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141일째 되는 아침, 익숙하지 않은 침대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직 잠이 다 가시지 않은 어깨를 돌려 기지개를 켜고 하루를 시작했다.
거실로 나서니 창밖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인천의 하늘은 흐렸고 유리창 너머의 안개처럼 내 마음도 맑지만은 않았다.
낯선 베란다에 가만히 서서, 아침의 움직임을 바라보았다. 아파트가 끝없이 이어진 회색의 숲은 대구에서도 그리고 이곳 인천에서도 늘 같은 방식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제목: 그리움
햇빛이 너무 좋아
혼자 왔다
혼자돌아갑니다.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중에서 - 나태주
하지만 눈으로 담긴 풍경과 마음에 새겨지는 그것은 전혀 다른 결을 지녔다. 지금 내가 마주한 풍경은 익숙한 모양새임에도 불구하고, 낯선 감정으로 다가왔다.
이 도시의 공기는 다르게 흐르고 같은 빛을 받아도 마음은 다른 색으로 기억한다. 그건 아마도 이곳에 있는 내가 이전의 나와는 조금 다른 사람이라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짧은 명상을 마친 후, 조용히 옷을 챙겨 입었다. 오랜 만에 여유로운 평일의 아침에 낯선 듯 낯익은 곳에서 다른 사람이 되어 공기를 느끼고 싶었다.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며 거리로 나섰다.
이곳은 내가 태어난 동네는 아니지만, 어머니가 아직도 살아가는 동네이고, 나 역시 25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한 곳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낯선 곳은 아니어야 맞다.
다시금 낯선 현실이 스며든다. 태어나고 자란 도시, 35년의 시간을 함께 보낸 그곳이 더 이상 나를 반겨주지 않는 아침이었다.
인생은 물리적 시간을 쌓았다고 해서 정서적인 친밀감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 거리의 아침 풍경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집집마다 다닥다닥 붙어 있던 단독주택들은 모두 사라졌다. 골목을 채우던 낮은 지붕들과 낡은 대문,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던 마당들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빌라와 연립주택들조차 더 이상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그 자리에는 이제 목을 아프게 젖혀야 끝이 겨우 보이는 높고 무표정한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건물 숲 사이를 조용히 걷다 보니, 문득 기억 저편에 남아 있던 한 채의 빌라, 혹은 오래된 주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나의 과거 어딘가를 끌어내어 웃음을 짓고 다가가보면 더 이상 살아 있는 집이 아니었다. 창문은 닫힌 지 오래고 인기척 없는 그곳은 폐허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이 도시는 더 이상 내가 알던 도시가 아니다. 변해버린 것은 건물의 외형만이 아니었다. 거리 위에 있던 사람들, 마당에서 들리던 소리, 창문 너머로 새어 나오던 냄새 같은 것들이 사라졌다.
그래서 이곳에 서 있는 나는, 익숙한 이름을 지닌 아주 낯선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이라 부르기엔 내가 너무 오래 떠나 있었고 다시 돌아왔다고 해서 그곳이 예전의 나를 기억해주지는 않았다.
15년이라는 시간은 그렇게 무심하다. 도시를 바꾸고 사람을 바꾼다. 시간 속에서 지워지고 다시 만들어진다.
이제 이 도시는 기억 속에서만 생생하다. 그리움만으로는 복원할 수 없는 거리가 되었고결국 이곳은 나의 도시가 아니라 누군가의 도시가 되었다. 과거의 내가 머물렀던 흔적 위에 지금은 나 아닌 다른 삶들이 쌓여 있다.
옛기억을 잠시나마 회상하려던 내 발길은 30분도 되지 않아 포기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골목은 넓디 넓은 왕복 4차선 도로가 되었고 아침 출근길 차들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간혹 울려대는 크락션소리에 추억이라는 이름은 느낄 여운을 남겨주지 못했다. 발걸음을 재촉해서 돌아와 고향을 다시 떠날 채비를 시작했다.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더니, 작은 방에 가져갈 물건들과 냉장고 속 먹을 것들을 미리 챙겨 두었다고 하셨다. 말투는 담담했지만 그 속에 담긴 마음은 조용히 전해져 왔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바로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그 마음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머물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장게장, 시골에서 막 올라온 쌀, 꿀과 함께 재워먹으라고 주신 인삼, 그리고 정성스레 만든 밑반찬들까지 하나하나가 사랑이라는 모양으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 순간, 누구나 느끼듯 다시금 어머니의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지 새삼 깨달았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그 안에서 나를 단단히 붙잡아주는 사랑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고향이란 결국 그 마음을 향한 기억이 아닐까. 오래된 거리, 변해버린 집, 낯설어진 도시도, 어머니의 마음 앞에선 다시 익숙한 온기가 변하게 된다.
주신 음식을 바리바리 챙겨 차에 실었다. 어머니의 손길이 담긴 상자들을 조심스럽게 트렁크에 옮기고 이제 출발이다.
그런데 문득, 나는 이 여정의 원래 목적을 다시 떠올려야 했다. 내가 인천까지 올라온 이유는 단 하나, 백령도에서 나오는 아들과 함께 그의 차를 대구로 가져가기 위해서였다. 말하자면, 나는 아들의 차량을 몰고 가는 ‘비공식 탁송 기사’였다.
하지만 지금 이 아침, 나는 혼자 대구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상황이 예상과 달라졌기 때문이다. 아들은 어제 예정대로 백령도를 떠나지 못했다.
짙은 안개로 인해 배의 출항이 취소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처음에는 조금 당황했지만, 곧 마음 한편에서 오래전 들은 말이 떠올랐다.
