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144일째. 어제 걱정의 자락에 실려온 허탈함 때문인지 일찍 잠자리에 들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처럼 쉽게 잠들 수 없었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린 대통령 후보들의 토론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주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토론을 보는 동안 마음이 답답해져 깊은 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누구를 잘했다, 누가 아쉬웠다 따위의 평가는 굳이 하지 않으려 한다.
모두가 성인이고, 각자의 판단 기준을 갖고 있을 터이니, 토론을 본 사람들 각자가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거라 믿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 마음은 토론이 끝난 뒤 한참 동안 맴돌았다. 그런 밤이었다.
주말 아침, 그런 날이 있다. 뚜렷한 이유는 없지만 집 안에 있는 것이 유난히 답답하게 느껴지는 날.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아내도 아마 같은 기분이었는지, 말없이 창밖을 오래 바라보았다.
정확한 이유를 따져 묻진 않았지만,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했다. 어쩌면 둘째가 다녀간 뒤의 빈자리가 우리 부부의 감정 속 어딘가를 조용히 건드린 게 아닐까 하고.
오랜 시간 비워졌던 자리는 쉽게 메워지는 줄 알았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마주한 아들의 존재는 그 자리의 공허함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우리에게 다시 알려주었다. 짧게 다녀간 시간 이후에 더 짙어진 그 빈자리는 말없이 우리의 주말 감정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내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바람이라도 쐬러 나갈까?" 아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그렇게, 무언가를 정리하려는 듯 집 밖으로 나설 준비를 했다.
목적 없이 나가는 길이 오히려 마음을 조금은 가볍게 만들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늘 가던 익숙한 곳들이 아닌, 주말의 여유를 조금 더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은 좀 더 먼 거리, 드라이브를 겸한 장소를 찾기로 했다.
마음에 남은 어떤 감정을 가볍게 풀어낼 수 있는 공간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예전 캠핑을 즐기던 시절에 자주 함께하던 한 인물이 문득 떠올랐다.
작년까지도 간간이 연락을 이어오던 그는, 여전히 매주 빠짐없이 캠핑을 다니고 있었다. 문득 그런 삶이 부러웠고, 그가 이번 주에도 어딘가에 텐트를 쳐두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그는 어제부터 전라북도 부안에 위치한 한 노지 캠핑장에서 캠핑 중이라고 했다. 그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한결같이 느긋하고 환하게 들렸다.
지도 앱을 열어보니 대구에서 약 4시간 거리. 결코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주말을 감정에 잠긴 채 흘려보내기보다는 조금은 낯선 공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창고에 겹겹이 쌓여 있던 캠핑 장비들 중, 최소한의 짐만 골라내기 시작했다. 간단한 1박이 가능하도록, 너무 번거롭지 않게. 텐트, 간이의자, 침낭, 작은 랜턴 하나까지—모두 오래 전의 추억에 묻혀 있던 물건들이었다.
물론 지인은 "몸만 오라"고 했지만, 우리는 그 말 너머에 있는 캠핑의 감성을 알고 있었다. 단지 어딘가에 도착해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는 과정부터 이미 마음이 바뀌는 것임을.
그렇게 우리는 다시 한 번, 일상의 틀을 벗어나 자연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약간의 들뜸과 설렘.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오늘의 목적은 충분했다.
오전 9시, 몇 년 만에 아내와 함께 대구에서 전라도로 떠나는 여행길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캠핑장에 발걸음을 옮기는 것 역시 거의 5년 만이었다.10년 전만 해도, 우리는 1년에 48번 캠핑을 가는 것을 목표로 삼았던 부부였다.
매주 어딘가의 자연을 품에 안고, 바닥에 텐트를 펼치고, 불 앞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일상이었던 시절. 그 시절을 떠올리며, 우리는 묵은 설렘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들었다.
가는 길은 무척 평화로웠다. 고속도로 위에서 달리는 차창 밖 풍경이 낯설지 않게 스쳐지나갔고, 중간에 들른 휴게소에서 간단한 점심과 간식을 함께 나누며, 천천히 그리고 여유롭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우린 오늘 속도보다 풍경에 마음을 맞춘 여행을 떠났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은 시간, 우리는 드디어 캠핑장에 도착했다. 바람이 가볍게 나무 사이를 흐르고 있었고, 이미 도착해 있던 그가 멋지게 셋팅해둔 캠핑 장비들이 반갑게 눈에 들어왔다.
의자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며, 아내와 나는 오랜만에 ‘캠핑’이라는 단어의 온도를 다시 느끼기 시작했다. 낡았지만 여전히 튼튼한 테이블, 햇살을 받으며 반짝이는 주전자, 바닥을 기는 그림자 속에서의 조용한 대화들.
이번 캠핑은 또 하나의 처음이 있었다. 무알콜로 보내는 첫 번째 캠핑.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캠핑장의 밤은 어김없이 술과 함께였고, 이야기의 끝자락에는 늘 취기가 남았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차분한 의식처럼 맑은 정신으로 자연을 바라보고, 더 또렷하게 느껴지는 공기와 더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이 우리 곁에 있었다.
오늘, 우리는 다시 캠핑을 시작한다. 마음의 속도를 낮추고, 오랜만에 마주한 자연과 함께 하루를 조용히 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오늘은, 조금 특별한 하루로 남게 된다.
비록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마치 한 잔씩 나눈 듯 깊고 진한 시간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의 대화는 저녁의 불빛 아래서 오래도록 이어졌다. 장작불빛은 타닥이며 제 몫의 온기를 나눠주었고, 타프 아래 옅게 번지는 오래된 가스등불은 그 시절 우리가 자주 나눴던 감정의 결을 다시금 떠오르게 했다.
캠핑장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조차 그 순간만큼은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어제부터 함께였던 듯, 어쩌면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이들처럼 말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런 공기가 있다. 대화가 흘러넘쳐도 부담스럽지 않고, 침묵조차도 편안한 분위기. 그 속에서 우리는 시간의 감각을 잊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 시간이 그렇게 깊어졌다는 것도, 그저 말 한마디 사이에 스며든 느낌이었다.