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143일째 아침, 방 안에 스며든 새벽 공기가 이불속에 감춰져 있는 몸을 차갑게 자극하며 천천히 나를 깨운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여름이 완전히 자리를 잡은 듯, 공기 속에 더위가 묻어 있었는데, 오늘 아침은 그 계절이 한발 물러선 듯했다. 이른 시간의 공기는 쌀쌀함이 묻어났다.
제목: 묘비명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자.
꽃을 보듯 너를 본다 중에서 - 나태주
거실로 발걸음을 옮기다 열린 작은 방 문틈 사이로 잠든 둘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 평범한 장면인데 왠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졌다.
내 아이가 맞는데 눈앞의 그 모습이 낯설었다. 그건 아마도 일상이라 부르기엔 너무 오랜 시간이 비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의 빈자리를 메우는 풍경은 늘 이렇게 어색하고 조심스럽다.
그 낯섦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익숙함으로 돌아오겠지만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은 분명하게 마음 어딘가에 남는다. 누군가의 존재는 기억보다 감각에 먼저 반응하는 법인 것 같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이상한 거리감 역시 그 아이가 성장하고 있는 과정이며 또 하나의 징표일지도 모른다. 같은 집, 같은 방, 같은 얼굴인데도 시간은 이렇게 변화를 새겨놓는다.
아침, 아내와 막내가 출근하는 뒷모습을 둘째와 함께 현관 앞에서 조용히 배웅했다. 무심히 “다녀오세요”라고 말하는 모습. 늘 혼자 배웅하던 옆자리에 누군가 함께 서 있다는 것 만으로 오늘 아침은 든든한 시작을 의미했다.
문이 닫히고 난 뒤, 우리도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다. 둘째가 새롭게 배정받은 포항의 관사로 오후 1시에 도착해 인수를 받아야 했기에 시간은 여유롭지 않았다.
문제는 짐이었다. 도저히 작은 경차 한 대에 모든 짐을 실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각도를 바꾸고, 배치를 조정해봐도 공간은 모자랐다. 결국 짐을 다시 정리하기로 했다.
며칠 전 먼저 도착한 커다란 검정 택배 박스를 네 개를 개봉하니, 안에는 옷과 이불이 구역으로 나뉘어 담겨 있었다. 예상보다 더 많은 부피였다.
하나씩 꺼내어 다시 접고, 크기를 줄이고, 가능한 모든 여백을 활용해보았다. 차에 꾸역꾸역 실었던 짐을 전부 내리고, 바닥에 펼쳐놓고, 다시 꾸리기를 반복했다.
땀이 나기도 전에 정신부터 먼저 분주해지는 그런 아침이었다. 그렇게 오전 내내 정신없이 움직인 끝에 결국 택배 박스는 한 개로 줄일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결과보다 그 안에 담긴 시간과 수고가 더 컸던 정리였다.
이 과정은 단순한 이삿짐 정리가 아니라 아이의 또 다른 시작을 돕는 작은 의식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길 위에 설 준비를 마쳤다.
정리한 택배 박스를 우체국에서 등기로 보내고, 우리는 포항으로 출발했다. 면허를 딴 아들이 직접 운전대를 잡고, 나는 조수석에 앉았다.
아들이 운전하는 차에 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들도 긴장했고, 나도 긴장했다. 말은 아끼고, 조심스레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묘한 감정이었다.
운전석에 앉은 아이의 옆모습은 분명 익숙한 내 아들이었지만, 동시에 이제는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는 한 사람으로 보였다.
가는 길에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에 들렀다. 차를 멈추고도 아들은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는 잠시 의아했지만 이내 눈치챘다.
아들이 주유원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여긴 셀프 주유야”라고 말하자 아들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 셀프 주유 처음이에요. 백령도에는 셀프 주유소가 없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무언가 탁 하고 때리는 기분이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셀프 주유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상이었다.
그러나 그 당연함이 누군가에겐 처음 마주하는 낯선 일일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깨닫게 되었다.
만약 아들이 아닌, 낯선 누군가가 주유소에서 기름 넣는 법을 몰랐다고 했다면 나는 아마 속으로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저 사람은 지금까지 기름도 넣어본 적이 없단 말인가?’ 하며 눈빛 하나로 무언의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그 판단은 얼마나 무례하고 얼마나 좁은 시야에서 비롯된 것이었던가.
오늘 아들의 모습을 통해 나는 다시 배운다. 내가 당연히 알고 있는 무언가는 누군가에겐 전혀 접해보지 못한 생소함 일 수 있다는 것.
익숙함을 기준 삼아 타인을 재단하는 습관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내 안의 편협한 사고방식이 얼마나 쉽게 사람을 놓치게 만드는지를 말이다.
그 짧은 주유소 앞의 정적 속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리고 아들이 내게 가르쳐준 그 첫 수업이 고맙고 또 미안했다. 세상은 아직도 배워야 할 것들로 가득하고 나는 아직도 배워야 할 아버지였다.