"독도는 하늘이 허락해야 들어갈 수 있는 섬"이라는 말. 그 말이 이상하게 오늘 아침 내게 닿았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지금 나에게도 백령도는 그런 섬이다. 기상 조건이라는 외부의 변수 앞에서 모든 계획이 무력해지는 곳, 의지보다 자연이 우선되는 땅.
그곳에서 마음과 짐 그리고 모든 것이 육지로 나왔지만 정작 몸은 나오지 못하고 있는 아들이 있다. 그래서 오늘, 백령도는 단지 먼 섬이 아니라 내 마음의 기후마저 흔들어 놓는 감정의 좌표가 된다.
하루만 더 기다리면 함께 내려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일 역시 기상이 좋지 않다는 예보를 들었다. 백령도에서 나오는 배는 여전히 불확실했고, 결국 아들은 조심스레 말했다.
“아빠, 그냥 혼자 차가지고 내려가셔야 할 것 같아요.”
그 말에 서운함보다 먼저 마음이 움찔했지만, 곧 담담한 표정으로 받아들였다. 아들은 죄송하다고 말하며 절대로 의도하지 않았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물론 나는 아들을 믿는다. 그러나 시동을 걸고, 차를 천천히 움직이며 나는 혼잣말처럼 생각했다. “정말 의도하지 않았겠지? 그래, 의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들이 설마 그런 마음으로 그랬겠는가.”
그저 하늘이 허락하지 않았을 뿐이다. 라는 혼잣말을 공허한 하늘에 대고 중얼거리는 나 자신을 보면서 차에 올랐다.
차 안에는 어머니가 챙겨준 음식들과 아들의 이삿짐이 가득 실려 있었다. 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구겨 넣은 짐들 속에서 아들의 채취와 함께 백령도의 오래된 바다향이 은은하게 섞여 코로 스며들었다.
그리고 출발. 짠내 가득 품은 경차 한 대가 나의 오늘을 데리고 고속도로에 올랐다. 바퀴는 묵묵히 길 위를 따라 굴러갔고 나는 홀로 그 속에 앉아 있었다.
어쩌면 이 모든 여정은 혼자가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계획은 흐트러졌고 마음은 조금 어지러웠지만 평정심을 찾아 긍정의 마음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평일의 고속도로임에도 불구하고 도로위에는 생각보다 많은 차량들이 있었다.
아니 많은 차량들이 가다 서다 하며 붉은 등이 연신 꺼졌다 켜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차가 많다기 보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고속도로에 공사구간이 많았다.
특히 중부내륙은 편도 2차선 도로를 한 개 차선을 막은 채 하는 공사 때문에 1시간이상을 거의 멈춰서 있었다.
멈춘 풍경 속에서, 점점 내 안의 부정적인 생각들이 어둠처럼 기어 나왔다. 조급함, 짜증, 어딘가에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런 마음이 드는 순간, 나는 다시 아들의 의도를 떠올리고 있었다. 설마, 그랬을까. 하지만 그런 생각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나는 순간 정신을 붙잡았다.
핸들을 다시 세게 쥐고, 앞을 보며 속도를 조심스레 올렸다. 공사구간이 끝나고 좀 달려볼까 하면 차안에 꾸역 꾸역 실린 짐들로 인해 속도가 나질 않았다.
결국 난 의도치 않게 고속도로의 규정속도를 준수하는 예의 바른 모범 운전자가 되었다.
오전 9시에 인천을 출발했고, 대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2시 30분. 그 사이 잠시 문경휴게소에서 화장실에 다녀온 것이 전부였다. 평소라면 3시간 30분이면 도착했을 거리. 오늘은 장장 5시간 30분이 걸렸다.
예상보다 두 시간이 더 길었던 길, 그 시간 속엔 단지 거리만이 아니라 감정의 굴곡도 함께 담겨 있었다. 그렇게 오늘 하루는, 생각보다 더 길고 무거운 여정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몸은 무거웠지만, 해야 할 일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어머니가 정성껏 챙겨주신 음식들을 하나하나 꺼내 정리하고 차에서 내린 짐들을 방 안 구석구석에 나누어 두었다.
마음 한쪽은 이미 눕고 싶었지만, 또 다른 한쪽은 해야 할 일을 다 마치기 전에는 오늘을 끝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노트북을 켜고 밀렸던 이웃들 과의 소통을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단순한 댓글이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과 눈빛을 느끼며 천천히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답을 적었다.
그렇게 하루가 끝났다. 인천에서 대구까지, 바다에서 도심까지, 어머니의 마음에서 아들의 섬까지 이어졌던 오늘. 길고 길었던 여정의 끝은 서재의 조용한 불빛 아래서였다.
저녁이 되어 어머니의 사랑과 손맛이 고스란히 담긴 음식을 아내와 함께 나누었다.
간장게장의 짭조름한 맛, 시골에서 올라온 햅쌀의 따스한 촉감, 정성스럽게 담긴 밑반찬 하나하나가 단순한 끼니를 넘어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말없이 밥을 먹으면서도, 그 속에는 어머니의 손길이 담겨 있었고, 그 손길은 식탁 위에 따뜻하게 놓여 있었다.
식사를 마친 뒤 아내도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짧은 인사와 감사의 말, 그리고 천천히 이어지는 웃음과 안부 속에서 두 사람은 마음을 나눴다.
혈연 너머로 전해지는 따뜻한 마음, 그런 시간이 주는 울림이 있다. 직접 만날 순 없어도, 이렇게 마음을 건네고 받는 순간들이 가족이라는 단어를 단단하게 만들어간다.
그렇게 오늘 하루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시작되어, 다시 그 사랑을 되새기며 끝나갔다. 고단한 몸과 달리 마음은 이상하게 편안했다. 사랑은 그렇게, 어떤 거리도 부드럽게 잇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