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나는 내 자식을 통해 다시금
인생을 배우고 있다

by 마부자


금주 140일째.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몇 번의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뻣뻣한 관절을 깨웠다. 거실로 나가 창밖을 보았다. 새벽의 공기는 맑았고, 햇살은 조금은 무겁게 느껴졌다.


아직 초여름이라 하기엔 이르지만, 바람은 확실히 봄과는 달랐다. 창가에 서서 그런 변화들을 조용히 맞이했다. 명상을 마치고 책상에 앉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제목: 안부

오래
보고 싶었다

오래
만나지 못했다

있노라니
그것만 고마웠다.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중에서 - 나태주


오늘은 평소와는 다른 결이 느껴지는 하루였다. 중요한 일정이 있어 인천으로 향하는 KTX를 예매했다.


운동 시간을 조금 당겨 마친 뒤, 가볍게 집안을 정리하고 동대구역으로 향했다. 혼자 떠나는 장거리 일정이었지만, 발걸음은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오늘의 여정이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하루의 시작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날은 나에게만이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에게도 각별한 의미를 가진다.


때로는 삶의 중요한 날들이 아주 조용하게 다가온다. 특별한 티를 내지 않아도 그 의미는 마음 깊은 곳에서 자리를 잡는다.


기차가 출발하는 플랫폼에서 잠시 멈춰 선 순간, 오늘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귀한지 다시금 느낀다.


오늘은 오랜 기다림 끝에 누군가를 마주하는 날이다. 해병대 부사관으로 복무 중인 둘째 아들이 백령도를 완전히 떠나는 날.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수차례 근무지 변경을 신청했지만 매번 연기되었다. 요즘 군대 역시 인력난이 심각하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 사정이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까지 납득시키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말만 무성하던 시간이 반복되자 나는 이제 확실해지기 전까진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했다. 헛된 기대가 더는 쌓이지 않도록 스스로 방어막을 치는 일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조용히 변화가 찾아왔다. 아들의 짐이 하나둘씩 대구의 집으로 도착하기 시작한 것이다. 말보다 행동이 먼저 도착했고, 나는 그제야 믿기 시작했다.


드디어 그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그리고 오늘이 되었다. 막연한 희망이 현실이 되는 순간 나는 인천행 열차에 올랐다.


푸르고 어두운 바다를 등에 업고 돌아오는 아들을 떠올리며 이 기차는 점점 북쪽을 향해 달린다. 기다림은 항상 길지만 만남은 그 기다림을 잊게 할 만큼 짧고도 따뜻하다.


오늘이라는 하루가 우리 가족에게 얼마나 깊은 의미인지 말로 다 담기 어려운 그런 날이다.


인천으로 향하는 기차 안, 흐르듯 지나는 풍경속에서 녀석에 대한 생각에 잠시 잠겼다. 아빠를 닮아 학업에는 큰 흥미가 없던 아이였다.


대학에 대한 열망보다는 빨리 사회에 나가고 싶다는 현실적인 결정을 내렸고, 고등학교 역시 공고로 진학해 졸업 후 곧바로 취업하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때의 나는, 자식에게 물려준 게 많지 않다는 자책 속에 있었다. 좋은 유전자도, 경제적 여유도 내세울 수 없던 입장에서 “대학은 가야지”라는 말조차 조심스러웠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미안했고 또 미안했다. 그래서였는지, 아이의 결정 앞에 나는 굳이 반대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반대할 자격이 없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결국 인생은 각자가 선택하는 것이고, 아이는 그 선택을 일찍 내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단단히 마음을 먹었던 녀석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 돌연 생각을 바꿨다. 대학에 가야겠다는 것이다.


무슨 계기였는지는 묻지 않았다. 대신 아이는 말보다 행동으로 답했다. 다시 책을 들고, 공부를 시작하더니 결국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입학하자마자 군대를 미리 다녀오겠다며 운전면허부터 준비했다.


군 입대를 말리지 않았던 것도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빨리 다녀오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이가 선택한 곳은 해병대였다.


책상 앞보다는 게임 앞에 더 익숙했고, 체격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던 아이가 해병대를 지원하겠다고 했을 때, 아내는 밤잠을 설쳤다.


하지만 나 역시 이번에도 반대하지 않았다. 자기 삶의 방향을 스스로 결정하는 아이였고, 나는 그 선택들을 지켜보는 일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해병대로 입대한 뒤 약 8개월쯤 지났을 무렵, 걸려온 한 통의 전화는 우리 부부를 다시 한 번 놀라게 했다. 아이는 군대가 자신에게 잘 맞는 것 같다며 부사관에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그것이 단순한 감정의 흘러가는 말이 아니었다는 건 이후의 시간이 증명했다. 아이는 진심이었고 책임을 다했다.


