 기쁨은 짧다.


그리고 곧 '이 다음엔 뭐지?'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그 질문 속에 나는 또다시 결핍을 경험한다. 어쩌면 무료함은 단지 ‘할 일이 없음’이 아니라 ‘의미 없는 움직임’을 반복하는 데서 오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렇게도 쉽게 ‘의미 없는 움직임’을 반복하게 되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목표가 나의 내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외부의 기준에 의해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무엇이 되겠다’거나 ‘무엇을 이루겠다’고 말하지만 그 말 속엔 종종 사회적 인정이나 타인의 기대가 섞여 있다.


그 목표는 마치 내 것 같지만 실은 내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그런 목표는 도달한 순간 허무함이 몰려온다. 나 자신이 움직이고 있다는 감각은 들지만 그 안에 방향성 없는 에너지 소비만이 남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결핍 상태 즉, 당장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을 때 가장 명확한 동기를 갖는다. 예를 들면 “돈이 없다, 외롭다, 힘들다” 등의 결핍은 분명한 행동의 방향을 제공한다.


하지만 그 결핍이 해소되었을 때 즉, 욕망이 채워졌을 때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게 된다.


그래서 당장의 돈을 벌기 위해 행동하고, 외롭지 않기 위해 무의미한 약속을 잡고, 힘들지 않기 위해 계획을 넘긴다.


이때 제대로 된 자기 인식이 없다면 의미를 스스로 생성하지 못하는 인간은 곧바로 새로운 결핍을 만들어내거나 자극적인 외부 동기에 의존하게 된다.


그렇다면 성취 이후 무료함이 찾아오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세운 목표가 나 자신의 가치와 연결되어 있는가를 점검하는 일이다. 외부의 시선에서 벗어나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싶은가?”

“이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를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


목표는 내가 가고자 하는 과정일 뿐 그 자체가 삶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목표를 '단발적인 달성'이 아니라 '지속할 수 있는 여정'으로 삼는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너무 자주 어떤 지점에 도달하면 거기서 행복이 시작된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삶은 정복의 연속이 아니라 여정을 향해 가는 그 과정속에서 깊어지는 감정이다.


성취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자기 대화가 없다면 무료함은 언제나 그 자리에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렇다면 쇼펜하우어는 이 무료함에 어떤 처방을 내렸을까?


그는 ‘지적인 삶’을 무료함의 해결방안으로 제안한다. 자기 성찰과 독서, 예술 감상, 철학적 사유와 같은 활동은 그 자체로 내면의 충만을 가져다주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활동들은 외부의 자극 없이도 나 자신의 지성과 의지가 스스로 활동을 개시하게 만든다.


쇼펜하우어는 이것을 ‘정신의 자율성’이라 불렀고 그 정신의 자율성만이 무료함이라는 감정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라 보았다.


결국 무료함은 외부가 주는 시선이나 압박이 아니라 내 안에 의미의 기준을 마련하지 못했을 때 찾아오는 것이다.


무료함은 단순히 시간이 남아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무료함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그저 ‘무언가를 하기’보다 더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허용 침묵과 공백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다시 듣는 시간 무료함은 그런 방식으로 받아들일 때 삶의 전환점이 되기도 합니다.


무료함은 결핍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공허다. 그 공허를 채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내 삶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오늘 난 ‘무료함’에 이란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

무료함은 반드시 채워야 할 감정이 아니라, 비워둬야 할 여백이다.

이전 02화‘용서’라는 단어에 대해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