다행히 백령도에서 3년 동안 해온 운전 덕분인지 아들의 운전 실력은 초보자라고 하기엔 제법 안정적이었다.
처음 차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나는 약간의 긴장을 품고 있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핸들을 양손으로 꼭 쥔 채, 고개를 치켜들고 전면 유리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런 초조한 운전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예상은 곧 깨졌다.
아들은 한 손을 창에 걸치고,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운전했다. 오히려 옆자리에 앉은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걸며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편안한 그 여유에, 나는 대답하느라 바빴다. 마치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을 보는 듯했다. 내가 운전대를 잡고 이끄는 아이가 아니라, 이제는 스스로 길을 잡고 나를 옆에 태우는 어른이 되어 있었다.
포항에 도착하자, 아들의 관사에는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어 나는 들어갈 수 없다는 안내를 받았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 또한 어른의 공간이 되어야 할 자리였으니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결국 나는 포항역에서 기차를 타고 다시 동대구로 돌아오는 길을 택했다.
역 앞에서 아들은 짐을 챙기고 짧은 인사를 건넸다. 관사까지는 10분 거리라며 혼자 갈 수 있다고 했다. 손을 놓고 등 뒤를 지켜보는 일이 늘 익숙해지지 않지만 오늘만큼은 그 거리가 조금 덜 쓸쓸하게 느껴졌다.
3년 전, 철없던 얼굴로 백령도에 들어갔던 아이는 이제 더는 손을 잡아 끌어주지 않아도 되는 성인이 되어 돌아왔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내가 조수석에 앉고 아들이 운전대를 잡은 오늘의 장면이었다.
그 순간, 아이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었다. 부모를 옆에 태우고 길을 안내할 만큼 성장한 어른의 얼굴이었다. 포항역에서 동대구역까지는 40분 남짓한 짧은 거리다. 플랫폼에 선 채 기차를 기다리며 나는 멍하니 선선한 바람을 맞았다.
평일 오후 탑승한 열차는 인적이 드물었고 좌석에 홀로 앉아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는 동안, 생각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3년 전, 낯선 섬에 첫 발을 디디며 시작된 아들에게 그 시간은 외롭고 고립된 듯 보였지만, 그 안에서 나름대로 자신만의 생활을 버티고, 견디고, 이루어 냈다.
하지만 오늘 함께 이삿짐을 정리하고,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차를 몰며 함께 나눈 대화들 사이사이에서 문득문득 떠오른 작은 불안들은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성인이라는 틀 안에 아이를 넣어두려 했지만, 여전히 마음 속에서는 ‘아직 아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백령도라는 폐쇄적인 환경에서 익숙해진 그가 이제 더 넓고 더 복잡한 포항이라는 도시에서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갈 수 있을까. 혼자서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런 걱정들이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마음을 눌렀다.
차 안에서는 분명 용기를 북돋우는 말을 했다. “잘 해낼 거야, 너는 충분히.” 그렇게 믿고 싶었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아들을 보내고, 다시 혼자 돌아오는 기차에 몸을 싣고 나니, 그 마음이 또 흔들렸다. 오히려 백령도에 있을 때보다 더 불안한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때는 어쩌면 물리적인 거리로 마음을 단단히 묶어둘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자유롭게 펼쳐진 그 넓은 세상 때문에 오히려 더 낯설고 더 두려웠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걱정한다고 해서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고, 또 그 결과를 통해 스스로에게 가르쳐온 진실이었다.
얼마 전, 나는 ‘걱정’이라는 감정에 대해 조용한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걱정은 무한정 허용해서는 안 되는 감정이며, 반드시 사용 한도가 있어야 한다고.
그런데도 오늘, 나는 그 한도를 초과하고 있었다. 아들이 떠나고 난 자리, 짧은 여운조차 허락하지 않은 채 나는 나도 모르게 ‘무한 걱정’이라는 카드를 계속 긁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걱정이라는 감정은 나를 끝없는 피로와 불안의 수렁으로 몰아넣을 것이 분명했다. 마치 감정의 채무자가 된 기분이었다.
스스로를 관리하지 않으면 언젠가 이 감정에 파산당할 거라는 예감마저 들었다.불안
열차 창밖으로 스쳐가는 풍경은 마치 이 모든 마음을 조용히 데려가 주는 것 같았다.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들판, 길, 그리고 멀리서 흔들리던 전깃줄들.
그 틈에 나는 나도 모르게 걱정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조용히 마음을 덜어낸 채, 동대구에 도착했고 다시 익숙한 도시로 익숙한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부터 이어진 움직임 탓에 몸은 지쳐 있었고,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부터 피로는 선명하게 몰려왔다. 소파에 앉자마자 눈꺼풀은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아들이 떠난 여운과 하루의 고단함, 그리고 알 수 없는 허탈함까지 한꺼번에 덮쳐왔다. 나는 그냥, 아무 말도 없이 그 감정들 위에 조용히 몸을 기댔다.
그래도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지금은 충분했다.
내일의 걱정은 내일의 나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오늘을 소파 위에 눕혀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