짧은 김포 생활을 마친 뒤, 해병대에 남을 거라면 백령도는 한번쯤 거쳐야 한다며 스스로 그 고립된 섬을 지원했다. 그렇게 떠난 지 3년, 오늘 드디어 육지로 돌아오는 날이다.


기차는 어느새 북쪽으로 더 달려가고 있었다. 풍경은 여전히 흐르고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내 마음도 함께 육지로 돌아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이가 선택하고, 걸어온 그 시간들이 오늘이라는 이정표 앞에 도달한 것이다. 기다림은 길었지만 그 길 위에 고요한 확신 하나가 남는다. 이 아이는 자기 삶을 자기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


기차에 앉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녀석의 지난날들을 되짚다 보니, 마음속에 여러 감정이 물결처럼 번졌다. 한쪽에서는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밀려오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어쩌면 너무 무모했던 건 아닐까 하는 불안도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 모든 감정의 끝에 도달하면 결국은 미안함이라는 감정이 남는다. 부모로서 제대로 챙겨준 것도 없고 다만 옆에서 조심스럽게 바라보는 것 밖에 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조용히 따라온다.


그러나 그럼에도 녀석은 묵묵히 제 길을 걸어왔다. 말보다 행동으로, 기대보다 책임으로 자신을 증명해가는 모습을 보면 어쩌다 나은 자식인지 참 신기하기까지 하다.


늘 어설프게 걱정만 앞서던 나에게 “자식 걱정은 하는 게 아니다”라는 오래된 말이 새삼 깊이 박힌다. 마음속에서만 맴돌던 그 말이, 오늘은 머릿속에도 명확하게 각인된다.


아무리 부모라도, 인생이라는 건 결국 스스로 선택하고 개척해나가야 하는 여정임을 나는 내 자식을 통해 다시금 배우고 있다.


누군가는 책으로 깨닫고 누군가는 삶으로 체득한다면 이 아이는 후자다.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말하는 이론보다 더 강하고 선명한 자기계발을 스스로 실천해가고 있는 이 녀석이 참 대단하다.


그 모습을 상상하니 문득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세상이 어찌되든 누군가는 묵묵히 제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늘 나의 인천여정은 충분히 따뜻하다.


사실 인천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 녀석이 내려오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어 “아빠가 좀 올라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백령도로 들어가기 전, 면허를 따고 급히 중고 경차를 하나 사준 적이 있다. 섬 안에서는 버스도 드물고, 생활 반경도 넓지 않아 그 작은 차 한 대가 꽤 요긴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차가 섬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시작됐다.


백령도에서의 운전은 곧, 고속도로 주행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아이는 그동안 단 한 번도 고속도로를 직접 운전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게다가 이번에 새로 받은 근무지가 포항으로 배정되었다. 인천에서 대구를 거쳐 포항까지 처음 해보는 장거리 운전을 혼자 감당하긴 버거웠을 것이다.


아들은 말끝마다 “대리운전 어쩌구, 탁송차량이 저쩌구…” 하며 여러 방법을 둘러댔지만, 결국 그 모든 말은 단 하나의 부탁으로 귀결되었다. 아빠가 함께해달라는 것이었다.


차는 이미 하루 전, 연안부두를 통해 도착했고 어머니가 수고스럽게 인천 집으로 가져다 두었다. 그래서 지금 이 기차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아들의 첫 고속도로를 함께 달려줄 ‘탁송기사’가 되기 위한 길이기도 하다.


비록 그저 탁송기사 역할이라지만, 마음은 가볍고 기분은 오히려 들떠 있었다. 익숙한 일상이 잠시 멈추고, 낯선 도시에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작지만 특별한 일이었다.


광명역에 내려 버스로 인천으로 이동하는 번거로운 발걸음은 무겁지 않았다. 오랜만의 수도권 거리의 바람도 오늘은 유난히 부드럽게 다가왔다.


아들은 오늘 저녁, 함께 휴가를 나온 선임과 동기들과 시간을 보내고 내일 아침에나 들어온다고 했다. 예전 같았으면 “대구에서 올라왔는데 저녁을 같이 먹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퉁명스럽게 말했을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간도 지금 이 나이의 녀석에게 꼭 필요한 것 같았다.


나 또한 금주를 진행중이라 오히려 오랜만에 만난 아들과 함께 술 한잔 없는 서먹한 저녁을 보내는 것 보다 그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마무리했다.


어머니는 시골집에 일이 생겨 가시고 결국 낯선 도시의 평화로운 밤, 나는 조용히 책을 펼쳤다.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책 한 권과 마주 앉는 이 시간은 예상보다 훨씬 깊고 고요했다.


창밖의 불빛은 모르는 사람들의 삶으로 흘러가고 나는 그 한복판에서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평온 속에 있었다.


오늘은 그렇게, 아들의 하루에 조용히 곁을 보태며 나의 하루를 정리하는 밤이다.

때로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 가장 큰 휴식이 된다는 것을, 오늘 인천의 밤이 조용히 알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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